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따라 외교관 생활도 계속 이동했던 사람이 있다. 허진. 그는 축구광 중의 광이다. 이렇게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축구따라 삼만리. 그에게 붙여주고 싶은 별명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 대표팀의 미디어 담당관이었던 허진. '축구에 빠진 남자(축빠)'인 그와 장시간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이: 허진
인터뷰 방법: 전화
인터뷰 일자: 2002년 3월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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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관련 신문 기사를 스크랩 하다 보면 거스 히딩크 감독 못지않게 자주 보게 되는 이름이 있다. 바로 대표팀 미디어 담당관 허진씨. 그는 히딩크 감독이 가는 곳마다 한국 언론 기자들을 위한 입이 되어준다.
그의 이력은 아주 독특하다. 외교관인 그는 축구광인 이유로 월드컵 대회가 열리는 나라로 지원을 해 그곳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그는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외교업무를 하면서 월드컵 경기를 모두 현장에서 지켜봤다.
그는 어떤 인물인가? 또 대표팀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는 그는 대표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필자는 그와의 장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2002년 신화를 창조했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히딩크 감독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인터뷰는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 이뤄졌다.)
"굉장한 축구 매니아라고 들었습니다. 유럽 축구를 현장에서 오래 보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한국 대표팀에 히딩크 감독이 영입된 후 한국 축구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또 그것이 월드컵에 효과적일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필자)"
히딩크 감독이 들어온 이후 훈련 방식에 변화가 온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과거 대표팀 코치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지도를 했는데 히딩크 감독은 상당히 분석적입니다. 결함이 발견되면 다음날 연습할 때 보완을 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합니다.
분석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언론이나 팬들은 우리 팀이 강하다는 인식을 주지 못한다고 불만인데 사실 약체들과 경기를 해서 이겨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힘이 폭발할 시점은 월드컵 본선 경기가 열리는 때입니다. 단계별로 계획을 세워서 팀을 운영하고 있고 완벽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봅니다. 히딩크 감독으로 인해 전술적인 변화가 온 것은 사실입니다. (허진)
"히딩크 감독이 강조하는 것을 이야기 해주시겠어요.(필자)"
축구에는 4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체력, 개인기술, 전술이해, 정신력인데 히딩크 감독은 체력과 개인기술은 사실 감독이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전술이해와 정신력 부분을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히딩크 감독이 온 이후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우리가 강해졌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답을 못하겠습니다. 꽉 찬 느낌이 들지 않지요."(허진)
"잠시 허진씨 개인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에 다시 히딩크 감독과 대표팀에 대해 질문을 하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굉장히 좋아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해주시겠어요?(필자)"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이 열렸고 2-3년 후에 MBC에서 그 대회 경기를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펠레가 뛴 브라질은 3회 우승을 이뤘지요. 당시 `참 멋진 스포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79년에는 마라도나가 출전한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가 열렸는데 그의 플레이를 보고 축구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습니다.(허진)
"외교관이었는데 축구 대표팀 미디어 담당관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필자)"
유럽과 미국에서 영사로 일을 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축구가 너무 좋아 축구에 대한 서적도 많이 읽었죠. 유럽에 있을 때 스포츠 조선의 유럽 축구 칼럼니스트로서 글을 6개월 정도 썼습니다. 그때 기자들이 대표팀의 언론 담당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추천을 해줬고 마침 5년 만에 한국에 귀국을 했는데 그때 오퍼가 들어왔습니다.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대표팀 선수들과 같이 숨쉬고 함께 식사하고 그러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힘든 일은 아닌데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있기는 합니다.(허진)
■ 한국 골결정력 부족 해결 방법은
"다시 대표팀 이야기를 잠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잠시후에 하기로 하구요. 한국 선수들은 골결정력이 부족하다고 말을 많이 하는데 그 해결방법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지요.(필자)"
지난 골드컵때 선수들이 문전 접근을 했는데도 슛을 하지 않아 히딩크 감독이 슈팅 연습을 집중적으로 시킨 적도 있었습니다. 개인기술이 외국 선수들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이상하게 `킥`은 잘 안되더라구요. 유럽 선수들은 힘차게 킥을 한다기 보다는 발에 스냅을 넣어서 가볍게 차거든요, 우리 선수들은 너무 힘있게 킥을 하려고 하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안정환, 설기현 선수는 유럽에 가서 자신들의 슛이 한 템포가 늦다고 고백을 했었는데 실제 유럽 선수들은 슈팅 동작이 빠릅니다. 순간 임팩트가 좋지요. (허진)
■ 포르투갈과 폴란드에 대해
"포르투갈과 폴란드의 경기를 보신 적이 있으실텐데, 그들에 대해 소개해주시겠습니까?(필자)"
포르투갈은 청소년 대표 출신이 주축입니다. 포르투갈은 96년 유럽컵 8강전에서 체코에 1대0으로 패해 탈락했었는데 지금 선수들은 바로 당시의 멤버들이었습니다. 당시 포르투갈은 기술이 완벽하고 움직임이 좋았는데 과잉 기동력 때문에 4강 진출을 이루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또 당시에는 골잡이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미드필더에 좋은 선수들이 많고 센터 포워드도 확실하죠. 오래 동안 함께 뛰었기 때문에 팀 웍이 좋고 노련미, 체력, 기술 모든 것이 완벽한 매력적인 팀입니다. (허진)
폴란드의 수비력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중앙 수비수 두 명이 독일 샬케 04에서 호흡을 맞춘 선수들이라 아주 완벽합니다. 반면 미드필더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죠. 사실 역대 폴란드 대표팀 중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 팀이 네임밸류면에서는 가장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허리가 끊기는 결함이 있고 월드컵 예선에서 쉬운 팀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죠. 폴란드는 험난한 예선을 거치지 않고 본선에 진출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허진)
■ 한국 축구 발전 위한 3가지 제언
"한국 축구가 2002년 월드컵의 성공을 떠나 궁극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 3가지를 말씀해주시겠어요.(필자)"
네. 먼저 라이프 스타일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현재 상황으로는 도저히 환경조성이 안됩니다. 한국인은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 여가를 즐길 시간이 짧습니다. 마음의 여유도 없구요. 축구를 직접 경기장에서 볼 여유가 없는거죠. 이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로 축구와 관계된 사람들이 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은 축구계 내부에서의 정치가 우선이 아니었던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 번째로 언론도 바뀌어야 합니다. 한국은 스포츠 저널리즘이 없는 것 같습니다. 축구 자체 분석 보다는 축구인의 연애 소식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히딩크 감독도 사생활에 대해 거론하는 언론이 많은데 우리가 그에게 보여주는 관심은 오직 선진 축구를 잘 전수해주는 것이여야 합니다. 건전한 축구 문화 정착이 필요합니다.
"미디어 담당관이라는 역할 때문에 언론 기자들과 이야기를 많이 할텐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필자)"
다시 말씀 드리지만 축구 자체의 분석 보다는 축구 외의 요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축구 전문 기자는 축구 자체를 추적하고 분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기자들도 데스크나 회사의 방침에 따라줘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그런 부분이 아쉽습니다.
■ 이천수 크로스 패스 세계적 수준
"한국 대표팀 선수중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인가요.(필자)"
개인적으로 이천수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지난 시드니 올림픽에서 이천수 선수의 플레이를 봤는데 상대 선수를 뒤흔들면서 크로스 패스 하는 것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송종국 선수도 좋아합니다. 그는 히딩크 체제하에서 아주 잘합니다. 그는 생활면에서도 깨끗하죠. (허진)
"움직이는 축구 백과 사전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도움이 됐던 축구 관련 전문 서적을 소개해주신다면요.(필자)"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한 나라 중 최강국은 네덜란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왜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나라는 내용을 다룬 "BRILLIANT ORANGE"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구요, 나머지는 주로 단행본을 통해 정보를 습득 했습니다. `월드사커`를 10년 정도 읽었고 독일어로 된 `키커`도 한때 열심히 읽었죠. 유럽 5대 리그를 꾸준히 봤기 때문에 흐름 파악을 할 수 있었습니다. (허진)
"미디어 담당관이 된 후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요?(필자)"
선수와 감독을 만나고 전술 실행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 외신 기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어 좋구요. 책과 TV 화면을 통해서만 축구를 접하다가 직접 옆에서 일을 해보니 좋은 경험이 됩니다. 그런데 축구 외에는 다른 것을 할 수가 없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겠네요. 가족과 떨어지는 시간이 많은 것도 아쉽구요. 가족은 허규원(8), 허승(1)이 아이들이고 유상옥씨가 제 아내입니다.
"미디어 담당관으로서 히딩크 감독에게 조언을 하기도 하나요? 예를 들어 한국 축구나 한국 문화 또는 한국 선수들의 성품 같은 것에 대해.(필자)"
축구 자체는 물론 조언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선수에 대한 평가를 사석에서 하기는 하는데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필자)"
감사합니다.(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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