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가 마음에 든다.
홍명보호는 2009년 U-20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미 월드컵 4강 진출을 맛본 후라 8강 진출에 나라가 들썩이지는 않지만 굉장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1983년 한국이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지금은 U-20 월드컵) 8강에 진출했을 때 한국은 축구 열기로 가득한 바 있다. 4강 브라질 전은 학교에서 라디오 및 TV 중계를 듣고 볼 수 있게 할 정도로 전 국민의 관심사였다.
홍명보호가 이룬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1983년의 전설을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성적이 좋기 때문에 홍명보호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홍명보호는 알찬 팀이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은 자신의 저서인 ‘영원한 리베로’에 썼던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U-20 팀에서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영원한 리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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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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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홍 감독은 한국 축구가 기본을 무시한다고 지적했다. 기본이란 볼트래핑, 볼키핑, 드리블, 패스를 말하는데 홍명보호는 이러한 기본이 상당히 갖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본기가 잡혀 있기에 현 홍명보호의 경기를 보면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물론 안정된 경기가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날 승운이 없으면 안정되게 경기를 하고도 질 수 있다. 이집트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대회에서 홍명보호는 기본기에 승운까지 따라줘 놀라운 행진을 하고 있다.
20세 이하 선수들답지 않은 안정감은 홍명보호의 큰 특징 중 하나다.
홍 감독은 자서전 ‘영원한 리베로’에서 “대표팀에서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219쪽)라고 썼는데 실제 그의 팀 운영은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국이 이번 대회 예선 1차전에서 카메룬에 0-2로 패하자 홍 감독은 2차전 독일 전에서는 대거 선수를 교체 기용했다. 이는 두 가지 효과를 낸다. 선수들이 자만할 수 없고, 후보 선수들도 언제든지 뛸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몸만들기를 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점이다. 베스트 11만 뛰는 게 아니라 데리고 간 선수 전원이 출전 기회가 있는 것이다.
세 번째 홍명보호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선수들의 침착함이다. 20세 이하라 감정적일 수 있는데 한국 선수들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다. 미국과 파라과이 전에서 두 나라 선수들은 0-2, 0-3으로 뒤지자 거친 플레이, 신경질적인 플레이로 한국 선수들을 자극했다. 심한 파울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한국 선수들은 흥분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경기를 잘 마무리했다. 냉정할 정도로 침착한 홍 감독의 리더십이 선수들에게 녹아들어 있는 느낌을 줬다.
테크니컬한 부분에서도 박수를 받을만 했다. 공격과 수비가 약 30m 간격을 유지하며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꽤 지속적이고 견고했다. SBC의 유상철 해설위원도 파라과이전이 끝난 후 이 점을 칭찬했다.
효과적인 포메이션과 창의적인 움직임은 공격과 수비가 안정되게 하고 볼 점유율을 높였다. 이는 2-0으로 앞선 상황에서도 지키는 축구를 하지 않고 중원을 장악하며 상대를 압박하면서 오히려 적극공세를 펼쳐 3-0으로 만드는 힘이 됐다. 전통적인 한국 감독이면 2-0에서는 지키는 축구로 힘들게 경기를 마무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홍명보호는 축구를 즐기고 있었다. 골세레모니를 보면 알 수 있다. 골을 넣고 냅다 뛰기보다는 미리 세레모니를 준비해 골을 넣은 기쁨을 동료와 충분히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팀 분위기가 경직돼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8강 경기의 결과를 떠나 홍명보 감독은 차기 월드컵팀 감독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 허정무 감독에 이어 토종 감독이 연속 국대 감독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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