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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추억의 인터뷰] 박찬호 에이전트였던 스티브 김

by 밝은터_NJT 2009.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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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으로 기억합니다. 루키라는 잡지에 기사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곽형근 씨라고 다저스 구단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분이 박찬호의 에이전트인 스티브 김(한국명 김철원)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묘하게도 그 잡지에는 제 이름(밝은터)을 달고 기사가 나갔는데 이제와서 그것을 수정합니다. 잡지의 편집자가 제가 편집장이니까 제 이름을 바이라인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곽형근 씨에게는 미안했는데 이제라도 수정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 기사를 최근 발견하고 올리게 됐습니다.  

Steve Kim_former sports agent
Steve Kim_former sports agent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나는 한국의 제리 맥과이어”

최근 흥행에서 크게 성공한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톰 크루즈는 똑똑하고 실력 있는 스포츠 에이전트 제리 맥과이어로 나온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스포츠 스타들이 벌어들인 돈에대한 커미션을 받는데에만 집착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한 맥과이어는 충의를 지키는 성실한 삶을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그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지만 맥과이어는 결국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최고의 에이전트로 인정을 받게 된다.‘

한국인들중에도 영화 속의 제리 맥과이어 처럼 진실된 스포츠 에이전트로서로 맹활약을 보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 LA 다저스에서 선발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박찬호의 에이전트 스티브 김(한국명 김철원)씨.

박찬호가 평생 은인으로 생각하고 “형님”으로 모시는 스티브 김씨가 없었다면 한국인 메이저리그 입성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한국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전례도 없었고 신인이 거금 10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다저스에 입단한다는 것은 꿈꾸지 못했을 당시 김씨는 불가능을 가능케한 주역이다. 
 
김씨는 그러나 스포츠 에이전트로서 보다는 박찬호의 동반자로서 삶을 공유하는 친구로서 그를 도와주었다. 제리 맥과이어가 한 무명 풋볼선수를 진실어린 마음으로 돌봐줬던 것처럼 김씨는 박찬호의 입이 되고 발이 되었던 것이다.

최근 LA에 거주하고 있는 스티브 김씨를 만나 그의 인생관과 지난 3년 동안의 스타제조(star making)의 과정을 들어보았다.

인터뷰어: 곽형근
인터뷰이: 스티브 김
인터뷰 장소: 스티브 김 사무실
인터뷰 일자: 1997년 4월18일

Chan Ho Park interviews with a Korean comedian
Chan Ho Park interviews with a Korean comedian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시의 한인타운에서 건축회사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스티브 김씨는 자신이 박찬호 매니저로서가 아닌 건축가로서 더 유명하길 원한다. 그는 현재 EaWes Corporation를 지난 89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전화약속을 하고 찾아간 김씨의 사무실은 온통 무엇인가로 빽빽히 채워져 있었다. 특히 사무실 벽 곳곳에는 각종 상패와 수료증이 걸려 있었고 테이블은 박찬호가 힘있게 투구하는 사진, 사인공, 야구, 그리고 가족들의 사진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김씨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때 미국으로 온 1.5세 이민자다. LA하이스쿨에서 외국인을 위한 영어클래스(ESL) 수업을 받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이민 생활에 들어간 그는 흔한 유혹에 한눈 팔지 않고 들어가기 힘들다는 명문인 UC버클리에 진학하게 되었다. 

UCLA에서 미술울 전공하는 누님의 권유와  자신의 적성에 맞는다고 느껴 건축과를 선택한 김씨는 “건축학은 결코 오랜 기간을 빰흘려 노력한 만큼 많은 돈을 버는 직종이 아니지만 아름다운 건물이 세워진 후 느끼는 만족감 때문에 이 길을 계속 걷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 졸업 후 5년간 미국회사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은 그는 지난 89년 회사를 설립하고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왔다. LA 한인타운안에 많은 빌딩들이 자신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이곳저곳에서 ‘스티브의 흔적’을 자주 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스티브 김씨를 잘 알고 주위에서 보면 그가 영화 “제리멕과이어”를 닮았다고 하는데 의의를 제의하지 않을 것이다.  작지만 단단한 체구에, 자신감이 넘치는 반짝이는 눈, 세련된 의상, 머리스타일도 영화배우 크루즈를 닮았다고 볼 수 있지만, 닮은 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첫째 실력 있는 사람이다.  미국주류사회를 잘 알고, 그들 앞에 어떻게 처신하고 어떻게 거래해야 되는지를 통달했다. 그는 미국사회의 양면과 구조와 범위를 이해한다. 동시에 그는 1세들을 구식으로 몰아치고 교류를 기피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스티브김씨는 LA 한인 단체들의 지지를 받아 한양대학교와 한국정부를 설득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박찬호의 연봉문제나 대우문제에서도 최선의 대우를 받게 해줬다. 그가 한인사회를 등한시했거나, 아니면 미국주류사회 진출을 게을리 했다면, 박찬호를 대변해 이렇게 탁월한 결과를 못 이루었을 것이다. 

스티브 김씨는 유명한 스포츠광이다.  학생시절 공부하느라 바빠 직접으로 운동할 기회는 없었지만 모든 운동을 굉장히 좋아하고 관전했다. 지금도 하루의 일상생활중 거의 3-5시간은 스포츠경기를 보는데 보낸다. 항상 다저스경기를 라디오중계를 듣고, 또 집에서 돌아와서는 밤 1시까지 자기전, 모드 하루의 스포츠하이라이트를 보아야만 잠이 오는 스포츠 광이다. 

거의 10년이 넘게 그래온 자신의 습관이 박찬호선수를 돕는데 도움이 됐었다고 고백한다.

“현재 미국야구에 어떤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고, 또 그들이 얼만한 실력을 보였고, 얼마만큼의 돈을 요구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찬호의 대우문제에 대서 자신 있게 주장했죠.”

또 LA 한인야구협회의 이사로 활동하는 그는 주말마다 직접야구를 하면서 즐기곤 했었다.

아이들에게 야구를 시키냐는 질문에, “박찬호의 영향으로 약 3년 전부터 두아이들이 리틀야구를 시작했죠.  큰아이는 지금도 열심히 하고, 시합을 하는 전날에는 밤잠도 설치고 하죠.  작은 녀석은(웃음) 야구보다는 테니스나, 골프가 더 마음에 든다고 그만두었습니다.”

자녀의 교육에 대해서는 그는 그들이 미국에서 살아가며 당당한 주인이 도길 바라는 마음에 미국화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1세와 다릅니다.  1세들은 한국에 돌아갈 수 있고, 또 그러는 마음을 갖기도 많이 있지만, 우리들은 여기서 정착해서 앞으로도 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 주류문화를 알아야 하고 또 그들 속에 진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국에 돌아가 살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이 나라에서 주인이 아닌 손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과 미국의 차잇점에 대해서는 “찬호문제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너무 달라져 있는 한국을 보고 외국에 간 느낌이였습니다. 물론 언어에서는 불편함이 전혀 없지만 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남을 어쩔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또 이민생활에서 느낄 수 없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끈끈한 정, 깊은 관계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스티브 김씨는 항상 한인이 미 주류사회에 진출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의 회사명인 EaWes도 동양이 서양을 만난다는 의미가 있듯이, 그는 자신의 근원이 한국이지만 미 주류문화를 배우고 그들에게 진출해서 한 일원이 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스티브 김씨는 마음이 큰 사람이다.  그는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길 항상 추구한다. 박찬호와 인연이 시작된 것은 박찬호가 한인청소년야구대표팀으로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공주고 동문을 미국에서 찾지 못해 자신의 집에 민박 시켜준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후 박찬호에게 미국팀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스티브 김씨에게 중간다리 역할를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확실한 보장도 없이 스티브김씨는 3개월 동안 바쁜 일정 속에서도 3번씩 한국과 미국을 왕복하며 자신의 일같이 분주히 각계사람들을 만나후, 불가능하리라 생각된 일을 성사시켰다. 

그 당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이 왜 그런 일을 시도했냐는 필자의 질문에, “찬호가 너무 원했기 때문이죠.” 담담하게 대답한다.

박찬호선수가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 전문 에이전트에게 소개 해주려고 한는 것을 박찬호선수와 가족의 반대로 계속 그역할을 이행하게 되었다고 할만큼 스티브김은 그토록 사심이 없었다. 

자신이 박찬호를 다저스로 영입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 시간이 아깝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무런 사심 없이 박찬호선수에게 가장 유익한 길을 밟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요즘 사회에서 찾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Steve Kim, former sports agent, converse with Dodgers associates
Steve Kim, former sports agent, converses with Dodgers associates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다음은 스티브 김씨와의 단독 인터뷰 내용.

<루키>올해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스티브>찬호가 선발투수가 되서 지난해보다 더 바빠지리라 생각합니다.  찬호의 활약에 따라 더 많은 광고제의가 들어올 것이고 또 언론의 취재의 열기가 더해지게 될 것으로 전망이 됩니다. 저의 역할은 찬호가 더욱더 운동에 집중할 수 있게 모든 것을 잘 관리해 주는 것이지요.”

<루키>지금의 박찬호가 옛날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스티브>“예전에는 매서운 눈초리로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겠다는 투지를 찬호에게 느낄 수 있었죠. 지금은 많이 자신감도 생기고 성숙해졌고 어른스러워졌습니다.”

<루키>처음 미국에 와서 박찬호선수가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스티브>우리가 너무 미국야구를 몰랐습니다.  처음 와서 팀에 합류해서 연습을 하는데 아침 10시에 시작해서 오후2시면 끝나더군요.  좀 짧다고 생각했죠. 찬호도 “형, 너무 연습이 부실한 것 아냐?”라고 물어왔습니다. 연습 후에 우리는 쇼핑도 다니고 영화도 보기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연습장을 우연히 들렸는데 많은 선수들  열심히 연습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배팅, 수비연습, 조깅 등 각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2시까지는 팀연습이였고 그후 개별적인 개인 연습이 있었던 거예요. 한국에서는 8-9시간간의 연습을 단체로 하는데 여기서는 자율훈련이 더 강조된 다는 것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루키>그것을 소위 자율야구라고 하는데 이것이 한국과 미국의 차이점인가요?
<스티브>맞습니다. 그후부터 찬호도 분발해서 개인 연습량을 대폭 늘렸죠.

<루키>그 외 다른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스티브>언론과의 관계에서 가끔 어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전연락도 없이 갑자기 인터뷰를 하러 찾아와 당황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익숙해져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 별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요.

<루키>현재 한국야구의 수준은 어느정도라고 생각 하시는지요?
<스티브> 제가 야구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껏 보고 들은바에 의하면 한국야구는 미국의 ‘더블A’이라고 합니다. 한국선수들중 메이저리그에 와서 활약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선수들도 눈에 띄지만 아직은 보편적으로 여기의 마이너리그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죠.

<루키>건축업을 하시다고 스포츠 에이전트를 겸업하시게 됐는데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스티브>전문 에전트가 아니라서 모르는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모르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루키>박찬호선수가 첫 계약을 할 당시 계약금을 놓고 다저스와 실랑이를 벌였을 때, 본인은 150만달러까지 주장했다고 했는데 계약이 성사 되지 않을까 봐 불안하지는 않았었는지요?
<스티브>물론 찬호가 워낙 미국에 오고 싶어했기에 그냥 올 수 있었죠. 메이저리그에 들어갈 수만 있게 해달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첫 발을 그런 식으로 내디디면 앞으로도 푸대접을 받게 되고 메이저리그에 입문하려는 다른 한국선수들에게도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점잖게 가만히 있으면 바보가 되는 경우가 많지요.  주장할 것, 불평할 것은 그때 말해야 제대로 대접을 받게 됩니다.

<루키>다저스의 구단주 오말리씨과 관계는 어떻습니까?
오말리는 큰 인물입니다.  자산이 4조억달러가 넘는데도 무척 겸손하고 모든 사람에게 세밀한 신경을 쓰는 사람입니다. 특히 찬호는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보살펴 줬지요. 초창기에는 찬호의 시범경기를 직접 보러 스프링캠프에 오곤 했습니다. 신인을 격려하기 위해 시범경기에 구단주가 오는 일은 다저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찬호에게 전화를 걸어 친절함을 보였고 찬호의 대한 기사를 항상 스크랩해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루키>오말리씨가 다저스를 매각하고 물러나고 앞으로의 구단주는 좀 더 상업화된, 기업적인 구단주가 대치하게 될 것인데, 이것이 박찬호에게 올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스티브>큰 파급효과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찬호는 이제 많이 자리를 잡았고 스스로 일어설 힘을 얻었습니다.”

<루키> 앞으로의 계획이나 소망이 있다면?
<스티브> “한국과 미국사회, 양사회 중간에서 다리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찬호를 통해 한국야구와 미국야구가 더 가까워진 것처럼, 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써 미국에 진출하려는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기업들을, 또 반대로 한국에 진출하고 싶은 미국인들에게 다리역할을 해줘 작은 민간외교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건축과 관계된 것이면 더욱더 좋고요(웃음)”

실제 위 기사가 소개된 잡지 스캔


 

2009년에 쓰는 후기

스티브 김씨는 2000년 1월 박찬호와 결별한 후 여러 사업을 벌였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사업 과정에서 소송을 당해 패소하는 등 내리막길을 걸었다. MLBkorea.com을 시작했지만 실패였고 홍명보 선수의 영입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각종 법정 소송으로 그는 사기꾼으로 몰렸다. 하지만 박찬호가 미국에 진출할 수 있도록 원동력을 마련한 그의 노력마저 송두리째 날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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