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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터가 쓴 2005년 2월11일자 기사입니다.
Ha Seung Jin by iccsports |
"하승진이 올해는 NBA 진출이 힘들 것이다..."
지난 2004년 여름 NBA 신인 드래프트가 열린 바로 다음 날 아침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존 내쉬(John Nash) 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루 전날 열린 드래프트에서 블레이저스가 하승진을 2라운드에 지명했기 때문이었다.
밝은터는 내쉬 단장으로부터 "하승진은 우리의 미래"라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그의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나왔다.
"올 시즌에는 하승진과 계약할 의사가 없다."
매정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말투였다. 그는 흔히 말하는 '립 서비스'도 생략한 채 거듭 자신의 뜻을 강조했다. 충격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한국에서는 첫 한국인 NBA 선수가 나왔다며 자축을 하고 있는 판에 이게 웬 말인가?
이건 분명 특종이었다. 그러나 하승진의 에이전트인 존 김(John Kim)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한 후에 기사를 쓰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쉬 단장이 올 시즌에는 계약을 하지 않겠다던데?" 존 김은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비밀을 기자가 알아낸 것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 기사는 쓰지 말아주길 부탁합니다." 그는 애절하게 말했다.
"왜요?"
나는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존 김은 "승진이는 NBA에 진출할 수 있는 재목인데 이런 기사가 나가면 그동안 추진됐던 다른 계약들에 문제가 생기고 NBA 진출도 어려워질지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NBA 구단이 아닌 스포츠 관련 회사와의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NBA 진출에 먹구름이 드리워졌고 포틀랜드 구단이 계약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는 기사가 나가면 하승진은 여론에 밀려 연세대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이었다.
단장과의 대화 내용을 돌아보면 그런 발언("사인할 계획이 없다")이 쉽게 나올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내쉬 단장에게 "하승진이 NBA 진출을 못하면 한국 대학으로 가야한다"고 말하자 그는 "모르는 사실이었다"며 당황해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대학 농구 선수가 드래프트에 이름을 올릴 경우 다시 캠퍼스로 갈 수 없는 규정이 있는데 한국 선수는 다시 본국 대학팀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미국 진출을 위해 자비를 들였고 아버지인 하동기씨 까지 나서서 아들의 NBA 진출을 도왔던 터라 가정살림이 어려워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런 기사를 쓸 경우 어린 선수의 장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결국 포틀랜드 단장의 발언 내용은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특종 기사를 포기한 후에 하승진은 곧바로 한국 나이키와 계약을 맺었다.
연세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기사는 물론 나오지 않았다. 하승진은 NBA의 마이너리그라고 할 수 있는 ABL(포틀랜드 레인)에 진출해 꾸준히 좋은 경기를 했고 결국 '내쉬 단장의 계획과는 다르게' 2004년 12월말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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