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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스타 열전] '형저메' 최희섭

by 밝은터_NJT 2009.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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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열전] 최희섭 '형저메'(형, 저 메이저리그로 다시 가요!)가 될까?

박찬호가
LA 다저스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무렵 시카고 컵스는 최초의 한인 야수인 최희섭과 계약을 맺었다. 벌써 8년 전인 1999 34일의 일이다. 최희섭은 마이너리그에서 맹활약하며 200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야수로서 메이저리거가 됐다. 이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최희섭은 메이저리그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KIA와 계약을 맺으며 한국행을 선택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363경기에 출전해 220안타, 2루타 54, 홈런 40, 120타점, 타율 24, OPS 0.786의 공식 기록을 남겼다. 한국으로 돌아간 그는 계속 부진했다. 그러나 올해들어 원래의 타격감각을 되찾았다. 일부 언론은 최희섭이 50홈런 타자가 될 것 같다는 조심스런 전망을 하기도 했다. 최희섭은 어떤 야구 인생을 살았을까.




■ 마이너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

 1999년 미국 프로야구에 데뷔한 최희섭은 싱글A팀인 랜싱에서 321리의 타율에 홈런 18, 70타점을 기록하며 시카고 컵스 구단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가 됐다. 이듬해 상위 싱글A에서 296리의 타율에 홈런 15, 70타점을 기록한 후 시즌 중에 더블A로 승격된 최희섭은 주눅들지 않고 맹타를 휘둘렀다. 33리의 타율에 홈런 10, 25타점을 기록했던 것. 2000년 최희섭의 최종 성적은 3할 타율에 홈런 25, 95타점이었다. 트리플A로 승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메이저리그 바로 전 단계인 트리플A에서 최희섭은 잠시 주춤했다. 2001년 시즌에 그는 부상으로 능력발휘를 하지 못했고 229리의 타율에 홈런 13개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부상 사실을 숨기고 뛰었던 그는 1년 더 트리플A에 머물러야 했다.

 부상에서 완벽하게 회복한 최희섭은 놀라운 타격감각으로 빅리그 승격을 예감케 했다. 2002년 시즌에 트리플A에서 그는 287리의 타율에 홈런 26, 97타점으로 코리 패터슨과 함께 컵스 구단 최고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시즌 중 그는 빅리그 승격을 하는 감격을 누렸다.

■ 빅리그 데뷔 그리고...

 2002 93일은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중요한 날이었다. 최희섭이 한국인으로 최초로 포지션 플레이어로서 메이저리그 선수가 된 날이었다. 2002 93일 최희섭은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홈경기에서 7회초 1루 대수비 요원으로 교체되면서 감격스런 메이저리그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7회말에는 첫 타석으로 이어졌다. 첫 타석은 삼진아웃이었다. 브루어스의 좌완 셋업맨 발라리오 델로 산토스를 상대로 처음 볼 두 개를 잘 골라냈으나 스트라이크와 파울 다음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최희섭은 메이저리그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다. 그는 2002 98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로 출장해 우월 솔로홈런을 때려냈다. 데뷔 시즌을 18푼의 타율, 홈런 2, 4타점으로 평범하게 마쳤지만 그는 2003년부터 컵스의 주전 1루수가 될 후보로 여겨졌다.

■ 뇌진탕 그 이후

 2003년 시즌에 최희섭은 에릭 캐로스와 주전 1루 자리를 놓고 경쟁을 했다. 그가 뇌진탕으로 실려나가기 전까지는 플래툰 시스템에서 해프타임 1루수가 된 최희섭은 그해 68일 야구인생에서 전환점이 될 뇌진탕을 당했다. 컵스의 홈경기장인 리글리필드에서 열렸던 뉴욕 양키스와의 인터리그 홈경기 4회 수비 때 최희섭은 제이슨 지암비의 타구를 잡으려다 투수 케리 우드와 부딪혀 넘어졌다. 앰뷸런스에 실려갔던 최희섭은 한 달 후인 7월에 복귀했지만 타격감각을 잃었고 우승에 목말랐던 컵스가 랜덜 사이먼을 영입해 1루 자리는 캐로스와 사이먼의 몫이 됐다. 최희섭에 기회가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캐로스와 사이먼이 당시 유난히 타격감각이 좋았다. 안 풀리려고 하니까 그렇게 안 풀렸다.  



컵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출전 선수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최희섭은 그해 11월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됐다.

 최희섭의 에이전트 이치훈씨는 당시 "9월부터 컵스 구단에 주전으로 뛸 가능성이 큰 팀으로 보내줄 것을 꾸준히 요청했다"고 말했는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트레이드됐던 것이다.

■ 말린스에서 다저스로 트레이드

 말린스에서 그는 좋은 성적을 냈다. 2004년 시즌 95경기에 출전해 27푼의 타율에 홈런 15, 40타점을 기록했던 것. 시즌 중반 통계전문가인 제프 사가린이 발표하는 내셔널리그 타자 랭킹에서 18위에 올랐을 정도로 최희섭은 상승세에 있었다. 최희섭은 그러나 시즌 후반부인 2004 730일 다저스로 트레이드됐다. 이는 그의 야구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었다. 다저스의 폴 디포데스타 단장은 그를 주전 1루수 겸 클린업 트리오 중 한 명으로 생각하고 영입했다.

 그런데 짐 트레이시 당시 다저스 감독이 엉뚱한 결정을 내렸다. 우익수였던 션 그린을 1루수로 기용하며 최희섭에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상황은 다음해에도 이어졌다.

■ 오! 트레이시!

 2004년 시즌이 끝난 후 비시즌 중 디포데스타 단장은 션 그린을 애리조나로 트레이드했다.  단장의 의도는 분명히 최희섭을 주전 1루수로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트레이시 감독도 이러한 대세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 2005년 스프링캠프 기간 내내 "최희섭은 주전 1루수다"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정규시즌이 시작된 후 두 번째 경기부터 트레이시는 최희섭이 플래툰 시스템의 족쇄를 다시 차게 했다. 디포데스타 단장은 이에 "최희섭이 기회를 많이 얻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트레이시는 플래툰 시스템을 고수했다. 올메도 사엔스가 워낙 잘 때려줬기 때문에 디포데스타 단장도 할 말이 없었다. 컵스 시절 캐로스가 좋은 성적으로 최희섭의 입지를 좁히더니 이번에는 사엔스가 너무 잘했다.

 그렇다고 최희섭은 처음부터 부진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2005 426일 경기에서 5타수4안타를 기록했는데 바로 다음날 경기에서 좌투수 상대라는 이유로 빠졌다. 5월 들어 타격감이 살아난 최희섭은 그러나 22일부터 25일까지 3경기에서 무안타를 기록한 후 2경기 연속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면서 기회를 놓쳤다.

 절치부심했던 최희섭은 2005 68일부터 15일까지 홈런 7개를 쳐내며 주전 확보라는 말을 트레이시 감독에게서 들을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칭찬은 없었다. 트레이시는 616일 경기에서 4타수무안타를 기록한 최희섭을 다음 경기에 빼버렸다.

 사엔스가 부진했을 때 트레이시 감독은 플래툰 시스템을 해체하고 1루 자리를 제프 켄트(2루수), 제이슨 필립스(포수)에 맡기기도 했다. 켄트를 1루로 돌리는 것 역시 디포데스타 단장의 말과는 다른 것이었다. 켄트가 1루수가 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당시 디포데스타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켄트는 2루수다"라고 못박은 바 있다. 한 경기에서 홈런 3개를 때려내기도 했던 최희섭은 시즌 후반부에는 대타 전문으로 보직이 바뀌었다. 

■ 희섭도 디포데스타도 트레이시도 떠났다

 상처만 남긴 2005년 시즌이 끝난 후 디포데스타는 트레이시 감독을 해고했다. 그리고 프랭크 맥코트 다저스 구단주는 디포데스타 단장을 자르고 언론인 출신의 네드 콜레티 단장을 임명했다. 최희섭도 다저스를 떠나 보스턴 레드삭스에 둥지를 틀었지만 2005년 상처는 너무 깊이 남았고 그는 이전의 파괴력 있는 선수로 돌아오지 못했다. 2006년부터 최희섭은 메이저리그 필드를 밟지 못했고 결국 한국행을 선택하게 됐다.

■ 한국에서도 부진

2007년 5월 10일 계약금 8억, 연봉 3억 5000만, 옵션 4억 총 15억 5000만 원에 KIA 타이거즈와 입단 계약을 맺은 그는 홈런왕 최희섭의 이미지를 되찾지 못했다. 그는
2008년 시즌에 188타수 43안타, 0.229의 시즌 타율로 2008년 9월 10일에는 2군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맛보았다.

■ 등산과 몸 만들기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는 2009시즌을 앞두고 맹훈련을 했다. 살도 많이 뺐다. 타격감도 좋아져 시즌이 시작하자 홈런포를 쏘아댔다. 고의4구도 많아졌다. 그를 두려워하는 투수가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형저메(형 저 메이저리거에요)'라는 별명이 '형저매(형 저 매일 걸어나가요)'로 바뀔 것 같다는 보도도 있다. [관련기사] 그가 원래의 모습을 보이면 '형저메(형 저 메이저리거에요)'라는 말이 조롱의 말이 아닌 누구나 인정하는 말로 바뀔 수 있다. 메이저리거는 역시 다르구나!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형저메'가 "형 저 메이저리그로 다시 갈 거에요!"라고 바뀌면 좋겠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루지 못했던 홈런왕의 꿈. 언젠가 다시 이뤄졌으면 한다. 이승엽이 이루지 못했던 그 꿈을 향해 화이팅!

박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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