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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스타 열전] 난민 도우려다 사망한 로베르토 클레멘테

by 밝은터_NJT 2009.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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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로베르토 클레멘테, 윌리 메이스, 행크 애런


메이저리그
(MLB) 매년 로베르토 클레멘테를 기념하는 날을 정해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린다. 조국을 돕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던 중 사망했던 클레멘테는 MLB에서 뛰었던 선수들 중 가장 봉사정신이 투철한 인물이었다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누구

 클레멘테는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했던 60년대와 70년대에 13차례나 3 타율을 기록한 수퍼스타였다. 1971년에는 월드시리즈 MVP 선정된 있는 그는 이듬해인 1972 1231 니카라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난민들을 돕기 위해 구호물자를 싣고 가다 항공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1955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1972년까지 줄곧 팀에서 뛰며 통산 타율 317, 3000안타, 홈런 240, 1305타점을 기록한 클레멘테는 1966년에는 내셔널리그 MVP 선정됐다. 그의 당시 기록은 317리의 타율에 홈런 29, 119타점이었다.

 
클레멘테는 리그 타격왕 등극 4, 올스타 선정 12, 골드 글러브 수상 12 화려한 경력을 가진 선수였다. 차례 월드시리즈에 출전했던 클레멘테는 1960 31, 1971년에 414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다저스에서 데려와

 클레멘테는 원래 다저스 선수였다. 무명 시절 다저스와 1만 달러에 사인했던 클레멘테는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당시 규정에 따르면 4천 달러 이상의 계약금을 받은 선수가 풀시즌을 뛰지 않을 경우 다른 팀이 드래프트를 통해 데려갈 있는 조항이 있어 피츠버그가 그를 낚아채 갔던 것이다.

다저스는 클레멘테를 꽁꽁 숨겨뒀지만 그를 눈여겨봤던 피츠버그 구단은 1954 마이너리그 드래프트에서 그를 데려오는 성공했고 팀이 다저스에 대가로 지불한 금액은 4천 달러에 불과했다. 당시 피츠버그는 3 연속 100패를 기록한 팀이었다.

야구계의 웃음거리였던 팀은 클레멘테를 영입한 완전히 다른 팀으로 탈바꿈할 있었다. 피츠버그는 1958년부터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피츠버그는 1958년부터 1972년까지 거의 매년 5 승률을 기록했고 월드시리즈 챔피언 등극 2, 디비전 우승 4회의 좋은 기록을 남겼다. 클레멘테가 뛰었던 기간이 피츠버그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였다고 있다. 피츠버그는 90년대 초반 배리 본즈 등을 앞세워 3 연속 디비전 챔피언 자리에 올랐지만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지는 못했다. 


Roberto Clemente


영화 같은 인생 영화 같은 마무리

 클레멘테가 피츠버그의 운명을 바꿔 놓았지만 그가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시기는 1971 월드시리즈부터다. 이전에는 히스패닉 선수라는 이유로 언론이 차별적 보도를 했다. 그는 볼티모어와의 '71 월드시리즈 7경기에서 414리의 타율에 홈런 2개를 기록한 MVP 선정됐다. 피츠버그는 최종 7차전에서 클레멘테의 홈런 덕분에 2-1 극적인 승리를 거둬 챔피언이 됐다.

 클레멘테는 바로 다음해인 1972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생애 3 번째 안타를 때려내며 현역 말년에 겹경사를 맞았다. 그는 그러나 시즌이 끝나고 3개월 후인 1972 1231 지진 피해를 니카라과 마나과로 구호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가 죽음을 맞았다. 당시 16천톤의 구호물자를 싣고 있던 항공기는 이륙 직후 대서양 바다에 곤두박질쳤고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당시 그의 나이 38세였다.


죽어서 이름을 남긴 클레멘테

  그의 죽음은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전국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었고 미국 야구 기자단 협회는 1973 88 그를 명예의 전당 선수로 투표했는데 이는 역사적인 일이었다. 원래 명예의 전당 투표 규정에는 선수가 필드를 떠난 5년이 지나야 후보 자격을 얻을 있다고 나와 있는데 클레멘테에게는 예외가 적용됐고 그는 역사상 라틴계 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로 기록됐다. 당시 헌액 행사에서 메이저리그 사무국 측은 '로베르토 클레멘트 ' 제정해 매년 사회봉사에 열심인 선수들에게 상을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30년이 지난 2002년에는 버드 셀릭 메이저리그 커미셔너가 '로베르토 클레멘테의 ' 리그 공식 행사일로 정해 전국적으로 그를 기념하는 행사를 갖기 시작했다. 박애주의자였던 클레멘테는 죽었지만 그의 이름은 30 후에도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밝은터]

[클레멘테 통산 성적]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 3루 홈런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 장타 OPS
2433 9454 1416 3000 440 166 240 1305 83 621 1230 .317 .359 .475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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