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본즈의 홈런 기록에 묻혔지만 톰 글래빈(1966년생)은 300승에 대한 반응은 괜찮은 편이었다. 본즈의 최다 홈런 기록만 아니었더라면 글래빈의 300승은 열렬한 반응을 얻었을 것이다.
그가 2007년 300승을 기록했을 때 미 언론은 좌완 투수 글래빈을 조명하며 그의 업적을 소개했다. 팬들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공을 던지는 투수인 글래빈은 1987년 메이저리그 선수가 된 후 20년 만에 300승을 챙겼던 것이다. 왼손 투수가 300승을 올린 것은 역사상 다섯 번째 일이고 글래빈은 300승을 올린 23번째 투수가 됐다. 글래빈은 어떤 선수인지 알아보았다.
글: 밝은터(이 블로그의 블로거) 사진: PicApp
■ 최고의 컨트롤 투수
톰 글래빈의 최대 장점은 역시 컨트롤 능력이다. 미국에서는 '핀 포인트 컨트롤'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자신이 원하는 지점에 정확하게 공을 꽂아넣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특히 홈 플레이트의 끝을 살짝 걸치는 서클 체인지업으로 타자들을 당황케 하는 그의 능력은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도 들린다. 체인지업과 빠른 공을 섞어서 던지면서 타자 바깥쪽으로 제구를 했을 때 결과는 대체로 땅볼이다. 글래빈은 상대 타자를 힘으로 제압하지 않고 땅볼로 유인하는 능력이 일품이다.
■ 꾸준남, 글래빈
1988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본격적으로 선발 투수 대열에 들어갔던 글래빈은 1994년을 제외하고 거의 매년 30경기 이상 선발 등판했다. 그는 2008시즌까지 메이저리그 682경기에 나왔는데 모두 선발 등판이었다. 그는 한 투수가 평생 한 번 이루기 어렵다는 20승도 무려 다섯 시즌(91,92,93, 98, 2000년)이나 기록했다. 특히 글래빈이 1991년부터 3년 연속 20승을 기록한 것은 현대 야구에서 대단한 기록이다. 그는 1991년과 1998년 두 차례 사이영상을 받았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에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사이영상 2회 수상을 비롯해 월드 시리즈 MVP(1995년), 올스타 선정 10회, 다승 1위 5회, 실버 슬러거 수상 4회 등의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 실버 슬러거
글래빈의 공격 능력은 정평이 나 있다. 현대 야구에서 투수가 2할대 타율을 기록하기가 어려운데 그는 무려 여덟 시즌에 2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포지션별 최고의 타자에게 주어지는 실버 슬러거상을 글래빈은 4번이나 받았다. 글래빈은 1996년에는 2할8푼9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선구안도 좋아 글래빈의 통산 출루율은 무려 0.244이다. 타석에 들어설 때 4번 중 한 번은 출루한다는 이야기는 상대팀의 투수들이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타자임을 알려주는 자료다.
■ 영원한 브레이브스맨
글래빈은 한때 뉴욕 메츠의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지만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면 브레이브스 유니폼을 입게 될 것이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 브레이브스 유니폼을 입었던 글래빈은 2002년 시즌이 끝난 후 메츠로 이적했다. 2002년에 18승을 기록했던 글래빈은 당시 나이가 36세였지만 자유계약 시장에서 주가가 상한가였다. 메츠, 필라델피아 필리스, 브레이브스가 공식적으로 계약 제안을 했고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양키스, 시카고 컵스도 그의 영입에 관심을 표명했다. 선수 몸값의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당시 구단들은 글래빈을 비교적 낮은 연봉으로 데려갈 수 있었기 때문에 '영입 전쟁'이 있었는데 결국 메츠의 스티브 필립스 단장의 정성에 감복한 글래빈은 뉴욕행을 결정했다.
글래빈의 메츠에서 첫 시즌은 시련 그 자체였다. 1988년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하지 못했던 것. 9승14패의 실망스러운 성적을 냈던 글래빈은 2003년에도 11승14패로 부진, '글래빈의 시대가 끝났다'는 선언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글래빈은 그러나 2005년에 13승13패, 평균 자책점 3.54를 기록하고 부활했고 2006년 15승7패를 기록,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Glavine's 300th by penner42
■ NHL 선수 됐을 수도...
매사추세츠주 출신인 글래빈은 고교 시절 야구 선수와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했다. 두 종목 모두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줬던 글래빈은 1984년 NHL 드래프트에서 LA 킹스에 의해 4라운드 전체 69번으로 지명됐다. 같은 해 메이저리그 구단인 브레이브스는 글래빈을 2라운드에 지명했다. 18세 소년이었던 글래빈은 야구를 선택했고 곧바로 브레이브스 유니폼을 입었다. 글래빈은 한 인터뷰에서 "하키 선수를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고교 시절 상대했던 선수들이 NHL에서 성공을 했는데 나도 괜찮은 선수가 됐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키가 아닌 야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브레이브스 구단에서 적극적으로 계약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은퇴?
글래빈은 2007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뉴욕 뉴스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은퇴를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300승을 올리면 올해 은퇴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300승을 올리고도 다음 시즌에 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덧붙였다.
2007년 시즌이 끝난 후 메츠는 2008시즌의 구단 옵션인 1천3백만 달러 연봉을 제시했지만 글래빈은 뉴욕을 떠났다. 그리고 친정팀인 브레이브스로 돌아갔다. 그는 그러나 2008년 4월18일 야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글래빈은 이제 이전의 성적을 낼 수 없는 나이든 선수였다. 2008시즌을 마친 후 글래빈은 브레이브스와 1년 1백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지만 그는 2009년 6월 방출됐다. 그는 은퇴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투수로서 생명이 다 된 것으로 보인다.
■ 자선활동
글래빈은 메이저리그에서 유명한 자선사업가였다. 가톨릭 신자인 글래빈은 각종 비영리단체를 지원하는 활동을 펼쳤다. 2009년에는 아들이 속한 아이스하키 팀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탐 글래빈 프로필]
▶이름: Thomas Michael Glavine
▶생년월일: 1966년 3월25일
▶키/몸무게: 6피트, 204 파운드
▶투/타: 좌투/좌타
▶메이저리그 데뷔: 1987년 8월17일
▶가족: 동생 마이크 글래빈은 지난
2003년 뉴욕 메츠 유니폼을 입고
6경기에 나와 7타수1안타를 기록했다.
형제가 잠시 같은 팀에서 뛰었음.
'특집 > 스포츠 스타 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타 열전] 크레익 비지오의 헬맷은 왜 더러웠을까 (0) | 2009.12.24 |
---|---|
[스타 열전] 타율 3할에 사이영상 노리는 잠브라노 (0) | 2009.12.23 |
[스타 열전] 입과 배와 실력으로 유명해진 데이비드 웰스 (0) | 2009.12.21 |
[스타 열전] 온갖 시련을 딛고 홀로선 릭 앤킬 (0) | 2009.12.20 |
[스타 열전] 개리 셰필드 (0) | 2009.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