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파란 눈의 외국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갔을 때 강조했던 것이 있다. 바로 자립(self-support), 자전(self-propagation), 자치(self-government)의 정신이었다. '3자(自)'로 불리는 이것은 이후에는 네비우스 정책으로 이론화됐다. 네비우스는 단 2주만 강의했고 한국의 기독교인은 이를 받아들여 한국 기독교가자립하도록 했다. 이는 외국 선교사가 떠나도 한국인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만든 정책으로 최근 들어 훌륭한 업적으로 박수를 받고 있다.
한국 축구 역사에서 네비우스 선교사에 해당하는 인물은 바로 거스 히딩크(전 한국 대표팀 감독)일 것이다. 그는 한국 축구에 세계 축구의 흐름과 척박한 환경에서 승리하는 법을 전도하고 유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한국 축구는 여전히 자립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적어도 정신적인 자립은 하지 못하고 있다.
히딩크는 한국 같이 축구 인프라가 약한 나라가 세계 축구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방법을 대한 축구 협회 기술위원들은 꼼꼼히 노트했다. 한국 축구는 오랫동안 자립 정신을 키우지 못했다. 필자는 2002 월드컵이 끝난 후와 쿠엘류호가 이상 기류를 탔을 때 토종 감독 선임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 축구는 자립 정신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 외국 감독에 의지하며 한국 축구의 운명을 맡길 것인가. 2002년 9월에 썼던 칼럼을 잠시 돌아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무시하는 과거의 행보를 그대로 걷고 있다. 스스로를 무시하게 되면 독립심보다는 의타심이 더 강해지게 된다. 히딩크는 우리를 잠시 최고로 만들어줬지만 이것은 오히려 우리의 `독립심`을 빼앗아가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조심스럽게 해본다. 히딩크는 일할 수 있는 환경을 확실히 제공받았기 때문에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우리 토종 감독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줘야 한다.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또 쿠엘류 감독의 해고설이 나돌았을 때였던 2004년 4월 기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허정무, 이용수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들이 있는데 굳이 우리와 맞지 않는 외국 감독과 호흡을 맞추려는 것은 왜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 축구는 포스트 히딩크에도 외국인 감독을 고수했다. 그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본프레레 감독은 사퇴하는 형식으로 한국 대표팀을 떠났고 이후에도 한국 축구에 대해 부정적인 말만 하고 다녔다. 외국 감독이 오면 실패할 것이 불보듯 뻔한데도 한국은 외국 감독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한국 축구를 파악하는 데만 10개월 이상이 걸리는 상황에서 외국 감독을 영입하려는 시도는 옳지 못했다. 2006년에 한국은 아드보카트 감독을 영입해 외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첫 승을 따내년 쾌거를 이룩하긴 했지만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다행히 한국은 2010년 월드컵을 대비해 허정무라는 카드를 뽑았다. 그리고 허정무 호는 허무 축구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무패로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히딩크가 오대영이라는 별명으로 월드컵 본선에 나섰던 것처럼 말이다.
허정무 / 축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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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립할 때가 훨씬 지났다. 2002년 월드컵도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네비우스라는 기독교 선교사가 단 2주만의 강의로 한국 기독교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던 것처럼 히딩크는 우리에게 축구에서 자립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힘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이제는 허정무 감독에게 본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필요하다. 외국 감독 영입을 논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자립 정신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면 그것처럼 의미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왠지 허정무 호가 일을 낼 것 같다. 이근호가 그랬다. “8강 정도는 가야지 사고를 내는 것 아니겠어요?” 왠지 그말이 허황되게 들리지 않는다. 방심은 금물이지만 지금처럼 허 감독을 적극지원하지 않는 분위기는 더욱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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