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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버락 오바마

버락 오바마(6)-'수도승'처럼 살았던 대학 4년

by 밝은터_NJT 2009.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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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아시아에서 4년 이상 거주했던 대통령. 아프리카를 아는 대통령. 쌀밥에 고추맛을 아는 대통령. 흑백 혼혈 대통령. 가난의 불편함을 아는 대통령. 다양한 종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대통령. 부모 이혼의 아픔을 아는 대통령. 배다른 동생을 극진히 돌봐준 대통령. 아버지가 두 명 있는 대통령. 농구를 좋아했던 대통령.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아는 대통령.

버락 오바마은 알면 알수록 이 시대 '다양성'에 부합하는 지도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의 다양한 배경은 또한 그의 단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인간을 넓게 볼 수 있는 버락 오바마에 대한 연재를 기획한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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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인근 대학인 옥시덴탈 칼리지에 입학한 버락 오바마는 입학 초기부터 인종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특히 흑인 문화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그의 어머니는 흑인문화에 대해 아들에게 가르칠 게 거의 없었다. 그저 격려만 할 수 있었다. 오바마는 주로 옥시덴칼 칼리지의 흑인 단체 학생들과 교제를 했다.

교제 가운데 그는 흑인도 다양한 생각과 문화를 가졌음을 인식했다. TV에서 보는 획일된 거친 흑인만 있는 게 아님을 그는 알게 됐다. 흑인도 백인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오바마는 당시 캠퍼스에서 진행 중이던 남아공화국의 차별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남아공은 흑백 차별정책으로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차별정책으로 백인은 각종 특혜를 받았지만 흑인은 반대였다. 그가 이 운동에 참여하면서 발견한 게 하나 있었다. 그가 목소리를 높일 때 사람들이 그의 말을 경청했던 점이다.


고교시절 농구와 파티에만 빠져 있던 오바마는 옥시덴탈 칼리지에서 드디어 자신이 해야할 다른 일을 발견했다
. 그는 토론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는 학우 및 교수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다. 해변가가 아닌 커피하우스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단순히 토론만 즐긴 게 아니었다. 오바마가 다녔던 학교는 토론을 잘하는 남학생이 여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오바마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솔직히 그런 점도 있었다. 여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커피숍에서 가장 똑똑한 남자가 되어야 했다고 고백했다.

한 커피숍에서 토론을 하던 중에 여학생이 오바마에게 그의 이름을 물어봤다. 오바마는 버락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버락의 뜻은 아랍어로 신의 축복을 받은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 여학생은 오바마에게 앞으로 버락으로 불러도 되겠냐고 물었고 오바마는 미소만 지었다. 오바마는 배리대신 원래의 이름인 버락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오바마는 옥시덴탈 칼리지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조모인 매들린 던햄은 버락이 이 대학에서 1979년부터 1981년까지 2년 동안 지내면서 목적이 이끄는삶을 산 것 같다고 말했다.

옥시덴탈 칼리지의 로저 보시라는 교수는 오바마에게 잠재력을 극대화시킬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버락은 놀라운 재능을 가진 젊은이었다. 그가 재능을 발휘하도록 나는 그에게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오바마는 이 학교에서 자아를 중심으로한 사고방법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보시 교수는 오바마의 두뇌를 자극했다. 오바마는 옥시덴탈 칼리지에 다녔던 당시를 회상하며 내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 외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 공헌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보시 교수의 거센 교육 방법이 오바마에게는 자극이 됐다. 그는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1981년 봄 오바마는 옥시덴탈 칼리지의 규모가 작고 자신이 얻을 것은 다 얻었다고 판단해 콜롬비아대학교로 전학하기도 했다. 콜롬비아대는 뉴욕에 있는 대학이었다. 오바마는 큰 도시에서 더 얻을 게 있다고 생각했다.




1981년 가을 학기에 콜롬비아대학에 등록한 오바마는 또 다른 신세계를 경험했다. 뉴욕은 LA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도시였다. 차량 경적 소리가 끊이지 않고, 길거리는 사람으로 가득했으며, 지하철이 발달해 있고, 24시간 움직이는 도시였다. 콜롬비아대학에 다니면서 오바마는 하루 3마일을 걸어다녔고 일요일에는 금식을 했다.

그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배운 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기를 썼고 때로는 시를 작성하기도 했다. 또한 독서량은 엄청났다. 오바마는 니체, 에르만 멜빌, 토리 모리슨이 쓴 책을 탐독했고 성경도 열심히 읽었다. 독서에 빠진 그를 두고 모친인 앤 던햄과 동생인 마야는 수도승처럼 산다고 놀려대기도 했다.

이 대학에 입학한 2년 후 졸업을 하게 된 오바마는 정치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2년은 오바마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그는 이곳에서 소위 오바마 사상을 만들었다. 그는 외로웠기에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했다. 마치 사상가처럼 살았다.

그가 학위를 받았을 즈음에 케냐에서 비보가 들렸다. 아버지 버락 오바마 시니어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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