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스타 열전] 사이영상 7개의 주인공 클레멘스

by 밝은터_NJT 2009. 12. 25.
반응형

1962년생인 로저클레멘스는 무려 7개의 사이영상을 받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 명이다. .그는 그러나 현역 선수 마지막 부분에 약물 사용과 살림 사실리 발각되면서 최고의 투수라는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사실 야구 선수로서는 최고의 삶을 보냈지만 마지막이 좋지 않으니 최고라는 이미지가 흐려졌다.

 글: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사진:PicAPP


MLB: New York Yankees vs Kansas City Royals

역대 다승 9

 개인 통산 354승을 기록한 클레멘스는 역대 투수 최다승 부문 9위에 올랐다. 바로 단계 앞에 그렉 매덕스가 355승을 기록했다.  클레멘스는 1984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데뷔 당시 무려 100마일에 가까운 강속구를 던졌던 20 초반의 클레멘스는 1986 244, 방어율 2.48, 탈삼진 238개를 기록했다.

이후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로서 오랜 시간 자리를 잡은 그는 1986 사이영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1987, 91, 97, 98, 2001, 2004년에 상을 받아 7차례사이영상 수상자가 됐다. 밖에 시즌 방어율 1 7, 다승 부문 1 4, 올스타 선정 11 클레멘스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WBC: USA v Mexico

타고난 체력

 클레멘스의 체력은 타고났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 보스턴 레드삭스의 투수코치로 클레멘스를 지도했던 피셔는 "클레멘스는 25-30년을 가로지르는, 세대에 나올까 말까 선수이다. 그는 원한다면 영원히 피칭을 있을 것만 같은 체력을 타고났다"라고 말했다. 클레멘스는 타고난 체력과 투수로서 가장 이상적인 체격(193cm, 113kg) 바탕으로 최고의 투수로 거듭날 있었다.

 그가 던지는 구질은 의외로 단순하다. 강한 어깨에서 나오는 묵직한 90마일 중반의 패스트 볼은 클레멘스의 가장 무기이다. 여기에 그가 구사하는 포심-패스트 (93-95마일) -패스트 (89-91마일: 공이 슬라이더와 비슷하게 오른손 타자의 외곽쪽으로 휘는 ) 가지는 타자들을 주눅들게 만들거나 혼동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하고 동반되는 스플리터(패스트 볼처럼 날아가다가 타자 앞에서 떨어지지는 ) 타자들에 결정구가 된다.

 클레멘스는 "패스트볼(투심&포심) 체인지업 그리고 스플리터(포크볼) 손목의 각도와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타자들이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나 커브나 슬라이더를 던지면 손목 모양과 각도가 다르기 때문에 타자들이 식별하게 된다" 스플리터를 자주 구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MLB v Japanese Professional Baseball

버림 받았던 경험

 클레멘스가 레드삭스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했을 듀켓 당시 레드삭스 단장은 "클레멘스의 시대는 이제 끝이 났다" 선언한 있다. 당시 클레멘스는 데이브 스튜어트,  브렛 세이버하겐, 오럴 허샤이저 등과 함께 전성기가 끝난 80년대의 유명 투수로 통했다. 그러나 클레멘스는 레드삭스를 떠난 무려 4번이나 사이영상을 받앗다. 듀켓 단장이 메이저리그에 더는 발을 붙이지 못할 발언을 했던 것이다.

 97 블루제이스 유니폼을 입고 21, 2.05 방어율을 기록해 압도적인 지지로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받은 클레멘스는 98 시즌에도 만장일치로 사이영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아메리칸리그 사상 만장일치로 상을 받게 것은 4번째 있는 일이었다. 97 시즌 다승, 방어율, 삼진 부문에서 모두 1위에 오르며  '트리플 크라운' 위업을 달성했던 클레멘스는 98년에도 3관왕으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4번째로 2 연속 트리플 크라운을 세운 선수로 기록됐다.

 클레멘스는 99년부터는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었는데 99년과 2000년에 잠시 주춤 하긴 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몫을 다해 소속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도왔고 2001년엔 203패로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Yankee fan

눈에 띄었던 가족애

 클레멘스는 명의 부친을 잃었던 아이였다. 일찍 친아버지를 여읜 그는 9세였던 , 아버지 마저도 심장마비로 떠나보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클레멘스는 그래서 자녀들에 좋은 아버지가 되어 주었다. 과거 은퇴를 선언했었을 때도 이유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클레멘스는 가족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그는 원정경기로 인해 가족이 그와 떨어져 있을 경우, 하루에도 3 이상씩 전화를 하며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클레멘스는 9.11 사건이 터졌을 당시 뉴욕에서 가족이 있는 휴스턴까지 무려 16 마일을 22시간 동안 자동차 운전으로 도착했을 정도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아버지를 잃은 경험은 또한 야구 선수로서 정신력을 강화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양키스 구단 스포츠 정신과 전문의였던 프랜 피라졸라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와의 인터뷰에서 "클레멘스는 어떤 선수보다도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잃었을 보통 가지 길로 갈라지게 된다. 클레멘스는 자신의 나쁜 경험을 강한 정신력으로 이끄는 활용했다" 말했다.

UPI POY 2008 - News and Features

    약물 복용자? 클레멘스

 지난 2006 10 LA 타임스는 로저 클레멘스가 약물을 복용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LA 타임스 보도 클레멘스는 "약물 검사에서 번도 양성 반응이 나타난 적이 없다" 말해 약물 복용을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는 말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 클레멘스는 "나는 약물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말을 해야 했는데 그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클레멘스를 아꼈던 팬들에게는 충격적인 보도 내용이었다. 그의 이름은 또한 호세 칸세코의 자서전에서도 거론된 있다. 강인한 정신력의 그도 어쩔 없는 연약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내 애인이 있었다?

클레멘스가 아내 외의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사실 약물 복용보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가정적이고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뉴욕 데일리 뉴스지는 2008 4 클레멘스가 컨트리 음악 스타인 민디 맥크리디와 오랫동안 내연의 관계였다고 보도했다. 맥크레이디가 15 떄부터 관계가 시작됐다는 보도였다. 클레멘스 변호인은 보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서 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맥크리디는 방송에 출연, 둘의 관계는 보도한 사실 그대로이며 클레멘스에게 아내를 떠나서 자신에게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가 거절했다고 말했다. 클레멘스는 밖에도 명의 여자가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이미지가 깨끗하고 '배신자' 호세 칸세코도 가정적인 남자라고 인정했던 그가 그런 상황에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깨끗한 그가 그랬다면 다른 선수들은 어땠을까. 야구 선수는 야구를 잘하는 사람들일뿐이며 우리의 영웅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