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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스타 열전] 르브론 제임스

by 밝은터_NJT 2010.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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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Basketball Senior National Team Training Day 3

"매직 존슨의 코트 비전과 마이클 조던의 운동 능력을 가진 선수."

2002년 당시 18세의 고교 스타 르브론 제임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제2의 매직`도 `제2의 조던`도 아닌 두 선수의 장점을 모두 갖춘 선수라니, 과연 그는 어떤 능력의 선수이기에 이런 칭송을 받았던 것일까.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사진: PicApp

천재 농구 스타

2002년 11월 오하이오주 애크론시에 있는 한 고등학교의 졸업반이었던 제임스는 프로농구(NBA) 스타 보다 더 많은 팬을 확보한 천재 농구 소년으로 통했다. 제임스가 다녔던 세인트빈슨트-세인트 매리 고교는 당시 홈경기를 6천명 수용의 대학교 체육관에서 치렀다. 고등학교 체육관은 `르브론 팬`의 3분의 1도 채울 수 없기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대학 체육관으로 옮겨서 홈경기를 치렀음에도 티킷은 거의 매경기 매진됐다.

많은 팬의 요청에 따라 제임스의 경기는 페이-퍼-뷰(Pay-per-view: 유선방송 회당 유료 시청 프로그램)를 통해 오하이오주 케이블 방송 시청자들에게 선보여졌다. 전국 팬들도 르브론에 열광했다. ESPN 방송은 이 같은 제임스의 인기를 감지하고 2002년 12월 1만3천6백석의 대형 체육관에서 열렸던 세인트빈슨트-세인트 매리 고교의 경기를 전국으로 생중계했다.



제임스에 열광했던 이유

 농구 팬들이 18세에 불과한 제임스에 열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마이클 조던의 전성시절 못지 않은 운동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놀라울 정도의 유연함과 조던을 능가하는 점프력으로 그의 플레이를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그러면서도 제임스는 이기적이지 않았다. 개인 플레이를 최대한 자제했던 선수다.
 
 그의 코트 전체를 보는 능력 및 패싱능력은 매직 존슨을 연상케 했다. 그렇다면 수비 능력은? 손이 빠르고 센스가 좋아 상대 공격수들을 쉽게 당황케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공격할 때는 매직 존슨, 조던을 합쳐 놓은 모습이고 수비할 때는 개리 페이튼과 비슷하다고 전문가들은 평했다. 그렇다고 약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유투 성공률이 낮은 편(당시 60%)이고 파워가 부족했다. 두 가지는 그러나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향상했다.

NBA 인기를 끌어 올릴 스타로 주목 

 제임스는 2003년 고교 졸업 후 NBA 진출을 선언했다. 전체 1번으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지명됐다. 신발 회사들은 그가 프로로 뛰어들면 엄청난 액수로 계약 맺을 준비를 이미 마쳤고 실제 그가 NBA에 진출하자 엄청난 액수의 계약금을 제시했다. 연간 4백만 달러에서 1천만 달러 수준의 다년 계약이 제임스를 유혹했다. 제임스는 이탈리아 프로클럽으로부터 8백만 달러의 연봉을 주겠다는 유혹을 받기도 했다.
 
 조던의 전성기 시절 그의 컴백과 은퇴가 뉴욕 증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처럼 제임스도 NBA 스타로 자리 잡게 되면 미국 경제를 흔드는 인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다.



제2의 조던? No! 제1의 제임스

 제임스는 2001년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에서 열린 조던 농구 캠프에 NBA 스타, 대학 농구 스타들과 함께 초대된 바 있다. 당시 제임스는 고등학생임에도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며 선배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제2의 조던`이 탄생했다고 외쳤다. 제임스는 이에 대해 "내 목표는 제2의 조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제1의 제임스가 되는 것"이라고 야무지게 말했다.

 물론 조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제임스는 "조던의 말은 대통령의 말 보다 더 파워가 있다. 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며 조언은 큰 도움이 됐다"고 성숙된 발언을 했다.

 그의 가능성을 감지한 미 주류 언론들은 그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부터 그에 대한 소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평생 한 번 표지 모델로 나서기 힘든 잡지인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는 2002년 2월 `선택된 자(The Chosen One)`라는 표지 제목과 함께 제임스를 표지 모델로 내보냈다. 고교 3학년에 재학중인 농구 선수가 이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농구판 타이거 우즈 될 것 
 
  당시 제임스의 사인이 포함된 잡지는 e베이에서 200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또한 제임스와 관련된 용품이 경품 사이트에서 90가지가 넘게 거래됐다는 후문이다.

 그가 가는 곳이면 마치 유명 영화배우가 뜬 것처럼 경비가 심해졌다. 한 스포츠 칼럼니스트는 "골프가 타이거 우즈의 등장으로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았던 것처럼 제임스의 NBA 입성은 농구를 조던 시대 이후 제2의 중흥기로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농구판의 타이거 우즈가 됐을까. 아직까지는 아니다. 챔피언 반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2003-04시즌에 그럴 가능성을 보여줬다. 고졸 신인치고는 꽤 좋은 성적인 20.9득점, 5.9어시스트, 5.5리바운드를 기록했던 것. 루키 시즌에 20득점-5어시스트-5리바운드를 기록한 선수는 오스카 로벗슨과 마이클 조던 2명뿐이었다. 캐벌리어스는 르브론 제임스 덕분에 이전 시즌보다 18승을 더 올려 35승47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플레이오프 2년 연속 진출 실패

  두 번째 시즌에 르브론 제임스는 NBA 올스타로 선정됐다. 제임스는 2004-05시즌에 역사상 가장 어린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그리고 NBA 베스트5에 선정됐다. 27.2득점, 7.2어시스트, 7.4리바운드, 2.2스틸이 그의 개인 성적이었다. 42승40패를 기록한 캐벌리어스는 역시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루지 못했다. 

■ 특급 대열에 들어가기 시작

 2005-06시즌은 제임스가 마침내 특급 대열에 들어가는 시즌이었다. 
 
 제임스는 2005-06시즌에 31.4득점, 7리바운드, 6.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황제 즉위식은 연기됐다. 캐벌리어스가 플레이오프에 처음으로(제임스가 유니폼을 입은 후 처음) 진출했지만 챔피언 등극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시즌에는 캐벌리어스의 선전이 인상적이었다. 
 
 2006 NBA 플레이오프가 시작되기 전, 캐벌리어스는 1라운드 또는 2라운드에서 탈락할 팀으로 평가됐다. 1라운드에서 워싱턴 위저즈에 4승2패로 승리해 2라운드에 진출한 캐벌리어스는 동부 최강이자 리그 전체에서 최고 승률팀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만났다.

 전문가들 중 캐벌리어스가 승리할 것이라고 간 큰 예상을 한 사람은 없었다. 피스톤스는 예상대로 1,2차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쾌속항진을 하는 듯했다. 캐벌리어스가 3차전에서 승리했지만 여전히 모든 사람들은 '어쩌다 한 번'이라는 생각을 했다. 4차전에서 캐벌리어스가 이겼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두 번 떨어질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5차전에서 캐벌리어스가 승리하고 시리즈를 3승2패로 앞서 나가자 상황은 당황스럽게 됐다. 캐벌리어스가 컨퍼런스 결승 진출을 목전에 두게 된 것이다. 그러나 캐벌리어스는 남은 2경기를 모두 내주고 아깝게 탈락했다. 

 제임스는 시즌이 끝난 후 캐벌리어스와 연장 계약을 맺었다. 3년 계약에 4년째는 옵션이었다. 2007-08시즌을 시작으로 총 6천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연장 계약이었다.



■ 가까워진 황제 즉위식

 스몰 포워드인 제임스는 몸이 빠르고 점프력이 좋아 3개 이상의 포지션을 소화해낼 수 있는 NBA 선수다. 그는 파워 포워드의 신체에 포인트 가드의 코트 전체를 보는 감각과 드리블 능력을 지녔다. 제임스는 그러나 2006-07 시즌에 수비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공격에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 수비 능력이 공격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가 들렸다. 그는 NBA 최고의 수비팀에 선발된 적이 없었다. 또한 고교 시절부터 문제점이었던 낮은 자유투 성공률(69.8%)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제임스는 이 밖에 나이키와 같은 회사로부터 9천만 달러의 광고 모델 계약금을 받아내 소비자들에 부담을 주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높은 광고 모델료는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분담 몫이기 때문이다. 2006-07시즌에 그는 캐벌리어스의 NBA 챔피언 결정전 진출을 이끌었다. 캐벌리어스는 워싱턴 위저즈, 뉴저지 네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차례로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결승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4전전패로 패했다. 황제 즉위식이 또 연기된 것이다. 


   
제2의 조던이 아니라 제2의 매직?
 
 캐벌리어스 경기 전담 중계 캐스터인 조 테이트는 오하이오주 비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제임스가 조던의 등번호였던 23번 유니폼을 입고 조던처럼 경기 시작 전에 스코어 테이블에서 송진을 공중으로 날리는 '의식'을 행하지만 그는 조던이 아니다. 제임스는 오히려 매직 존슨과 비슷한 선수다"라고 평가했다.

 매직 존슨과 비슷하다는 것은 모든 분야에서 다재다능하면서도 동료를 믿는 선수라는 의미다. 제임스의 패스능력은 존슨의 그것 못지않다는 게 테이트의 설명. 제임스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는 테이트는 "르브론은 슛을 쏘는 것보다 패스를 잘하는 것을 더 즐긴다. 어린 선수인데도 팀 플레이가 무엇인지 아는 선수다"라고 칭찬했다. 

■ 코비 or 르브론.
 
ESPN-TV는 2008년 3월 '스포츠 센터'에서 재미난 질문을 했다. 2008년 3월 현재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누굴 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농구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답을 했는데 모두 코비를 선택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인 내용은 코비가 뛰어난 클러치 슈터인 점과 수비가 더 낫다는 것이었다. 2007년 NBA 챔피언 결정전 때 이런 질문을 했다면 대부분 르브론을 뽑았을 것이다. 당시 르브론은 약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NBA 챔피언 결정전으로 이끌었고 코비의 LA 레이커스는 1라운드에서 탈락한 바 있다.

 플레이오프가 열렸을 때 LA 타임스의 칼럼니스트가 썼던 글에는 "르브론과 코비는 비슷한 수준의 팀에서 뛰는데 르브론은 챔피언십 진출팀을 만들었고 코비는 그렇지 못했다. 르브론이 더 뛰어난 선수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당시 23세였던 르브론 제임스는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선수였다.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등에서 모두 뛰어나고 수비도 계속 향상하고 있었다. 코비보다 클러치 슈팅 능력과 수비가 약간 밀리기는 했지만 이는 시간이 흐르면 좋아질 부분이다. 르브론은 야투 성공률도 매년 향상되고 있고 특별히 가로채기와 블락샷이 좋아졌다. 자유투 성공률만 좀 더 높인다면 완벽에 가까운 선수가 될 선수다.




■ 실망스러운 두 시즌

 2007-08시즌에 캐벌리어스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보스턴 셀틱스에 3승4패로 아깝게 패했다. 7차전에서 제임스는 40득점 이상을 기록했지만 팀의 승리를 이끌지 못했다. 2008-09시즌에도 캐벌리어스는 동부 컨퍼런스 결승시리즈에서 올랜도 매직에 패해 역시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시즌에 제임스는 MVP로 선정됐다. NBA 진출 후 첫 MVP 수상이었다. 그는 또한 올해의 수비팀에 들어가 수비 능력 향상을 공식적으로 인정 받았다.

 제임스는 NBA 신인상(2004년), MVP (2009년), 올스타 선정 5회, 득점왕(2008년), 베스트5 3회, 베스트 수비수 5인(2009년) 등 주요한 상을 모두 받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챔피언 반지뿐이다.

글: 밝은터

■ 이름: 르브론 제임스
■ 생년월일: 84년 12월30일 생
■ 포지션: 슈팅 가드
■ 키: 6피트7인치
■ 몸무게: 215파운드
■ 태생지: 오하이오주 애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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