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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추억의 인터뷰] 앨런 아이버슨

by 밝은터_NJT 2009.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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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n Iverson_2004 All-Star games
Allen Iverson_2004 All-Star games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앨런 아이버슨이 신인이었던 1996-97시즌의 일이다. 당시 NBA 경기 취재를 자주 갔던 나는(밝은터) 아이버슨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아이버슨은 조지타운대를 다니다 NBA 점프한 신인이었다.

아이버슨을 인터뷰하기 전에 필라델피아 76ers 감독이었던 조니 데이비스를 인터뷰했다. 차분한 사람이었고 욕심이 없어 보였다. 성적이 좋지 않아 시무룩했던 그의 표정에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인터뷰가 마쳐졌고 나는 여러 기자들에게 둘러 싸였던 아이버슨에게 다가섰다.

이것저것 질문을 하다가 하더웨이와 크로스오버 드리블을 비교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질문을 던졌다. 당시 어떤 사람은 하더웨이가 낫다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아이버슨은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거의 욕이 나올 같았다. “아직 어려서 그렇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후 행동을 보니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임을 알게 됐다. 어떻게 보면 순진한 것이고 어떻게 보면 감정 컨트롤이 안되는 사람이라고 있다.

가끔 NBA 경기장에서 아이버슨을 기회가 있었는데 여전히 거칠게 말하곤 했다.

 아이버슨은 선수로서는 화려한 출발을 했다.1996-97시즌에 신인상을 받았고 2001 올스타게임에서 MVP 선정됐다. 그는 같은 정규 시즌 MVP 뽑혔다.

아이버슨의 최전성기는 역시 2000-01시즌이었다. 당시 그의 소속팀인 76ers NBA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상대는 레이커스였다. 아이버슨은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했다. 하지만 76ers 레이커스에 아깝게 패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아이버슨의 인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슈퍼스타 대열에 올랐다. 작은 선수가 76ers 이끌고 맹활약을 펼친 것에 팬들은 감동했다. 인기 덕분에 그는 2009년까지 번도 올스타 명단에서 빠진 적이 없었다.


Allen Iverson
Allen Iverson by ebot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아이버슨은 10 이상을 NBA에서 뛰면서 연봉으로만 15천만 달러 이상을 챙겼다. 부가수입을 포함하면 실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있다. 필라델피아의 영웅이었지만 그는 2006 1219 덴버 너기츠로 트레이드됐다. 76ers 고위관계자들은 그를 중심으로 팀을 만드는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너기츠에서 카멜로 앤서니와 좋은 팀을 만들 것으로 보였다. 아이버슨은 너기츠에서도 평균 26.4득점을 기록하며 죽지 않았어 외쳤다.너기츠는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아이버슨은 다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로 트레이드됐다. 2008113일의 일이다. 그는 그곳에서 아예 벤치 멤버가 되고 말았다. 구단과의 갈등이 점점 깊어졌다. 그리고 그는 방출됐다. 이후 그를 원하는 팀은 없었다. 기능적인 면에서 과거에 비해 떨어지는 데다가 계속 구단과의 마찰이 빚어지니 그를 데려가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능력으로 봐선 그는 어느 팀에서든 필요한 선수다. 섞이는 것에서 문제가 되다보니 그를 원하는 팀이 거의 없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반항아 기질이 있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은 견디질 못했다. 그러다보니 코트 사회에서도 반항하는 행동을 많이 했다. 1997년에는 과속으로 운전하다가 경찰에 잡혔는데 안에 마리화나와 총기가 있어 체포됐다. 당시 아이버슨은 사회봉사형을 받았다.

그는 2000년에는 동성애자를 욕하는 앨범을 만들었지만 사회적인 비난의 목소리로 발매를 하지 못했다. 2002년에는 아내를 밖으로 집어던지는 일이 있었고 2004년에는 카지노에서 사람들이 지켜보는데도 쓰레기 통에 소변을 보는 추태를 부렸다. 프로 생활 내내 감독과의 마찰이 이어졌다. NBA에서 힙합문화의 대명사였던 아이버슨은 드레스 코드 주타깃이 됐다.

그가 반항할 때마다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마치 기성 세대에 대해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아이버슨이 대신 해주는 같은 대리만족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이버슨은 2009 11 인터뷰에서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76ers 감독이었던 래리 브라운은 이에 대해 기다리면 기회가 이라며 은퇴를 하지 것을 종용했다. 트레이드 마감일에 임박하거나 플레이오프가 다가오면 그를 원하는 팀이 분명 나올 것이라는 브라운 감독의 설명이다.

특이하면서도 특별한 인생을 살았던 아이버슨. 그가 NBA 무대에서 사라질지 농구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Updated 2009.12.05

아이버슨 인터뷰 내용을 파일을 뒤적거리다 찾아내었습니다.

앨런 아이버슨은 다른 루키에 비해 많은 스포트라이트 받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인터뷰하기가 어려웠다. 다음은 아이버슨과의 시즌 중 인터뷰 내용.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아이버슨
인터뷰 일자: 1996-97시즌 중
인터뷰 장소: 클리퍼스 홈경기장이었던 스포츠 아레나
 
-대학농구시절보다 NBA에서 좀 더 고전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올해에는 부상이 더 좋은 플레이를 방해한 것 같다. 올시즌 중반부터 목부상으로 고전을 했지만 대학농구시절보다 어려운 점은 없다. 열심히 하면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96-97  NBA시즌이 종반을 향하고 있는데 무엇을 배웠나.
 
* 팀 메이트인 데릭 콜먼, 제리 스택하우스 등을 비롯 타팀의 스타플레이어들과 경기를 치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포인트 가드로서 나의 역할은 팀원들이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과 팀이 만족스런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경험을 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승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팀원의 단결이라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코트에 나선 5명중 1명이라도 팀웍에 흠집을 내면 절대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버슨의 화려한 개인기가 오히려 팀웍을 방해한다고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 포인트 가드는 코트에서 많은 것을 하게 마련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슛 쏘는 것을 좋아한다. 마이클 조던과 스카티 피펜도 두려워 하지 않고 그들 앞에서 슛을 마음놓고 던지는 것이 나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조던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76ers를  불스와 같은 팀으로 만들겠다. 지난해 11월 강호 뉴욕 닉스와의 2경기에서 평균 30득점을 올려 팀 승리로 이끈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크로스 오버 드리블의 황제라는 칭송을 듣는데 혹자는 마이애미 히트의 가드 팀 하더웨이가 크로스 오버에 더 능숙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의견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생각하는 사람 나름이다. 하지만 크로스 오버 드리블에는 자신있다.
 
-한 농구 전문가는 "아이버슨은 스피드가 가장 빠른 농구선수"라고 평가 했는데.
 
*스피드는 가드의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스피드가 있으면 마음 먹은대로 플레이를 할 수 있다. 하늘이 나에게 준 이런 장점을 살려 최고의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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