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 우∼즈’를 외치며 연신 흰 응원방망이가 돌아간다.
마치 축구장의 붉은 악마들의 응원 소리와 흡사하다. 하지만 분명 잠실 야구장임에는 틀림없다.
이 함성과 응원의 주인공은 바로 올 시즌 야구장에 검은 돌풍을 일으킨 OB 용병 타이론 우즈.
실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용병 들을 외화를 쓰면서 들여와야 하느냐며 많은 질책과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던 올 시즌 초반과 달리 오히려 용병 덕분에 팬들의 관심이 야구장에 쏠린 후반기 막판이었다.
다름 아닌 우즈의 홈런 신기록 때문. 우즈는 지난 10월 1일 현대와의 잠실 구장에서 42호를 쏘아 올리며 92년 장종훈이 세운 한시즌 최다홈런 41개 기록을 갈아치웠다.
거기다 타점왕까지 차지해 공격부문 2관왕으로 LG 김용수를 2차결선 투표까지 가는 대접전끝에 98 페넌트레이스 MVP를 거머쥐었다.
“너무 영광스럽다. 솔직히 한국에서 신기록을 깨거나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다만 팀이 이기는데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었다.”
최고의 전성
기에 한국행
고향에서의 꺾인 꿈을 낯설은 타국땅에서 이루기 위해 방망이 하나 달랑 들고 한국을 찾은 우즈.
그는 69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9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그의 야구인생은 일곱살 때 시작되었다.
한 TV속에서 홈런을 터뜨리는 레지 잭슨(전 뉴욕 양키스)의 모습에 반해 리틀야구단에 입단, 레지 잭슨과 같은 메이저리거를 꿈꾸었다. 그는 8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몬트리올 엑스포스 루키군에 입단하면서 한국을 찾기까지 8년 동안 마이너리그 생활을 견디며 언젠가는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키웠다. 드디어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오는 듯했다.
97년 보스턴 트리플 A팀 포터킷 레드삭스에서 1개월 동안 홈런 9개에 28타점을 올린 우즈는 당연히 메이저리그로 입성이 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팀에서는 그를 메이저리그가 아닌 멕시코리그에서 뛸 것을 통보해왔다. 이에 격분한 우즈는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줄 것을 요구했지 만 그것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우즈는 이듬해 재계약 대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행을 결정하는데 아내도 쉽게 허락했다. 한국행을 결정했지만 처음에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음식이나 날씨, 야구장이나 팀분위기, 무엇보다 아내가 한국을 사랑하게 될까 하는 등등…. 하지만 지금 아내와 나는 한국을 너무 사랑한다”
활달한 성격, 아내의 내조가 가장 큰 힘
한국 입성 9개월만에 코리안 드림을 이루고만 스물 아홉의 우즈.
그는 시즌 초반만 해도 호언장담 했 던 100타점과 30호 홈런이 무색할 정 도로 헛방망이질을 해댔다. 직구는 어느 정도 감을 잡았지만 우리 투수들의 변화구 앞에만 서면 그는 한없이 작아졌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보기 힘든 언더핸드 투수들에게는 고양이 앞에 쥐신세.
실제 그의 42호 홈런 중에서 일명 잠수함이라고도 하는 언더핸드 투수 중에서 삼성 박충식(2개), 쌍방울 김현 욱(1개)을 제외하고 해태 이강철, 임창용, 쌍방울 김기덕에게는 단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다. 그가 한국 야구에 더딘 적응을 한 것 중에 미국보다 넓은 스트라이크 존도 한 몫 했다.
우즈는 방망이질 한 번 하지 못하고 공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당한 적도 많 았다. 하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 자 스트라이크 존과 투수들의 변화구 에 적응을 하면서 그의 파워는 드러나기 시작했다. 4월에 4개만 을 기록했던 홈런이 5월에 6개, 7월에 7개, 8월에 7개를 기록하다가 홈런 신기록 의식해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던 9월에는 무려 10개의 홈런을 몰아쳤다.
“적응하기 힘들었던 시즌 초반과 9월에 홈런을 의식해 잠시 찾아온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 홈런 비디오 테입을 보기도 하고 거울 앞에 서서 스윙을 연습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팀에서 훈련하는 동안 온 정신을 집중해서 연습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아직 언더핸더 투수들의 공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렇게 우즈가 용병 수입 첫해에 한국프로야구를 평정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배팅 스피드와 힘을 바탕으로한 끊임없는 노력, 활달한 성격, 그리고 그의 아내 셰롤 블랙의 내조덕분이다. 우즈와 5년 연상인 셰롤 블랙이 처음 만난 곳은 미국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었던 수퍼마켓.
그렇게 만난 그들은 10년 동안 사귀다가 올 2월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몇시간 전에서야 연인사이 딱지를 땠다.
어머니같이 포근한 아내 셰롤 블랙은 한국에 도착한 후 매번 남편의 경기를 녹화 하거나 신문 기사를 스크랩 하며 우즈의 든든한 후원자 로 나섰다. 그리고 경기가 있는 날은 꼭 잠실구장을 찾아 남편을 응원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우즈는 홈런을 치는 날이면 꼭 아내를 향해 손가락을 치켜 들어보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들은 야구가 없는 날이면 다정하게 이태원으로 향했다.
쇼핑도 하고 그동안 사귄 친구들은 만나기 위해서다. 모자 모으는 것이 취미인 우즈는 한국에서 이미 정확한 숫자를 모를 정도로 많은 모자를 사들였다.
활발한 성격때문에 쉽게 적응했다는 우즈와 아내 셰롤은 “한국은 총기 휴대가 자유롭지 않아 안전하고 물건 값도 싸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고 좋아서 한국어를 배워 더 친해지고 싶다”는 얘기와 함께 남은 야구인생을 한국에서 마무리하고 싶다며 입을 모았다.
우즈는 10월8일 롯데호텔에서 열렸던 MVP기자단 투표에서 MVP를 수상하며 기쁨을 더했다. 75명이 참가한 1차 투표에서 26표를 얻어 1위 를 차지했으나 과반수 득표에 실패, 24표를 얻은 투수부문 2관왕 LG 김용수(38)와 2차 결선 투표를 치러 21표를 얻는데 그친 김용수를 제쳤 다.
타율, 최타안타, 출루율 등 타격 3관왕 양준혁(삼성)은 1차 투표에서 18표를 얻어 2차 결선 투표에 나서지 못했으며 지난해 최우수선수 이승엽(삼성)은 1차 투표에서 단 1표도 얻지 못했다.
이 밖에 임창용(해태)은 4표를 얻었으며 정민태(현대)도 2표에 머물렀 다. 1차 투표가 끝나고 초반 개표가 되는 과정에서 김용수와 양준혁이 10표를 넘는 동안 우즈의 득표가 2표에 그칠 때까지만 해도 혹시 외국인 선수에 대한 홀대(?)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보여주는 듯 하였다.
그러나 홈런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야구의 한 획을 그은 우즈의 공로는 막판 몰표로 나타나며 우즈의 호명이 연이어 졌다. 1차 투표 결과 김용 수에 2표 앞선 26표. 결국 두 선수 모두 과반수의 표획득에 실패하면서 2차 투표의 결선을 치르는 박빙의 승부에서 결국 우즈의 판정승.
시종일관 긴장된 표정을 보이던 우즈 의 입가에 웃음이 새어나오며 부인 셰릴과 연신 입맞춤을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최우수선수에 선정된 우즈는 이로써 한국 프로야구 무대 에서 선 첫 해 시즌 최다 홈런의 대기 록을 수립한데 이어 최우수 선수 상 마저 차지하며 '코리안 드림'을 이뤘 다.
미국 프로야구 마이너리그에서 활약 하던 우즈는 외국인 선수 지명 2순위로 OB에 입단했다. 시즌 초반의 부진을 딛고 중반 이후 부터는 타고난 힘을 앞세워 홈런과 타점 1위뿐 아니라 타율 9위(0.305), 최다안타 공동10위(138개) 등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고른 활약을 펼치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부상으로 그랜저 XG와 상금 2백만 원이 수여되었다.
다음은 MVP수상후 우즈와의 인터뷰 내용.
우선 소감을 말한다면?
한국은 나에게는 외국이다. 그래서 인지 이곳에서 받게 된 MVP의 영광은 대단한 성취감을 느끼게 해준다. 어젯밤 잠을 설쳤는데 이미 이러한 결과를 알고 있었다면 편한 잠을 잘 수 있었을 텐데…. 야구를 시작하고 22년 동안 가장 기쁜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 다.
누가 가장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 하며, 감사드리고 싶은 사람들을 꼽는다면?
부모님께 이 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고 빠른 시일 내에 방문하고자 한다. 아내에게 고맙다. 그녀는 야구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항상 곁에 있어 주는 그녀가 고마왔다. OB 베어스는 나에게 하나의 빅 패밀리(Big Family)였다. 잘 대해 준 코칭스태프 이하 모든 선수들에게 감사한다.
MVP 예상은 하고 있었나?
후반기들어 컨디션이 좋았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한 시즌을 마감하고자 하였다. 좋은 경기 감각을 유지하며 팀에 공헌하고자 하였던 것이 나 개인에게도 영광이 돌아온 것같다. 오늘도 ‘그냥 결과를 보러 오자’하는 생각을 되뇌였었다.
내년 시즌 계획은?
물론 재계약이다. 아내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 모두 한국을 사랑한다. 입단 연봉은 수준 이하였으나 전혀 개의치 않았고, 야구를 위해 온 이상 좋은 여건이 주어지면 그와 더불어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문제가 되지않는다고 본다.
한국 적응의 가장 어려운 점은?
단지 의사소통이 문제다(Only the language). 앞에서도 말했지만 한국을 사랑하는 우리로서는 한국을 좀더 알기에는 역시 언어의 장벽이 높다. 이웃들과도 친하다. 지금은 자구책으로 테이프를 구입해서 열심히 한국어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신인왕인 김수경 선수에 대해?
훌륭한 선수다. 얼굴을 볼 때마다 통역에게 몇 년차 선수인지를 물어 보았다. 신인이라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프로 5∼6년차 같은 놀라운 피칭을 보여 주었다. 개인적으로 성숙한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한국행을 결정할 외국 선수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한국어를 배우는 것만이 한국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프로리그가 쉬운 게 아니다. 열린 마음과 열린 생각으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인내심 있게 견딘 자만이 좋은 결과를 낳으리라 생각한다.
우즈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5년 동안 뛰면서 홈런 174개, 510타점, 타율 2할9푼4리를 기록했다. 그는 외국인 선수 중 유일한 정규 시즌 MVP로 기록됐다. 2009년까지 유일한 외국인 MVP가 우즈다.
2003시즌에 그는 일본 프로야구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 계약을 맺었다. 일본에서는 한국 프로야구를 깔봤기 때문에 우즈의 영입에 부정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우즈는 첫 시즌에 2할7푼3리의 타율에 홈런 40개로 공동 1위에 올랐다. 그는 한국과 일본에서 홈런 1위에 오른 첫 번째 선수가 됐다.
우즈는 2004시즌에도 2할9푼8리의 타율에 홈런 45개로 공동 1위에 올랐다. 우즈의 놀라운 행진은 다음 시즌에도 이어졌다.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한 우즈는 3할6리의 타율에 홈런 38개를 기록했던 것.
우즈는 2006시즌에는 3할1푼의 타율에 홈런 47개로 홈런왕이 됐고 144타점을 추가해 MVP수상이 유력했지만 이 상은 팀 동료인 후쿠도메 고스케에게 돌아갔다. 우즈는 2008시즌까지 주니치에서 뛰었다.
우즈는 플로리다주에서 부동산업을 하며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http://www.nikkansports.com/baseball/news/p-bb-tp0-20100325-610017.html
기본 정보 | |
---|---|
국적 | 미국 |
출신지 | 플로리다 주 |
생년월일 | 1969년 8월 19일(1969-8-19) (40세) |
신장 | 185 cm |
선수 정보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수비 위치 | 내야수 |
프로 입단 연도 | 1988년 |
첫 출장 | KBO / 1998년 NPB / 2003년 3월 28일 |
경력 | |
|
'특집 > 추억의 스페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의 스페셜] 박찬호가 한국에 간다면... (0) | 2009.12.16 |
---|---|
[추억의 스페셜] 대만 특급 MLB 도전기 (0) | 2009.12.16 |
[추억의 스페셜] 보트피플에서 탄생한 풋볼 스타 (0) | 2009.12.14 |
[추억의 스페셜] 천하무적 야구단 임창정의 '야구 영화' (0) | 2009.12.13 |
[추억의 스페셜] ESPN 박세리 특집 프라임 타임 방영 (2) | 2009.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