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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54

'올림픽 환각'이 없었던 이유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은 최근 열린 대회 중 가장 차분히 진행됐다. 이유는 SBS가 올림픽을 단독으로 중계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한국의 3대 공중파 방송과 이들이 운영하는 케이블 및 인터넷 방송이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동시에 올림픽에 올인했기에 다수의 한국인이 ‘올림픽 환각(hallucination)’에 빠졌지만 이번에는 적당히 즐기면서 적당히 흥분하면서 보냈다. 공중파 방송이 동시에 올림픽 경기를 중계하면 국민은 어쩔 수 없이 올림픽 환각에 빠지게 된다. TV를 켜면 온통 올림픽 중계이니 국민은 올림픽을 봐야 하고 들어야 하고, 읽어야 하고, 이야기 나눠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올림픽 환각이다. 환각에 빠지면 나라가 온통 올림픽에 몰두한다. 누가 억울하게 죽어도 뒷전이다. 그리고 모두가 전문가가 되고.. 2010. 3. 10.
박찬호의 현명한 양키스행 결정 박찬호는 역시 현명한 선수인 것 같다. 박찬호는 2010년 2월22일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뉴욕 양키스 행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연봉은 120만 달러 수준이고 30만 달러가 옵션이라고 한다. 그리고 양키스에서 구원투수로 뛸 가능성이 크다. 박찬호는 몸값도 선발자리도 다 포기하고 열정을 택했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그가 2010년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점선 무늬) 유니폼을 입도록 했다. 그도 고민했을 것이다. 연봉을 좀 더 받고 싶었을 것이고 선발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 시카고 컵스에서 선발 자리를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양키스에서 야구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키스는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최고의 구단이다. 2009년 시즌에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돼 다시 최고의 자리로.. 2010. 2. 24.
박찬호, 한화 이글스에서 뛰는 날이 곧 오길... 박찬호와 같은 경험 많은 선수를 어떤 팀이 원하지 않을까. 자유계약 선수 박찬호(1973년 6월30일생)가 아직 새로운 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로 메이저리그 구단과 사인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가 새 둥지를 찾을 가능성은 99.9%에 가깝다. 메이저리그가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박찬호와 같은 경험이 풍부하고 지난 시즌 잘 던진 선수를 외면하지는 않는다. 다만 로스터 정리가 아직 되지 않았기에 정리된 후에 그의 영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해서든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하겠지만 요즘 그가 한화 이글스와 훈련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한국에서 남은 현역 야구 선수 인생을 살면 멋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메이저리그 구단이 그를 원하지만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기.. 2010. 2. 14.
[추억의 스페셜] 미국 마이너리그 이야기 "마이너리그에 오래 머문다고 무시하지 마."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중에는 마이너리그에서 장시간 머물렀던 선수들이 많다. 마이너리그는 ▷루키 리그 ▷낮은 싱글A ▷중간 싱글A ▷하위 싱글A ▷더블A ▷트리플A 등 6개 레벨로 나누어진다. 이 단계를 통과해야 메이저리그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보통 한 단계에 1년 정도 머물기 때문에 6개 레벨을 모두 거치면 꼬박 6년이 걸리게 된다. 글: ICCsprots.com 물론 성장 속도에 따라 1년에 2, 3개 단계를 건너뛰며 1, 2년만에 빅리그 진출을 이루는 선수들도 있지만 보통 선수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서는 3-6년이 걸린다. 이런 과정(마이너리그)을 거치지 않고 직행한 선수들은 화제의 인물이 될 수밖에 없다. 박찬호가 그랬다. 그는 LA .. 2010. 2. 1.
[추억의 기사] 송승준 사상 첫 퓨처스게임 3년 연속 출전 밝은터가 2003년 6월24일 작성한 기사입니다. Seung Song (송승준) by iccsports 송승준(22·몬트리올 엑스포스)이 마이너리그 올스타전인 퓨처스 게임 사상 처음으로 3회 출전 기록을 수립하게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밝은터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제공한 1999년부터 2003년까지 퓨처스게임 출전 선수 명단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3회 출전자는 송승준이 유일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동안 2회 출전자는 많았지만 3회 출전자가 나온 것은 퓨처스 게임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송선수는 이에 대해 밝은터와의 인터뷰에서 “3년 연속 뽑힐 줄은 몰랐다.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2년 동안 잠깐이었지만 좋은 선수들과 뛰면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이번에도 배움의 기회로 삼겠다”고 덧.. 2010. 1. 28.
[추억의 인터뷰] 박찬호 "돈 적게 받고 야구 잘하는 게..." 박찬호 선수가 후배 야구선수에게 했던 말이 강하게 남습니다. 2003년에 인터뷰했던 내용입니다. Chan Ho Park (2000) by iccsports “돈 적게 받고 야구 잘 하는 게 낫다” “LA 다저스 시절이 그립다.” 박찬호(당시 29세ㆍ텍사스 레인저스)가 최근 한 후배 야구선수에게 했던 말이다. 이 후배 선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찬호 형이 굉장히 힘들어하는 것 같다. 많은 돈을 받고 야구를 못하는 것보다 1천만 달러 이하를 받고 야구를 잘 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 선수는 또 “다저스 시절이 좋았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그의 말뜻에는 단순히 ‘다저스가 좋았다’라는 차원을 넘어 ‘LA가 편안했다’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미국에서 뛰는 한인 선수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L.. 2010. 1. 28.
[WBC 역사(2)] 제1회 대회 당시 야구 전문가들의 한국야구 평가 "찬호가 정말 자랑스럽다."(프레드 클레어 전 다저스 단장) "한국의 수비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앨런 슈워즈 베이스볼 아메리카 칼럼니스트) "한국이 야구를 이렇게 잘하는 줄 몰랐다."(제리 프레일리 댈러스 모닝 뉴스 칼럼니스트)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이 끝나고 미국 야구인들은 '코리안 베이스볼=원더풀'을 외쳤다. 그들의 한국 야구에 대한 인식 변화는 괄목할 만하다. 나는 미국에서 야구와 관련된 여론을 이끄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3명의 언론인/야구인과 접촉했다. 그들은 모두 "한국야구는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Chan Ho Park, 2006 WBC by iccsports 먼저, 박찬호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거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언론인 출신의 야구인 프레드 클.. 2010. 1. 28.
[추억의 기사] 박찬호와 채드 크루터 밝은터가 2003년 1월7일 쓴 기사입니다. 절친이었는데 법정 소송에 들어갔으니 아쉽네요. Chan Ho Park and Chad Kreuter (2000) by iccsports “찬호는 여전히 잘 할 겁니다.” 지난 2002년 1월 LA 다저스의 포수였던 채드 크루터는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박찬호는 새 보금자리 텍사스에서도 역투할 것이다. 그는 리그 최고 수준의 투수”라고 추켜세운 바 있다. 그는 이어 “찬호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크루터는 다저스에서 버림 받았고 갈 곳 없이 헤매다 2002년 부진했던 박찬호와 다시 레인저스에서 배터리를 이루게 됐다. 자신을 이해하는 전담 포수가 없었던 박찬호는 아메리칸 리그 데뷔 첫해 풀.. 2010. 1. 27.
[스타 열전] 제프 사마자 세르비아계의 미국인인 제프 사마자(Samardzija)는 노터데임 대학 재학시절 풋볼팀의 와이드 리시버로 활약했다. 그는 2006 MLB 신인 드래프트에서 시카고 컵스에 의해 5라운드에 지명된 바 있다. 프로 진출을 하면 아마추어 자격을 잃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종목이 다르면 괜찮다. 사마자는 5라운드에 지명됐지만 이는 풋볼과 야구를 병행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가치가 떨어진 결과였다.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당시 그를 최고의 유망주 20위로 선정한 바 있다. 투수인 사마자는 노터데임 출신 투수 중 역사상 4번째로 드래프트에서 지명되는 영광을 안았다. 오른손 투수인 사마자는 당시 노터데임의 선발투수로 15경기에 선발 등판해 8승2패, 평균 자책점 4.33을 기록했다. 대학 통산 성적은 21승6패, .. 2010. 1. 27.
[추억의 기사] 메이저리그 구단의 한인 스카우트들 밝은터가 2003년 1월27일에 쓴 기사입니다. ‘한국야구의 보석을 찾는 한인들.’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한국 야구에 관심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풀타임 한국인 스카우트를 고용해 ‘흙속의 진주’를 찾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특히 LA 다저스를 비롯, 이미 4개의 메이저리그 구단이 한국 현지에 스카우트를 파견해 ‘보물 찾기’에 한창이라는 뉴스엔 놀라지 않을 수없다. 다저스 아시아담당 홍보관인 정윤현(사진·미국명 Curtis Jung)씨에 따르면 다저스 외에도 미네소타 트윈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애너하임 에인절스 등이 한국인 스카우트를 현지에 파견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저스는 얼마 전 박찬호의 스승인 안병환씨를 한국 스카우팅 수퍼바이저로 임명한 바 있다... 2010. 1. 26.
[추억의 기사] 박찬호 100탈삼진 돌파 게재일 : 1996년 08월 20일 [40면] 서울 중앙일보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코리아 특급」 박찬호(23.LA 다저스)가 4이닝을 노히트노런으로 막으며 시즌 1백 탈삼진을 돌파했다. 중간계투요원으로 활약 중인 박찬호는 1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어진 몬트리올 엑스포스와의 경기에서 4이닝 동안 볼넷 3개만 허용하며 탈삼진 6개를 뽑아 무안타.무실점으로 막았다. 이로써 박찬호(5승3패)는 올시즌 38경기 94이닝만에 탈삼진 1백4개를 기록해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닥터 K」로 부상하며 방어율을 3.73으로 끌어내렸다. 특히 박은 대부분 중간계투요원으로 등판함에도 불구하고 1백 탈삼진을 돌파했을 뿐만 아니라 이닝당 탈삼진 수도 1.11개를 기록,삼진에 관한한 최고의 실력을 과시했다... 2010. 1. 19.
박찬호 필요한 것은 열정적 야구선수였다는 기록 박찬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박찬호는 자유계약 선수로 풀린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을 하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선발 자리를 원하는 게 그가 현재 둥지를 찾지 못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Chan Ho Park, Elevator (2000) by iccsports 다저스 구장 엘리터베이터가 박찬호 등번호 유니폼으로 디자인됐을 때가 있었다. 사실 돈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요즘도 언론에서 박찬호의 몸값을 비중있게 다루지만 사실 그것은 큰 이슈가 되지 못한다. 1994년 LA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한 박찬호는 2009년까지 연봉으로 8400만 달러 이상을 받았다. 세금 제하고 에이전트 비용을 빼더라도 엄청난 액수의 돈을 벌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는 부가 수입도 많고 한국에서.. 2010. 1. 15.
[MLB 30개 구단 역사(4)]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구단은 1969년 창단했다. 창단 이후 파드레스는 1984년, 1998년 두 번 내셔널리그 챔피언으로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두 번 모두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파드레스는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지 못했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사진: ICCsports.com, Flickr, PicApp San Diego Petco Park (2006) by iccsports 파드레스의 홈구장인 펫코파크 1969년 당시 신생팀은 파드레스, 몬트리올 엑스포스(현 워싱턴 내셔널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시애틀 파일럿츠(현 밀워키 브루어스) 등 4개 팀이었다. 파드레스는 첫 6년 동안 매시즌 내셔널리그 서부조 최하위에 머물렀다. 희망이 없어보였던 파드레스에 회생의 빛이.. 2010. 1. 3.
[추억의 기사] 박찬호는 이겨야 할 경기에 등판하는 에이스 1997년 8월30일자 기사입니다. LA 타임스가 연일 박찬호를 극찬하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글/사진: ICCsports.com 박찬호는 '이겨야 하는 경기(Must-win game)'에 등판하는 에이스다." 박찬호가 LA다저스의 에이스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지난 8월부터다. 한국 주요 언론뿐만 아니라 이곳 미국 언론에서도 심심치 않게 거론됐던 것이 누가 진정 다저스의 에이스인가라는 질문이다. 얼마 전 LA타임스의 데니스 스프링어 기자가 박찬호는 다저스의 에이스라는 간략한 소개 기사를 올려 놓은데 이어 타임스지 스포츠부서의 칼럼니스트인 빌 플래츠키 씨도 30일자(미국시간) 스포츠 면에 박찬호에 관한 짧고 의미심장한 코멘트를 해 눈길을 끌었다. 플래츠키씨는 "춤추는 다저스가 필요한 스텝(Dancing D.. 2009. 12. 18.
[추억의 인터뷰] '박찬호 특파원'들의 애환 1998년 당시에는 '박찬호 특파원'이 있었습니다. 각 스포츠 신문사에는 박찬호를 전담 취재하는 특파원이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인터뷰를 소개합니다.노모 히데오(뉴욕 메츠)와 이라부 히데키(뉴욕 양키스)를 따라 다니는 일본 기자들이 한국 기자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박찬호 전담' 한국 기자들은 박찬호와 식사도 하고 개인적인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일본기자들은 전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역으로 말한다면 노모나 이라부는 박찬호를 부러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유는 일본 선수들의 전담 기자들은 그들의 사생활을 들춰내 센세이션한 기사를 쓰려고 하는 반면 한국기자들은 박찬호가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이를 덮어 주려고 노력하기 때문. 박찬호로선 한없이 감사해야 할 사람들인 것.. 2009. 12. 17.
[추억의 스페셜] 98 아시안게임 드림팀 아래 기사는 베이스볼 코리아 기사로 사용 승인하에 게재합니다.글/김봉준 기자   사진/문재영 기자 한국 야구 사상 최초로 프로팀 선수들 이 국가대표로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 한다. 프로-아마 혼성의 '야구드림 팀' 이 탄생한 것이다. 대한 야구 협회(회장 정몽윤)는 지난 10월11일, 호화 멤버들로 짜여진 22명의 국가대표 야구팀 명단을 확정 발표했다. 역대 최강의 선수단  대표팀에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LA  다저스)와 서재응(뉴욕 메츠) 등 해외파 2명과 박재홍, 최원호(이상 현대), 임창용(해태), 김동주, 진갑용(이상 OB), 이병규, 조인성(이상 LG), 백재호(한화), 강동우(삼성), 김원형(쌍방울) 등 국내파 10명등 모두 12명의 프로선수가 포함돼 있다.  아마에는 강.. 2009. 12. 16.
[추억의 기사] 박찬호는 한국음식 먹어야... 97년 8월22일자 기사입니다. 당시 박찬호는 한국음식을 먹어야 힘이 난다며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한국 음식점을 찜해뒀습니다. 한국음식에 관한 기사 흥미로워서 소개합니다. 글/사진=ICCsports.com "박찬호는 한국음식을 먹어야 이긴다." LA지역 3대 일간지중의 하나인 데일리뉴스지는 22일자 스포츠면에 박찬호와 한국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실었다. 이 신문은 박찬호는 경기 전날 반드시 한국음식을 먹어야 컨디션이 좋다고 설명하고 25일(미국시간) 더블 헤더 경기 후 박찬호의 한국음식점 방문이야기를 다뤘다. 이 신문에 따르면 피츠버그에는 한국식당이 하나 있는데 이곳이 월요일마다 정기 휴일이라 문을 닫았지만 박찬호가 주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문을 열게 했다는 것. 이 식당 주인도 박을 위해 특별히 업소.. 2009. 12. 16.
[추억의 스페셜] 박찬호가 한국에 간다면... 아래 글은 1997년 8월1일 천리안에 올려진 것입니다. 이 블로그의 필자는 당시 박찬호의 인기가 급상승하자 여러 각도의 기사를 많이 썼는데, 한국으로 가면 박찬호가 몇 승이나 올릴까 하는 일종의 가십성 기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년 전에 제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글/사진: ICCsports.com 만약 박찬호가 미국야구에서 당장 짐을 싸 한국으로 금의환향한다면 한국 프로야구에서 과연 몇 승이나 올릴 수 있을까? 예상 답은 최소 20승이다. 여기 제시된 박찬호의 승수에 대한 근거는? 미국에서 활약한바 있는 한국 선수의 기록과 비교하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미국프로야구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국선수는 모두 3명. 이중 2명은 이미 은퇴를 했으며 2명은 현역선수로 활.. 2009. 12. 16.
[추억의 현장취재] 박찬호 15승 후(98년) 기자회견 1998년 LA 다저스타디움에서는 박찬호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그해 박찬호는 15승을 거뒀고 전년에 이어 선발 투수로서 인정을 받는 해를 보냈습니다. 당시 시즌을 마감하는 인터뷰가 다저스타디움에서 있었고 밝은터가 그 기자회견에 참여했습니다.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취재=밝은터(ICCsports.com) ■ 지난해(1997년) 14승을 거두고 15승을 거뒀는데 그동안 기분은 어땠나요? ★(박) 지난해에는 승수를 많이 올려 사실 올시즌 초반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팬들은 더 많은 승수를 올려주길 기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올시즌 초반에는 부상으로 힘들다고 봤는데 이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특히 올시즌 초반에 부상을 완벽히 치료하지 않고 경기를 치러 중반에 고전을 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올해 한 경기도.. 2009. 12. 15.
[추억의 현장취재] 박찬호 야구 교실 (1998년) 1998년 7월 LA 한인 타운 한복판에서 박찬호 야구 교실이 열렸습니다. 당시 야구 교실을 취재한 기사가 베이스볼 코리아 1998년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취재: 박병기 (ICCsports.com) 장소: LA 코리아타운 아드모어 공원 일시: 1998년 7월 어느 날 그림을 클릭하시면 큰 글씨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ICCsports.com에 올려진 박찬호 관련 특집 2009/12/09 - [추억의 스페셜] 박찬호 야구 전문지 표지모델 2009/11/26 - [추억의 인터뷰] 박찬호 에이전트였던 스티브 김 2009/10/31 - [추억의 인터뷰] 박찬호 단독 인터뷰 "지누션이랑 친해요!" 2009/10/12 - 박찬호 부모님 1997년 LA에서 인터뷰 2009/09/04 - [추억의 스페셜] 박찬호의.. 2009. 12. 10.
[추억의 스페셜] 박찬호 야구 전문지 표지모델 '코리언 특급' 박찬호가 미국 내 유일의 전국지인 USA투데이지에서 발행하는 베이스볼 위클리의 표지모델로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1998년 기사인데요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미국 내 야구 잡지 중가장 권위있는 주간지로 알려진 베이스볼 위클리는 '한국의 자랑'이라는 표지 제목과 함 께 박찬호의 피칭 모습을 표지사진으로 실었다. 한국계 미국인 기자인 도티 엔리코가 심층 취재한 박찬호 특집에서는 박찬호 뿐만 아니라 박세리, 조진호 등도 거론돼 이번호는 한국선수들의 잔치판이 되었다. 도티 기자는 "한국이 경제난을 겪 고 있는 가운데 박찬호와 박세리는 한국민의 정신력을 고양하는 데 큰 역할을 맡고 있다"고 전제한 뒤 박찬호의 스토리를 전했다. 다음은 베이스볼 위클리가 소개한 박찬호 특집 기사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2009. 12. 10.
[추억의 인터뷰] 스캇 보라스 사무실의 박승현, 다저스 구단의 정윤현 메이저리그와 관련돼 뛰는 젊은이 두 명이 있었다. 한 사람의 꿈은 메이저리그 구단 단장(General Mangaer)이 되는 것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의 꿈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위한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는 것이다. 이들이 중년의 나이가 됐을 때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주인공은 스캇 보라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한인 직원 박승현 씨와 LA 다저스 구단 아시아부에서 일하는 정윤현씨. 이들은 서로 반대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박승현씨는 선수를 위해 구단으로부터 더 많은 연봉을 받아내는 역할을 정윤현씨는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리는 구단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취재일자는 2002년 초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날짜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취재/글: 박병기(ICCs.. 2009. 12. 5.
[추억의 인터뷰] 록스타보다 인기 높았던 에릭 가니에 한때 LA에서 그의 인기는 코비 브라이언트나 샤킬 오닐의 그것 이상이었다. 그가 등장하면 마치 세계적인 록스타(Rock Star)가 등장하는 것과 비슷한 환호성이 터졌다.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믿음을 줬다. 또 그가 등장하면 "경기는 끝났다(Game Over)"라는 메시지가 전광판에 떴다. LA 다저스의 마무리 전문이었던 에릭 가니에(Eric Gagne)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전성기였을 때 가니에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2003년 8월 어느 날이었다.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거의 떠나고 기자들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혼자 있던 가니에를 발견했다. 나는 "독점 인터뷰의 좋은 기회다"라고 생각했고 그에게 다가가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는 "잠깐은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인터뷰어: 박.. 2009. 12. 2.
[추억의 인터뷰] 박찬호 에이전트였던 스티브 김 1997년으로 기억합니다. 루키라는 잡지에 기사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곽형근 씨라고 다저스 구단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분이 박찬호의 에이전트인 스티브 김(한국명 김철원)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묘하게도 그 잡지에는 제 이름(밝은터)을 달고 기사가 나갔는데 이제와서 그것을 수정합니다. 잡지의 편집자가 제가 편집장이니까 제 이름을 바이라인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곽형근 씨에게는 미안했는데 이제라도 수정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 기사를 최근 발견하고 올리게 됐습니다. Steve Kim_former sports agent by iccsports “나는 한국의 제리 맥과이어” 최근 흥행에서 크게 성공한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톰 크루즈는 똑똑하고 실력 있는 스포츠 에이전트 제리 맥과이.. 2009. 11. 27.
찬호 '발차기 사건' 팀 벨처 추신수의 코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팀 벨처(48)와 투수 코치 계약을 맺었다. 벨처는 박찬호 '발차기 사건'에 연루된 전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 투수 출신. 당시 발차기 사건은 다음과 같이 발생했다. 박찬호가 1루로 달려갈 때 그를 강하게 태그했던 벨처는 곧이어 박찬호의 옆차기를 맞아야 했지만 다행히 정통으로 맞지 않아 큰 부상은 없었다. 당시 한국 팬들은 제대로 가격했어야 한다며 오히려 박찬호를 두둔하는 분위기였다. 그 벨처가 추신수 소속팀의 코치가 된다. 묘한 인연이다. 벨치는 지난 8년 동안 인디언스 구단의 특별 보좌역을 담당했다. 이 역할을 담당하면서 그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지도하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타구단 선수들에 대한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해 인디언스 코칭스태프에 제공하는 일도 맡았다... 2009. 11. 7.
박찬호 2010년 한국프로야구에서 뛰면 어떨까? 가족이 문제가 안 된다면 박찬호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은퇴하면 어떨까.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2009년 뜻깊은 한해를 보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것처럼 박찬호는 한국 팬들이 “보낸 많은 용기와 마음의 힘으로 훌륭한 시즌”을 보낼 수 있었다. 사실 미국 팬들 사이에 박찬호의 존재감은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나이가 많고 중간계투 요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박찬호 개인의 사정과 목표가 있을테니 이런 글이 그에게 방해가 될 수 있지만 야구인 박찬호를 생각하고 한국 야구를 생각할 때 그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은퇴한다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이 될 것이라고 본다. 미국팬들의 반응과 관계 없이 박찬호는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여러 차례 등판 경험을 했던 그다. 이는.. 2009. 11. 7.
[추억의 인터뷰] 박찬호 단독 인터뷰 "지누션이랑 친해요!" 1997년으로 기억합니다. 5월 쯤이었는데요, 저는 천리안이라는 통신사에 박찬호와 메이저리그 관련 콘텐츠를 업데이트하는 편집자로서 일을 했는데 당시 함께 일했던 정상균 씨와 박찬호 단독 인터뷰에 대한 기획을 했습니다. 이 기획 인터뷰는 루키 매거진에 소개되기도 했는데요, 당시에는 박찬호 단독 인터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지누션이 소개돼 화제가 됐습니다. 아마 당시로는 지누션에 대한 첫 소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인터뷰어: 정상균인터뷰이: 박찬호인터뷰 장소: 다저스타디움인터뷰 일자: 1997년 5월박찬호 선수가 있는 선수 대기실(라커룸)은 한국 기자들로 분주하다. 박찬호는 국민적인 영웅으로 대접 받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파견나온 기자들은 특종.. 2009. 11. 1.
박찬호 無 vs. 박찬호 有 Chan Ho Park, Dodgers by iccsports 박찬호가 없었다면... 박찬호의 존재는 1990년대 한국 국민들의 생활 방식을 바꿔 놓을 정도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대한민국 국민들 특히 남성들은 그의 경기결과에 연연하며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갖게 됐고 메이저리그 매니아들도 늘어나 한때 메이저리그가 한국 프로야구 보다 더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09년 현재 박찬호의 인기는 메이저리그 인기와 함께 추락했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코리언 특급'으로서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않았었더라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밝은터는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않았을 가상의 경우와 실제 상황을 꾸며 보았다. 박찬호.. 2009. 11. 1.
[추억의 인터뷰] 찬호의 절친이었던 맷 허지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딱 두 명이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존 우든 감독과 맷 허지스다. 존 우든 감독의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9/04/25 - 존 우든 감독의 성공의 피라미드 그리고 나머지 한 명. 허지스의 인터뷰를 오늘 마침내 소개할 수 있게 됐다. 마침내라는 말의 의미는 당시 인터뷰 내용이 실린 잡지를 오늘 찾아냈기 때문이다. 2002년 시즌이 시작하기 전이었다. LA 다저스 구장에서는 스프링 캠프로 떠나기 전에 열리는 자발적 훈련이 열리고 있었다. 기자는 다저스 구단 직원인 커티스 정 씨의 소개로 맷 허지스(구원투수)를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됐다. 허지스는 공석이 된 다저스의 마무리 자리를 차지하고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커티스 씨의 말처럼 허지스는 "최고의 .. 2009. 10. 25.
박찬호 다시 날다 박찬호(36)를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올라가고 내려오고 또다시 올라가는지를 알 수 있다. 지난 1994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던 박찬호는 1996년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면서 전 세계 한국인들의 희망이 됐다. 당시 박찬호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지인들과의 대화에 낄 수 없을 정도였고 한국어 언론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큰 지면으로 할애해 보도했다. 박찬호 덕분에 이전에는 없었던 일간지 스포츠 섹션이 생겼을 정도로 그에 대한 관심은 한국 언론 역사에서도 중요한 한 부분으로 남을 정도다. 그가 선발 등판할 때마다 다저스타디움은 물론 미 전국 경기장마다 한인 팬들로 가득했다. 뉴욕 메츠 구단은 박찬호가 등판하는 경기에서 뉴욕 한인 팬들이 다저스를 응원한 것에 깜짝 놀라 서재응.. 2009.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