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시즌에 신인이었던 릭 앤킬(1979년생)은 11승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선발투수였던 앤킬은 같은 해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제1선발로 나와 무려 9개의 와일드 피치를 한 후 추락`한 바 있다. 이후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방황했던 그가 타자로 복귀해 화제가 됐다. 앤킬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 끝이 없는 추락
2000년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 1차전. 카디널스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시리즈에서 3전 전승을 거두고 리그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지만 너무나 큰 것을 잃고 말았다. 바로 장래가 촉망되는 투수 릭 앤킬(당시 20세)의 '꿈'이었다.
투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플레이오프 경기 제1선발로 나선 앤킬은 3회초에 연이은 폭투를 하며 무너졌다. 포수가 펄쩍 뛰어도 공을 잡을 수 없는 터무니없는 폭투를 계속했던 앤킬은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정신적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앤킬은 다음해에 6경기에 나와 1승2패를 기록했고 2002년에는 아예 뛰지를 못했다.
앤킬은 2003년 재기를 위한 도전을 했는데 스프링캠프에서 들쭉날쭉한 제구력으로 마이너리그 강등을 경험했고 급기야 루키리그에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앤킬 또 왼쪽 팔꿈치 근육이 찢어져 수술을 받아야 하는 설상가상의 상황에 놓였다.
수술을 받고 회복돼 복귀한 앤킬은 2004년 잠시 메이저리그로 올라왔지만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한 투수의 모습이었다. 2005년부터 그는 타자로 전향했다. 그는 그러나 2006년 5월 무릎 수술을 받고 시즌을 마감했다. 앤킬은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불운의 선수였다.
2001년 마이너리그에서도 계속 폭투를 했던 릭 앤킬
■ 오뚝이 인생
이쯤 되면 야구 선수로서의 생활을 포기했거나 폐인이 돼야 했던 앤킬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2007년 카디널스 스프링캠프에 초대된 앤킬은 타자로 전향했다. 캠프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조심스러운 토니 라 루사 감독의 결정에 따라 트리플A로 가야 했다.
라 루사 감독은 2000년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 신인 앤킬을 선발로 내보냈던 그 감독이다. 라 루사의 그러한 결정이 아니었다면 앤킬이 야구 인생을 이렇게 어렵게 펼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라 루사 감독은 책임감을 느끼고 이후에도 앤킬에 계속 기회를 주려고 했다.
2007년 스프링캠프에서 라 루사 감독은 앤킬의 타자 전향 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러나 그는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앤킬은 메이저리그 급 타자였지만 '라 루사 감독은 그에게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주기 위해 트리플A로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번에는 라 루사 감독의 판단이 옳았다. 앤킬은 트리플A에서 홈런 32개, 89타점을 기록하며 트리플A 올스타로 선정됐다. 홈런 수는 퍼시픽 코스트 리그에서 1위였다. 2007년 8월9일 앤킬은 메이저리그로 승격됐다. 스캇 스피지오가 약물 중독 치료를 받겠다고 선언한 후 빈자리가 생기자 라 루사 감독은 곧바로 앤킬을 불러올렸다.
1분30초 쯤에 앤킬 이야기가 나옵니다.
■ 세인트루이스 팬들 기립박수
2007년 8월9일 앤킬은 카디널스의 2번타자 겸 우익수로 출전했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전이었다.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앤킬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날 경기에서 앤킬은 3점홈런을 때려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다음날 경기에서도 안타 1개를 추가한 앤킬은 8월11일 LA 다저스 전에서 4타수3안타, 홈런 2개, 3타점을 기록했다.
앤킬이 메이저리그 복귀 후 첫 경기에서 3점홈런을 때려내자 라 루사 감독은 "2006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제외하면 내 야구인생에서 최고로 기쁜 순간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동안 쌓였던 모든 부담이 한 번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슬러거' 앤킬
앤킬이 4경기에서 홈런포 3방을 날리자 기자들 사이에서는 "제2의 베이브 루스"가 탄생했다는 속삭임이 들렸다. 베이브 루스는 왼손 투수였다가 타자로 전향해 홈런왕이 됐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기대감이 커지자 라 루사 카디널스 감독은 "3할 안팎의 타율을 기록하는 타자가 되면 좋겠다"며 신인(?) 타자 추켜세우기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스카우트들은 그러나 "앤킬은 트리플A에서도 타율은 낮았지만 홈런을 많이 때려냈다. 대단한 홈런 타자가 될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 어려움 속에서도 불만 말하지 않아
앤킬은 운명과도 같았던 어려움 속에서 단 한 차례도 불만을 터뜨리지 않았다. 그는 항상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도전에 전심을 다했다. 라 루사 감독은 앤킬에 대해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도 한 번도 불만을 터뜨리지 않고 남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정말 존경과 경의의 대상이다"라고 말했다.
앤킬에게 외야수 글러브를 처음으로 줬던 팀 동료 짐 에드먼즈는 "그렇게 어려운 일을 겪었음에도 그는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는 운동 능력이 뛰어난 선수다. 이제 그가 할 일은 700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 또 다시 시련이
그가 맹활약을 펼치자 약물 사용에 대한 의심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실제 앤킬은 인간성장호르몬을 사용했고 이는 의사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팔꿈치 수술을 받은 후 의사의 권유에 따라 약물을 사용했고 이는 당시 메이저리그의 금지약물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 측은 “앤킬이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며 그의 무죄를 인정했다.
2009년 영상
■ 2008년과 2009년 그리고 홀로서기
앤킬은 2008년에 2할6푼4리의 타율에 홈런 25개, 71타점의 준수한 성적을 냈다. 이제 메이저리그 타자로서 자리를 잡았다. 2009년은 ‘다운(down) 시즌’이었다. 앤킬은 122경기에 출전, 타율은 2할3푼1리, 홈런 11개, 38타점에 그쳤다. 앤킬은 2009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 선수로 풀렸다. 카디널스는 그와의 재계약에 뜨뜨미지근(lukewarm)한 반응이었고 오히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관심을 표명했다. 그의 재기를 도운 토니 라 루사 감독도 카디널스 구단도 앤킬이 홀로설 수 있다고 판단을 했던 것 같다.
[릭 앤킬 프로필]
▷이름: Richard Alexander Ankiel
▷생년월일: 1979년 7월19일생
▷출생지: 플로리다주 포트 피어스
▷키/몸무게: 6피트1인치, 210파운드
▷투/타: 좌투/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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