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스타 열전] 통산 타율 0.366의 타이 콥

by 밝은터_NJT 2009. 11. 14.
반응형

Ty Cobb
Ty Cobb by farlane 저작자 표시비영리

 
104 전인 1905 830 타이 (Ty Cobb)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타석에서 그는 41승을 기록했던 투수와 상대해 2루타를 날렸다. 상대팀은 뉴욕 하일랜더(양키스 전신)였고 투수는 1904시즌에 41승을 올렸던 체스브로였다.


통산 타율 366

 1905년부터 1928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타이 콥의 통산 타율은 366리였다. 로저스 혼스비가 비슷한 시기에 타이 콥의 기록에 도전했지만 359리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그쳤다는 표현이 어색하지만 말이다. 현대 야구에서는 통산 평균 타율 3 이상을 기록하는 자체가 힘든 일이다. 3 타석 이상을 기록했던 선수 타이 콥에 가장 근접했던 현대 야구 타자는 토니 그윈으로 그는 82년부터 2001년까지 338리를 기록했다. 타이 콥은 지금은 불가능한 시즌 타율로 여겨지는 4 이상을 3번이나 기록했다. 38 이상을 기록한 시즌도 아홉 시즌이나 됐다.

 그의 통산 기록은 다음과 같다. 3035경기 출전, 4189안타, 홈런 117, 1937타점, 도루 892, 출루율 433, OPS 0.945.

 기타 경력을 보면 1911 아메리칸리그 MVP, 타격왕 12, 월드시리즈 출전 3, 트리플 크라운 달성 1(1909) 등이 눈에 띈다. 역대 최고 기록 보유 부문에서는 통산 타율(367), 최다 타격왕(12), 최다 3 시즌(23), 최다 홈스틸(50) 등에서 1위에 올라 있다. 최다 안타와 최다 도루 부문에서도 1위였지만 이는 피트 로즈와 리키 헨더슨에 의해 무너졌다.

독특한 성품

 그는 성격이 독특했다. 나쁘게 말하면 괴팍했고 좋게 말하면 개성이 넘친 선수였다. 그의 독특함은 은퇴 후에도 유지됐다. 타이 콥은 은퇴 30년이 지난 1958년의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이 지금 뛴다면 타율이 어느 정도일까?"라는 질문에 "31 정도"라고 답했다. 그의 부연 설명은 걸작이었다. " 나이 72세이니 정도밖에 기록할 없겠지"

 그의 독특한 행동은 계속 이어졌다. 올드 스타 자선 야구 행사에 출전한 그는 포수에게 "나이가 들어 방망이를 놓칠지 모르니 뒤로 앉아 있어라" 말한 기습 번트를 대고 1루에 진루한 적도 있었다. 같은 행동은 현역 시절에도 자주 목격됐다. 그는 주루 플레이를 항상 스파이크가 선명하게 보이게 하면서 상대 수비수를 차는 자세로 질주했다.

과장을 보태 박찬호가 과거 옆차기를 했을 당시와 비슷한 자세로 2, 3루와 홈으로 질주했던 것이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야구 전문 작가들은 타이 콥이 수비수에 위협을 주기 위해 스파이크 날을 매일 갈았다는 엽기적인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콥은 지나친 승부욕과 잔인함 등으로 인해 '그라운드의 외로운 늑대' '방망이를 난봉꾼'으로 불렸다. 그는 '더러운 선수' '인종차별주의자', '폭력적인 사람'으로 통했다. 그는 상대팀 선수뿐만 아니라 동료 심지어 팬과도 싸움을 했다.

Ty & Shoeless Joe
Ty & Shoeless Joe by farlane 저작자 표시비영리
타이 콥과 조 잭슨

그라운드의 엽기맨

 그의 엽기적인 행동을 모으면 있을 정도의 분량이라고 한다. 타이 콥은 안타를 많이 때려내기 위해 방망이를 사이를 벌려 놓는 '스플릿 핸드 그립' 적용했는데 이는 확실히 효과를 봤다. 그런데 1925 '홈런왕' 베이브 루스에 대한 이야기가 연일 보도되고 기자가 그에게 "루스의 파워는 정말 대단하다" 칭찬하자 승부욕이 발동한 그는 경기에서 홈런 3, 다음 경기에서 2개를 폭발시켰다. 홈런을 못치는 것이 아니라 안치는 것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대목이었다. 홈런 12개가 콥의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었기 때문에 그는 확실히 홈런 타자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홈런 타자가 되기를 거부했다.

 콥은 원래 오른손 타자였으나 1루에 빨리 도달하기 위해 왼손 타자로 전향하기도 했다. 우투/좌타의 선수가 것이다.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의 야구 인생은 시작부터가 특이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17세가 되자 갑자기 야구를 하기 위해 타지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아들이 변호사가 되길 원했던 그의 부친(윌리엄 ) 강력히 반대했지만 고집불통의 타이 콥을 이겨내지 못했고 결국 15달러짜리 수표 6장을 써주며 "성공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 말로 자식을 떠나보냈다.

콥은 어거스타 투어리스트라는 팀에 입단, 월급 90달러를 받는 선수가 됐다. 팀에서 맹활약한 콥은 이듬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500달러의 이적료로 권리가 이양됐다. 18세에 메이저리거가 됐던 것이다. 41세에 은퇴했으니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만은 어느 누구도 욕할 없다
 

Sisler, Ruth & Cobb
Sisler, Ruth & Cobb by farlane 저작자 표시비영리
시슬러, 베이브 루스, 타이 콥

나쁜 사람 vs 좋은 사람

 타이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줄리 리즈웨이는 "그는 열정적이고 승부욕이 강했던 것이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설명했다. 그는 "타이 헬스케어 시스템, 타이 교육 재단 등이 탄생한 것을 보면 있다" "실제 타이 콥은 병원 건립을 위해 1949 10 달러를 내놓았다" 덧붙였다. 10만 달러는 당시로는 엄청난 액수였다. 타이거스 경기 중계 위원이었던 어니 하웰은 "1940년대에 방송인으로서 새내기였을 많은 사람이 '타이 콥은 경험 없는 언론인과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말했지만 그는 친절하게 자신의 집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비열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타이 콥이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힌 것은 그의 자서전을 대필한 스텀프가 콥의 사후에 발간한 때문이다. 콥이 죽기 10개월의 생활을 상세히 소개했던 스텀프는 부정적인 내용만을 다뤘다. 이에 대해 타이 박물관 측은 " 선고를 받은 사람의 마지막 10개월은 아름다울 없다. 그것이 마치 타이 인생의 전부인 글을 쓰는 것은 정당한 일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타이 박물관: www.tycobbmuseum.org
 


타이 프로필

이름: 타이러스 레이몬드

생년월일: 1886 1218

출생지: 조지아주 내로우스

사망일: 1961 717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1905 830

포지션: 중견수

명예의 전당: 98.23% 득표율로 헌액(1936)

소속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1905-1926), 필라델피아 A's (1927-1928)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