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베껴 쓰기가 난무하는 곳이다. 과거에는 남의 글을 출처도 밝히지 않고 그대로 옮기는 ‘뻔뻔스러운’ 베껴 쓰기가 유행했다면 요즘은 다른 사람의 글을 출처를 밝히면서 나름대로 글을 수정해 옮겨쓰는 게 추세가 됐다.
출처를 밝히고 글을 수정해서 옮기는 것은 글 전체를 차용하지 않는 한 불법이 아니다. 사실 미국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학습하는 게 주로 그런 일이다. 스스로 연구해서 자신의 리포트를 쓰는 것보다는 남의 글들을 다 모아서 그것을 종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연습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연구한 자료, 자신 삶의 경험을 토대로 한 글을 쓰는 것만큼 남의 글을 정리해서 객관화시키는 작업은 미국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것이 남의 글을 존중하면서 개인 스스로의 것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석사나 박사논문을 쓰는 일은 자신의 경험이나 자신의 연구 자료에 남의 글을 보태서 객관화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미국인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잘 알 수 있다. 남의 글을 일부 인용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으로 정리하는 분위기를 볼 수 있다. 남의 글은 출처를 정확히 밝히고 일부만 발췌하거나 링크를 걸어 그 글을 존중해준다. 여기에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면서 자신의 글로 만드는 것이다.
합법적인 글 인용이 언론환경을 망친다?
그런데 이런 고도의 학습훈련이 미국 언론을 망치고 있다는 주장이 있어 관심을 끈다. 마거버 형제(데이비드&댄)가 최근 LA 타임스에 쓴 칼럼은 미국의 인터넷 사이트들이 기존 신문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사람은 변호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아칸소 주립대의 경제학과 교수인데 이들은 칼럼에서 “샌프란시스코의 유일한 일간지이자 전국 12위 신문인 크로니클지는 최근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생겼다. 이는 ‘무임승차(free-riding)’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무임 승차’란 누구나 웹사이트나 블로그를 만들어서 유명 신문에서 나온 기사를 적절하게 수정해 자신만의 기사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 출처를 밝히고 글의 일부만 발췌하는 것은 불법 행위가 아닌 것이다.
미 주요 언론이 웹사이트 개발에 집중해 그동안 많은 독자를 확보했지만 종이 신문 광고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광고단가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앞서 거론한 크로니클지도 한 달에 520만 명의 독자가 방문을 했지만 재정난을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대부분의 소스는 주요 신문사의 기사에서 나오는데 이에 혜택을 입는 사람들은 주요 검색엔진을 소유한 회사라고 할 수 있다. 개인 블로그나 개인 웹사이트 관리자가 주요 신문의 글을 일부 수정해서 올리면 검색어로 걸리게 되고 이는 검색엔진 회사들로서는 수익을 창출하는 주요한 움직임이다. 그렇기에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 리더가 급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마버거 형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원천 기사를 재생산할 경우 보통 링크를 달아준다. 그런데 독자 중에 그 링크를 타고 원천 기사를 제공한 신문사 사이트로 들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원천 소스 제공자는 혜택을 입지 못한다.”
미국의 주요 뉴스를 ‘합법적’으로 재생산해내는 Newser.com은 주 7일 24시간 미국 주요 언론의 기사를 재생산해 인기를 끌고 있는 뉴스 사이트다. Newser.com과 유사한 사이트들의 등장으로 인터넷 광고단가가 추락하면서 많은 임금을 줘야 하는 기존 언론사들은 경영난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이로 인해 역 재생산 현상이 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파워 블로거들은 유명해졌기 때문에 정보의 원천에 접촉하기가 쉬워지는데 이들이 쓴 글을 기존 언론이 베껴 쓰거나 빌려쓰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언론사들도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프로 블로거들의 고급 정보를 갖다 쓰는 게 유행이 된 것이다. 언론사들이 유명인들의 ‘트위터’ 글을 자주 인용하는 이유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AP는 기사 재생산의 대명사
사실 남의 글을 합법적으로, 고급스럽게 인용해서 판매했던 대표적인 회사는 AP였다. AP는 자체 취재도 하지만 미 전국의 지역 언론 기사를 재생산해서 전 세계에 송고하고 이에 대한 ‘수고비’를 받는 회사다. 예를 들어, LA 타임스가 어떤 내용을 특종보도했다면 AP는 출처를 밝히고 이 내용을 재생산해서 전 세계 언론사에 내보낸다.
AP가 했던 일들을 블로거나 소형 웹사이트 관리자들이 따라하게 되자 질서가 무너져버렸다. 무너진 질서를 재확립하려면 저작권법을 바꿔야 하는데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 언론이 생산한 기사를 쓰지 못하게 하는 내용으로 저작권법을 바꾸면 미국의 학문 체계와 컨텐트 생산의 모든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쉽지 않다.
이에 마버거 형제는 “저작권법에 공정경쟁과 부당한 이득에 대한 항목이 명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무엇이 공정경쟁이고 무엇이 부당한 이득인지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야말로 ‘공정한 평가’를 내리기란 쉽지 않다.
언론 환경 문제 대책은 무엇?
이에 대한 대책은 없는 것일까? 블로거들과 뉴미디어 생산자들은 “문제는 기존 신문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강조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기존 언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파워 블로거(인기 있는 블로그 운영자)와 뉴미디어의 떠오르는 웹사이트들을 떠안는 길밖에 없다.
기존 언론은 뉴 미디어 리더들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이 했던 일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시장에서 괜찮은 소프트웨어는 거의 다 인수했고 구글도 역시 유투브 등을 인수해 사세를 확장했다.
언론사들은 역으로 파워 블로거나 떠오르는 웹사이트들이 더욱 운영을 잘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그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언론사는 고도의 컨텐트 생산능력이 있는 집단이다. 파워 블로거들에게 오히려 그 기술을 전수하면서 언론사 사람으로 만드는 게 언론이 살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필요한 기술과 취재 사진을 제공하면서 사업을 모색한다면 다가오는 ‘1인 블로그 시대’를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면 적은 더욱더 강력한 무기로 언론사를 무너뜨릴 것이다.
품는 게 사는 길이다.
[위 글은 이 블로그의 필자인 밝은터가 유코피아닷컴(http://ukopia.com )에 쓴 글로 유코피아닷컴의 허락하에 게재합니다.]
'BK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2PM 재범 탈퇴 사태를 보며 생각난 사람, 추신수 (44) | 2009.09.13 |
---|---|
추신수가 영주권이 필요한 이유는 (0) | 2009.08.12 |
글쓰기에도 F4가 있다 (1) | 2009.07.22 |
축구 자립(Self-support)은 외국코치 토사구'땡' 아니다 (0) | 2009.06.19 |
레이커스 왕조 건설의 걸림돌: 셀틱스, 캐벌리어스, 블레이저스.... (0) | 2009.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