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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105

MLB 링크 ICCsports MLB 링크 (2010.01.04. Updated) 아메리칸리그 팀 커버하는 지역 신문 모음 서부조 중부조 동부조 에인절스-공식 오렌지카운티 레지스터 LA 타임스 LA 데일리뉴스 데일리 브리즈 롱비치 프레스-텔레그램 시카고 W.삭스-공식 시카고 트리뷴 시카고 선 타임스 시카고 데일리 데일리 헤럴드 마이너리그(BA) 볼티모어-공식웹 볼티모어 선 워싱턴 포스트 워싱턴 타임스 오클랜드-공식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산호세 머큐리 콘트라 코스트 타임스 디트로이트-공식 디트로이트 뉴스 디트로이트 프리프레스 앤아버 뉴스 보스턴-공식 보스턴 글로브 보스턴 헤럴드 프로비든스 시애틀 - 공식 데일리 헤럴드 뉴스 트리뷴 시애틀 타임스 시애틀 포스트인젤리전서 마이너리그(BA) 클리블랜드-공식 비칸 저널 클리블.. 2010. 1. 6.
[MLB 30개 구단 역사(4)]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구단은 1969년 창단했다. 창단 이후 파드레스는 1984년, 1998년 두 번 내셔널리그 챔피언으로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두 번 모두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파드레스는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지 못했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사진: ICCsports.com, Flickr, PicApp San Diego Petco Park (2006) by iccsports 파드레스의 홈구장인 펫코파크 1969년 당시 신생팀은 파드레스, 몬트리올 엑스포스(현 워싱턴 내셔널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시애틀 파일럿츠(현 밀워키 브루어스) 등 4개 팀이었다. 파드레스는 첫 6년 동안 매시즌 내셔널리그 서부조 최하위에 머물렀다. 희망이 없어보였던 파드레스에 회생의 빛이.. 2010. 1. 3.
[스타 열전] 그렉 매덕스 그렉 매덕스는 메이저리그의 전설과도 같은 투수다. 사이영상을 4년 연속 받은 첫 번째 투수, 17년 연속 15승을 챙긴 투수, 골드글러브를 18번이나 받은 투수, 1920년대 이후 최다승(355승)을 올린 투수가 바로 매덕스다. 매덕스는 어떤 선수였는지 알아본다. 글: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사진: PicApp ■ 3,000 삼진아웃의 의미 머리로 잡은 삼진 아웃 3천개. ‘컴퓨터 투수’ 그렉 매덕스는 2005년 7월 메이저리그 역사상 3천 삼진을 잡아낸 13번째 선수로 기록된 바 있다. 매덕스는 2005년 7월26일 시카고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오마 비스켈을 삼진 아웃으로 돌려세우며 통산 3천 번째 삼진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3천 탈삼진을 .. 2010. 1. 1.
[스타 열전] 조시 베켓 조시 베켓(Joshua Patrick Beckett, 투수, 우투우타, 05/15/80, 193cm, 86kg, 1999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순위 지명- 글: 정재호(전 ICCsports.com 기자), 박병기(ICCsports.com 블로거) 조시 베켓의 시작은 프로에 데뷔하면서부터 요란했다. 지난 1999년 그는 십대의 나이에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우완투수였지만 그해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플로리다 말린스에 입단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것은 과거 빌 길릭슨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의 재능과 잠재력은 벌써부터 경쟁자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00시즌 프로무대에 첫 발을 내디딘 베켓은 명성만큼이나 화려한 구위를 앞세워 루키리그, 낮은 싱글A 클래스를 압도해나갔다. 0점대 방어율과.. 2009. 12. 30.
[추억의 스페셜] 미첼 리포트는 무엇인가 전 상원의원인 조지 미첼과 조사팀이 작성한 409페이지 분량의 메이저리그 야구(MLB) 선수들의 약물 사용 현황 리포트는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미루어 짐작했던 부분이 현실로 드러나는 보고서였다. '미첼 리포트'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본다. 글: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 리포트 작성 과정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과 조사팀은 미국, 캐나다, 도미니카 공화국에 거주하는 700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모두 조사 내용과 직, 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인물이었고 550명은 메이저리그의 전현직 고위관계자, 감독, 코치, 팀 닥터, 트레이너 등이었다. 미첼 의원은 또한 버드 셀릭 커미셔너를 비롯한 메이저리그 사무국 관계자 16명을 인터뷰했고 사무국과 각 구단에서 제출한 자료 11만5천 페이지를 분석했다.. 2009. 12. 29.
[스타 열전] 홈런킹에 도전하는 라이언 하워드 약물의 도움 없이 로저 매리스의 한 시즌 최다홈런(61개) 기록을 넘어선 선수는 아직까지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넘어선 선수는 모두 약물의 도움을 받았음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라이언 하워드가 약물의 도움을 받지 않는 선수라면 그가 매리스의 기록을 넘어설 유력한 후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라이언 하워드는 누구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글: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사진:PicApp ☆ 짐 토미도 필요 없게 만든 선수 2005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핵심타자인 짐 토미가 부상으로 빠진 사이 기회를 얻는 선수는 바로 하워드였다. 트리플A에서 뛰고 있었던 하워드는 빅리그로 승격된 후 88경기에 출전, 홈런 22개, 63타점, 타율 2할8푼8리를 기록했는데 이는 필리스가 토미를 미련 없이 트.. 2009. 12. 29.
[MLB 30개 구단 역사(1)] 보스턴 레드삭스 A "Model" Fenway Day by B Tal 보스턴 레드삭스는 1918년 월드시리즈에서 챔피언이 된 후 단 한 번도 챔피언 타이틀을 갖지 못했다. 이 팀이 2004년에 챔피언이 되기 전까지 '밤비노의 저주'라는 말이 끊임없이 따라다녔을 정도다. 레드삭스의 역사를 줌인해 본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사진: Flickr, PicAPP ■ 보스턴 아메리칸스 레드삭스는 1900년 보스턴 아메리칸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했다. 그리고 이후 서머셋, 필그림이라는 닉네임을 가졌다. 창단 후 3년 만인 1903년 보스턴은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챔피언이 됐다. 1919년까지 보스턴은 5차례 챔피언이 되는 등 황금기를 누렸다. 보스턴은 1907년 12월18일 레드삭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원래는 .. 2009. 12. 29.
[스타 열전] 49세에 MLB에서 뛰었던 훌리오 프랑코 프로 야구에서는 선수가 30세가 넘어가면 노장으로 불린다. 30대 중반이면 은퇴를 할 나이이고 30대 후반으로 가면 '신기한' 선수가 된다. 그 나이가 됐음에도 계속 뛰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신기하다.  40세가 넘어가면 완전히 노인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요즘은 의학과 과학이 발달되어서인지 40대 선수들이 의외로 잘한다. 메이저리그에는 49세의 현역 선수가 있었다.지금은 은퇴한 훌리오 프랑코가 주인공. 글: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사진: PicApp, 뉴스뱅크 이미지☆ 47세에 메츠와 2년 계약  프랑코는 지난 2005년 12월8일 메츠의 오마 미나야 단장과 2년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그의 나이 47세였다. 47세의 선수와 2년 계약을 맺은 미나야 단장은 정신 나간 사람일까? .. 2009. 12. 28.
[스타 열전] '빅파피' 데이비드 오티스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타자 데이비드 오티스(1975년생)를 보면 왠지 정이 간다. 야구를 잘할 것 같지 않은 뚱뚱한 몸매에 서글서글한 얼굴 그리고 한때 무명 시절을 보냈던 선수라는 조건이 편안함을 주면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야구 팬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굿바이 홈런 및 안타를 자주 터뜨렸기 때문이다. 베이브 루스도 그래서 더 인기를 끌지 않았을까. 오티스는 그러나 2003년 메이저리그가 실시한 약물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100명 중 한 명인 것으로 알려져 망신살이 뻗쳤다. 오티스는 어떤 선수인지 알아본다. ☆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 오티스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에스투디아 에스파야트 고등학교에 다녔던 1992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자유계약 선수로서 사인을 해 미국으로 오게 됐다. 본격적으로 미국에서 .. 2009. 12. 27.
[스타 열전] 코너웍의 마술사 톰 글래빈 배리 본즈의 홈런 기록에 묻혔지만 톰 글래빈(1966년생)은 300승에 대한 반응은 괜찮은 편이었다. 본즈의 최다 홈런 기록만 아니었더라면 글래빈의 300승은 열렬한 반응을 얻었을 것이다. 그가 2007년 300승을 기록했을 때 미 언론은 좌완 투수 글래빈을 조명하며 그의 업적을 소개했다. 팬들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공을 던지는 투수인 글래빈은 1987년 메이저리그 선수가 된 후 20년 만에 300승을 챙겼던 것이다. 왼손 투수가 300승을 올린 것은 역사상 다섯 번째 일이고 글래빈은 300승을 올린 23번째 투수가 됐다. 글래빈은 어떤 선수인지 알아보았다. 글: 밝은터(이 블로그의 블로거) 사진: PicApp ■ 최고의 컨트롤 투수 톰 글래빈의 최대 장점은 역시 컨트롤 능력이다. 미국에서는 '핀 포인.. 2009. 12. 22.
[스타 열전] 입과 배와 실력으로 유명해진 데이비드 웰스 왼손 투수였던 데이비드 웰스(1963년생)는 40대 중반에도 메이저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이미 은퇴를 해서 코치 수업을 받거나 감독이 되어 있을 나이에 현역 생활을 고집했던 웰스는 '화려한' 20년을 보냈다. 1987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한 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신시내티 레즈, 뉴욕 양키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었던 웰스는 통산 239승157패, 평균 자책점 4.13를 기록했다. 속마음 털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 웰스는 어떤 선수였을까? 글: 밝은터(이 블로그의 블로거) 사진: PicApp ■ '입'으로 화제가 된 투수 웰스는 좋게 보면 '솔직한 사나이'이고 나쁘게 보면 '위험한 입'을 가진 인물이다. 지난 200.. 2009. 12. 21.
[스타 열전] 개리 셰필드 개리 셰필드는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항상 뉴스 거리를 제공하는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후 LA 타임스 기자들에게 여러차례 특종을 만들어준 바 있다. 셰필드는 어떤 인물인가? 그의 라이프를 소개하기로 한다. 글: 정재호 기자(2002년 당시 ICCsports.com 기자/현 유코피아닷컴 기자) 글/사진: 밝은터(2002년 이후 소식 추가), PicApp `야구 천재` 개리 셰필드의 유년시절 1968년 11월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시에서 태어난 개리 셰필드는 고등학교 시절 지역을 대표하는 야구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마치 야구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고교 졸업 마지막 해, 드래프트에 참가한 고교 졸업생 중 `최고의 선수`로 꼽히며 5할의 타율.. 2009. 12. 19.
[스타 열전] 프로의 냉혹함 경험한 왕치엔밍 글: 밝은터(이 블로그의 블로거) 사진: PicAPP 만약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 플레이오프 경기 1차전에 선발로 등판했다면 한국은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과거 박찬호가 선발 등판의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한국 팬들은 무척 아쉬워했는데 이후 김병현이 구원투수로서 플레이오프에 등판해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2009시즌에는 박찬호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월드시리즈 경기에 여러 차례 구원 등판해 잠시 한국에서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바 있다. 사실 대만은 한국보다 메이저리그에 늦게 진출했지만 팬들은 이미 여러 차례 특이한 경험을 했다. 한국에서는 왕젠민으로 통하는 왕치엔밍 덕분이다. 지난 2006년 대만출신의 빅리거 왕치엔밍은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로서 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등판해 대만.. 2009. 12. 19.
[추억의 인터뷰] 김병현 특급 소방수 만들기 김병현이 미국 메이저리그로 복귀하기 위해 몸만들기가 한창이라고 합니다. 한국 팬들도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02년 빅리그라는 메이저리그 전문 잡지를 ICCsports.com이 만들었을 당시 유정훈 기자가 미국 내 저명 야구 칼럼니스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김병현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다음은 그 내용입니다. 인터뷰어: 유정훈 인터뷰이: 짐 칼리스, 댄 비클리, 로드 비스튼 인터뷰 일자: 2001년 12월 쯤 인터뷰 방법: 이메일 사진: ICCsports.com 본지는 미국 내 유력 언론의 칼럼니스트과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김병현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들어 보았다. ■ 짐 칼리스(베이스볼 아메리카 편집국장) 김병현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성장하기 위해선 컨트롤을 향상 시킬 필요가 있.. 2009. 12. 18.
[추억의 스페셜] 박찬호가 한국에 간다면... 아래 글은 1997년 8월1일 천리안에 올려진 것입니다. 이 블로그의 필자는 당시 박찬호의 인기가 급상승하자 여러 각도의 기사를 많이 썼는데, 한국으로 가면 박찬호가 몇 승이나 올릴까 하는 일종의 가십성 기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년 전에 제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글/사진: ICCsports.com 만약 박찬호가 미국야구에서 당장 짐을 싸 한국으로 금의환향한다면 한국 프로야구에서 과연 몇 승이나 올릴 수 있을까? 예상 답은 최소 20승이다. 여기 제시된 박찬호의 승수에 대한 근거는? 미국에서 활약한바 있는 한국 선수의 기록과 비교하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미국프로야구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국선수는 모두 3명. 이중 2명은 이미 은퇴를 했으며 2명은 현역선수로 활.. 2009. 12. 16.
[스타 열전] 165km 강속구 투수 저스틴 벌랜더 지난 2007년 6월12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저스틴 벌랜더(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야구팬들에 재미난 볼거리를 제공하는 투수다. 벌랜더는 브루어스전에서 9회에 99마일의 빠른 공을 던져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8회에는 102마일의 패스트볼을 던졌다. 3-4마일 정도 스피드건 차이가 있었다 하더라도 9회에 90마일 후반대의 강속구를 던진 것은 놀라운 일이다. 또한 노히트노런은 조작이 아닌 사실이기 때문에 젊은 선수의 '위대함'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 벌랜더는 어떤 선수인가. ■ 대학 때도 99마일 찍어 벌랜더는 올드 도미니언 대학을 3년 동안 다녔다. 이곳에 있을 때 그는 어떤 경기에서 99마일(159km)을 7차례나 기록했다. 그의 패스트볼 99마일은 단순히 스피드건 조작이라.. 2009. 12. 13.
[추억의 스페셜] 박찬호 야구 전문지 표지모델 '코리언 특급' 박찬호가 미국 내 유일의 전국지인 USA투데이지에서 발행하는 베이스볼 위클리의 표지모델로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1998년 기사인데요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미국 내 야구 잡지 중가장 권위있는 주간지로 알려진 베이스볼 위클리는 '한국의 자랑'이라는 표지 제목과 함 께 박찬호의 피칭 모습을 표지사진으로 실었다. 한국계 미국인 기자인 도티 엔리코가 심층 취재한 박찬호 특집에서는 박찬호 뿐만 아니라 박세리, 조진호 등도 거론돼 이번호는 한국선수들의 잔치판이 되었다. 도티 기자는 "한국이 경제난을 겪 고 있는 가운데 박찬호와 박세리는 한국민의 정신력을 고양하는 데 큰 역할을 맡고 있다"고 전제한 뒤 박찬호의 스토리를 전했다. 다음은 베이스볼 위클리가 소개한 박찬호 특집 기사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2009. 12. 10.
[스타 열전] 프랭크 토마스 프랭크 토마스 (Frank Edward Thomas) / 외국야구선수 출생 1968년 5월 27일 신체 키196cm, 체중125kg 팬카페 상세보기 프랭크 토마스(1968년 5월27일생)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네 번째로 타율 0.300, 500홈런, 1,500타점, 1,000득점, 1,500 볼넷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토마스에 앞서 이 기록은 세운 세 명의 선수는 멜 오트, 베이브 루스, 테드 윌리엄스다. ■ 스테로이드 없었다면 매년 홈런왕 도전 프랭크 토마스는 9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홈런 타자였다. 1990년 메이저리그 데뷔를 한 토마스는 1991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9차례 홈런 부문 10위 안에 들어갔다. 2위 자리에는 4번 올랐던 그는 스테로이드가 없었다면 적어도 5차례 홈런왕이 됐을 것이다.. 2009. 12. 7.
[추억의 인터뷰] 록스타보다 인기 높았던 에릭 가니에 한때 LA에서 그의 인기는 코비 브라이언트나 샤킬 오닐의 그것 이상이었다. 그가 등장하면 마치 세계적인 록스타(Rock Star)가 등장하는 것과 비슷한 환호성이 터졌다.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믿음을 줬다. 또 그가 등장하면 "경기는 끝났다(Game Over)"라는 메시지가 전광판에 떴다. LA 다저스의 마무리 전문이었던 에릭 가니에(Eric Gagne)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전성기였을 때 가니에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2003년 8월 어느 날이었다.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거의 떠나고 기자들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혼자 있던 가니에를 발견했다. 나는 "독점 인터뷰의 좋은 기회다"라고 생각했고 그에게 다가가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는 "잠깐은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인터뷰어: 박.. 2009. 12. 2.
[추억의 인터뷰] 박찬호 에이전트였던 스티브 김 1997년으로 기억합니다. 루키라는 잡지에 기사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곽형근 씨라고 다저스 구단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분이 박찬호의 에이전트인 스티브 김(한국명 김철원)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묘하게도 그 잡지에는 제 이름(밝은터)을 달고 기사가 나갔는데 이제와서 그것을 수정합니다. 잡지의 편집자가 제가 편집장이니까 제 이름을 바이라인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곽형근 씨에게는 미안했는데 이제라도 수정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 기사를 최근 발견하고 올리게 됐습니다. Steve Kim_former sports agent by iccsports “나는 한국의 제리 맥과이어” 최근 흥행에서 크게 성공한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톰 크루즈는 똑똑하고 실력 있는 스포츠 에이전트 제리 맥과이.. 2009. 11. 27.
[스타 열전] 잭 그레인키 '인간 승리' 2009년 11월18일 잭 그레인키는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시즌 16승8패, 평균 자책점 2.16을 기록한 그레인키는 1위표 28개 중 25개를 받아 여유 있게 펠릭스 에르난데스를 제쳤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에이스 에르난데스는 19승5패, 평균 자책점 2.49를 기록한 바 있다. '인간승리'의 표본이 된 그레인키에 대해 알아보았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야구 마이너리그에 관심 있던 팬이라면 잭 그레인키(Zack Greinke: 미국에서는 그링키로 발음함)를 그때부터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현 캔자스시티 로열스 소속인 그레인키는 '캔자스시티 버전 릭 앤킬'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다. 마이너리그 시절 그는 최고 유망주 중 한 명이었다. 고교 졸업 후 MLB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6번으로 로열스.. 2009. 11. 19.
[스타 열전] 통산 타율 0.366의 타이 콥 Ty Cobb by farlane 104년 전인 1905년 8월30일 타이 콥(Ty Cobb)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첫 타석에서 그는 41승을 기록했던 투수와 상대해 2루타를 날렸다. 상대팀은 뉴욕 하일랜더(양키스 전신)였고 투수는 1904시즌에 41승을 올렸던 잭 체스브로였다. ■ 통산 타율 3할6푼6리 1905년부터 1928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타이 콥의 통산 타율은 3할6푼6리였다. 로저스 혼스비가 비슷한 시기에 타이 콥의 기록에 도전했지만 3할5푼9리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그쳤다는 표현이 어색하지만 말이다. 현대 야구에서는 통산 평균 타율 3할 이상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3천 타석 이상을 기록했던 선수 중 타이 콥에 가장 근접했던 .. 2009. 11. 14.
[스타 열전] 난민 도우려다 사망한 로베르토 클레멘테 사진 왼쪽부터 로베르토 클레멘테, 윌리 메이스, 행크 애런 메이저리그(MLB)는 매년 로베르토 클레멘테를 기념하는 날을 정해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린다. 조국을 돕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던 중 사망했던 클레멘테는 MLB에서 뛰었던 선수들 중 가장 봉사정신이 투철한 인물이었다 ■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누구 클레멘테는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했던 60년대와 70년대에 13차례나 3할 타율을 기록한 수퍼스타였다. 1971년에는 월드시리즈 MVP로 선정된 바 있는 그는 이듬해인 1972년 12월31일 니카라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난민들을 돕기 위해 구호물자를 싣고 가다 항공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1955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한 후 1972년까지 줄곧 한 팀에서 뛰며 통산 타율 3할1푼7리,.. 2009. 11. 14.
[추억의 인터뷰] 최초의 포수 빅리거 노렸던 권윤민 2001년 시카고 컵스 산하에는 최희섭 외에도 권윤민이라는 미래의 스타가 있었다. 포지션은 포수였고, 말을 참 맛깔라게 했던 선수였다.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권윤민 인터뷰 일자: 2001년 인터뷰 방법: 전화통화 최희섭 선수와 함께 미국 땅을 밟았을때까지만 해도 권윤민 선수(당시 23세)는 최 선수 못지 않는 강타자로 주목 받던 선수였다. 지난 시즌(2000년) 싱글A팀인 유진 에머럴드에서 초반 5할 대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던 권 선수는 한국에 있는 부친이 투병을 하게 되자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지면서 페이스를 잃기 시작했고 결국 고타율도 금세 추락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권윤민이 올시즌 부활할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인하대 재학시절 14회 대륙간컵 야구대회 .. 2009. 11. 12.
찬호 '발차기 사건' 팀 벨처 추신수의 코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팀 벨처(48)와 투수 코치 계약을 맺었다. 벨처는 박찬호 '발차기 사건'에 연루된 전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 투수 출신. 당시 발차기 사건은 다음과 같이 발생했다. 박찬호가 1루로 달려갈 때 그를 강하게 태그했던 벨처는 곧이어 박찬호의 옆차기를 맞아야 했지만 다행히 정통으로 맞지 않아 큰 부상은 없었다. 당시 한국 팬들은 제대로 가격했어야 한다며 오히려 박찬호를 두둔하는 분위기였다. 그 벨처가 추신수 소속팀의 코치가 된다. 묘한 인연이다. 벨치는 지난 8년 동안 인디언스 구단의 특별 보좌역을 담당했다. 이 역할을 담당하면서 그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지도하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타구단 선수들에 대한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해 인디언스 코칭스태프에 제공하는 일도 맡았다... 2009. 11. 7.
[스타 열전] 양키스 27번째 우승 이끈 27번 지라디 감독 뉴욕 양키스의 조 지라디 감독(1964년 10월14일 생)이 양키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2008년 그는 유니폼 등번호로 27번을 선택했다. 27번은 깊은 의미가 있는 번호이다. 양키스의 통산 27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009년 11월4일(미국 기준) 양키스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4승2패로 승리해 구단 역사상 27번째 챔피언이 됐다. 지라디 감독의 등번호 27번이 더욱 빛나는 날이었다. 양키스가 조 토리 감독을 떠나보낸 후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은 "토리가 떠났으니 아메리칸리그 동부조는 레드삭스의 천하가 됐다. 지라디도 좋은 감독이지만 토리를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기뻐했다. 첫 시즌인 2008년에는 레드삭스 팬들의 말이 맞았다. 양키스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 2009. 11. 5.
박찬호 無 vs. 박찬호 有 Chan Ho Park, Dodgers by iccsports 박찬호가 없었다면... 박찬호의 존재는 1990년대 한국 국민들의 생활 방식을 바꿔 놓을 정도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대한민국 국민들 특히 남성들은 그의 경기결과에 연연하며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갖게 됐고 메이저리그 매니아들도 늘어나 한때 메이저리그가 한국 프로야구 보다 더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09년 현재 박찬호의 인기는 메이저리그 인기와 함께 추락했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코리언 특급'으로서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않았었더라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밝은터는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않았을 가상의 경우와 실제 상황을 꾸며 보았다. 박찬호.. 2009. 11. 1.
박찬호 월드시리즈 생애 첫 등판! 피칭 내용 박찬호(36)가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구원투수인 박찬호는 29일(미국 기준) 뉴욕에서 열린 2009월드시리즈 2차전(대 양키스 전)에서 7회말 무사 1,3루에 등판, 2타자를 상대로 1안타, 1삼진아웃을 기록했다.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박찬호는 6회에 불펜 피칭을 하지 않았다. 6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필리스의 선발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마쓰이 히데키에 통한의 솔로홈런을 맞았다. 1-1에서 1-2이 됐다. 불펜에 박찬호가 보였다. 박찬호는 7회초부터 몸을 풀고 있었다. 그러나 7회말에 여전히 페드로가 등판했다. 결과적으로 필리스 감독의 오판이었다. 페드로는 첫 타자 제리 헤어스턴에 우전안타, 멜키 카브레라에 우전 안타를 맞고 무사 1,3루의 위.. 2009. 10. 30.
[추억의 인터뷰] 찬호의 절친이었던 맷 허지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딱 두 명이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존 우든 감독과 맷 허지스다. 존 우든 감독의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9/04/25 - 존 우든 감독의 성공의 피라미드 그리고 나머지 한 명. 허지스의 인터뷰를 오늘 마침내 소개할 수 있게 됐다. 마침내라는 말의 의미는 당시 인터뷰 내용이 실린 잡지를 오늘 찾아냈기 때문이다. 2002년 시즌이 시작하기 전이었다. LA 다저스 구장에서는 스프링 캠프로 떠나기 전에 열리는 자발적 훈련이 열리고 있었다. 기자는 다저스 구단 직원인 커티스 정 씨의 소개로 맷 허지스(구원투수)를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됐다. 허지스는 공석이 된 다저스의 마무리 자리를 차지하고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커티스 씨의 말처럼 허지스는 "최고의 .. 2009. 10. 25.
박찬호 다시 날다 박찬호(36)를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올라가고 내려오고 또다시 올라가는지를 알 수 있다. 지난 1994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던 박찬호는 1996년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면서 전 세계 한국인들의 희망이 됐다. 당시 박찬호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지인들과의 대화에 낄 수 없을 정도였고 한국어 언론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큰 지면으로 할애해 보도했다. 박찬호 덕분에 이전에는 없었던 일간지 스포츠 섹션이 생겼을 정도로 그에 대한 관심은 한국 언론 역사에서도 중요한 한 부분으로 남을 정도다. 그가 선발 등판할 때마다 다저스타디움은 물론 미 전국 경기장마다 한인 팬들로 가득했다. 뉴욕 메츠 구단은 박찬호가 등판하는 경기에서 뉴욕 한인 팬들이 다저스를 응원한 것에 깜짝 놀라 서재응.. 2009.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