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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NBA 30개구단 역사

[NBA 30개 구단 역사(4)]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by 밝은터_NJT 2010.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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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사진: Flickr, Pic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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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050701125303.tif.jpg by DavidGiard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하면 생각나는 것은 ‘배드 보이스
(Bad Boys)’라는 별명이다. 80년대에 아이제이아 토마스, 빌 레임비어, 데니스 로드맨, 조 듀마스는 ‘악동’으로 명성을 떨쳤고 ‘배드 보이스'라는 별명이 자연스럽게 따라 다녔다.

 

피스톤스는 그러나 90년대 중반 코트의 신사 그랜트 힐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하면서 ‘굿 보이스(Good Boys)'가 됐고 이는 저조한 팀 성적 및 인기 하락의 원인이 됐다. 2001-02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릭 칼라일을 영입하면서 ’짠물 수비‘를 갖추게 된 피스톤스는 2년 연속 디비전 챔피언에 오르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피스톤스는 얼마 후 칼라일을 해고하고 명장 래리 브라운을 데려와 단단한 팀워크로 1990년 이후 14년 만에 NBA 챔피언 결정전 진출해 LA 레이커스를 누르고 챔피언이 됐다. 피스톤스에 대해 알아보았다.

 

Detroit, Michigan and Army Parade with a Marching Band with the Hudson Department Store in the Background.
Detroit, Michigan and Army Parade with a Marching Band with the Hudson Department Store in the Background. by David C. Foster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디트로이트라는 도시: 미시건주 오대호 연안에 있는 디트로이트(Detroit)하면 떠올리는 것은 역시 자동차다. 자동차 업계의 빅3 GM, 포드, 크라이슬러의 본사가 디트로이트에 있다. 1986년 헨리 포드가 최초로 자동차를 만든 도시가 디트로이트다. 이 도시는 1701년 프랑스 무역업자 앙투안 드 라 모트 카디야크가 세웠는데 De Troit(‘해협의’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로 ‘드트르와’로 발음)가 오늘날의 디트로이트가 됐다.

 

디트로이트 시민: 자동차 산업의 시발지이다 보니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은 도시다. 따라서 이 도시에서는 노동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NBA팀인 피스톤스를 이야기할 때 ‘블루 칼라’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도 도시의 이런 분위기에 기인한다. 노동 운동의 정신이 베어 있어서인지 농구팬들은 상당히 적극적이다. 신사적인 것보다는 거친 플레이를 선호한다. 과거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원정경기에 상당수의 디트로이트 팬들이 원정 응원을 가 “(우리는 못 했지만 너희는) LA를 눌러라(Beat LA!)"고 외친 것을 보면 ‘터프함’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피스톤스의 역사: 자동차 피스톤을 제작하는 회사의 사장인 프레드 졸너(Zollner)가 창단한 팀인 피스톤스는 처음에는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을 근거지로 했다. 1957년 디트로이트로 근거지를 옮겼는데 여전히 지역 분위기에 맞아 피스톤스라는 닉네임을 그대로 사용했다. 피스톤스는 1949 NBA에 합류한 이후 NBA에서 챔피언 등극 2, 컨퍼런스 우승 6회의 괜찮은 성적을 냈다. 피스톤스 구단의 절정기는 ‘배드 보이스’가 활약했던 80년대 후반이다. 당시 2년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세웠다.

 

피스톤스에서 등번호 영구결번 한 인물은 척 데일리(2), 조 듀마스(4), 아이제이아 토마스(11), 비니 존슨(15), 밥 레이니어(16), 데이브 빙(21), 빌 레임비어(40) 등이다.

 

Chuck Daly Coach of the Detroit Pistins

 최고의 감독 척 데일리
데일리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원조 드림팀의 감독이었다. 당시 원조 드림팀에는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래리 버드, 패트릭 유잉, 말론, 데이비드 로빈슨, 스카티 피펜 수퍼스타가 모두 출전해 세계적인 관심을 있다. 그런 팀의 감독이었다는 것은 그만큼 데일리 감독의 리더십이 출중함을 의미한다.

잭슨 레이커스 감독은 데일리는 항상 친절을 베푼 지도자였다 회상했다. 물론 감독은 한때 앙숙 관계였다. 잭슨이 시카고 불스 감독이었던 시절, 데일리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감독이었다. 80년대에 팀의 라이벌 대결은 대단했다. ‘배드 보이스 불렸던 피스톤스는 조던의 불스에 거친 플레이를 펼치며 승리를 가져갔고 80년대에 NBA 챔피언 자리에 차례나 올랐다. 조던의 불스는 배드 보이스때문에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것이다. 데일리는 피스톤스 선수들에게 항상 거친 플레이 강조했다.

통산 성적 638437패를 자랑하는 데일리는 1996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10인에 뽑히기도 했다. 데니스 로드맨도 데일리 밑에서는 순한 양처럼 행동했다. 어떤 이는 그를 두고 “’배드 보이스 함께 있었던 굿 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데일리가 다루지 못하는 선수는 없었다 말하기도 했다.

화려한 농구 인생과 친구들을 뒤로 하고 그는 2009 타계했다.

 

12th Annual ESPY Awards - Show

최고의 감독 래리 브라운

래리 브라운은 ‘플레이오프 진출 전문 감독’으로 유명하다. , 하위권의 팀을 강팀으로 만드는 전문가로 통했다. 덴버 너기츠, 샌안토니오 스퍼스, LA 클리퍼스, 인디애나 페이서스, 필라델피아 76ers 등을 거치며 이 팀들을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그는 ‘90년대 동네북’이었던 76ers 2001 NBA 챔피언 결정전에 올려놓기도 했다. 리그의 웃음거리였던 클리퍼스를 구단 사상 최초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일(1992, 1993)은 브라운 감독의 최고의 업적 중 하나다. 선수 시절엔 3차례나 ABA 어시스트 왕이 됐고 1964년 올림픽에 출전했다. 캔자스대와 UCLA의 감독으로도 활약한 브라운은 리그에서 알아주는 ‘저니 맨(Journey man)'이다. 피스톤스에서도 한 차례 챔피언으로 인도해 역시 브라운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DREAM TEAM TWO

 
영원한 피스톤스 맨 조 듀마스

'영원한 피스톤스 맨'인 조 듀마스는 피스톤스에서 프로 데뷔를 한 후 줄곧 디트로이트를 떠나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는 피스톤스가 1989년과 1990 NBA 챔피언이 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외곽슛이 좋고 무엇보다 수비가 좋은 선수였다. 올해의 수비팀(베스트5)에 무려 4번이나 들어갔을 정도다. 1989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MVP로 선정되기도 한 듀마스는 현재 피스톤스 구단의 사장으로 일을 하고 있다.

 배드 보이스의 선동자 토마스

 '전설적인 포인트 가드'하면 아이제이아 토마스를 떠올린다. 피스톤스 시절 그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코트 전체를 휘젓고 다니며 소속팀을 리그 최강으로 이끈 바 있다. 피스톤스는 토마스 체제하에서 1989 1990 2차례나 NBA 챔피언이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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