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스타 열전] 조시 베켓

by 밝은터_NJT 2009. 12. 30.
반응형
조시 베켓(Joshua Patrick Beckett, 투수, 우투우타, 05/15/80, 193cm, 86kg, 1999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순위 지명-

 

글: 정재호(전 ICCsports.com 기자), 박병기(ICCsports.com 블로거)

 

Royals vs. Red Sox


조시 베켓의 시작은 프로에 데뷔하면서부터 요란했다
. 지난 1999년 그는 십대의 나이에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우완투수였지만 그해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플로리다 말린스에 입단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것은 과거 빌 길릭슨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의 재능과 잠재력은 벌써부터 경쟁자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00시즌 프로무대에 첫 발을 내디딘 베켓은 명성만큼이나 화려한 구위를 앞세워 루키리그, 낮은 싱글A 클래스를 압도해나갔다. 0점대 방어율과 이닝수에 비해 엄청나게 증가하는 탈삼진은 그의 존재가치를 다시 한번 만천하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해 4월 어깨에 첫 번째 이상 징후가 왔고, 5월에 복귀했지만 결국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오르며 시즌을 접어야 했다. 어깨에 치명적인 염증이 발견됐기 때문.

 

오프시즌 동안의 몇 차례 검사에서 어깨 윗 부분에 약간의 파열된 근육조직과 건염 등이 발견됐다. 제임스 앤드루스 박사의 충고에 따라 겨울 내내 재활훈련에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재기한 `01시즌, 그는 과거보다 더욱 막강해진 구위로 마이너리그를 평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속했던 하이 싱글A 플로리다 스테이트 리그(66이닝, 6승무패, 방어율 1.23, 탈삼진 101, 볼넷 15개 등), 시즌 중반 승격한 더블A 이스턴 리그(74이닝, 81, 방어율 1.82, 탈삼진 102, 볼넷 19개 등)를 압도해 나갔고 그 여세를 몰아 `01 9 4일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데뷔 경기까지 치르게 됐다.

 

Josh Beckett #61 


베켓의 메이저리그 선발 데뷔 경기였던 시카고 컵스전은 플로리다 전체 시즌에서 가장 관심을 집중시킨 경기였다
. 그는 6이닝 1피안타, 3볼넷, 5탈삼진으로 데뷔 경기에서 첫 승을 올리는 개가를 이루어냈고 새미 소사 등의 강타자들을 녹다운시키는 모습은 팬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됐다.

 

시즌 최종 성적 또한 24이닝, 22, 평균 자책점 1.50, 탈삼진 24, 볼넷 11개 등의 기록으로 가히 가공할만 했다. `01시즌 마이너리그는 베켓을 위한 무대였음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마이너리그 최고 권위 잡지 BA(베이스볼 아메리카)가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획득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베켓을 두고 야구 전문가들이 왜 `2의 케리 우드`라고 칭하는지는 그의 구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베켓은 놀란 라이언, 로저 클레멘스, 케리 우드 등의 대를 잇는 정통파 오버핸드 스로우 파워피처였다. 그가 향후 부상만 없다면 장차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수퍼에이스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베켓의 포심 패스트 볼(일반적인 패스트 볼)은 최고 99마일에 이르지만 그는 꾸준히 93-95마일을 유지하는 패스트 볼의 구사를 선호한다. 무브먼트가 현란한 패스트 볼을 바탕으로 때로 싱커성 패스트 볼을 구사하기도 한다. 전매특허인 커브 볼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12시 방향에서 6시 방향으로 수직을 이루며 뚝 떨어진다. 체인지업 또한 그의 패스트 볼과 맞물려 가공할 정도의 위력을 자랑한다.

 

베켓의 피칭 딜리버리는 참으로 유연하다는 평이다. 193cm의 큰 키에서 내리 꽂는 듯한 피칭 딜리버리는 부드러움까지 겸비해 타자들로 하여금 조바심을 자아내게 만든다. , 투구폼을 읽기 어렵게 때문에 타이밍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패스트 볼, 싱커, 커브 볼,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위력적인 구위로 뿌려대기 때문에 타자들 입장에서는 그와의 맞상대에서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어렸던 그는 나이에 비해 매우 성숙했으며 인격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됐다고 한다. 결코 물러서지 않는 강인한 승부근성까지 지닌 베켓이기에 주위 사람들의 찬사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베켓의 약점은 너무 강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부상의 우려도 다 그런 그의 마인드에서 유래했다. 강하기만 한 것은 부러지기 쉽고, 야구는 혼자서 하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부드러움을 보완하는 지혜를 발휘함과 동시에 야수들을 믿으며 다소 느긋한 마음으로 경기 자체를 즐기는 여유 또한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투구에도 강약 조절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투수로서 다소 떨어지는 수비력의 보완도 이루어져야 한다.

 

Beckett named 2003 World Series MVP

많은 야구 전문가는 이구동성으로 베켓의 존재를 극찬했다. 전문가들의 전망대로 베켓은 2003년 시즌에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2003년 월드시리즈에서 MVP.로 선정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렇게 스타가 됐지만 말린스 구단은 곧 시들해졌다. 이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고 베켓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04년에 99, 평균 자책점 3.79를 기록했다. 베켓은 2005년에는 158패에 평균 자책점 3.38을 기록한 후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다.

 

레드삭스에서는 팀 타선의 지원을 잘 받아 2년 동안 36승을 챙겼다. 말린스에서 5년 동안 올린 승수와 비슷했다. 2007년에는 207, 평균 자책점 3.27로 사이영상 투표에서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베켓은 투표인단이 좋아하는 20승을 올렸고 평균 자책점도 낮아 생애 첫 사이영상 수상에 가까워졌지만 C.C 사바시아(당시 클리블랜드)에 밀려났다. 사바시아는 119, 베켓은 86점을 받았다.


당해 그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MVP로 선정됐다. 그는 2008년에는 12, 2009년에는 17승을 보태 통산 106승을 기록했다. 예산이 넉넉한 레드삭스에서 그는 최근 2년 연속 1천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챙겨 부자 청년이 됐다. 이제 그도 30세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다. 2010 515일 그는 30세가 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