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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 Column/추억의 칼럼

[추억의 칼럼] 에인절스의 배고픈 사자들

by 밝은터_NJT 2010.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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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20일자 밝은터의 칼럼입니다. 2002년 에인절스는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됐습니다.

2002 World Series, Angels the Champion
2002 World Series, Angels the Champion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배고픈 사자들(Hungry Lions)’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 구원투수진에 붙여주고 싶은 별명이다. 이들의 이력서를 들춰본 사람이라면 ‘배고픈 사자들’이라는 닉네임을 부여하는데 동의할 것이다.

먼저, 2002 포스트 시즌이 낳은 신세대 스타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는 16세 때 에인절스 구단의 엄청난 관심 속에 계약했지만 마이너리그에서 부상과 부진으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했다. 싱글A에서조차 형편없는 성적을 낸 그는 빅리그 진출에의 희망 조차 가질 수 없었던 선수였다.

마이크 소시아 감독의 총애를 받고 있는 브렌든 다널리는 마이너리그와 인디펜던트 리그를 전전했던 그야말로 무명선수다. 그의 이력서에 방출(release)이라는 단어는 무려 8번이나 나온다.

벤 웨버는 어떤가. 그는 1991년부터 96년까지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가 꿈을 접고 척추신경의가 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갔던 인물이다.

그는 곧바로 대만 프로야구의 러브콜을 받고 의사가 되는 것을 포기한 채 97년부터 98년까지 타이페이 팀에서 활동했다. 웨버는 오프 시즌 중에는 4달러50센트를 받고 공장에서 조립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특급 마무리 전문 투수로 알려진 트로이 퍼시벌도 한때 야구를 중단하려고 했던 선수다. 그는 1990년 프로에 데뷔한 후 마이너리그 싱글A 보이지(Boise) 팀에서 포수로 뛰며 타율 2할을 기록했던 ‘평범 이하’의 선수였다. 퍼시벌은 1991년 투수로 전향했고 의외의 활약을 펼치며 1995년 에인절스에 합류했다.

‘배고픈 사자’들이 에인절스의 불펜의 핵이 된 사연도 독특하다.

로드리게스는 지난 9월 선수 확장(25명→40명)때 구단에서 경험을 실어주기 위한 배려를 해 빅리그 승격을 이뤘는데 겁 없는 투구로 상대타자들을 줄줄이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을 인정 받아 플레이오프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로드리게스는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첫 2승을 포스트 시즌에서 기록한 첫 투수다. 그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결정전까지 4승을 올렸다.

2000년 겨울에 살충제 관련 회사에서 일하며 어렵게 생활을 했던 다널리는 같은해 터론토 블루제이스와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해 다시 방출 됐지만 2001년 에인절스에서 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부여 받았다.

30세를 눈앞에 뒀던 다널리는 더블A와 트리플A에서 9승2패, 13세이브를 기록하며 당해 10월10일 에인절스의 40인 명단에 들어가는 감격을 누렸다.

대만에서 2년동안 19승10패, 2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한 후 고국으로 돌아온 웨버는 1999년과 2000년 시즌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산하 트리플A팀인 프레즈노에서 뛰었고 그곳에서 현 에인절스 코치인 란 레나키를 만났다. 이후 레나키가 에인절스의 3루수 코치로 부임하면서 웨버의 영입을 추천했고 이는 웨버의 인생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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