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양키스의 조 지라디 감독(1964년 10월14일 생)이 양키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2008년 그는 유니폼 등번호로 27번을 선택했다. 27번은 깊은 의미가 있는 번호이다.
양키스의 통산 27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009년 11월4일(미국 기준) 양키스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4승2패로 승리해 구단 역사상 27번째 챔피언이 됐다. 지라디 감독의 등번호 27번이 더욱 빛나는 날이었다.
양키스가 조 토리 감독을 떠나보낸 후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은 "토리가 떠났으니 아메리칸리그 동부조는 레드삭스의 천하가 됐다. 지라디도 좋은 감독이지만 토리를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기뻐했다.
첫 시즌인 2008년에는 레드삭스 팬들의 말이 맞았다. 양키스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2009년 지라디는 양키스를 103승59패로 이끌었고 결국에는 월드시리즈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다. 지라디는 어떤 인물인지 알아본다.
지라디는 2006년 내셔널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플로리다 말린스의 신인 감독이었던 지라디는 말린스를 78승84패로 이끌었다. 승률 5할도 안 되는 팀의 감독이 감독상을 받는 것은 정말로 특이한 일이었다.
투표를 했던 야구 기자단은 말린스가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지라디의 지도력 덕분이라는 데 뜻을 함께했다. 말린스는 당해 11명의 신인으로 시즌을 시작했고 팀 연봉이 1,490만 달러에 불과했다. 혹시 숫자를 잘못 썼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팀 연봉이 1,490만 달러였다.
수퍼스타 한 명의 연봉도 안 되는 액수였다. 신인 선수들이 좌충우돌하며 시즌 초반 9승24패, 17승34패를 기록했을 때만 해도 감독 경질설이 나올 정도였는데 지라디는 이 팀을 이끌고 2006년 9월9일 감격의 5할 승률을 기록하며 와일드 카드 경쟁에서 상위에 올랐다.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그는 시즌이 끝날 무렵 시행된 기자단 투표에서 1위 표 18개를 받고 총점 111점으로 윌리 랜돌프 뉴욕 메츠 감독(81점)을 제쳤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5할 승률도 기록하지 못한 팀의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지라디는 그 첫 테이프를 끊었다.
Joe Girardi by Keith Allison
■ 말린스에서 해고된 후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그가 2006년 감독상을 받은 직후 해고된 일이다. 제프리 로리아 구단주와 말싸움을 한 후 그는 1년 만에 물러났다.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기 중 로리아가 주심에게 야유를 보내자 주심은 지라디 감독에게 경고했고 이에 감독은 구단주에 욕설을 퍼부으며 '입닥치라'고 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것이 지라디가 해고된 이유였다. 소식통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이미 시즌 초반부터 부딪혔다고 하는데 지라디는 엄청나게 낮은 연봉으로 팀을 꾸려가려는 로리아 구단주에게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말린스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지라디는 시카고 컵스 감독 자리가 공석이 돼 인터뷰를 했지만 결국 루 피넬라가 새 컵스 감독이 됐다.
이후 뉴욕 케이블 방송의 해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지라디는 여러 구단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양키스 감독이 되고자 모두 거절했다. 즉, 양키스 감독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Joe Girardi at NYC MLB All Star Parade 2008 by chriki24
■ 그를 원하는 팀은 많았다
지라디가 말린스를 떠난 후 그를 원하는 팀은 많았다. 그 중 한 팀이 LA 다저스였다. 다저스는 지라디가 양키스 감독직을 맡기 전까지 그와 협상을 했다. 양키스가 돈 매팅리를 감독으로 선정했다면 지라디는 다저스 감독이 됐을 것이다.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지라디와 다저스는 계속 대화를 나눴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라디와 네드 콜레티 다저스 단장은 20년 동안 친구로 지낸 사이다.
다저스 외에도 감독을 해고하려고 했던 많은 구단이 지라디를 원했지만 그가 가장 바랐던 직장은 바로 양키스였다.
Joe Girardi by Keith Allison
■ 양키스 감독으로 적당?
지라디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말린스에서 악조건 속에 좋은 성적을 냈고 과거 양키스의 벤치 코치로 있었던 점 그리고 양키스의 핵심선수들이 신인시절 지라디의 조언을 들었던 점 등이다. 이 밖에 선수시절 그가 포수였던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메이저리그 포수 출신들은 유난히 인기가 높은데 이유는 포수 출신 지도자는 투수도 알고 타자도 잘 알기 때문이다. 심판과 가장 가까이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심판의 심리도 잘 파악하고 있는 선수가 바로 포수다. 여러 면에서 포수 출신인 토리를 이을 가장 적당한 인물이 지라디였던 것이다.
Joe Girardi by Keith Allison
■ 똑똑하다? 성격이 불같다?
지라디는 똑똑한 감독으로 알려졌다. YES라는 뉴욕 지역 케이블 방송에서 해설을 맡았을 때 그는 지적인 발언으로 많은 팬을 확보했다. 노스웨스턴대에서 산업 공학으로 학위를 받았던 지라디는 우등으로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그러나 불 같은 성격이 문제였다. 구단주에게 욕설을 퍼부었을 정도면 성격이 불같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선수로서 컵스 시절에는 새미 소사와 대립의 각을 세운 바 있다. 소사가 클럽하우스에서 음악을 크게 틀자 "머리가 아프니 볼륨을 줄여달라"고 가장 먼저 요청했던 인물이 지라디다. 당시 소사는 수퍼스타였기에 아무도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으나 지라디가 앞장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지라디는 선수 시절 2000년에 단 한 번 올스타로 선정됐을 정도로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는 통산 타율이 2할6푼7리였고 1277경기에 출전 홈런 36개, 422타점을 기록한 선수였다. 지라디는 포수로서 진가를 나타낸 바 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양키스의 주전 포수로서 그의 리더십은 빛이 났다. 당시 양키스는 3차례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된 바 있다. 일리노이주 출신인 그는 시카고 컵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했고 콜로라도, 양키스를 거쳐 2003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38세의 나이에 은퇴했다.
[조 지라디 프로필]
▷키/몸무게: 5피트11인치/200파운드
▷투/타: 우투 우타
▷생년월일: 1964년 10월14일
▷출신교: 노스웨스턴
▷드래프트: 1986년 드래프트 5라운드
(시카고 컵스)
▷감독 경력: 3년 (2006년 말린스, 2008년-2009년 양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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