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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버락 오바마

버락 오바마(5)-정체성 혼란의 청소년기

by 밝은터_NJT 2009.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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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아시아에서 4년 이상 거주했던 대통령. 아프리카를 아는 대통령. 쌀밥에 고추맛을 아는 대통령. 흑백 혼혈 대통령. 가난의 불편함을 아는 대통령. 다양한 종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대통령. 부모 이혼의 아픔을 아는 대통령. 배다른 동생은 극진히 돌봐준 대통령. 아버지가 두 명 있는 대통령. 농구를 좋아했던 대통령.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아는 대통령.


버락 오바마은 알면 알수록 이 시대 '다양성'에 부합하는 지도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의 다양한 배경은 또한 그의 단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인간을 넓게 볼 수 있는 버락 오바마에 대한 연재를 기획한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재 다섯 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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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이하 배리)는 고교 시절 인종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는 흑인, 어머니는 백인이었기 때문에 그는 특별하게 인종 이슈에 대해 고민했다.

배리의 친구는 대부분 백인이었다. 그의 백인 친구였던 바비 팃콤(Bobby Titcomb)은 데이비드 멘델과의 인터뷰에서 배리는 평범한 하와이 사람이었다. 하와이에 베스트 프렌드 5명이 있으면 그 중 한 명은 중국인, 한 명인 일본인, 한 명은 하와이 원주민 등이었다. 다인종이 섞여서 사는 게 평범한 삶이고 여기에 흑인 친구까지 있으면 쿨한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팃콤의 증언과는 달리 배리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흑인 친구 키스 가쿠가와(Keith Kakugawa)와 인종 문제에 대해 깊은 대화를 자주 나눴다. 일본인 아버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가쿠가와에 따르면 배리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느낌이 있었다. 배리는 부모가 없는 청소년기에 대한 느낌, 인종 이슈, 정체성을 두고 고민을 많이 하는 10대 시절을 보냈다. 배리는 고교 시절 백인 친구들에게는 웃음이 가득한 평범한 친구처럼 대했고 흑인 친구들에게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은 분명하다.

여담이지만 가쿠가와는 오바마의 대선 때 걸림돌이 될 뻔했다. 그는 코케인 소지 및 복용 혐의로 감옥에서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바마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오바마 반대파는 오바마가 무숙자가 된 옛 친구 레이(오바마가 지어준 애칭)’를 돕지도 않는 무정한 사람이라는 투로 그를 비난했다. 이에 오바마는 대선 캠페인 도중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알았던 사람들 모두가 신문의 1면을 장식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돈을 요구했는지에 대한 ABC뉴스 기자의 질문에 가쿠가와는 나는 무숙자다. 오바마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돈을 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대선 당시 가쿠가와는 핫이슈를 제공한 인물이었다.

백인 친구인 팃콤도 배리가 특이한 점이 있긴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보통 어린 아이들은 남을 놀리는 것을 쿨하다고 생각하는데 배리는 달랐다. 다른 사람이 놀림을 당하는 장면을 보면 배리는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그것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는 2008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낼 때 팃콤과 7시간 동안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배리는 청소년기부터 자신이 흑인임을 깨닫고 흑인으로서 살게 됐다. 정체성 혼란 가운데 자신이 흑인이라고 결정했던 것이다. 자신이 흑인이라고 생각했을 때 정작 흑인 친구들은 그를 완전한 흑인이 아니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배리는 그들 속에 들어가기 위해 마약을 했다. 또한 배리는 테니스팀에 소속했는데 테니스 코치가 흑인에 대해 인종적인 농담을 하자 곧바로 팀을 떠났다. 그는 또한 학교 공부를 하기보다는 흑인 작가들의 글을 읽는데 방과 후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배리는 랭스턴 휴즈, 랄프 엘리슨, 제임스 볼드윈, 리처드 라이트, W.E.B. 드브와 등 흑인 작가들의 글을 읽었고 말콤 X 자서전을 탐독했다.

배리는 다른 흑인 친구들처럼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였다. 혼란의 시간에 그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래서 TV나 영화에 출연하는 흑인들을 흉내내곤 했다.

다른 흑인들처럼 스포츠에 몰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농구, 해변에서 시간 보내기, 파티에 참여하기가 그의 일상 생활이 됐다. 파티에서 한 일화가 있다. 배리는 두 명의 백인 친구를 흑인이 주최하는 파티에 데려갔는데 서로 불편하게 생각하자 분노했다.

그가 농구에 열심이었던 이유는 농구 스타들은 대부분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줄리어스 어빙(당시 필라델피아 76ers)을 좋아했다. 그가 농구를 좋아했던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농구를 하는 순간만은 인종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농구를 할 때 인종과 가족의 수입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농구 코트에서만큼은 그가 어떤 집단에 속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농구를 잘해서 그의 친구들은 그를 배리 오바머(O’Bomber)로 불렀다. 강력한 핵폭탄 슛을 던진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농구를 열심히 했지만 고교농구팀에서 주전 선수로 뛰지는 못했다. 어느 시점에서 3-4경기 내내 벤치만을 지키게 되자 그는 어느 날 코치에게 강력히 항의하기도 했다. 이 언쟁에서 인종적인 폭언도 들었다고 한다. 오바마는 지금도 그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씁쓸해한다.

어머니가 인류학 연구를 위해 다시 인도네시아로 갔을 때 배리는 조부모와 함께 살게 됐다. 어머니 앤 던햄은 배리에게 자주 편지를 썼는데 여기에는 학점을 올려서 대학 갈 생각을 하라는 권유가 있었다. 배리의 성적은 그러나 고교 졸업반이 되었을 때 더욱 떨어졌다. 배리가 졸업반이었던 12학년 때 어머니 앤 던햄은 다시 하와이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배리의 떨어진 성적에 굉장히 놀랐다.

앤 던햄은 아들에게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조금은 늘어지는 듯한 배리의 삶은 다시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배리는 호놀롤루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본토에서 공부하기를 원했다. 배리는 2-3개의 본토 대학에 지원을 했는데 LA 인근 옥시덴탈 칼리지에서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배리는 옥시덴탈 칼리지로 가기로 결심했다. 1979년 배리는 정체성 혼란이 계속됐던 고교 시절을 졸업과 함께 접고 본토로 향했다.  [연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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