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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20

[추억의 스페셜] 미국 마이너리그 이야기 "마이너리그에 오래 머문다고 무시하지 마."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중에는 마이너리그에서 장시간 머물렀던 선수들이 많다. 마이너리그는 ▷루키 리그 ▷낮은 싱글A ▷중간 싱글A ▷하위 싱글A ▷더블A ▷트리플A 등 6개 레벨로 나누어진다. 이 단계를 통과해야 메이저리그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보통 한 단계에 1년 정도 머물기 때문에 6개 레벨을 모두 거치면 꼬박 6년이 걸리게 된다. 글: ICCsprots.com 물론 성장 속도에 따라 1년에 2, 3개 단계를 건너뛰며 1, 2년만에 빅리그 진출을 이루는 선수들도 있지만 보통 선수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서는 3-6년이 걸린다. 이런 과정(마이너리그)을 거치지 않고 직행한 선수들은 화제의 인물이 될 수밖에 없다. 박찬호가 그랬다. 그는 LA .. 2010. 2. 1.
[추억의 인터뷰] 서재응 트리플A 당시 미국 현지 기자 2003년 유료 스포츠 사이트를 개설했던 당시 올렸던 글입니다. 유정훈 기자가 서재응을 취재했던 미국 현지 기자를 서면으로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2003년 시즌이 문을 열었을 때 한국인 마이너리거들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끌었던 선수는 최희섭과 서재응이었다. 그것은 이들이 빅리그로 올라가는 마지막 단계인 트리플A에서 시즌을 시작할 예정이었기 때문. 그러나 연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최희섭에 비해 서재응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ICCsports.com은 비교적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음에도 국내 미디어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서재응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그의 소속팀 취재기자인 현지신문 버지니언-파일럿(The Virginian-Pilot)의 리치 레드포드와 서면 인터뷰를 가.. 2010. 1. 29.
[추억의 인터뷰] 송승준, 추신수, 최희섭이 만나다 밝은터가 2002년 7월8일 송승준 선수와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만납시다.” 송승준, 최희섭,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대결을 벌이자고 ‘결의’를 했다. 물론 서로 웃으면서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나눈 이야기이지만 그들의 심장은 뛰고 있었다. 밀워키 밀러 파크에서 열린 2002 마이너리그 올스타전인 퓨처스 게임(2002년 7월7일)에 출전했던 송승준(보스턴 레드삭스·투수)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와의 인터뷰에서 “(최)희섭이형 그리고 추신수 선수와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희섭이 형은 타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고 한국에서부터 알던 사이인 추 선수와도 많은 야구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서로 ‘메이저리그에서 만나자’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마음 속으.. 2010. 1. 24.
[MLB 30개 구단 역사(5)] 탬파베이 레이스 1998년 창단한  탬파베이 레이스(당시에는 데블레이스였음)는 2008년까지 단 한 번도 5할 시즌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열 시즌 동안 최고 승수는 2004년에 기록한 70승(91패)이었다. 명장으로 불리는 루 피넬라 감독을 영입한 후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이 팀은 여전히 4할 승률에 머물렀다. 2007 시즌에도 66승(96패)을 챙기는 데 그쳤던 탬파베이의 2008년 상승은 놀라운 일이었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사진: PicApp 조 매든 감독탬파베이는 1900년 이후 처음으로 전년에 최저 승률을 기록한 후 이듬해에 메모리얼 데이(미국의 현충일)까지 리그 최고 승률을 기록한 첫 번째 팀으로 기록됐다. 탬파베이의 2008년 성적은.. 2010. 1. 6.
[스타 열전] 49세에 MLB에서 뛰었던 훌리오 프랑코 프로 야구에서는 선수가 30세가 넘어가면 노장으로 불린다. 30대 중반이면 은퇴를 할 나이이고 30대 후반으로 가면 '신기한' 선수가 된다. 그 나이가 됐음에도 계속 뛰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신기하다.  40세가 넘어가면 완전히 노인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요즘은 의학과 과학이 발달되어서인지 40대 선수들이 의외로 잘한다. 메이저리그에는 49세의 현역 선수가 있었다.지금은 은퇴한 훌리오 프랑코가 주인공. 글: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사진: PicApp, 뉴스뱅크 이미지☆ 47세에 메츠와 2년 계약  프랑코는 지난 2005년 12월8일 메츠의 오마 미나야 단장과 2년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그의 나이 47세였다. 47세의 선수와 .. 2009. 12. 28.
[스타 열전] 타율 3할에 사이영상 노리는 잠브라노 시카고 컵스의 에이스인 카를로스 잠브라노(1981년생)는 톰 글래빈보다 더 뛰어난 타자다. 지난 2005년 80타수24안타로 타율 3할을 기록했던 잠브라노는 피안타율보다 타율이 높은 특이한 투수다. 잠브라노는 어떤 선수인지 알아보았다. 글: 밝은터(이 블로그의 블로거) 사진: PicAA ■ 사이영상 도전 잠브라노는 지난 2006년 16승7패, 평균 자책점 3.41을 기록해 사이영상 수상 후보 명단에 들어갔다. 투표 결과 그는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부문 5위에 올랐다. 잠브라노는 2007년에도 사이영상을 노렸다. 18승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투표에서는 5위에 그쳤다.2008년과 2009년에는 사이영상 투표에 들어가기에는 힘든 성적을 냈다. ■ 최희섭과의 인연 잠브라노는 최희섭(현 기아 타이거스)과 인연이 있는.. 2009. 12. 23.
[추억의 인터뷰] 나는 최희섭의 왕 서포터! 아래 인터뷰는 2005년 4월4일 실시됐습니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로저 양 인터뷰 방법: 이메일 인터뷰 일자: 2005년4월4일 "이 사람보다 더 최희섭에 관심 있는 팬이 있을까?" 영문 인터넷 블로그 사이트인 '초이 센트럴(http://choicentral.blogspot.com)'을 방문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기자는 그가 한인 1.5세나 2세쯤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블로그를 방문하면 최희섭의 매타석마다 상대 투수 대결 결과를 볼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빅초이'와 관련된 모든 영문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당연히 한인이 운영하는 사이트라고 생각하며 기자는 그에게 e-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그는 한인이 아니었고 최희섭을 정말 아끼는 중국계 미국인 팬이었다. '초이 센트럴'을 운.. 2009. 12. 4.
박찬호 無 vs. 박찬호 有 Chan Ho Park, Dodgers by iccsports 박찬호가 없었다면... 박찬호의 존재는 1990년대 한국 국민들의 생활 방식을 바꿔 놓을 정도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대한민국 국민들 특히 남성들은 그의 경기결과에 연연하며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갖게 됐고 메이저리그 매니아들도 늘어나 한때 메이저리그가 한국 프로야구 보다 더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09년 현재 박찬호의 인기는 메이저리그 인기와 함께 추락했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코리언 특급'으로서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않았었더라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밝은터는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않았을 가상의 경우와 실제 상황을 꾸며 보았다. 박찬호.. 2009. 11. 1.
[추억의 인터뷰] 김병현에 대해 BA 편집국장의 조언 짐 칼리스(Jim Callis)씨는 미국의 야구 전문 격주간지인 베이스볼 아메리카(Basaball America, 이하 BA)의 편집국장이자 칼럼리스트로서 활동 중입니다. BA는 아마추어 드래프트와 마이너리그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전문지이며 칼리스씨는 유망주 평가에 있어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매거진 ‘빅리그’는 BA의 칼리스씨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전반적인 이야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김병현과 박찬호에 대한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또 한국과 대만출신의 마이너리거 유망주들에 대한 평가와 메이저리그의 현행 이슈들 및 편집자이자 칼럼니스트로서 그의 삶에 대해 들어 보았습니다. 인터뷰어: 유정훈 인터뷰이: 짐 칼리스 인터뷰 방법: 이메일 인터뷰 .. 2009. 10. 22.
[추억의 특집] 2001년 ML유망주 지금은 어디에? 2001년 후반부부터 2002년 초반까지 ICCsports는 빅리그라는 잡지를 제작했습니다. 아래 기사는 당시 특집 중 하나입니다. 마이너리그 유망주에 대한 전망기사로 유정훈 마이너리그 전문기자와 정재호 메이저리그 전문기자가 함께 만들어냈습니다. 기사를 돌아보면서 한 명의 야구 선수가 메이저리거로서 성장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추신수, 박찬호 등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오래전의 글을 소개하면서 2009년 현 상황의 코멘트를 편집자가 넣었습니다. 글에 대해 추천을 해주시면 격려가 될 것 같습니다. 마이너리그가 없는 메이저리그는 상상할 수 없다. ICCsports는 메이저리그의 등용문인 '마이너리그'의 유망주들을 자체 선정했다. 미래 메이저리그 스.. 2009. 10. 20.
추신수 아시안 첫 20-20클럽 그리고 영주권(설문조사) Shin-Soo Choo by Keith Allison 관련 글 2009/10/03 - [Just a Note] - 추신수 20-20 클럽 가입 순간(동영상) 2009/09/12 - [BK Column] - 2PM 재범 탈퇴 사태를 보며 생각난 사람, 추신수 2009/08/26 - [투데이 뉴스] - 95.5% 네티즌 "추신수 메이저에 남아라!" 2009/08/11 - [BK Column] - 추신수가 영주권이 필요한 이유는 추신수(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20-20 클럽에 가입했다. 30-30도 아닌데 야단법석을 떤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아시아계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20-20을 기록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일본 출신 선수 중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낸 선수는 마쓰이 히데키인.. 2009. 10. 5.
[추억의 인터뷰] 탬파베이 레이스 단장 인터뷰 2007년 2월 당시 탬파베이 데블레이스(현 탬파베이 레이스)에는 한국 선수가 3명이나 있었다. 최희섭, 서재응, 류제국이 그들이었다. 한 팀에 한국 선수가 3명이 있는 일은 드문 경우다. 특히 메이저리거급 선수 3명은 더더욱 드물다. 잠시 한국 팬들 사이에 화제의 팀이었던 탬파베이의 앤드루 프리드먼 단장과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앤드루 프리드먼 인터뷰 날짜: 2007년 2월14일 인터뷰 방법: 전화통화 "그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최희섭에 대해) "그는 우리의 믿음직한 선발 투수다."(서재응에 대해) "그가 우리 팀의 제5선발이 되기를 바란다."(류제국에 대해)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의 부사장 겸 구단 운영 총책임자인 앤드류 프리드먼은 14일 전화.. 2009. 9. 27.
야구장 영어 최희섭이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던 초기에 한인 동포들은 '팝씨(FOBC: Friend of Big Choi)'라는 후원회를 결성해서 다저스타디움에 직접 응원을 갔다. 왼쪽 외야석에 자리를 잡은 팝씨 회원들은 응원 첫날 비(非)한국인 팬들의 야유를 들어야 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폴 로두카가 플로리다 말린스로 가고 최희섭이 LA로 온 것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었다. 잠시 긴장이 흘러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양현승 팝씨 회장의 만류로 회원들은 비난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분위기가 좋아질 수 있을까?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응원 구호를 외치는 것이다. 적당한 응원 구호는 "Go Dodgers go!"일 것이다. 실제 팝씨 회원들은 최희섭뿐만 아니라 .. 2009. 8. 13.
[스타 열전] '형저메' 최희섭 [스타 열전] 최희섭 '형저메'(형, 저 메이저리그로 다시 가요!)가 될까? 박찬호가 LA 다저스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무렵 시카고 컵스는 최초의 한인 야수인 최희섭과 계약을 맺었다. 벌써 8년 전인 1999년 3월4일의 일이다. 최희섭은 마이너리그에서 맹활약하며 200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야수로서 메이저리거가 됐다. 이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최희섭은 메이저리그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KIA와 계약을 맺으며 한국행을 선택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363경기에 출전해 220안타, 2루타 54개, 홈런 40개, 120타점, 타율 2할4푼, OPS 0.786의 공식 기록을 남겼다. 한국으로 돌아간 그는 계속 부진했다. 그러나 올해들어 원래의 타격감각을 되찾았다. 일부 언론은.. 2009. 5. 17.
[추억의 인터뷰] 최희섭을 아꼈던 폴 디포데스타 단장 필자는 지난 2005년 최희섭이 LA 다저스로 트레이드되자마자 폴 디포데스타 다저스 단장과 인터뷰를 한 바 있다. 당시 나는 디포데스타 단장에게 e-메일 인터뷰에 응해줄 것을 요청했고 그는 흔쾌히 인터뷰를 허락했다. 나의 개인 사정으로 인터뷰가 장기간 미뤄졌지만 디포데스타 단장은 당시의 약속을 기억하고 바쁜 시간을 내어 긴 질문에 성실히 답변을 해줬다. 디포데스타 단장은 운이 따르지 않는 단장이었다. 자신이 부임한 후 원하는 감독을 데려오지 못하고 '안티 디포데스타'인 짐 트레이시 감독을 계속 데리고 있어야 할 운명에 있었던 것이다. 결국 트레이시가 해고된 직후 디포데스타도 해고되는 악연을 경험해야 했다. 디포데스타는 2009년 5월 현재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구단에서 프런트 오피스 보좌역으로 일을 하고 .. 2009. 5. 15.
[추억의 인터뷰] 광주일고 메이저리그 출신 3인방 조련한 허세환 감독 광주일고 출신 3인방인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이 3명의 전직 메이저리거가 한 팀에서 뛰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다. 그들은 그러나 지금 한국 프로야구로 돌아가 뛰고 있다. 능력 있는 선수들이었는데 여러 가지 상황이 좋지 않았다. ICCsports.com의 밝은터가 이 3인을 지도했던 허세환 감독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미주 중앙일보 2003년 12월18일자 C-2에 실렸다. 인터뷰어-박병기 인터뷰이-허세환 감독 인터뷰 방법: 국제전화 인터뷰 일자: 2003년 12월17일 2009. 5. 9.
[Special] 한국 선수 메이저리그 진출사 1994-2009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는 총 12명이다. 박찬호를 시작으로 조진호, 김병현, 봉중근, 최희섭, 추신수 등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한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사를 정리해본다. 1994년 그 이후 박찬호는 1994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데뷔를 했다. 1994년 2경기에 나와 4이닝 동안 5자책점을 기록한 후 더블A 샌안토니오로 내려갔지만 그의 메이저리그 데뷔는 역사적인 일이었다. 후문이지만 마이크 피아자는 당시 박찬호가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메이저리그에서 데뷔전을 치른 것에 불만이 컸다고 한다. 박찬호의 본격적인 미국 프로야구 무대는 더블A와 트리플A였다. 그는 1995년 트리플A에서 6승7패, 평균 자책점 4.91을 기록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메이저리그의 부름.. 2009. 4. 28.
페드로 마르티네스, 적과의 동침 허락할까? 다저스 행 소문 한때 ‘외계인’으로 불렸던 페드로 마르티네스(37)가 과연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을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마르티네스는 LA 다저스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선수입니다. 다저스에서 불펜 선수로서 인상 깊은 플레이를 했지만 토미 라소다 감독에 의해 평가절하되어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됐고 이후 리그 최고의 투수로 발돋움했습니다. 당시 페드로와 맞트레이드됐던 들라이노 드쉴즈는 평범한 2루수였기에 다저스 입장에서는 최악의 트레이드를 단행했다고 봐야겠죠. 페드로의 형인 라몬 마르티네스도 다저스에 의해 버림받았고 페드로는 다저스를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형 라몬이 다저스로 복귀하려고 할 때 적극적으로 말렸던 사람이 동생인 페드로였습니다. 그렇게 싫어했던 다저스 구단이 페드로의 영입에 나섰다는 보도가 .. 2009. 4. 17.
[추억의 인터뷰] 최희섭 마이너리그 시절 인터뷰 2000년이었습니다. 최희섭 선수가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었을 때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인 첫 메이저리그 타자라는 프리미엄 덕분에 야구 팬들의 관심이 대단했습니다. 미주 한국일보 시카고 지사의 객원 기자로 일했던 밝은터가 기사를 송고했는데 1면 기사로 소개될 정도로 시카고 지역 한인들의 관심은 놀라웠습니다. 기대했던 최희섭 선수는 이후 시카고, 플로리다에서는 잘했는데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후 망가지면서 유망주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선수가 됐습니다. 결국 한국 프로야구에 입문한 그는 한국에서도 이렇다할 성적을 올리지 못해 그를 아끼는 팬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인터뷰어: 밝은터 (http://iccsports.com 필자) 인터뷰이: 최희섭 인터뷰 방법: 전화 통화 기사 게재 .. 2009. 4. 17.
최희섭 LA 다저스 입단 기자회견 최희섭 선수가 LA 다저스에 입단한 후 LA 코리아타운에서 교민들을 초청해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당시 구단적인 지원이 대단했죠. 프랭크 맥코트 구단주(아래 사진 오른쪽), 폴 디포데스타 단장(사진 왼쪽), 토미 라소다 부사장 등이 나와 최희섭 선수의 LA 입성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그런데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이 한 명 있었죠? 바로 짐 트레이시 감독이었습니다. 정말 눈에 띄게 최희섭의 존재를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는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을 댓글로 신청하시면 큰 사진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사진은 귀하의 블로그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며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엄격히 금합니다. 댓글로 귀하의 정보를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의 노출을 원치 않으시면 비밀댓.. 2009. 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