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75 [추억의 인터뷰] 송승준 미국 현지에서 직격 인터뷰 송승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2000년 그가 낮은 레벨 싱글 A인 로웰에서 뛰었던 시절이다.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싱글A에서 뛰던 송승준을 로웰 현지에서 직접 만났다. 당시에는 한국 팬들 사이에 익숙치 않은 이름이었지만 '제2의 박찬호'로 성장할 능력의 소유자로 평가됐던 송승준. 경남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미국에 진출했던 송승준은 로웰에서 팀의 제1선발로 등판 첫 승을 따낸 후에 밝은터를 만났다. 당시 밝은터의 모친께서 직접 만들어준 한국식 스파게티 소스를 LA에서 현지(매사추세츠)까지 배달했는데 동료와 맛있게 먹었다고 훗날 인사를 했다. 송승준의 미국 생활 이야기와 메이저리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송승준 인터뷰 장소: 로웰의 홈 경기장과 송승준 숙소 인터뷰 일자: 2000.. 2009. 10. 28. [추억의 인터뷰] 찬호의 절친이었던 맷 허지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딱 두 명이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존 우든 감독과 맷 허지스다. 존 우든 감독의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9/04/25 - 존 우든 감독의 성공의 피라미드 그리고 나머지 한 명. 허지스의 인터뷰를 오늘 마침내 소개할 수 있게 됐다. 마침내라는 말의 의미는 당시 인터뷰 내용이 실린 잡지를 오늘 찾아냈기 때문이다. 2002년 시즌이 시작하기 전이었다. LA 다저스 구장에서는 스프링 캠프로 떠나기 전에 열리는 자발적 훈련이 열리고 있었다. 기자는 다저스 구단 직원인 커티스 정 씨의 소개로 맷 허지스(구원투수)를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됐다. 허지스는 공석이 된 다저스의 마무리 자리를 차지하고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커티스 씨의 말처럼 허지스는 "최고의 .. 2009. 10. 25. [추억의 인터뷰] 제2의 김병현을 꿈꿨던 유병목 제2의 김병현을 꿈꾸는 서브마린 유병목 2002년 2월로 기억합니다. 당시 빅리그 매거진의 편집장이었던 이 블로그의 필자 밝은터는 유병목이라는 선수를 인터뷰했습니다. 유병목은 지금도 그렇지만 무명의 선수였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죠. 그래도 제2의 김병현을 꿈꾸는 서브마린 투수가 빅리그에 도전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합니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유병목 인터뷰 방법: 전화 통화 인터뷰 일자: 2002년 2월로 추정 `제2의 김병현`을 꿈꾼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한국 두산 베어스에서 3년 간 활동했던 `사이드암` 유병목(22)과 마이너리그 계약(6년)을 지난 12월 체결했다. 유병목은 패스트볼만 따진다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김병현에 못지 않은 `서브마린`이.. 2009. 10. 25. [추억의 인터뷰] 김병현에 대해 BA 편집국장의 조언 짐 칼리스(Jim Callis)씨는 미국의 야구 전문 격주간지인 베이스볼 아메리카(Basaball America, 이하 BA)의 편집국장이자 칼럼리스트로서 활동 중입니다. BA는 아마추어 드래프트와 마이너리그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전문지이며 칼리스씨는 유망주 평가에 있어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매거진 ‘빅리그’는 BA의 칼리스씨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전반적인 이야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김병현과 박찬호에 대한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또 한국과 대만출신의 마이너리거 유망주들에 대한 평가와 메이저리그의 현행 이슈들 및 편집자이자 칼럼니스트로서 그의 삶에 대해 들어 보았습니다. 인터뷰어: 유정훈 인터뷰이: 짐 칼리스 인터뷰 방법: 이메일 인터뷰 .. 2009. 10. 22. [추억의 인터뷰] 김선우 미국에서 첫 시즌을 마치고 현재는 두산에서 프로 선수로 뛰고 있는 김선우가 미국 프로야구에서 첫 시즌을 마친 직후 인터뷰를 했습니다. 작고하신 박진원 전 재미대한야구협회 회장의 자택에서 이뤄진 인터뷰 내용을 소개합니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김선우 인터뷰 장소: 박진원 전 재미대한야구협회 회장 자택 인터뷰 일자: 1998년 시즌이 끝난 후 김선우는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한 첫해(1998년)에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싱글A 사라소타에서 24경기에 선발로 나와 12승8패라는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는 팀내 최다승 투수가 됐다. 당시 박찬호, 조진호보다는 이름이 덜 알려진 편이었던 김 선우는 사실 한국야구에서 떠오르는 스타였다. 고교시절 청소년 대표로 세계 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던 김선우는 국가대표로서 97년 아시아 선수권에 출전.. 2009. 10. 13. [추억의 인터뷰] 탬파베이 레이스 단장 인터뷰 2007년 2월 당시 탬파베이 데블레이스(현 탬파베이 레이스)에는 한국 선수가 3명이나 있었다. 최희섭, 서재응, 류제국이 그들이었다. 한 팀에 한국 선수가 3명이 있는 일은 드문 경우다. 특히 메이저리거급 선수 3명은 더더욱 드물다. 잠시 한국 팬들 사이에 화제의 팀이었던 탬파베이의 앤드루 프리드먼 단장과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앤드루 프리드먼 인터뷰 날짜: 2007년 2월14일 인터뷰 방법: 전화통화 "그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최희섭에 대해) "그는 우리의 믿음직한 선발 투수다."(서재응에 대해) "그가 우리 팀의 제5선발이 되기를 바란다."(류제국에 대해)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의 부사장 겸 구단 운영 총책임자인 앤드류 프리드먼은 14일 전화.. 2009. 9. 27. [추억의 인터뷰] 메이저리거 3호 김병현의 루키 시즌(1999년) 한국인으로는 3번째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이룬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이 야구 뿐만 아니라 미국 문화에 익숙해지기 위해 영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하게 했다. 필자가 김병현과 만남을 가진 것은 두 차례다. 첫 번째 만남은 전화로 이뤄졌다. 트리플 A에 있을 때였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직전 가진 인터뷰에서 김병현은 "불편한 것이 전혀 없고 두렵지 않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더블A에서 맹활약한 후 곧바로 트리플A로 승격됐던 김병현은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김병현은 사이드암인데도 불구하고 시속 94-95마일의 빠른 공을 던져 조만간 메이저리그로 올라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첫 번째 인터뷰를 가진 후 김병현은 메이저리그 승격 소식을 들었다. 김병현은 메이저로 승격.. 2009. 9. 22. [추억의 인터뷰] ‘아이스링크의 자랑스러운 한국계’ 리처드 박 박용수는 박찬호가 한창 뜰때 자주 거론됐던 인물입니다. 박용수는 한국 출신 중에서는 NHL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3세 때 남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사실상 미국인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서울 태생이고 부모님이 한국인이기에 한국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는 1994년 NHL에 데뷔해 지난 시즌까지 뛰면서 603 공격포인트(86득점+110어시스트)를 기록했습니다. 박용수와의 만남을 소개합니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리처드 박(한국명 리처드 박) 인터뷰 날짜: 2002년 2월 인터뷰 장소: 스테이플스 센터 Richard Park, NHL Player by iccsports 아이스하키는 한국들에게 관심 종목이 아니다. 물론 일부 매니아들이 있기는 하지만 퍼.. 2009. 9. 16. [추억의 인터뷰] 불운했던 좌완 강속구 투수 안병학 Byeong Hak An by iccsports 안병학 선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카우트가 공 2개 던지는 것을 보고 곧바로 계약을 했던 선수입니다. 공이 빠르고 어깨가 싱싱해 레드삭스 구단에서 기대를 많이 걸었습니다. 높은 레벨 싱글A에서 미국 프로야구 생활을 시작할 정도로 구단에서는 확실히 밀어주는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공은 잘 던졌지만 승운이 안 따랐고 승운이 따라도 이상하게 승격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레드삭스의 단장이 바뀌면서 안병학 선수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됐고 이곳에서 그는 좋은 성적을 냈음에도 승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군에 입대한 그는 제대를 한 후 롯데에 입단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방출됐습니다. 좋은 투수였.. 2009. 9. 4. [추억의 인터뷰] 레드삭스는 한국선수를 왜 싹쓸이 영입했나? Ray Poitevint and Jin Won Park by iccsports 보스턴 레드삭스는 한때 한국 선수들을 싹쓸이했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수많은 한국 선수와 계약을 했습니다. 조진호, 김선우, 이상훈, 송승준, 안병학, 채태인 등 레드삭스와 계약을 한 선수가 줄을 이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의 중심에는 레이 포이트빈트라는 레드삭스의 극동지역 스카우트가 있었습니다. 2002년 1월 포이트빈트 씨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당시 선수들의 상황과 구단의 기대 그리고 계약 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레이 포이트빈트 보스턴 레드삭스 극동지역 스카우트 인터뷰 방법: 직접 만남 인터뷰 일자: 2002년 1월 어느 날 레이 포이트빈트(당시 72세)씨는 메이저리그 스카.. 2009. 9. 2. [추억의 인터뷰] 김병현의 선발 전향에 대한 우려 잘 모르시겠지만 2002년에 ICCsports.com은 빅리그 매거진을 만들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전문 잡지였는데 당시 2월호 기사를 보니 김병현에 관한 내용이 있네요. 김병현은 구원투수로서 대성할 수 있다는 미 전문가들의 의견이 담긴 기사였습니다. 당시로 돌아가 볼까요? 인터뷰어: 정재호, 유정훈 인터뷰이: 미 언론의 칼럼니스트들 인터뷰 방법: 이메일 인터뷰 일자: 2002년 애리조나 리퍼블릭지에 따르면 조 가라지올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단장이 김병현의 제5선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은 김병현이 선발감은 아니라는데 의견을 함께 하고 있다. 이는 결코 김병현을 평가절하 하는 것이 아니다. 김병현은 마무리 전문으로 대성할 수 있는 투수라는 의미다.. 2009. 9. 2. [추억의 인터뷰] 박찬호 이별 후 다저스 코칭스태프 인터뷰 2002년 1월9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렸던 LA 다저스 선수들의 첫 동계 워크아웃 현장은 일본 선수 이시이 가즈히사의 영입이 발표되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 했습니다. 짐 트레이시 당시 다저스 감독은 박찬호가 떠난 빈 자리를 이시이와 남은 선수들이 잘 메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 했고 일본 선수들의 영입에 상당히 만족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다저스가 이시이를 영입했다는 보도가 나가 주류 언론 기자들의 관심은 일본인 좌완 투수에 쏠렸습니다. 야쿠르트 스왈로우스에서 활약했던 이시이는 공개 입찰을 통해 다저스 행을 확정지은 바 있습니다. 입찰가는 1천1백25만 달러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동계 워크아웃 현장에서 짐 트레이시 감독과 짐 콜번 투수 코치를 만나 박찬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터뷰어: 박병기 .. 2009. 9. 1. 안재형-자오즈민 아들 안병훈 "물건이네!" '탁구 커플'로 유명한 안재형-자오즈민의 아들인 안병훈(17)이 US 아마추어 골프대회 사상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안병훈은 30일(현지시간)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서던힐스 골프코스(파70, 7093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일 결승에서 미국의 벤 마틴에 마지막 5홀을 남겨둔 상황에 7홀 차로 앞서, 대회 최연소 챔피언이 됐다. 안병훈은 지난해 뉴질랜드 교포인 이진명(대니 리)이 세운 최연소 우승기록(18세1개월) 을 약 45일 정도 단축했다. 한국태생으로는 13번째 US아마추어 챔피언이 된 그는 결승전 후 인터뷰에서 “양용은의 우승처럼 한국인과 한국골퍼들은 기뻐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 팬들은 그러나 안병훈의 US아마추어 대회 우승 자체보다는 그가 안재형, 자오즈민의 아이들이라는 사실.. 2009. 9. 1. [추억의 인터뷰] '축빠' 외교관 "이천수의 크로스는 세계적" 축구따라 외교관 생활도 계속 이동했던 사람이 있다. 허진. 그는 축구광 중의 광이다. 이렇게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축구따라 삼만리. 그에게 붙여주고 싶은 별명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 대표팀의 미디어 담당관이었던 허진. '축구에 빠진 남자(축빠)'인 그와 장시간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허진 인터뷰 방법: 전화 인터뷰 일자: 2002년 3월 어느날 허진 / 외무공무원 출생 1962년 4월 5일 신체 팬카페 상세보기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관련 신문 기사를 스크랩 하다 보면 거스 히딩크 감독 못지않게 자주 보게 되는 이름이 있다. 바로 대표팀 미디어 담당관 허진씨. 그는 히딩크 감독이 가는 곳마다 한국 언론 기자들을 위한 입이.. 2009. 8. 28. [추억의 인터뷰] 메이저리거 2호 조진호 1998년 메이저리그 시즌에 괴물같은 투수가 한 명 등장했습니다. 조진호였습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조진호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며 기대보다 빨리 빅리그로 진출했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의 쾌투는 본인도 놀라게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동료 김선우는 "진호 형의 공은 정말 낮게 깔려 들어가 타자들이 칠 수 없었다"라고 증언을 했습니다. 시즌이 끝난 후 LA에 들렸던 조진호를 만난 내용을 소개합니다. 이후 잘 풀리지 않았지만 메이저리거 2호였던 조진호는 한국 야구 역사에 기록될만한 투수입니다. 한국으로 돌아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합니다. 요즘 잘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조진호 선수는 어디서 뭘 하고 있나요? 아시는 분은 댓글로 올려주십시오. 인터뷰어: 박병기(http://iccsports.com.. 2009. 8. 27. [추억의 인터뷰] 디즈니사 회장과 감격의 순간 인터뷰 Michael Eisner, Disney CEO, former Angels Owner by iccsports 2002년 10월28일로 기억합니다. 당해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는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당시 월드시리즈 4경기를 취재했던 필자는 7차전에 에인절스가 극적인 승리를 거둔 직후 에인절스의 구단주이자 디즈니사 회장인 마이클 아이즈너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워낙 감격적인 순간이라 인터뷰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아이즈너 회장은 성실히 필자의 질문에 답을 했습니다. 아이즈너 회장은 에인절스 우승 얼마 후 구단을 히스패닉계 재벌인 아티 모레노에 팔았습니다. 매각 소문이 날 즈음에 우승을 차지해 아이즈너 구단주 입장에서는 횡재한 해나 다름 없었습니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 2009. 8. 26. [추억의 인터뷰] '히딩크호의 황태자' 송종국 히딩크 호가 탄생시킨 최고의 스타하면 떠오르는 선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대부분 팬들은 ‘송종국’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인 당시에는 그랬다.) 2002년 봄 미국에서 열린 골드컵 출전 당시 한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송종국은 필자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당시 선수들과 현장에서의 1대1 인터뷰는 전면 금지되어 있어 전화로만 인터뷰가 가능했다. ‘히딩크호의 황태자’로 불렸던 송종국은 월드컵이 끝난 후 네덜란드 프로 클럽과 계약을 맺고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당시 필자와의 단독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송종국 / 국내축구선수 출생 1979년 2월 20일 신체 키175cm, 체중75kg 팬카페 송종국팬클럽 상세보기 인터뷰어: 박병기인터뷰이: 송종국인터뷰 방법: 전화 .. 2009. 8. 25. [추억의 인터뷰] '한국의 빌 게이츠' 스티브 김 성공 스토리 한국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스티브 김(김윤종)씨의 자택을 방문한 것은 1999년 3월이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쯤됐다. LA 코리아타운에서 윌셔길을 타고 서쪽으로 30분 이상을 가면 고층 빌딩이 하나 나오는데 스티브 김씨는 그곳에 살고 있었다. 경비원을 통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보안이 철저한 고급 아파트였다. 당시 PC통신 업체인 천리안과 필자는 ‘스타 라이브 채팅’이라는 코너를 진행하고 있었다. 스타 라이브 채팅은 요즘 야심만만이라는 SBS방송 프로그램에서 실시하는 시청자가 질문한 내용을 스타가 답하는 것과 같은 방식인 네티즌들이 질문하면 스타가 답하는 방식을 택했다. 당시 자일랜이라는 회사를 엄청난 가격에 매각한 스티브 김 씨는 화제의 인물이었다. 그는 2009년 현재 한국에서.. 2009. 8. 23. [추억의 인터뷰] NBA 저명인사들 하승진에 대한 충고 “한국 유망주의 NBA 진출을 고대한다(I look forward to it.)" 북미프로농구(NBA)의 커미셔너인 데이빗 스턴은 필자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최초의 한국인 NBA 선수가 될 하승진(18. 7피트4인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출신의 유망주가 NBA에 진출한다는 소식에 기뻤고 그가 NBA에 진출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스턴 커미셔너는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렸던 2004년 NBA 챔피언 결정전 2차전 관전을 위해 LA를 방문했다. 스테이플스 센터 기자 회견장에서 각국에서 온 기자들과 회견을 마친 스턴 총재는 하승진에 대해 코멘트를 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친절히 응하면서 상당한 관심을 표명했다. 필자는 농구 전문가들과도 하승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는데 전 LA 레이커스 선수인.. 2009. 8. 21. [추억의 인터뷰] LPGA 한인 선구자 펄 신 단독 인터뷰 "박찬호 선수는 미국 야구인들도 인정해줘서 자랑스럽습니다." "박세리 선수는 앞으로 잘할 겁니다. 계속 기대해주세요." "은퇴 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살고 싶어요." "패션이요? 물론 신경 쓰지요. 팬들에 대한 서비스입니다." 1999년 2월24일 새벽(한국시간). 컴퓨터 스크린에는 미녀 재미 골퍼 펄 신의 삶이 소개됐다. 지난 1998년 8월 LPGA 스테이트 팜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각광을 받았던 펄 신은 PC통신 천리안에서 자신의 못다한 삶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캘리포니아주 헌팅턴비치 자택에서 열린 천리안 라이브 채팅(go starlive) 행사에 펄 신은 1시간 20분 동안 팬들과의 대화를 했던 것. 이 행사에 참가한 PC통신 이용자 사이에는 "펄 신은 똑똑하고 지혜로운 여성이다"라는 반응.. 2009. 8. 20. 양용은 '한바탕 웃음으로' 기자회견-21문21답 다음은 메이저대회 챔프가 된 양용은의 현지 기자회견 내용 전문이다. 질문은 모두 영어로 이뤄졌고 라이언 박 에이전트가 통역을 맡았다. [이 글은 이 블로그의 필자 밝은터가 정리한 것으로 유코피아닷컴에 동시에 올려졌음을 미리 밝힙니다.] 문)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답) 내 인생에서 마지막 우승이 될지도 모르지만 정말 놀라운 날이었다. 이번 우승은 내가 톱레벨에서 골프를 할 수 있는 초석이 됐다고 본다. 문) 세계 최고의 골퍼와 경기 막판에 함께 대결을 펼칠 때 두려웠나? 그랬다면 어떻게 극복했나? 답) 타이거 우즈가 과거 여러 차례 기적의 샷을 만들어낸 장면을 기억한다. 그는 놀라운 선수다. 18번 홀에서 솔직히 그가 칩샷을 할 때 홀컵에 들어가지 않기를 기도했다. 맞다. 약간.. 2009. 8. 17. [추억의 인터뷰] 쿨한 사나이 이상훈 이상훈(인터뷰 당시 27세). 한국 야구의 자존심.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로 입단이 확정됐다가 한미 야구 협정 문제로 보스턴 입성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일본 프로야구로 향했다. 필자는 미 프로야구 진출을 위해 캘리포니아주 LA로 날아와 워크아웃이 한창인 이상훈 선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그와의 대화 내용을 소개하기로 한다. (주: 아래 이야기는 이상훈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것으로 보였던 상황 아래 작성된 것임을 밝힙니다. 아래 인터뷰는 1998년 2월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이상훈 인터뷰일자: 1998년 2월 어느날 인터뷰장소: 미국 남캘리포니아주 세리토스 칼리지 지난 주 미주 지역 한인 스포츠팬들 사이에는 이상훈 관련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이상훈은 지난 2월.. 2009. 8. 15. [추억의 인터뷰] ‘수퍼 땅콩’ 김미현, 그녀는 귀여웠다 1999년 2월. 김미현과는 밸리 오브 더 스타스가 열린 캘리포니아주 LA 인근의 오크먼트 컨트리 클럽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당당한 그의 모습에서 미래의 스타임을 읽을 수 있었다. 김미현은 유머를 좋아했다. 모든 질문을 유머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해 인터뷰는 '재미나게' 진행됐다. 기자는 될 수 있으면 골프에 대한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다른 미디어에서 접할 수 있는 내용을 싣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과 삶에 대한 자세를 다루고 싶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김미현 인터뷰 날짜: 1999년 2월 어느날 인터뷰 방법: 직접 만남 그리고 전화 ▶ A goal (개인적인 목표는)? 주변에서는 우승을 한두 번 하라고 하는데 물론 우승을 하면 좋겠지만 욕심을 부리.. 2009. 7. 23. [추억의 인터뷰] 송승준, 미국에서 노히터 기록한 날 송승준 선수(롯데 자이언츠)가 요즘 한국에서 쾌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7연승을 내달렸다고 하니 송승준 시대가 온 것 같다. 송승준 선수와는 싱글A에 있을 때부터 더블A 시절까지 꾸준히 대화를 했던 기억이 있다. 시즌이 끝나고 LA에 오면 고기집에서 함께 밥도 먹었을 정도로 좋은 관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트리플A로 가서는 대화가 줄어들었다. 아쉽게 빅리그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한국에서 잘하고 있다니 반갑다. 아래 기사 내용은 송승준 선수와의 수십 차례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다. 송 선수가 노히터를 기록한 날 인터뷰한 내용이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송승준 인터뷰 방법: 전화통화 인터뷰 날짜: 2003년 4월28일 송승준 / 국내야구선수 출생 1980년 6월 29일 신체 키18.. 2009. 6. 29. [추억의 인터뷰] 입양된 스키 스타 토비 도슨 2006 토리노 올림픽 스키 모굴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한국태생 미국인 토비 도슨(당시 27세)을 e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이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토비 도슨 인터뷰 방법: e메일 인터뷰 일자: 2007년 2월19일 그동안 생부모 찾기에 대한 언론의 지나친 관심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냈던 토비 도슨은 필자와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한국 방문 계획과 그동안의 삶 그리고 미래의 계획을 나눴다. ( )안의 한국어는 기자의 부연 설명. ▷이달 말에 한국을 방문한다고 들었다. 어떤 일을 하게 되나? 방문을 앞두고 기분은 어떤가? ▶토비: 정말 기대가 된다(I am very excited.) 얼마 전 한국관광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돼 한국 방문을 하게 됐다. (피앙세이자 매니저인) 레아와.. 2009. 6. 28. [추억의 인터뷰] "자랑스러운 박찬호"-프레드 클레어 2006년 3월 한국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4강에 올라 야구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특히 미국 내 야구 전문가들은 한국 야구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당시 전화와 e메일로 미국 야구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은 내용을 소개한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프레드 클레어, 앨런 슈워즈, 제리 프레일리 인터뷰 방법: 전화와 e메일 인터뷰 일자: 2006년 3월23일 “찬호가 정말 자랑스럽다."(프레드 클레어 전 다저스 단장) "한국의 수비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앨런 슈워즈 베이스볼 아메리카 칼럼니스트) "한국이 야구를 이렇게 잘하는 줄 몰랐다."(제리 프레일리 댈러스 모닝 뉴스 칼럼니스트)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이 끝나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국 야구에 대한 사.. 2009. 6. 24. [인터뷰] "박지성은 이제 세계적인 선수!" 최근 맨유웹닷컴이라는 웹사이트 운영자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Manutdweb.com이 웹주소입니다.이 운영자의 이름은 데이비드 홉스이고 저는 홉스 씨와 4년 전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홉스 씨(왼쪽 사진)와 다시 연락이 되어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e메일로 진행이 됐는데요, 아주 좋은 내용이 많이 있었습니다. 홉스 씨는 4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박지성 선수에 대해 말했습니다. 극찬 릴레이가 이어졌습니다. 4년 전에 칭찬은 하면서도 상당히 조심스럽게 말했던 것과 비교하면 과찬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선수(World-Recognized player)라는 표현은 제 마음을 흐믓하게 했습니다. 호날.. 2009. 6. 24. [추억의 인터뷰] 코비 브라이언트 신인 시절, 한국말도 했다. 코비 브라이언트. 그를 만난 것은 1997년이었다. 12년 전의 일이다. 1996-97시즌은 브라이언트가 신인이었던 해다. 한국의 NBA 전문 잡지에 기고하고자 그와 인터뷰를 시도했던 기자는 좋은 첫인상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선수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고 한국말 인사도 열심히 했다. 신인이었기에 인터뷰가 어렵지 않았다. 잠시 12년 전 인터뷰 내용을 돌아보도록 한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코비 브라이언트 인터뷰 장소 및 방법: 그레이트 웨스트 포럼(전 레이커스 홈경기장) 라커룸에서 직접 만남 인터뷰 일자: 1997년 ▶필자: 지난 2월(1997년)에 열린 NBA 올스타전 덩크슛 경연대회에서 챔피언이 됐다. 그때 기분이 어땠나? ▷코비: 내 평생의 꿈이.. 2009. 6. 23. [추억의 인터뷰] 드라마 '외인구단'에 출연한 '저니맨' 최익성 최익성이라는 야구 선수가 드라마 '외인구단'에 출연해 화제입니다. 2006년에 그를 만나 본 적이 있습니다. LA에서 그를 만났던 당시로 돌아가 봅니다. 최익성(34). 한국 프로야구에서 대표적인 저니맨(Journeyman)이었던 선수. 그가 거쳐간 팀은 삼성, 한화, LG, 기아, 현대, SK 등이다. 그는 기회만 주면 제 몫을 다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운이 없는 선수’라고 했다. 잘해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최익성은 2005년 시즌을 끝내고 무작정 LA로 왔다. 아무런 대책 없이 LA 행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후 한인타운에 있는 하숙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왜 미국에 있는 것일까.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최익성 인터뷰 방법: 직접 만남 인터뷰 일자: 2006년 4월12.. 2009. 5. 27. [추억의 인터뷰] ‘엽기청년’ 채태인과의 엽기적인 인터뷰 한국 야구계에는 ‘엽기 선수’ 채태인이 있다. 지난 2000년 보스턴 레드삭스와 80만 달러에 계약을 맺고 도미 했던 채태인은 동료들과 선배들로부터 ‘엽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독특한 행동’으로 얻은 별명인데 자신도 그리 싫지 않은 눈치였다. 한국에서도 채태인은 튀는 행동으로 많은 팬을 확보한 상태다. 튀는데 밉지 않고 귀여운 것이 특징. 채태인은 부산상고 졸업반 때 레드삭스 구단과 계약을 체결했다. 고교 2학년 때 부산고의 추신수(현 시애틀 매리너스)와 함께 최고의 좌완 투수로 평가받았던 채태인은 3학년이 되면서 어깨 고장이 나 제대로 뛰지 못했다. 당시 롯데와 계약을 할 것으로 보였던 채태인은 미국을 가기 위해 엄살을 피우며 등판을 꺼려 한다는 언론의 비난을 받았지만 실제 그는 미국에 와서 어깨 수.. 2009. 5. 19.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