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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스타 열전] 프랭크 토마스

by 밝은터_NJT 2009.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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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토마스 (Frank Edward Thomas) / 외국야구선수
출생 1968년 5월 27일
신체 키196cm, 체중125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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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랭크 토마스(1968년 5월27일생)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네 번째로 타율 0.300, 500홈런, 1,500타점, 1,000득점, 1,500 볼넷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토마스에 앞서 이 기록은 세운 세 명의 선수는 멜 오트, 베이브 루스, 테드 윌리엄스다.


스테로이드 없었다면 매년 홈런왕 도전

 프랭크 토마스는 9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홈런 타자였다. 1990년 메이저리그 데뷔를 한 토마스는 1991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9차례 홈런 부문 10위 안에 들어갔다. 2위 자리에는 4번 올랐던 그는 스테로이드가 없었다면 적어도 5차례 홈런왕이 됐을 것이다.

 스테로이드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그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타자가 됐다. 93년과 94년에 아메리칸리그 MVP로 선정된 바 있는 토마스는 오래전부터 스테로이드 사용을 반대했다. 그는 지난 2002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내 생각에는 메이저리거 50%가 스테로이드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본다. 나는 '치팅(cheating)'하는 선수들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이다. 메이저리그가 철저한 약물 검사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토마스는 스테로이드에 대한 강경 발언을 자주했다. 그는 수년 전 스테로이드 청문회에 참여해 메이저리그에서 약물 복용은 사라져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청문회에서 그는 "15년 동안 메이저리거로 활동하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토마스는 "과거에는 홈런 30-40개면 홈런왕이 될 수 있었는데 스테로이드 사용으로 홈런 인플레이션 현상이 생겼고 이로 인해 내가 홈런 29, 타점 90점 이상을 기록한 해에 내 기록이 B급으로 취급되는 일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The Big Hurt
The Big Hurt by frigante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타고난 체격과 운동신경

 토마스는 6피트5인치, 270파운드의 대형선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체격이 커서 야구와 풋볼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조지아주 콜럼버스의 콜럼버스 고교를 나온 토마스는 두 분야에서 빼어난 실력을 자랑했고 농구에서도 포워드로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고교시절 4할대의 타율을 기록했던 토마스는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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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했지만 토마스는 외면됐다. 그는 풋볼을 선택했다. 오번대로부터 풋볼 장학금을 받고 타이트 엔드로 뛰었던 토마스는 그러나 야구를 더 사랑했다. 결국 오번대에서 야구와 풋볼을 병행한 그는 1학년 때 359리의 타율을 기록하며 팬암 대회 미국 대표로 선발되는 영예를 안았다. 풋볼 장학금을 받았던 토마스는 풋볼 필드에서 두 번이나 부상을 당한 후 장학금을 놓칠 뻔했으나 야구에서 워낙 좋은 활약을 펼쳐 야구 장학금을 받게 됐고 이후 야구에만 전념했다.

 3학년 때 4할의 타율에 홈런 19개를 기록한 토마스는 1989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7번으로 뽑혔다. 고교 졸업 후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대접이었다.

Swing and a...
Swing and a... by The artist (formerly) known as Gene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정확한 타격과 파워 겸비

 1989년 프로에 데뷔한 토마스는 마이너리그에서 181경기만 뛰고 메이저리그로 올라갔다. 이후 메이저리그의 1루수 겸 지명타자로 활약한 그는 거의 매년 30-40홈런을 때려냈고 타율도 거의 매년 3할대를 유지했다. 347리의 타율로 타격왕에 올랐던 해(1997)도 있었다. 그는 2001년부터 노쇠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부상도 잇따랐고 타율은 2할대 중반 또는 중반 이후로 떨어졌다.


명예의 전당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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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의 명예의 전당행은 확실해 보인다. 500홈런 이상을 기록하고도 명예의 전당으로 들어가지 못한 선수는 마크 맥과이어와 라파엘 팔메이로다. 이 두 선수는 스테로이드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많은 표를 얻을 수 없었다. 역사상 500홈런 이상을 기록하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못할 선수는 이 두 선수뿐이다.

 
반면 토마스의 명예의 전당행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ESPN의 야구 분석가인 롭 나이어는 "요즘 500홈런은 마치 400홈런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토마스의 통산 OPS(출루율+장타율)가 0.985인 것을 고려하면 그의 명예의 전당행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은퇴했을 때 그의 통산 OPS는 0.974가 됐다. 

 나이어는
"그의 OPS는 역대 11위이고(이 말을 했던 상황에서) 그가 8-10년 후에 명예의 전당 후보로 나서면 투표권을 가진 많은 기자가 OPS의 중요성을 인식할 것이기에 그의 명예의 전당행은 확실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백혈병에 관심 높아

 1990년 화이트삭스 선수로서 빅리그 데뷔를 한 이후 2005년까지 시카고를 떠나지 않았던 토마스는 2006년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07년에 블루제이스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이에 앞서 화이트삭스 선수 시절이었던 2005년에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됐지만 그해에 34경기에만 출전, 챔피언 대접을 받지 못했다.

 토마스는 백혈병 환자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가 9세 때 여동생이었던 파멜라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후 그는 이 병에 관심을 두게 됐다. 지금도 그는 백혈병 재단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일하고 있다. 


2009년에 뛰지 않았지만....

 토마스는 2009년에 뛰지 않았지만 공식 은퇴를 한 상황은 아니다. 토마스의 주요 기록을 살펴보면 그는 지난 2007년 6월28일 생애 통산 500홈런을 기록해 이 기록을 넘어선 역대 21번째 선수가 됐다. 그는 2년 연속 정규 시즌 MVP로 선정된 역대 11번재 선수였다


[프랭크 토마스 프로필]

▶별명: 빅허트(The Big Hurt) 

▶포지션: 1루수/지명타자

▶이름: Frank Edward Thomas 

▶생년월일: 1968 527 

▶출생지: 조지아주 콜럼버스

▶키/몸무게: 6피트5인치/270파운드

▶투/: 우투우타

▶출신교: 오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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