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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캘리포니아

[20/21 캘리포니아(2)] 할리우드의 시작과 번영(II)

by 밝은터_NJT 2009.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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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는 미국 50개주 중 가장 중요한 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한국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세계 대중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캘리포니아를 모른 채 이곳에서 20년을 산 것 같습니다. 캘리포니아를 좀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0/21 캘리포니아]를 연재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준비한 것인데 이제야 실행에 옮기게 되었군요.

20/21은 20세기와 21세기를 의미합니다. 20세기와 21세기를 연결하는 캘리포니아 이야기를 지금부터 펼쳐보도록 하겠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밝은터]



윌리엄 셀릭은 영화 카메라를 불법으로 사용하기 위해 남 캘리포니아로 건너왔습니다. 그는 다운타운 메인(Main)길에 사무실을 차리고 영화를 찍었습니다. 이것이 할리우드가 태동하는 데 중요한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셀릭의 뒤를 이어 불법으로 카메라를 사용하는 영화제작자들이 속속 생겨났습니다
.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셀릭은 에디슨사가 세운 영화특허회사(the movie trust)에 가입해 자유롭게 카메라 장비를 사용했지만 다른 영화제작자들은 카메라 사용 권리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많은 독립 영화제작자들은 할리우드로 몰려들어 소위 말해 배째라 영화제작을 시작합니다.


할리우드의 영화제작 환경이 좋아 영화의 수준이 높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할리우드 제작이라는 홍보문구가 있으면 영화 팬들은 신뢰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대체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할리우드 영화가 인정을 받게 되자
LA 인근에는 영화관이 한둘씩 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이 영화관은 니켈로디언(Nickelodeons)’으로 불렸습니다. 니켈(Nickel) 5센트 동전이고 오디언(Odeon)은 그리스말로 극장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영화관 입장료가 5센트라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이후 니켈로디언은 수천 개에 달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초기에 큰 돈벌이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 영화는 저소득층이 제작해 저소득층 관객을 위한 오락이었습니다. 영화산업은 이후 조금씩 세력을 확장합니다. 특히 장편영화 제작은 영화산업을 더욱 발전하도록 합니다.


1913년은 할리우드 영화계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한 해였습니다. 제시 L. 래스키와 세실 B. 드밀이 공동으로 미국 역사상 첫 장편영화를 제작하게 됩니다. 당시 영화제작자들은 보통 한 릴(One Reel)을 사용해 영화를 만들었는데, 한 릴은 보통 12분 정도의 분량이었습니다. 래스키와 드밀은 무려 다섯 릴(Five Reel)을 사용해 ‘The Squaw Man’이라는 장편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이후 장편영화를 만들려는 제작자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영화특허회사에 속한 제작자들은 영화배우의 몸값이 올라갈 것을 염려해 배우홍보는 하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독립제작자들은 스타시스템이라는 것을 만들어 배우 홍보에 열을 올렸습니다. 1910년대에 배우를 보고 영화 관람을 결정하는 팬층이 생겼습니다.


유명 배우들은 일당
15달러에서 주급 1,500달러를 받는 고소득자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915년에 캐나다 출신의 글레이디스 스미스는 미국의 애인으로 불리며 연간 50만 달러를 버는 배우가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팬들은 스타 배우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감독은 당시 배우만큼 인정받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유명 감독으로 인정받은 인물은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였습니다
. 그가 만든 ‘The Birth of a Nation’은 무려 1억 명이 본 영화로 기록됐습니다. 흥행수익으로 5천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20세기 초반의 일이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는 수치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인종차별적 내용은 이후 큰 이슈가 됐습니다. 이 영화는 백인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쿠 클럭스 클랜(KKK) 조직이 재결성되는 계기를 만들어줬습니다.



할리우드에는 워너 브라더스
, 20세기 폭스, 패러마운트, RKO, 콜롬비아, 유니버설 등의 영화회사들이 자리를 잡았고 이들 회사는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부흥기를 맞았습니다. 경제적인 궁핍으로 시민은 괴로움을 잊기 위해 영화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할리우드가 미국 경제 및 미국인들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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