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36)를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올라가고
박찬호 덕분에 이전에는 없었던 일간지 스포츠 섹션이 생겼을 정도로 그에 대한 관심은 한국 언론 역사에서도 중요한 한 부분으로 남을 정도다. 그가 선발 등판할 때마다 다저스타디움은 물론 미 전국 경기장마다 한인 팬들로 가득했다. 뉴욕 메츠 구단은 박찬호가 등판하는 경기에서 뉴욕 한인 팬들이 다저스를 응원한 것에 깜짝 놀라 서재응을 영입하기도 했다.
인기가 높고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박찬호의 부담과 교만은 함께 올라갔다. ‘박찬호 영웅담’이 신문지상을 도배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한 작고 큰 실수담이 쏟아졌다. 잊을 수 없는 대표적인 사건은 박찬호의 ‘애너하임 발차기 사건’.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의 투수인 팀 벨처를 스파이크를 신은 채로 발로 걷어찬 사건은(다행히 부상은 없었음) ‘예의 바른 청년’이라는 그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또한 덕아웃에 있던 박찬호를 촬영하려던 한 나이 지긋한
그는 한국에서는 여전히 문화적인 아이콘이었고 추종자들이 끝까지 그를 격려했지만 미국 내 한인 이민 사회에서는 반응이 싸늘했다. 경기장에 그를 응원하러가는 팬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박찬호가 지난해 LA 다저스 유니폼을 다시 입었지만 관심을 두는 LA 한인 팬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LA 팬들은 더는 그의 공 하나하나에 열광하지 않았다. 냄비근성이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었다. 무관심은 미움보다 더 무섭다고 하는데 무관심이 박찬호에 대한 팬들의 최근 반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09년의 박찬호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다저스, 레인저스, 샌디에고 파드레스, 뉴욕 메츠, 다시 다저스 그리고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거쳐 ‘저니맨'이 된 박찬호는 이전보다 훨씬 겸손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내를 얻었고 자녀를 갖게 됐고 메이저리그에서 특별하지 않은 선수로 전락하면서 그는 새로운 인생을 배우게 됐다. ‘먹튀’로 이미지가 굳혀질 때는 자살 충동까지 느꼈던 그는 삶과 죽음의 의미도 깨닫게 됐던 것 같다.
야구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메이저리그에 남았던 것은
‘희로애락’을 경험하면서 그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했다.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 속에서 살다가(아이) 자신이 세상의 일원 중 그저 한 명임을 깨닫게 된(어른) 박찬호의 일구일구가 값지게 느껴진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ALCS) 1차전에서 그는 96마일의 속구를 던지며 쾌투했고 이 시리즈에서 무려 4경기에 등판했다. 소속팀이 LA 다저스에 4승1패로 승리해 드디어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게 됐다. 프로야구 생활 15년 만에 첫 월드시리즈 등판이 가능케 된 박찬호의 공 하나하나에 관심이 집중된다. 15년 전 그랬던 것처럼…
박찬호 / 국내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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