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로야구23

박찬호, 한화 이글스에서 뛰는 날이 곧 오길... 박찬호와 같은 경험 많은 선수를 어떤 팀이 원하지 않을까. 자유계약 선수 박찬호(1973년 6월30일생)가 아직 새로운 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로 메이저리그 구단과 사인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가 새 둥지를 찾을 가능성은 99.9%에 가깝다. 메이저리그가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박찬호와 같은 경험이 풍부하고 지난 시즌 잘 던진 선수를 외면하지는 않는다. 다만 로스터 정리가 아직 되지 않았기에 정리된 후에 그의 영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해서든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하겠지만 요즘 그가 한화 이글스와 훈련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한국에서 남은 현역 야구 선수 인생을 살면 멋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메이저리그 구단이 그를 원하지만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기.. 2010. 2. 14.
[추억의 인터뷰] 서재응 마이너리거 시절 2001년 6월24일 서재응은 마이너리그였습니다. 당시 서재응 선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합니다. 인터뷰어: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인터뷰이: 서재응 인터뷰 방법: 전화통화 수년 내에 메이저리거가 될 서재응(뉴욕 메츠 산하 더블A팀 투수) 은 필자와 인터뷰를 갖고 그동안의 생활을 소개했다. 다음은 마이너리그 최고의 유망주들만 참가하게 되는 '퓨처스 게임‘에 출전하게 될 서재응과의 일문일답 내용. ▷그동안 부상으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건강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서재응(이하 서): 부상 당한 어깨를 꾸준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긴팔을 입고 다니고 야구장에서도 뜨거운 물로 찜질을 합니다. ▷아파서 오랫동안 마운드에 서지 못했는데 도움을 가장 많은 줬던 분은. ▶서: 물론 형(서재환-메.. 2010. 2. 4.
[추억의 인터뷰] 이만수 코치의 메이저리그 라이프 밝은터는 2002년 5월10일 남가주 가든그로브라는 도시 한인타운에서 이만수 코치를 만났습니다. 함께 식사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Man Soo Lee (이만수) by iccsports 2002년 5월10일 “미래에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컴퓨터에 모든 자료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삼성 팬들에게는 영원한 ‘라이언킹’인 이만수 불펜코치(당시 44세·시카고 화이트삭스·사진)는 오늘도 미래를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나가고 있다. 애너하임 에인절스와 원정 3연전을 갖기 위해 남가주를 방문한 이만수 코치는 2002년 5월10일 가든그로브 한인 타운에서 밝은터와 만남을 갖고 메이저리그와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코치는 이자리에서 ‘지장’이 되기 위해 데이터 정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고 소개.. 2010. 1. 23.
[추억의 기사] 켄 캐미니티 불꽃투혼 게재일 : 1996년 08월 31일 [38면] 서울 중앙일보 글: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미국 프로야구에 수술을 마다하고 팀을 위해 뛰는 선수가 있어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3루수 켄 캐미니티(사진). 캐미니티는 시즌 초반 근육파열 부상으로 당장 수술을 받아야만했지만 이를 뒤로 미룬채 연일 출장하는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캐미니티는 지난 5월 수술을 받기로 잠정적인 결정을 한바 있다.그러나 수술 후유증으로 3개월은 그라운드에 나 설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후 수술을 포기했다.페넌트레이스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병원신세를 질수는 없다고 버틴 것이다.수술은 시즌이 끝난후받기로 결정했다.야구인생을 건 도박이었다. 그후 캐미니티는 매 경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허슬플.. 2010. 1. 9.
[Daily Rice(6)] 정면으로 승부한다 정면으로 승부한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선동열 (샘터사, 1996년) 상세보기 무슨 꿍꿍이 속이 있어서 기자들과 가까이 지낸 것은 아니지만 평상시의 인간관계가 크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내가 즐겁게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인간관계 덕분이었다. 부담을 갖고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만나면 즐거웠고 흥겨웠다. 일본에 온 지금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다. -선동열의 자전 에세이 '정면으로 승부한다(1996)' 중에서- 선동열 / 야구감독 출생 1963년 1월 10일 신체 키184cm, 체중87kg 팬카페 불세출의 투수 선동렬 상세보기 삼성 라이온즈 프로야구 팀의 감독인 선동열씨의 자전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가 왜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습.. 2010. 1. 9.
[추억의 인터뷰] 전 레드삭스 선수 김재영 1998년 미국 프로야구 시즌이 끝난 후 김재영 선수를 만났습니다. 김재영은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의 마이너리그에서 첫 시즌을 마친 후 LA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와의 만남 내용을 소개합니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큰 크기로 기사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글/사진: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김재영은 1999년 가을에 방출 통보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목포의 대불대에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김재영의 경우 한국에서 대학야구나 프로야구에서 뛸 가능성이 희박했던 터라 미국 프로야구 진출은 새로운 희망이었습니다. 계약금도 당시로는 적은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한국 선수의 미국 진출을 무조건 막는 것은 선수의 장래를 위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재영과 관련된 (한.. 2010. 1. 6.
[스타 열전] 49세에 MLB에서 뛰었던 훌리오 프랑코 프로 야구에서는 선수가 30세가 넘어가면 노장으로 불린다. 30대 중반이면 은퇴를 할 나이이고 30대 후반으로 가면 '신기한' 선수가 된다. 그 나이가 됐음에도 계속 뛰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신기하다.  40세가 넘어가면 완전히 노인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요즘은 의학과 과학이 발달되어서인지 40대 선수들이 의외로 잘한다. 메이저리그에는 49세의 현역 선수가 있었다.지금은 은퇴한 훌리오 프랑코가 주인공. 글: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사진: PicApp, 뉴스뱅크 이미지☆ 47세에 메츠와 2년 계약  프랑코는 지난 2005년 12월8일 메츠의 오마 미나야 단장과 2년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그의 나이 47세였다. 47세의 선수와 .. 2009. 12. 28.
[추억의 스페셜] 천하무적 야구단 임창정의 '야구 영화' 아래 기사는 1998년 배우 임창정이 출연했던 '해가 서쪽으로 뜬다면'이라는 영화 관련 인터뷰입니다. 고소영 씨가 출연했네요. 베이스볼 코리아=인터뉴스 특약/ 취재: 김봉준 기자(베이스볼 코리아) ‘불가능한 꿈을 가능케 하는 러브스토리'「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신 감독)은 평범하지만 진실되고 순수한 야구 심판(임창정 분)과 따뜻한 심성을 가진 톱스타(고소영 분)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멜러영화이다. 「공포의 외인구단」 이후 오랜만에 나오는 야구소재의 영화라는 점에서 야구계로부터 많은 시선의 집중을 받고 있는 「해가 서쪽 에서 뜬다면」은 실제로 시나리오 초안부터 프로구단 해태 타이거즈를 모델로 기획 된 것으로 알려져 화제. 제작사인 명필름측은 “기획단계인 2년 전 부터 구단측과의 협조를 바탕으로 자료화면 으.. 2009. 12. 13.
찬호 '발차기 사건' 팀 벨처 추신수의 코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팀 벨처(48)와 투수 코치 계약을 맺었다. 벨처는 박찬호 '발차기 사건'에 연루된 전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 투수 출신. 당시 발차기 사건은 다음과 같이 발생했다. 박찬호가 1루로 달려갈 때 그를 강하게 태그했던 벨처는 곧이어 박찬호의 옆차기를 맞아야 했지만 다행히 정통으로 맞지 않아 큰 부상은 없었다. 당시 한국 팬들은 제대로 가격했어야 한다며 오히려 박찬호를 두둔하는 분위기였다. 그 벨처가 추신수 소속팀의 코치가 된다. 묘한 인연이다. 벨치는 지난 8년 동안 인디언스 구단의 특별 보좌역을 담당했다. 이 역할을 담당하면서 그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지도하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타구단 선수들에 대한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해 인디언스 코칭스태프에 제공하는 일도 맡았다... 2009. 11. 7.
박찬호 2010년 한국프로야구에서 뛰면 어떨까? 가족이 문제가 안 된다면 박찬호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은퇴하면 어떨까.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2009년 뜻깊은 한해를 보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것처럼 박찬호는 한국 팬들이 “보낸 많은 용기와 마음의 힘으로 훌륭한 시즌”을 보낼 수 있었다. 사실 미국 팬들 사이에 박찬호의 존재감은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나이가 많고 중간계투 요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박찬호 개인의 사정과 목표가 있을테니 이런 글이 그에게 방해가 될 수 있지만 야구인 박찬호를 생각하고 한국 야구를 생각할 때 그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은퇴한다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이 될 것이라고 본다. 미국팬들의 반응과 관계 없이 박찬호는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여러 차례 등판 경험을 했던 그다. 이는.. 2009. 11. 7.
[추억의 인터뷰] 박찬호 단독 인터뷰 "지누션이랑 친해요!" 1997년으로 기억합니다. 5월 쯤이었는데요, 저는 천리안이라는 통신사에 박찬호와 메이저리그 관련 콘텐츠를 업데이트하는 편집자로서 일을 했는데 당시 함께 일했던 정상균 씨와 박찬호 단독 인터뷰에 대한 기획을 했습니다. 이 기획 인터뷰는 루키 매거진에 소개되기도 했는데요, 당시에는 박찬호 단독 인터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지누션이 소개돼 화제가 됐습니다. 아마 당시로는 지누션에 대한 첫 소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인터뷰어: 정상균인터뷰이: 박찬호인터뷰 장소: 다저스타디움인터뷰 일자: 1997년 5월박찬호 선수가 있는 선수 대기실(라커룸)은 한국 기자들로 분주하다. 박찬호는 국민적인 영웅으로 대접 받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파견나온 기자들은 특종.. 2009. 11. 1.
박찬호 無 vs. 박찬호 有 Chan Ho Park, Dodgers by iccsports 박찬호가 없었다면... 박찬호의 존재는 1990년대 한국 국민들의 생활 방식을 바꿔 놓을 정도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대한민국 국민들 특히 남성들은 그의 경기결과에 연연하며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갖게 됐고 메이저리그 매니아들도 늘어나 한때 메이저리그가 한국 프로야구 보다 더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09년 현재 박찬호의 인기는 메이저리그 인기와 함께 추락했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코리언 특급'으로서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않았었더라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밝은터는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않았을 가상의 경우와 실제 상황을 꾸며 보았다. 박찬호.. 2009. 11. 1.
[추억의 인터뷰] 송승준 미국 현지에서 직격 인터뷰 송승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2000년 그가 낮은 레벨 싱글 A인 로웰에서 뛰었던 시절이다.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싱글A에서 뛰던 송승준을 로웰 현지에서 직접 만났다. 당시에는 한국 팬들 사이에 익숙치 않은 이름이었지만 '제2의 박찬호'로 성장할 능력의 소유자로 평가됐던 송승준. 경남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미국에 진출했던 송승준은 로웰에서 팀의 제1선발로 등판 첫 승을 따낸 후에 밝은터를 만났다. 당시 밝은터의 모친께서 직접 만들어준 한국식 스파게티 소스를 LA에서 현지(매사추세츠)까지 배달했는데 동료와 맛있게 먹었다고 훗날 인사를 했다. 송승준의 미국 생활 이야기와 메이저리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송승준 인터뷰 장소: 로웰의 홈 경기장과 송승준 숙소 인터뷰 일자: 2000.. 2009. 10. 28.
[추억의 인터뷰] 찬호의 절친이었던 맷 허지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딱 두 명이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존 우든 감독과 맷 허지스다. 존 우든 감독의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9/04/25 - 존 우든 감독의 성공의 피라미드 그리고 나머지 한 명. 허지스의 인터뷰를 오늘 마침내 소개할 수 있게 됐다. 마침내라는 말의 의미는 당시 인터뷰 내용이 실린 잡지를 오늘 찾아냈기 때문이다. 2002년 시즌이 시작하기 전이었다. LA 다저스 구장에서는 스프링 캠프로 떠나기 전에 열리는 자발적 훈련이 열리고 있었다. 기자는 다저스 구단 직원인 커티스 정 씨의 소개로 맷 허지스(구원투수)를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됐다. 허지스는 공석이 된 다저스의 마무리 자리를 차지하고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커티스 씨의 말처럼 허지스는 "최고의 .. 2009. 10. 25.
[추억의 인터뷰] 제2의 김병현을 꿈꿨던 유병목 제2의 김병현을 꿈꾸는 서브마린 유병목 2002년 2월로 기억합니다. 당시 빅리그 매거진의 편집장이었던 이 블로그의 필자 밝은터는 유병목이라는 선수를 인터뷰했습니다. 유병목은 지금도 그렇지만 무명의 선수였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죠. 그래도 제2의 김병현을 꿈꾸는 서브마린 투수가 빅리그에 도전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합니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유병목 인터뷰 방법: 전화 통화 인터뷰 일자: 2002년 2월로 추정 `제2의 김병현`을 꿈꾼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한국 두산 베어스에서 3년 간 활동했던 `사이드암` 유병목(22)과 마이너리그 계약(6년)을 지난 12월 체결했다. 유병목은 패스트볼만 따진다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김병현에 못지 않은 `서브마린`이.. 2009. 10. 25.
박찬호 다시 날다 박찬호(36)를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올라가고 내려오고 또다시 올라가는지를 알 수 있다. 지난 1994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던 박찬호는 1996년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면서 전 세계 한국인들의 희망이 됐다. 당시 박찬호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지인들과의 대화에 낄 수 없을 정도였고 한국어 언론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큰 지면으로 할애해 보도했다. 박찬호 덕분에 이전에는 없었던 일간지 스포츠 섹션이 생겼을 정도로 그에 대한 관심은 한국 언론 역사에서도 중요한 한 부분으로 남을 정도다. 그가 선발 등판할 때마다 다저스타디움은 물론 미 전국 경기장마다 한인 팬들로 가득했다. 뉴욕 메츠 구단은 박찬호가 등판하는 경기에서 뉴욕 한인 팬들이 다저스를 응원한 것에 깜짝 놀라 서재응.. 2009. 10. 24.
[추억의 인터뷰] 김선우 미국에서 첫 시즌을 마치고 현재는 두산에서 프로 선수로 뛰고 있는 김선우가 미국 프로야구에서 첫 시즌을 마친 직후 인터뷰를 했습니다. 작고하신 박진원 전 재미대한야구협회 회장의 자택에서 이뤄진 인터뷰 내용을 소개합니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김선우 인터뷰 장소: 박진원 전 재미대한야구협회 회장 자택 인터뷰 일자: 1998년 시즌이 끝난 후 김선우는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한 첫해(1998년)에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싱글A 사라소타에서 24경기에 선발로 나와 12승8패라는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는 팀내 최다승 투수가 됐다. 당시 박찬호, 조진호보다는 이름이 덜 알려진 편이었던 김 선우는 사실 한국야구에서 떠오르는 스타였다. 고교시절 청소년 대표로 세계 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던 김선우는 국가대표로서 97년 아시아 선수권에 출전.. 2009. 10. 13.
[스타 열전] '형저메' 최희섭 [스타 열전] 최희섭 '형저메'(형, 저 메이저리그로 다시 가요!)가 될까? 박찬호가 LA 다저스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무렵 시카고 컵스는 최초의 한인 야수인 최희섭과 계약을 맺었다. 벌써 8년 전인 1999년 3월4일의 일이다. 최희섭은 마이너리그에서 맹활약하며 200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야수로서 메이저리거가 됐다. 이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최희섭은 메이저리그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KIA와 계약을 맺으며 한국행을 선택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363경기에 출전해 220안타, 2루타 54개, 홈런 40개, 120타점, 타율 2할4푼, OPS 0.786의 공식 기록을 남겼다. 한국으로 돌아간 그는 계속 부진했다. 그러나 올해들어 원래의 타격감각을 되찾았다. 일부 언론은.. 2009. 5. 17.
[Special] 이치로상과 일본 동료들의 MLB 활약상 이라부 히데키(39)가 5년 만에 미국 프로야구로 복귀한다고 한다. 물론 메이저리그 복귀도 아니고 마이너리그도 아니다. 독립리그에서 뛴다고 하는데, 과연 그는 성공적으로 복귀전을 치르게 될까. 이라부가 다시 복귀하는 참에 일본 야구 선수들의 미국 진출사와 올 시즌 활약상을 한 번 정리해보았다. 이라부 히데키 (伊良部秀輝) / 외국야구선수 출생 1969년 5월 5일 신체 키192cm, 체중113kg 팬카페 상세보기 일본 출신 선수 중 메이저리그에 처음으로 나섰던 선수는 무라카미 마사노리로 그는 1964년과 65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뛰었다. 무라카미는 자이언츠에서 5승1패, 평균 자책점 3.43, 9세이브의 괜찮은 성적을 남겼다. 이후 20년 동안 일본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없었고 1995년 노.. 2009. 4. 27.
[추억의 인터뷰] 나는 최향남의 도전정신을 본받고 싶다 최향남은 도전 정신이 대단한 인물이다. 그는 안정된 삶 보다는 도전을 먼저 생각한다. 한국에 있었으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던 그였지만 돌연 미국 프로야구행을 택했던 최향남. 다소 무모해보이지만 나는 그가 왠지 좋다. 인생 한 번 살다가는 것인데 안정만 찾다가 가는 것도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드는데 최향남은 그런 의미에서 도전의 연속의 삶을 사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나는 그의 용기가 부럽고, 그의 도전정신을 배우고 싶다. 비록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의해 방출되기는 했지만 나는 그를 존경한다. 최향남과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인터뷰어: 박병기 (ICCsports.com) 인터뷰이: 최향남 인터뷰 방법: 전화 인터뷰 인터뷰 일자: 2006년 7월24일 "고독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와 같은 상황에 있다.. 2009. 4. 27.
페드로 마르티네스, 적과의 동침 허락할까? 다저스 행 소문 한때 ‘외계인’으로 불렸던 페드로 마르티네스(37)가 과연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을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마르티네스는 LA 다저스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선수입니다. 다저스에서 불펜 선수로서 인상 깊은 플레이를 했지만 토미 라소다 감독에 의해 평가절하되어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됐고 이후 리그 최고의 투수로 발돋움했습니다. 당시 페드로와 맞트레이드됐던 들라이노 드쉴즈는 평범한 2루수였기에 다저스 입장에서는 최악의 트레이드를 단행했다고 봐야겠죠. 페드로의 형인 라몬 마르티네스도 다저스에 의해 버림받았고 페드로는 다저스를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형 라몬이 다저스로 복귀하려고 할 때 적극적으로 말렸던 사람이 동생인 페드로였습니다. 그렇게 싫어했던 다저스 구단이 페드로의 영입에 나섰다는 보도가 .. 2009. 4. 17.
[추억의 인터뷰] 최희섭 마이너리그 시절 인터뷰 2000년이었습니다. 최희섭 선수가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었을 때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인 첫 메이저리그 타자라는 프리미엄 덕분에 야구 팬들의 관심이 대단했습니다. 미주 한국일보 시카고 지사의 객원 기자로 일했던 밝은터가 기사를 송고했는데 1면 기사로 소개될 정도로 시카고 지역 한인들의 관심은 놀라웠습니다. 기대했던 최희섭 선수는 이후 시카고, 플로리다에서는 잘했는데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후 망가지면서 유망주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선수가 됐습니다. 결국 한국 프로야구에 입문한 그는 한국에서도 이렇다할 성적을 올리지 못해 그를 아끼는 팬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인터뷰어: 밝은터 (http://iccsports.com 필자) 인터뷰이: 최희섭 인터뷰 방법: 전화 통화 기사 게재 .. 2009. 4. 17.
최동원, 김시진, 김재박, 심재원 한 장의 사진에...재미 있음 희귀사진을 한 장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80년대 야구 팬이라면 익숙한 얼굴이 보이시죠? 버스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선수는 김시진(왼쪽), 심재원(오른쪽) 선수입니다. 버스 안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민 안경 쓴 선수는 최동원 선수이고 버스 안 오른쪽에 있는 선수는 김재박 선수입니다. 이 분들은 요즘 무엇을 하나 궁금했습니다. 김시진 선수는 지금 감독으로서 활동 중이고 최동원 선수는 지난해까지 한국 프로야구 투수코치로 활동을 했습니다. 김재박 선수는 감독으로 재직 중이고 심재원 선수는 1994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참고로 사진 중앙에 계신 분은 전 야구 감독, 심판, 재미대한야구협회 회장으로 활동하셨던 박진원 씨(작고)입니다. 사진 촬영인=모르겠음(ICCsports.com이.. 2009. 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