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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29

마이클 조던 연재 참고 도서 목록 Aaseng, Nathan. 1992. Sports great Michael Jordan, Sports great books. Hillside, N.J., U.S.A.: Enslow Publishers. Andrews, David L. 2001. Michael Jordan, Inc. : corporate sport, media culture, and late modern America, SUNY series on sport, culture, and social relations.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Cooper, Floyd. 2004. Jump! : from the life of Michael Jordan. New York: Philomel Bo.. 2009. 9. 27.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0)-마이클 vs. 매직 존슨 챔피언 결정전이 열리기 전 필 잭슨 불스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1991년 NBA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챔피언 결정전에 뛴 경험이 없던 선수들이라 그 무대가 어떤 분위기일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조던은 이 자리에서 “난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초반에 슛을 쏘지 않고 분위기를 보겠다는 말이었다. 잭슨 감독도 이렇게 관심이 집중된 챔피언 결정전은 처음으로 경험해보았기에 예측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빌 카트라이트와 스카티 피펜이 1차전 초반에 활발한 공격을 해주길 기대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경험이 부족한 불스 선수들은 슛난조를 보였다. 이때 조던은 “그러면 그렇지. 내가 경기를 지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활발하게 공격에 가담했다. 1차전은 레이커스가 승리했다.. 2009. 9. 26.
[20/21 캘리포니아(2)] 할리우드의 시작과 번영(II) 캘리포니아는 미국 50개주 중 가장 중요한 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한국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세계 대중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캘리포니아를 모른 채 이곳에서 20년을 산 것 같습니다. 캘리포니아를 좀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0/21 캘리포니아]를 연재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준비한 것인데 이제야 실행에 옮기게 되었군요. 20/21은 20세기와 21세기를 의미합니다. 20세기와 21세기를 연결하는 캘리포니아 이야기를 지금부터 펼쳐보도록 하겠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밝은터] 윌리엄 셀릭은 영화 카메라를 불법으로 사용하기 위해 남 캘리포니아로 건너왔습니다. 그는 다운타운 메인(Main)길에 사무실을 차리고 영화를 찍었습니다. 이것이 할리우.. 2009. 9. 25.
[20/21 캘리포니아(1)] 할리우드의 시작과 번영(I) 캘리포니아는 미국 50개주 중 가장 중요한 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한국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세계 대중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캘리포니아를 모른 채 이곳에서 20년을 산 것 같습니다. 캘리포니아를 좀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0-21 캘리포니아]를 연재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준비한 것인데 이제야 실행에 옮기게 되었군요. 20-21은 20세기와 21세기를 의미합니다. 20세기와 21세기를 연결하는 캘리포니아 이야기를 지금부터 펼쳐보도록 하겠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밝은터] [20-21 캘리포니아 첫 번째 이야기] 할리우드의 시작과 번영(1) 캘리포니아 하면 생각나는 지역은 과연 어디일까요? 로스앤젤레스라고 말하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 2009. 9. 24.
버락 오바마(6)-'수도승'처럼 살았던 대학 4년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아시아에서 4년 이상 거주했던 대통령. 아프리카를 아는 대통령. 쌀밥에 고추맛을 아는 대통령. 흑백 혼혈 대통령. 가난의 불편함을 아는 대통령. 다양한 종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대통령. 부모 이혼의 아픔을 아는 대통령. 배다른 동생을 극진히 돌봐준 대통령. 아버지가 두 명 있는 대통령. 농구를 좋아했던 대통령.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아는 대통령. 버락 오바마은 알면 알수록 이 시대 '다양성'에 부합하는 지도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의 다양한 배경은 또한 그의 단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인간을 넓게 볼 수 있는 버락 오바마에 대한 연재를 기획한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등 뛰어난 서번트 리더들의 이야기가 실린 책 구입: https://bksports.tisto.. 2009. 9. 24.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9)-'나쁜녀석들'너머 조던은 잭슨 감독의 설명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미 이 공격 방법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잭슨이 더욱 이 공격법을 강화한다는 것을 알게 된 조던은 “나는 이 시스템 안에서 뭘해야 하는지 안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이 그럴지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조던은 여전히 팀 동료를 믿지 않았다. 지난 3년 동안 피스톤스에 무릎을 꿇으면서 동료의 부진에 조던은 질려 있었다. 그러나 잭슨의 말이 맞았다.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 불스는 최고의 경기력을 보였다. 조던, 스카티 피펜, 빌 카트라이트, 호러스 그랜트(호레이스 그랜트), 크레이그 호지스, 데니스 홉슨, 스테이시 킹, 존 팩슨, 윌 퍼듀, 스캇 윌리엄스, 클리프 리빙스턴으로 팀을 구성한 불스는 기대 이상으로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적응했다. 시즌 첫 3경기에.. 2009. 9. 24.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8)-성장통 피스톤스는 불스와의 컨퍼런스 결승에서 첫 2경기에 쉽게 승리했다. 특히 2차전에서 조던을 셧아웃 시킨 일은 ‘농구 황제’를 화나게 했다. 조던이 공을 잡으면 피스톤스 선수들이 벌떼처럼 몰려드는 바람에 그는 20득점에 그쳤다. 조던은 경기가 끝난 후 팀 동료, 기자들과 말을 하지 않고 선수단 버스에 올랐다. 당시 그의 부친인 제임스는 기자들에게 다가와 “여러분에게 화가 난 게 아닙니다. 그는 그저 피스톤스의 전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에 화가난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3차전 홈경기는 조던의 뜻대로 진행됐다. 불스는 피스톤스에 107-102로 승리했고 4차전도 108-101 승리로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렸다. 조던은 이 두 경기에서 각각 47득점, 42득점을 기록했다. 5차전은 다시 피스톤스의 홈에서 .. 2009. 9. 23.
버락 오바마(5)-정체성 혼란의 청소년기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아시아에서 4년 이상 거주했던 대통령. 아프리카를 아는 대통령. 쌀밥에 고추맛을 아는 대통령. 흑백 혼혈 대통령. 가난의 불편함을 아는 대통령. 다양한 종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대통령. 부모 이혼의 아픔을 아는 대통령. 배다른 동생은 극진히 돌봐준 대통령. 아버지가 두 명 있는 대통령. 농구를 좋아했던 대통령.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아는 대통령. 버락 오바마은 알면 알수록 이 시대 '다양성'에 부합하는 지도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의 다양한 배경은 또한 그의 단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인간을 넓게 볼 수 있는 버락 오바마에 대한 연재를 기획한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재 다섯 번째 글입니다. 버락 오바마 등 뛰어난 서번트 리더들의 이야기가 실린 책 구입: https:/.. 2009. 9. 18.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7)-'The Shot' 마이클 조던이 2009년 9월11일(미국 현지기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농구 황제’가 공식적인 ‘홀 오브 페이머’가 되는 일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특별한 선수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았다. 농구 분석가인 케니 스미스는 이번 명예의 전당 행사를 "떠들썩한 파티"라고 표현했다. 명예의 전당 행사가 이렇게 요란스럽게 진행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로 칭송되는 마이클 조던도 잘 풀리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 그의 발목을 붙잡았던 셀틱스, 피스톤스가 있었다. ICCsports.com은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덕 콜린스가 시카고 불스를 맡은 후 3번째 시즌을 맞았다. 마이클 조던이 NBA에 데뷔한 후 다섯 번째 시즌이다... 2009. 9. 18.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6)-필 잭슨&피펜과의 첫 만남 마이클 조던이 2009년 9월11일(미국 현지기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농구 황제’가 공식적인 ‘홀 오브 페이머’가 되는 일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특별한 선수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았다. 농구 분석가인 케니 스미스는 이번 명예의 전당 행사를 "떠들썩한 파티"라고 표현했다. 명예의 전당 행사가 이렇게 요란스럽게 진행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로 칭송되는 마이클 조던. ICCsports.com은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2009/09/09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조던은 말이지... 2009/09/10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가장 위대한.. 2009. 9. 17.
버락 오바마(4)-농구에 빠져...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아시아에서 4년 이상 거주했던 대통령. 아프리카를 아는 대통령. 쌀밥에 고추맛을 아는 대통령. 흑백 혼혈 대통령. 가난의 불편함을 아는 대통령. 다양한 종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대통령. 부모의 이혼의 아픔을 아는 대통령. 배다른 동생은 극진히 돌봐준 대통령. 아버지가 두 명 있는 대통령. 농구를 좋아했던 대통령.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아는 대통령. 버락 오바마은 알면 알수록 이 시대 '다양성'에 부합하는 지도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에 대한 연재를 기획한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재 네 번째 글입니다. 버락 오바마 등 뛰어난 서번트 리더들의 이야기가 실린 책 구입: https://bksports.tistory.com/803 구글 플레이에서도 책을 구입해 읽을 수 있습니.. 2009. 9. 17.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5)-득점기계&슬램덩크 챔프 마이클 조던이 2009년 9월11일(미국 현지기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농구 황제’가 공식적인 ‘홀 오브 페이머’가 되는 일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특별한 선수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았다. 농구 분석가인 케니 스미스는 이번 명예의 전당 행사를 "떠들썩한 파티"라고 표현했다. 명예의 전당 행사가 이렇게 요란스럽게 진행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로 칭송되는 마이클 조던. ICCsports.com은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2009/09/09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조던은 말이지...2009/09/10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가장 위대한.. 2009. 9. 16.
버락 오바마(3)-인생을 배운 인도네시아 삶 이 연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갖도록 기획되었습니다. 필자는 오바마의 팬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독특한 배경을 갖고 있고 아시아 문화 배경을 잘 알고 있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가는 게 사실입니다. 이 연재 내용이 그에 대한 오해를 풀고 더 나아가 한국(인)이 현 미국 정부에 대해 바른 시각을 갖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버락 오바마 등 뛰어난 서번트 리더들의 이야기가 실린 책 구입: https://bksports.tistory.com/803 구글 플레이에서도 책을 구입해 읽을 수 있습니다: http://bit.ly/maumtactebook 구글 북스에서 책의 일부분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bit.ly/maumtactgooglebo.. 2009. 9. 15.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부록)-명예의 전당 연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46.미국)이 11일(미국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서 농구 명예의 전당 입회식을 가졌다.그는 이날 존 스탁턴(전 유타), 데이비드 로빈슨(전 샌안토니오), 제리 슬로언 유타 감독, 비비안 스트링거 미국 럿거스대 여자팀 감독 등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다. 조던은 이날 자신의 농구 인생과 관계가 있던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하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이날 행사에서 연설을 하기 전 관객이 기립박수를 보내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두 차례나 은퇴를 번복하고 현역에 복귀하는 등 2003년까지 선수로 뛰었던 조던은 "언젠가 내가 50세에 선수로 뛰는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다"면서 "웃을 일이 아니다. 안된다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한계나 두려움과 같은 것들은 착각에 불.. 2009. 9. 13.
버락 오바마(2)-쌀밥에 고추맛을 아는 대통령 이 연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갖도록 기획되었습니다. 필자는 오바마의 팬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독특한 배경을 갖고 있고 아시아 문화 배경을 잘 알고 있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가는 게 사실입니다. 이 연재 내용이 그에 대한 오해를 풀고 더 나아가 한국(인)이 현 미국 정부에 대해 바른 시각을 갖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버락 오바마 등 뛰어난 서번트 리더들의 이야기가 실린 책 구입: https://bksports.tistory.com/803 구글 플레이에서도 책을 구입해 읽을 수 있습니다: http://bit.ly/maumtactebook 구글 북스에서 책의 일부분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bit.ly/maumtactgooglebo.. 2009. 9. 12.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4)-불스와 NBA의 희망 마이클 조던이 2009년 9월11일(미국 현지기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농구 황제’가 공식적인 ‘홀 오브 페이머’가 되는 일은 의미가 남다르다. 미국의 주요 스포츠 잡지들은 마이클 조던의 명예의 전당행 특집판을 제작해 판매를 시작했다. ESPN 매거진은 마이클 조던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특집판을 제작했고 슬램과 같은 농구 전문 잡지들도 비슷한 특집판을 만들어 시판했다. 그의 명예의 전당행은 당연한 일이지만 특별한 선수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로 칭송되는 마이클 조던. ICCsports.com은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불리는 마이클 조던은 1984년 노스캐롤라이.. 2009. 9. 12.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3)-마이클, 군인이 돼라! [마이클 조던(3)] 조던, 평범에서 전설로: 학창 시절의 숨겨진 이야기 평범한 학생에서 농구의 신으로: 조던의 초기 여정 (3) 조던, 평범에서 전설로: 학창 시절의 숨겨진 이야기 한국 어른들은 자녀에게 ‘기술을 배워라’라는 말을 자주한다. 기술이 있으면 어디 가서든 밥은 굶지 않기 때문이다. 불세출의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도 고교시절에는 그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고 한다. ​ 그의 친지는 조던이 고교를 졸업할 즈음에 “육군사관학교를 가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오면 군인이 되어 기본 생활은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 조던의 농구 실력이라면 육군사관학교에 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조던의 농구 인생에 대해 밝은 전망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았음을 의.. 2009. 9. 11.
버락 오바마(1)-'버락 오바마' 연재에 대한 서문 뿌리 깊게 내려져 있는 미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혁을 주도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3가지 주요 개혁안을 내놓고 이를 실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항간에는 임기를 4년 더 늘려보겠다는 정치적인 시도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의 어린시절을 자세히 알게 된다면 그의 3가지 주요 개혁안은 미국 국민, 그리고 세계를 위한 변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 개혁, 에너지 개혁, 교육 개혁은 그가 미국을 다시 건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보수파들은 그가 사회주의 국가를 만든다는 식으로 폄하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버락 오바마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모른다면 보수파의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알게 된 사람이라면 그의 ‘진심’을 조금이.. 2009. 9. 10.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가장 위대한 선수 마이클 조던이 2009년 9월11일(미국 현지기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농구 황제’가 공식적인 ‘홀 오브 페이머’가 되는 일은 의미가 남다르다. 미국의 주요 스포츠 잡지들은 마이클 조던의 명예의 전당행 특집판을 제작해 판매를 시작했다. ESPN 매거진은 마이클 조던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특집판을 제작했고 슬램과 같은 농구 전문 잡지들도 비슷한 특집판을 만들어 시판했다. 그의 명예의 전당행은 당연한 일이지만 특별한 선수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로 칭송되는 마이클 조던.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MJ 특집(2)- 가장 위대한 선수들과 비교해보았다마이클 조던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 2009. 9. 10.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조던은 말이지... 마이클 조던, 그 이름만으로도 전 세계 농구 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전설의 농구 선수다. 누구나 그의 활약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정말로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지, 그를 가장 잘 아는 동료나 상대 선수들, 심지어는 농구계의 거장들이 어떻게 평가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오늘은 그런 평가와 인용구, 그리고 그에 대한 찬사와 감탄의 말들을 함께 모아보았다. 조던에 대한 이들의 솔직하고도 감동적인 평가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그의 위대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조던(1)] “비틀스와 엘비스가 동시에 돌아왔다.” “마이클 조던은 농구 선수 중 최고의 선수다.” (바비 나이트. 대학농구 감독) https://newjournalist.today/detail.php?numbe.. 2009. 9. 9.
20세기와 21세기의 캘리포니아를 연결합니다 20세기와 21세기의 캘리포니아를 연결하는 코너입니다. 파일럿 코너입니다. 많은 추천과 댓글 부탁드립니다. 2009. 9. 8.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최종)-DJ와 MJ 지난 대선 때인 1997년 11월 21일 최규선씨가 아태재단으로 마이클 잭슨을 데려와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후보를 만나게 하고 있다. 김 후보는 글을 선물로 주었고, 최씨 옆엔 유종근씨도 보인다.  불세출의 스타’ 마이클 잭슨이 50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마이클 잭슨처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끈 팝스타는 일찍이 없었다. 그는 손에 꼽히는 ‘글로벌 팝스타’였다. 그의 죽음에 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을 돌아보는 ‘마이클 잭슨 50년 인생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11. 최종)  DJ와 MJ리처드 스트리트가 쓴 ‘메이드인 코리아: 정주영과 현대’라는 책을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1997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낮자 .. 2009. 8. 21.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10)-결혼생활 할리웃 명예의 거리에 있는 마이클 잭슨의 블록에 팬들이 연일 몰려들고 있다. 마이클은 사망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명예의 거리에는 마이클의 스타블록을 찾는 팬들이 많다. 마이클 잭슨은 생애 두 번 결혼 생활을 했다. 첫 번째 아내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였다. 1994년 5월18일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결혼을 한 잭슨과 프레슬리는 1996년 1월18일 이혼했다. 두 번째 아내는 데비 로우였다. 마이클은 프레슬리와 이혼한 10개월 후 로우와 혼인 신고를 했으며 1999년 10월8일 이혼했다. 두 사람은 1996년 11월15일 호주 시드니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마이클이 프레슬리와 헤어진 이유는 성격 차였다. 프레슬리는 2009년 피플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클은 좋은 사람이.. 2009. 8. 20.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9)-아동성추행 진위 불세출의 스타’ 마이클 잭슨이 50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마이클 잭슨처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끈 팝스타는 일찍이 없었다. 그는 손에 꼽히는 ‘글로벌 팝스타’였다. 그의 죽음에 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을 돌아보는 ‘마이클 잭슨 50년 인생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9) 아동 성추행 진위 마이클 잭슨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오명은 바로 아동 성추행 혐의로 두 차례 고소를 당했던 일이다. 잭슨은 1993년 13세 소년의 부모로부터 아동 성추행 고소를 당했지만 법정 밖에서의 합의를 통해 무죄가 됐고 2003년에도 아동을 성희롱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역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무혐의 판정을 받았지만 마이클에 대한 이미지는 아동을 학대한 사람으로 굳혀졌다. .. 2009. 8. 11.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8)-약의 황제 ‘불세출의 스타’ 마이클 잭슨이 50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마이클 잭슨처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끈 팝스타는 일찍이 없었다. 그는 손에 꼽히는 ‘글로벌 팝스타’였다. 그의 죽음에 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을 돌아보는 ‘마이클 잭슨 50년 인생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8) '약의 황제' JET 매거진이 발행한 1993년 12월6일자 잡지의 기사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마이클 잭슨은 진통제 중독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당시 마이클 잭슨은 진통제에 중독돼 공연을 중단한 바 있다. JET 매거진에 따르면 잭슨은 진통제 중독과 사투를 벌였고 팬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잭슨은 1984년 펩시콜라 광고를 촬영하다 화상을 입었.. 2009. 8. 7.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7)-피부색, 성형논란 ‘불세출의 스타’ 마이클 잭슨이 50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마이클 잭슨처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끈 팝스타는 일찍이 없었다. 그는 손에 꼽히는 ‘글로벌 팝스타’였다. 그의 죽음에 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을 돌아보는 ‘마이클 잭슨 50년 인생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7) 피부색, 성형논란 1980년대 마이클 잭슨이 전 세계적인 스타로 주목을 받자 언론들은 앞다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했다. 때맞춰 잭슨의 얼굴 피부색이 바뀌면서 세인의 관심은 증폭했다. 그의 피부색이 점점 하얘진 시기는 1980년대 초반이었다. 랜디 타라보렐리가 1986년에 쓴 마이클 잭슨 일대기에 따르면 잭슨은 백반(vitiligo)과 낭창(lupus)과 같은 병에 걸렸다. 백.. 2009. 7. 31.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6)-We Are The World의 탄생 ‘불세출의 스타’ 마이클 잭슨이 50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마이클 잭슨처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끈 팝스타는 일찍이 없었다. 그는 손에 꼽히는 ‘글로벌 팝스타’였다. 그의 죽음에 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을 돌아보는 ‘마이클 잭슨 50년 인생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6) We Are The World의 탄생 We Are the World by kawabata 1980년대는 마이클 잭슨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앨범 Thriller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마이클 잭슨은 가족과 다시 앨범작업을 시작했다. 가족과 함께 만든 앨범은 ‘Victory’. 마이클은 투어를 힘들어했지만 가족이 너무 원해 ‘Victory’를 홍보하기 위한 ‘잭슨스 투어’.. 2009. 7. 21.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5)-'스릴러'로 세계적 스타 발돋움 ‘불세출의 스타’ 마이클 잭슨이 50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마이클 잭슨처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끈 팝스타는 일찍이 없었다. 그는 손에 꼽히는 ‘글로벌 팝스타’였다. 그의 죽음에 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을 돌아보는 ‘마이클 잭슨 50년 인생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Michael, Rest in Peace by Tony the Misfit 5) Thriller 앨범은 그야말로 '스릴'이었다 퀸시 존스와 합작으로 만든 두 번째 앨범은 ‘Thriller’ 였다. 1982년 11월 발매된 이 음반은 24세의 마이클 잭슨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이 음반은 레코딩 산업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것으로 기록됐다. 이 음반에는 지금까지도 인기있는 ‘Bea.. 2009. 7. 18.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4)-가족에서 벗어나 홀로서기 불세출의 스타’ 마이클 잭슨이 50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마이클 잭슨처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끈 팝스타는 거의 없었다. 그는 손에 꼽히는 ‘글로벌 팝스타’였다. 그의 죽음에 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을 돌아보는 ‘마이클 잭슨 50년 인생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퀸시 존스와의 만남 그는 영화 ‘The Wiz’ 작업을 하던 중에 음반 제작자인 퀸시 존스를 만났다. 퀸시는 이 자리에서 마이클에게 다음 음반 제작을 돕겠다고 말했다. 다음 음반의 제목은 ‘Off the Wall’이었다. 1979년에 발매된 이 앨범은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2천만 장이 판매됐던 것. 그러나 마이클은 이 ‘성적’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 앨범은 반드시 더.. 2009. 7. 10.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3)-다이애나 로스와의 만남 3) 다이애나 로스와의 만남과 스타로서의 삶 ​마이클 잭슨의 아버지 조 잭슨은 1965년 잭슨家 형제들이 세상의 무대로 나올 준비가 됐다고 판단했다. 연습을 시작한 지 3년 만이었다. 아버지 조 잭슨이 먼저 한 일은 형제 밴드를 지역에서 열린 ‘탤런트 쇼’에 출전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마이클 잭슨은 7세였다. '탤런트 쇼’가 열렸던 장소는 인디애나주 개리에 있는 루스벨트 고교였다. 잭슨 부부는 큰 기대를 걸었다. 어머니 캐서린 잭슨은 퍼포먼스를 위해 조끼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입혔다. 잭슨 밴드는 “My Girl”을 부르며 춤을 췄다. 결과는 물론 1등이었다. 재주꾼으로 구성된 밴드가 3년 동안 연습을 했으니 다른 출전자들은 비교 대상도 아니었다. 잭슨 밴드는 이후에도 다른 탤런트 쇼에 출전해 모두 1위를.. 2009.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