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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말린스6

[MLB 30개 구단 역사(5)] 탬파베이 레이스 1998년 창단한  탬파베이 레이스(당시에는 데블레이스였음)는 2008년까지 단 한 번도 5할 시즌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열 시즌 동안 최고 승수는 2004년에 기록한 70승(91패)이었다. 명장으로 불리는 루 피넬라 감독을 영입한 후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이 팀은 여전히 4할 승률에 머물렀다. 2007 시즌에도 66승(96패)을 챙기는 데 그쳤던 탬파베이의 2008년 상승은 놀라운 일이었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사진: PicApp 조 매든 감독탬파베이는 1900년 이후 처음으로 전년에 최저 승률을 기록한 후 이듬해에 메모리얼 데이(미국의 현충일)까지 리그 최고 승률을 기록한 첫 번째 팀으로 기록됐다. 탬파베이의 2008년 성적은 97승65패.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 2010. 1. 6.
[스타 열전] 조시 베켓 조시 베켓(Joshua Patrick Beckett, 투수, 우투우타, 05/15/80, 193cm, 86kg, 1999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순위 지명- 글: 정재호(전 ICCsports.com 기자), 박병기(ICCsports.com 블로거) 조시 베켓의 시작은 프로에 데뷔하면서부터 요란했다. 지난 1999년 그는 십대의 나이에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우완투수였지만 그해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플로리다 말린스에 입단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것은 과거 빌 길릭슨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의 재능과 잠재력은 벌써부터 경쟁자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00시즌 프로무대에 첫 발을 내디딘 베켓은 명성만큼이나 화려한 구위를 앞세워 루키리그, 낮은 싱글A 클래스를 압도해나갔다. 0점대 방어율과.. 2009. 12. 30.
[스타 열전] 개리 셰필드 개리 셰필드는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항상 뉴스 거리를 제공하는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후 LA 타임스 기자들에게 여러차례 특종을 만들어준 바 있다. 셰필드는 어떤 인물인가? 그의 라이프를 소개하기로 한다. 글: 정재호 기자(2002년 당시 ICCsports.com 기자/현 유코피아닷컴 기자) 글/사진: 밝은터(2002년 이후 소식 추가), PicApp `야구 천재` 개리 셰필드의 유년시절 1968년 11월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시에서 태어난 개리 셰필드는 고등학교 시절 지역을 대표하는 야구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마치 야구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고교 졸업 마지막 해, 드래프트에 참가한 고교 졸업생 중 `최고의 선수`로 꼽히며 5할의 타율.. 2009. 12. 19.
[스타 열전] 양키스 27번째 우승 이끈 27번 지라디 감독 뉴욕 양키스의 조 지라디 감독(1964년 10월14일 생)이 양키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2008년 그는 유니폼 등번호로 27번을 선택했다. 27번은 깊은 의미가 있는 번호이다. 양키스의 통산 27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009년 11월4일(미국 기준) 양키스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4승2패로 승리해 구단 역사상 27번째 챔피언이 됐다. 지라디 감독의 등번호 27번이 더욱 빛나는 날이었다. 양키스가 조 토리 감독을 떠나보낸 후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은 "토리가 떠났으니 아메리칸리그 동부조는 레드삭스의 천하가 됐다. 지라디도 좋은 감독이지만 토리를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기뻐했다. 첫 시즌인 2008년에는 레드삭스 팬들의 말이 맞았다. 양키스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 2009. 11. 5.
야구장 영어 최희섭이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던 초기에 한인 동포들은 '팝씨(FOBC: Friend of Big Choi)'라는 후원회를 결성해서 다저스타디움에 직접 응원을 갔다. 왼쪽 외야석에 자리를 잡은 팝씨 회원들은 응원 첫날 비(非)한국인 팬들의 야유를 들어야 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폴 로두카가 플로리다 말린스로 가고 최희섭이 LA로 온 것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었다. 잠시 긴장이 흘러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양현승 팝씨 회장의 만류로 회원들은 비난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분위기가 좋아질 수 있을까?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응원 구호를 외치는 것이다. 적당한 응원 구호는 "Go Dodgers go!"일 것이다. 실제 팝씨 회원들은 최희섭뿐만 아니라 .. 2009. 8. 13.
[스타 열전] '형저메' 최희섭 [스타 열전] 최희섭 '형저메'(형, 저 메이저리그로 다시 가요!)가 될까? 박찬호가 LA 다저스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무렵 시카고 컵스는 최초의 한인 야수인 최희섭과 계약을 맺었다. 벌써 8년 전인 1999년 3월4일의 일이다. 최희섭은 마이너리그에서 맹활약하며 200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야수로서 메이저리거가 됐다. 이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최희섭은 메이저리그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KIA와 계약을 맺으며 한국행을 선택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363경기에 출전해 220안타, 2루타 54개, 홈런 40개, 120타점, 타율 2할4푼, OPS 0.786의 공식 기록을 남겼다. 한국으로 돌아간 그는 계속 부진했다. 그러나 올해들어 원래의 타격감각을 되찾았다. 일부 언론은.. 2009.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