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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NBA 30개구단 역사

[NBA 30개 구단 역사(2)] LA 레이커스

by 밝은터_NJT 2010.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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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미네소타에서 LA 연고지를 이동한 레이커스는 2008-09시즌까지 10차례 NBA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NBA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한 횟수는 24. 챔피언 결정전에서 10 승리하고 14번은 준우승을 했다.
 

레이커스 역사상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하나는 2000, 2001, 2002년의 레이커스다.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가 중심이 레이커스는 3 연속 챔피언 자리에 올라 구단 역사상 최초로 '스리 피트(Three-peat)' 경험했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사진: ICCsports.com, PicApp.com, GRANDBigBird

Staples Center (Los Angeles)
Staples Center (Los Angeles)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이전까지는 1987, 1988년의 2연패가 최다 연속 우승이었다. 87년과 88년에는 커림 압둘 자바, 매직 존슨이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1972 차례 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레이커스는 80년대 '쇼타임 시대' 5 챔피언 됐다. 80년대에 레이커스는 8번이나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80년대에 레이커스는 보스턴 셀틱스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며 세계 농구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레이커스에는 매직 존슨이 있었고 셀틱스에는 래리 버드가 있었다. 선수는 대학 시절 라이벌이었다.

수퍼스타가 중심이 레이커스와 셀틱스의 라이벌 대결은 NBA 인기를 올려놓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있다.   구단의 80년대 라이벌 대결은 여러 이유로 관심을 끌었다. 버드와 존슨의 대결뿐만 아니라 백인 군단(셀틱스) 흑인 군단(레이커스) 대결, 동부 끝과 서부 끝에 있는 구단의 대결 등이 많은 이의 관심을 만한 요소였다. 구단의 라이벌 대결이 시작하기 NBA 적자에 시달리는 리그였다. 레이커스-셀틱스의 세기의 라이벌 대결이 리그가 성장하는 밑거름을 줬다면 마이클 조던(시카고 불스) 등장은 NBA 미국 최고의 프로 스포츠로 자리를 잡도록 했다.


NCAA Championship Game: Michigan State Spartans v North Carolina Tar Heels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

셀틱스와 레이커스는 1984, 1985, 1987 차례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맞붙었다. 대결 모두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미국 내에서는 시리즈 내내 구단의 대결이 최고의 뉴스거리였다.

리그를 살렸던 구단의 라이벌 대결은 80년대 후반까지 계속 이어지다가 90년대에 존슨과 버드의 은퇴로 끝이 났다. 셀틱스는 90년대와 21세기에 평범한 구단으로 전락했고 레이커스는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의 편차가 심했다. 90년대는 시카고 불스의 독주가 대세였다.

셀틱스와 레이커스의 라이벌 전초전은 사실 60년대부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셀틱스가 모두 승리를 거뒀다. 60년대에 6차례 맞대결을 펼쳐 셀틱스가 전승을 거뒀다. 진정한 라이벌전은 아니었다. 80년대 라이벌 대결에서는 레이커스가 2 우승, 셀틱스가 1 우승을 기록했다.

레이커스와 인연을 맺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인물은 20명이다. 선수 15, 감독 4, 방송인1명이 주인공.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레이커스 출신은 커림 압둘 자바, 윌트 체임벌린, 게일 굿리치, 코니 호킨스, 매직 존슨, 클라이드 로벨레트, 슬레이터 마틴, 맥카두, 조지 마이칸, 미켈슨, 팔러드, 제임스 워디, 제리 웨스트, 등이다. 헌은 레이커스 경기 중계 아나운서로 무려 42 동안 일하면서 수많은 농구 용어를 창출했다.


California v UCLA

커림 압둘 자바는 NBA 역대 최다 득점 선수로 그의 대기록을 깨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윌트 체임벌린은 평균 득점이 역대 최다인 30.1득점인 전설적인 센터. 매직 존슨과 제임스 워디는 쇼타임의 중심이었고 게일 굿리치, 맥카두, 조지 마이칸, 제리 웨스트 등도 레이커스 왕조를 세우는 결정적인 역할을 인물들이다. 특히 웨스트는 은퇴 후에도 레이커스 감독, 단장, 부사장 등으로 구단이 높은 수준의 구단이 되는데 공을 세웠다.

웨스트는 샬럿 호네츠에 지명된 코비 브라이언트를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고 샤킬 오닐이 올랜도 매직을 떠나 레이커스와 계약을 맺도록 설득한 있다. 그는 또한 선수가 신경전을 벌일 때마다 충고를 하면서 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도왔다.

Magic Johnson Interview

Magic Johnson Interview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존슨은 영원한 레이커스 맨이다. 그는 선수 시절 줄곧 레이커스 선수로 뛰었고 이후 잠시 감독으로 활동한 구단의 부사장이 됐다. 커림 압둘 자바도 구단의 코치로 활동 중이다. 제임스 워디는 레이커스 경기 중계사인 K-CAL 방송의 스튜디오 분석가로 일하고 있다.


레이커스를
거쳐간 유명 감독을 보면 대표적인 인물이 라일리다. 그는 쇼타임 시대에 레이커스 감독이었다. 잭슨은 설명이 필요 없는 전설적인 감독. 레이커스에서 4차례 챔피언 반지를 받았다.


Portrait of Los Angeles Lakers owner Jerry Buss
제리 버스

레이커스의 구단주는 제리 버스로 그는 1979 레이커스 구단을 6,750 달러에 사들였다. 당시에는 스포츠 역사상 최고액 구단 매각액이었다. 제리 버스 구단주의 리더십 아래 레이커스는 더욱 견고한 구단이 됐다.  버스는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만진 인물이다. 그는 언제 부동산을 매입하고 언제 매각하는 지를 너무나 아는 천재적인 투자가다.

레이커스 역사를 뒤돌아볼 버스 구단주의 투자는 대부분 적중했다.

현재 레이커스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인물은 미치 컵첵이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출신인 컵책 단장 및 부사장은 1976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같은 해 NBA 드래프트에서 워싱턴 불리츠(위저즈)에 의해 전체 13번으로 지명돼 프로생활을 시작한 바 있는 선수 출신이다.

워싱턴에서 스타로 자리잡았던 그는 1981년 레이커스와 계약하며 '호숫가의 사나이‘가 됐다. 그러나 첫 시즌에 무릎 부상을 당한 그는 재활 치료 중 UCLA에서 MBA 과정을 시작했다. 레이커스의 프런트 오피스 일을 돕기 위한 준비였다.

이후 기적처럼 코트에 돌아온 컵책은 1985년에 레이커스의 챔피언 등극을 도운 후 1986년부터 단장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농구팀 운영 책임자였던 웨스트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컵책은 14년간 카리스마가 넘치는 단장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지난 2000년 웨스트가 현직에서 물러나자 새로운 단장으로 취임했다.


미니 박스  '쇼타임' 대 '샤크-코비팀' 누가 이길까

Kobe Bryant Smiles
Kobe Bryant Smiles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만약 ‘쇼타임’의 레이커스와 ‘코비-샤크’의 레이커스를 맞붙는다면 어떤 팀이 이길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일 것이다.

‘쇼타임’때의 레이커스는 보스턴 셀틱스와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면서 80년대를 풍미했던 팀. 매직 존슨, 커림 압둘 자바, 제임스 워디, 바이런 스캇 등으로 이뤄진 ‘쇼타임’ 레이커스는 NBA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리그로 발돋움 시키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바 있다.

코비 브라이언트와 샤킬 오닐이 이끌었던 현재의 레이커스도 막강하다. 한때 3년 연속 챔피언에 오르며 무적함대를 자랑했다. 레이커스 90년대에 시카고 불스가 있었다면 2000년대에는 레이커스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80년대의 팀과 현재의 팀이 맞붙는다면 80년대의 팀이 우세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쇼타임’ 레이커스의 일원이자 '샤크-코비' 시대에 뉴저지 네츠의 감독이었던 바이런 스캇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매치업별로 살펴보기로 한다.

▶센터간의 대결

샤킬 오닐은 커림 압둘 자바를 상대로 지금처럼 득점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실점도 많을 것이다. 압둘 자바의 스카이 훅 샷을 막을 선수는 아무도 없다. 또 압둘 자바는 근성이 있는 선수다. 그는 화나면 더욱 점수를 올리는 선수다.

▶슈팅 가드의 대결

‘쇼타임’ 레이커스의 슈팅가드였던 스캇은 “솔직히 이 매치업은 내가 자신이 없다. 나는 경기 내내 코비 브라이언트를 밀착 마크하느라 시간을 다 보낼 것이다. 슈팅 가드 싸움에서는 우리가 밀린다”고 말했다.

▶포인트 가드 대결

매직 존슨을 막을 포인트 가드는 없다. 코비가 매직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존슨이 포스트 플레이를 하면 도저히 상대가 되질 않는다. 데릭 피셔나 린지 헌터와 같은 키작은 가드들은 더더욱 매직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포워드의 대결

제임스 워디를 로버트 오리가 막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키가 크면서도 몸이 가드 못지 않게 빠른 워디를 제대로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없다고 볼 수 있다. [밝은터]

 

미니 박스 전설적인 아나운서 칙 헌은 누구인가
Chick Hearn Dead At 85

LA 레이커스 중계의 ‘전설적인 목소리’ 칙 헌이 2002년 8월5일 8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칙 헌은 ‘슬램 덩크’등 그동안 숱한 신생어를 만들어내며 농구팬들의 사랑을 받아 온 언어의 마술사. 이젠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만 그의 ‘농구 중계’ 일생을 담아봤다.

◇ 칙 헌은 누구인가

칙 헌은 아무리 몸이 아파도 일단 중계석에 앉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야말로 ‘스포츠 중계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1916년 11월27일 일리노이주 오로라에서 출생한 그의 본명은 프랜시스 대일 헌이다.  칙(chick)이라는 별명은 AAU 농구 선수였던 시절 운동화가 든 박스를 받았는데 그 안에 치킨(chicken)만 들어 있는 것이 발견됐고 이때부터 동료들이 ‘칙(chick)’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난 56년 LA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LA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기 시작했다. 그는 USC 풋볼과 농구의 아나운서로 활동했고 이후에는 라디오 토크쇼를 진행하며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60년대에 에미상을 두 차례나 수상 했던 헌은 레이커스가 미니애폴리스에서 LA로 옮긴 61년부터 레이커스의 ‘플레이-바이-플레이’ 중계 아나운서가 된 이후 2002년 6월12일 뉴저지 네츠와의 챔피언십 결정전 4차전으로 끝으로 42년간의 중계 일생을 마감하게 됐다.

특히 지난 65년 11월21일부터 2001년 12월16일까지 36년동안 3천338경기에 연속 마이크를 잡았다.  칙 헌이 마이크를 잡았던 기간 레이커스는 총 36만2천32득점에 2천74승을 거뒀고 8차례나 NBA정상에 올랐다.

제리 웨스트, 윌트 체임벌린, 커림 압둘 자바, 매직 존슨,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등이 챔피언에 오르는 장면을 목격하는 등 232명의 플레이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2010/01/06 - [연재/NBA 30개구단 역사] - [NBA 30개 구단 역사(1)]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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