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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캘리포니아

[20/21 캘리포니아(5)] 자동차 혁명의 원천지

by 밝은터_NJT 2009.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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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는 미국 50개주 중 가장 중요한 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한국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세계 대중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캘리포니아를 모른 채 이곳에서 20년을 산 것 같습니다. 캘리포니아를 좀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0/21 캘리포니아]를 연재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준비한 것인데 이제야 실행에 옮기게 되었군요.  20/21은 20세기와 21세기를 의미합니다. 20세기와 21세기를 연결하는 캘리포니아 이야기를 지금부터 펼쳐보도록 하겠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밝은터]

1930년대 LA시 전경


1890년대 남 캘리포니아(이하 남가주)에는 커다란 사건이 하나 있었다. LA 지역에 오일이 발견된 것. 이는 곧바로 오일 붐(Oil Boom)으로 이어졌다. 당시 LA 길거리는 오일을 퍼내기 위한 기중기(Derrick)와 유정(Oil well)으로 가득했다고 역사학자들은 기록하고 있다.

당시 오일이 터져나오면서 LA 경제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LA는 당시 전 세계 오일 생산량의 5%를 생산할 정도의 대량의 오일 생산으로 활력이 넘쳤다.

오일이 발견되면서
LA는 많은 졸부를 탄생시켰다. 알폰소 벨이라는 가난한 농부는 당시 200에이커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오일이 뿜어나오면서 땅을 빌려주는 대가로 한 달에 10만 달러까지 소득을 올릴 정도였다. 20세기 초반의 10만 달러는 지금의 수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액수다. 벨은 오일 붐 덕분에 번 돈을 가지고 베벌리 힐스로 이동, 벨 에어(Bel-Air)를 개발해 추가로 엄청난 부를 챙겼다.


이러한 오일 붐과 발맞춰 남가주에는 자동차 붐이 일기 시작했다
.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대중교통이 주요 교통 수단이었으나 남가주에는 자가용이 더 인기를 끌었다. 오일 붐과 함께 이 지역의 독특한 상황이 자가용 붐을 이끌었다. 헌팅턴 시스템에서 운영하던 노면 전차(Streetcar)는 이들의 독점 운영으로 시민의 원성을 샀다. 전차의 운영이 매끄럽지 못하자 LA 시민은 불만이 가득했고 이런 상황에서 자가용차가 급부상했다.


시민은 대중 교통을 거부한 채 자가용차가 쉽게 다닐 수 있는 아스팔트 도로 건설을 지지했다
. 자가용차의 등장과 아스팔트 도로의 개발은 남가주민들의 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중앙에 집중됐던 거주지역이 점차 외곽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사업체와 공장들도 외곽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오일 붐이 일고 자동차가 개발되고 아스팔트 도로가 건설되면서 남가주는 그야말로 자동차의 메카가 됐다. 이는 20세기에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자동차 산업의 부흥
, 할리우드의 번영 등으로 1920년부터 30년까지 10년 동안 LA카운티의 인구는 100만에서 300만 명으로 껑충 뛰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자동차수는 80만 대가 넘어 LA 지역에서 3명당 1명은 자동차를 소유한 셈이 됐다. 1930년대 한국과 비교한다면 엄청나게 빠른 문명의 전파라고 할 수 있다.



남가주는 자연스럽게 자동차 관련 산업
, 환경, 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 됐다. 1932 LA 올림픽도 자동차의 발달로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경제 대공황으로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 비해 출전국가 수가 크게 줄었음에도 LA 올림픽은 당시로는 큰 액수인 100만 달러의 순수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37개국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미국은 금메달 41개로 12개의 이탈리아에 크게 앞섰다. 1932년 올림픽도 그렇고 1984 LA 올림픽도 반쪽짜리 대회였지만 대회조직위의 수입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자동차 문화가 발달하면서
LA 주민들은 점점 외곽 지역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도시 중심부에 살 이유가 없었다. 이로 인해 건축붐이 일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외곽으로 빠져나가면서 LA는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도시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분위기는 쇼핑 문화도 바꿨다
. 수퍼마켓이라는 것이 생겨 한곳에서 한거번에 장을 보는 게 문화가 됐고 주유소가 성업했고 차 탄 상태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가 생겼다. 이는 남가주에서 패스트푸드점이 성장한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됐다.


대공황 때도 자동차 시장은 상승세였다
. 그러나 자동차 산업으로 인해 부작용도 있었다. 환경문제(스모그)가 심각했고 개인주의 성향이 점점 심화했다. 개솔린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진 것은 중동이 득세하는 주요한 이유가 됐다.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후 전문가들은 캘리포니아의 겨울 기온이
2030년까지 크게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공해문제에 기인한다. 가뭄, 이상기온, 환경문제는 곧 경제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미국과 캘리포니아의 경제 부흥을 이끈 분야가 자동차라면 경제 몰락의 근본적인 원인이 자동차가 될수도 있다
.


 [1920년대의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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