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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10)-결혼생활

by 밝은터_NJT 2009.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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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웃 명예의 거리에 있는 마이클 잭슨의 블록에 팬들이 연일 몰려들고 있다. 마이클은 사망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명예의 거리에는 마이클의 스타블록을 찾는 팬들이 많다. <사진 제공=서정환>



마이클 잭슨은 생애 결혼 생활을 했다. 번째 아내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였다. 1994 518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결혼을 잭슨과 프레슬리는 1996 118 이혼했다
.

번째 아내는 데비 로우였다. 마이클은 프레슬리와 이혼한 10개월 로우와 혼인 신고를 했으며 1999 108 이혼했다. 사람은 1996 1115 호주 시드니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

마이클이 프레슬리와 헤어진 이유는 성격 차였다. 프레슬리는 2009 피플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마이클은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성격적인 장애가 있었고 그에게 맞춰가며 살기 어려웠다 말했다
.

로우와의 이혼사유도 비슷했다. 그러나 로우는 마이클과 한지붕 아래서 살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로우는 이혼 후에 마이클이 재판을 받을 때마다 긍정적인 변론을 있다
.

충성스러웠던 전처들


세인은 그를 두고 약속을 지키는 충실한 전처라고 평가했다. 물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로우는 재판에서 마이클을 변호하는 말을 했는데 이에 검사 측이사전에 약속된 발언이 아닌가라고 질문을 하자나는 마이클과 아이를 영원히 보호할 이라고 말해 법정 분위기를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마이클이 로우와 결혼한다는 보도가 나오기 , 프레슬리는 마이클과의 재결합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잭슨: 마스크 뒤의 남자라는 책에 보면 프레슬리는 마이클과의 재결합을 위해 유명 변호사인 자니 코크란에게 중간 다리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

하지만 로우가 인공수정으로 갖게 아이가 세상에 나오자 프레슬리는 마이클의 아내로 복귀할 없게 됐다. 로우는 번째 아이인 프린스 마이클을 1997 2월에 LA 시더스 사이나이 병원에서 낳았다. 로우는 번째 아이를 제대로 없었다. 마이클이 병원으로 와서 아이를 데려갔기 때문이다. 프린스 마이클은 태어나자마자 네버랜드에서 자랐다
.


자녀양육에
올인


마이클은 번째 아이의 양육에 집중했다. 로우는 훗날내가 아이를 만날 있었어도 의미가 없었다. 마이클이 워낙 정성을 다해 아이를 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이클은 번째 아이를 키우기 위해 보모와 간호사 여러 명을 고용했다. 그는 네버랜드 저택의 실내공기 (air quality) 수시로 조사하는 정성을 다해 첫째를 키웠다.

1998
년에는 번째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패리스 캐서린이고 여자아이였다. 패리스 캐서린은 베벌리힐스에 있는 스폴딩 페인 메디칼 센터에서 태어났다. 마이클은 같은 방법으로 둘째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 정성스레 양육했다
.

마이클의 번째 자녀는 친부가 마이클이라는 주장이 있다. 프린스 마이클 II 번째 아이의 이름인데 아이는블랭킷으로 알려져 있다. 셋째 아이는 2002 초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됐다. ‘블랭킷 친모는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마이클은 친모의 뜻에 따라 신원 공개를 하지 않았다
.

그는 영국 방송사의 다큐멘타리 촬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모는 대리모였고 나의 정자를 받아 아이를 갖게 됐다. 나는 그가 어떤 인종인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적인 수준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셋째
아이 별명을 '블랭킷'으로 이유


다큐멘타리의 인터뷰어였던 바쉬어는셋째 아이를 블랭킷으로 부르냐 질문했는데 이에 마이클은블랭킷은 보호해줘야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이는 축복이라는 단어와 같다. 사랑과 보호를 보여주는 단어라서 그를 블랭킷으로 불렀다 설명했다.

마이클은 자녀가 엄마 없이 자라도 행복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마이클은아이들의 주변에는 돌봐줄 여성이 많이 있다. 온종일 그들을 돌볼 여성들 말이다라고 덧붙이며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괜찮다고 본다 강조했다
.

그의 가정을 꾸리는 방식, 결혼 방식은 옳다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어린 아이들을 사랑했고 어린 아이처럼 살기를 원했던 것은 맞는 같다. 그는 영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리고 오프라 윈프라와의 인터뷰에서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 그들을 돌봐주는 것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한 있다. 실제 건강이 좋지 않은 어린이들이 네버랜드에서 지낼 있도록 했던 그다
.

하지만 어른들의 욕심이 그를 어린이 성추행범으로 몰고 갔고 그의 어린이에 대한 선행은 추행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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