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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30개 구단 역사(1)] 보스턴 레드삭스 A "Model" Fenway Day by B Tal 보스턴 레드삭스는 1918년 월드시리즈에서 챔피언이 된 후 단 한 번도 챔피언 타이틀을 갖지 못했다. 이 팀이 2004년에 챔피언이 되기 전까지 '밤비노의 저주'라는 말이 끊임없이 따라다녔을 정도다. 레드삭스의 역사를 줌인해 본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사진: Flickr, PicAPP ■ 보스턴 아메리칸스 레드삭스는 1900년 보스턴 아메리칸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했다. 그리고 이후 서머셋, 필그림이라는 닉네임을 가졌다. 창단 후 3년 만인 1903년 보스턴은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챔피언이 됐다. 1919년까지 보스턴은 5차례 챔피언이 되는 등 황금기를 누렸다. 보스턴은 1907년 12월18일 레드삭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원래는 .. 2009. 12. 29.
스태노조롤(Stanozolol)은 무엇인가 메이저리거 라파엘 팔메이로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스태노조롤(Stanozolol)’은 무엇인가. 스태노조롤은 일종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Anabolic Steroid)’로 선수들 사이에는 ‘근육 강화제’로 알려져 있다. 이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육상 선수인 벤 존슨(캐나다)이 애용했던 것으로 약물 검사가 시작되기 전 수년간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던 약물이다. 도핑 전문가들에 따르면 스태노조롤은 운동 선수들이 아주 좋아하는 스테로이드로 복용하면 1개월 만에, 주사하면 2개월 만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도핑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스태노조롤이 체내에 들어가면 단백질 동화 호르몬이 증강되고 이 호르몬은 근육을 증강시킨다”고 한다. 스태노조롤은 원래 ‘유전적 혈관종’이라는.. 2009. 12. 29.
[스타 열전] 49세에 MLB에서 뛰었던 훌리오 프랑코 프로 야구에서는 선수가 30세가 넘어가면 노장으로 불린다. 30대 중반이면 은퇴를 할 나이이고 30대 후반으로 가면 '신기한' 선수가 된다. 그 나이가 됐음에도 계속 뛰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신기하다.  40세가 넘어가면 완전히 노인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요즘은 의학과 과학이 발달되어서인지 40대 선수들이 의외로 잘한다. 메이저리그에는 49세의 현역 선수가 있었다.지금은 은퇴한 훌리오 프랑코가 주인공. 글: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사진: PicApp, 뉴스뱅크 이미지☆ 47세에 메츠와 2년 계약  프랑코는 지난 2005년 12월8일 메츠의 오마 미나야 단장과 2년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그의 나이 47세였다. 47세의 선수와 2년 계약을 맺은 미나야 단장은 정신 나간 사람일까? .. 2009. 12. 28.
[강추] 건강하게 사는 법에 대한 포털 사이트(영어) 건강하게 사는 법에 대한 포털 사이트 (영어) http://www.livestrong.com/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Get Healthy Drugs (약) Treatments (치료) Diseases and Conditions (질병) Symptoms (증상) Vitamins (비타민) Poisons (독성물질) Mental Health (정신건강) Local Business Directory (관련 업체) Diet & Nutrition Healthy Foods (건강식품) Eating for your Condition (건강에 좋은 음식) Diet & Weight Loss (다이어트) The Daily Plate (식사) Fitness Sports (운동) Outdoors (실외 운동) Inj.. 2009. 12. 28.
[스타 열전] '빅파피' 데이비드 오티스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타자 데이비드 오티스(1975년생)를 보면 왠지 정이 간다. 야구를 잘할 것 같지 않은 뚱뚱한 몸매에 서글서글한 얼굴 그리고 한때 무명 시절을 보냈던 선수라는 조건이 편안함을 주면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야구 팬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굿바이 홈런 및 안타를 자주 터뜨렸기 때문이다. 베이브 루스도 그래서 더 인기를 끌지 않았을까. 오티스는 그러나 2003년 메이저리그가 실시한 약물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100명 중 한 명인 것으로 알려져 망신살이 뻗쳤다. 오티스는 어떤 선수인지 알아본다. ☆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 오티스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에스투디아 에스파야트 고등학교에 다녔던 1992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자유계약 선수로서 사인을 해 미국으로 오게 됐다. 본격적으로 미국에서 .. 2009. 12. 27.
[추억의 칼럼] 크리스마스에 생각해 보는 인내 2007년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에 밝은터가 미주 중앙일보 스포츠 면에 쓴 글입니다. 분주한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각종 행사와 모임이 있었고 이제 세밑의 중요한 행사가 끝이 났다. 너무 바쁜 나머지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되새겨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다. 석가탄신일이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인 것처럼 말이다. 기자는 아기 예수 탄생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교회에서 말하는 여러 내용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크리스마스 하면 '인내'가 생각난다. 화려하지 않은 곳에서 평범한 부모 밑에서 학정의 시대에 태어난 예수는 '인내'의 화신이었다. 말구유에서 태어난 예수는 30년 동안 평범하게 자랐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렇게까지 평범한 탄.. 2009. 12. 26.
[스타 열전] 160cm의 '루저'라고? 천만에! 엑스타인 & 케이츠 David Eckstein by iccsports 월드시리즈 MVP였던 데이빗 엑스타인은 정말 키가 작은 야구 선수다. 엑스타인을 조명할 때 대부분의 미국 언론은 LA 에인절스에서 쫓겨난 선수가 설움을 딛고 MVP가 됐다는 내용을 주로 다룬다. 그런데 엑스타인과 관련된 다른 뒷이야기는 그에 대한 존경심마저 생기게 한다. 글/사진: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엑스타인은 메이저리거가 될 수 없는 열악한 조건의 선수였다. 키가 176cm(5피트8인치)인 기자는 선수 라커룸에서 엑스타인 옆에 살짝 서 본 적이 있는데 그는 공식 기록에 나온 키보다 훨씬 작았다. 170cm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신발을 신고 측정한 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한 스카우트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 2009. 12. 26.
[스타 열전] 사이영상 7개의 주인공 클레멘스 1962년생인 로저클레멘스는 무려 7개의 사이영상을 받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다. .그는 그러나 현역 선수 마지막 부분에 약물 사용과 두 집 살림 사실리 발각되면서 최고의 투수라는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사실 야구 선수로서는 최고의 삶을 보냈지만 마지막이 좋지 않으니 최고라는 이미지가 흐려졌다. 글: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사진:PicAPP ☆ 역대 다승 9위 개인 통산 354승을 기록한 클레멘스는 역대 투수 중 최다승 부문 9위에 올랐다. 바로 한 단계 앞에 그렉 매덕스가 355승을 기록했다. 클레멘스는 198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데뷔 당시 무려 100마일에 가까운 강속구를 던졌던 20대 초반의 클레멘스는 1986년 24승4패, 방어율 2.48, 탈삼진 .. 2009. 12. 25.
티스토리 선정 우수 블로그 Best of Best 12 우수블로그 Best of Best 12 소개 어느덧 3번째를 맞는 티스토리 우수블로그 선정! 티스토리가 태어난 순간부터 역사를 함께 만들듯 꾸준히 티스토리로 활동해주셔서 3회 연속 우수블로그로 선정된 분들이 무려 12분이나 계십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리며 특별히 소개합니다. :) ▶ 신어지님 ㅣ http://differenttastes.tistory.com ▶ 페니웨이™님 ㅣ http://pennyway.net ▶ 김주완, 김훤주님 ㅣ http://100in.tistory.com ▶ Yasu님 ㅣ http://yasui.kr ▶ 썬도그님 ㅣ http://photohistory.tistory.com ▶ 무진군님 ㅣ http://www.mujinism.com ▶ 사야까님 ㅣ http://sayaka... 2009. 12. 25.
양현승 커넥티드(10)-미적십자사 점거 사건 머리말 2009. 12. 25.
[스타 열전] 러셀 웨스트브룩 UCLA의 2학년생 가드 러셀 웨스브룩은 지난 2008년 6월26일 뉴욕에서 열렸던 북미 프로농구(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4번으로 뽑혔다. 웨스트브룩은 1년 전까지만 해도 UCLA의 주전이 아니었던 선수다. 신입생 때 그는 경기당 평균 3.4득점에 그친 바 있다. 그는 대학 농구 데뷔 경기에서 2분만 뛰었고 신입생 때 20분 이상을 뛴 경기는 두 게임에 불과했다. 고교 졸업을 했을 당시 그에 대한 영입 전쟁이 없었을 정도로 그는 비교적 평범한 선수였다. 그런 그가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4번으로 뽑혔다는 것은 의외였다. 글: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사진: PicApp 러셀 웨스트브룩은 UCLA 2학년이 되자 놀라운 점프력과 힘으로 NBA 스카우트들을 흥분시킨 바 있다. 그러나 외.. 2009. 12. 25.
[추억의 스페셜] NBA 2008 드래프트 클래스 주요 선수 아래 글은 2008년 7월24일 작성한 것입니다. 아래 내용을 보면서 2008 NBA 드래프트 클래스의 주요 선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니다. 글: 밝은터 사진:PicApp 북미 프로농구(NBA) 여름 리그가 한창이다. 여름 리그에는 주로 신인이나 NBA 출전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참가하는데 스카우트들도 총집결해 선수들을 평가하는 작업에 열을 올린다. 여름 리그에서 평가가 제대로 나와야 정규 시즌을 대비할 수 있고 좋은 벤치 선수를 영입할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여름 리그의 베스트5를 알아본다. ■ 베스트 센터: 케빈 러브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신인 센터인 케빈 러브는 여름 리그 4경기에서 18득점, 13.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이 기록만으로도 러브는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는데 기록에 잘.. 2009. 12. 24.
[스타 열전] 크레익 비지오의 헬맷은 왜 더러웠을까 메이저리그 선수 중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선수가 한 명 있었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크레익 비지오(1965년생)가 그 주인공이었다. 198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2007년까지 정확히 20년 동안 한 팀에서만 뛰었던 메이저리그 역사상 27번째로 3000안타를 달성하고 은퇴했다. 글: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사진: PicApp B-G-O 095 by GuppyStorm ■ 한 구단에서 20년 활동 요즘처럼 메이저리그 자유계약 선수들의 이동이 활발한 때에 한 구단에서 20년 동안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크레익 비지오는 지난 198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애스트로스에 1라운드 22번으로 지명된 후 단 한 번도 다른 유니폼을 입은 적이 없다. 비결은 무엇일까. 비교적 낮은 연.. 2009. 12. 24.
[스타 열전] 타율 3할에 사이영상 노리는 잠브라노 시카고 컵스의 에이스인 카를로스 잠브라노(1981년생)는 톰 글래빈보다 더 뛰어난 타자다. 지난 2005년 80타수24안타로 타율 3할을 기록했던 잠브라노는 피안타율보다 타율이 높은 특이한 투수다. 잠브라노는 어떤 선수인지 알아보았다. 글: 밝은터(이 블로그의 블로거) 사진: PicAA ■ 사이영상 도전 잠브라노는 지난 2006년 16승7패, 평균 자책점 3.41을 기록해 사이영상 수상 후보 명단에 들어갔다. 투표 결과 그는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부문 5위에 올랐다. 잠브라노는 2007년에도 사이영상을 노렸다. 18승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투표에서는 5위에 그쳤다.2008년과 2009년에는 사이영상 투표에 들어가기에는 힘든 성적을 냈다. ■ 최희섭과의 인연 잠브라노는 최희섭(현 기아 타이거스)과 인연이 있는.. 2009. 12. 23.
양현승 커넥티드(9)-사우디 근무와 클레어몬트신대원 입학 머리말 2009. 12. 22.
[스타 열전] 코너웍의 마술사 톰 글래빈 배리 본즈의 홈런 기록에 묻혔지만 톰 글래빈(1966년생)은 300승에 대한 반응은 괜찮은 편이었다. 본즈의 최다 홈런 기록만 아니었더라면 글래빈의 300승은 열렬한 반응을 얻었을 것이다. 그가 2007년 300승을 기록했을 때 미 언론은 좌완 투수 글래빈을 조명하며 그의 업적을 소개했다. 팬들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공을 던지는 투수인 글래빈은 1987년 메이저리그 선수가 된 후 20년 만에 300승을 챙겼던 것이다. 왼손 투수가 300승을 올린 것은 역사상 다섯 번째 일이고 글래빈은 300승을 올린 23번째 투수가 됐다. 글래빈은 어떤 선수인지 알아보았다. 글: 밝은터(이 블로그의 블로거) 사진: PicApp ■ 최고의 컨트롤 투수 톰 글래빈의 최대 장점은 역시 컨트롤 능력이다. 미국에서는 '핀 포인.. 2009. 12. 22.
미국에서 교사되기 (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28326 2009. 12. 22.
CBEST와 CSET 합격 경험담(링크) 미국에서 교사를 할 수 있는 자격증 시험인 CBEST와 CSET 합격 경험담을 소개한 내용입니다. http://tong.nate.com/yuria1l/39420652 2009. 12. 22.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5.최종)-'구단주 조던'에 도전 마이클 조던 연재 https://bit.ly/michaeljordanstory 마이클 조던의 ‘최종 은퇴’ 후 워싱턴 위저즈의 에이브 폴린(2009년 11월 작고) 구단주는 조던을 구단 사장으로 두질 않았다. 2003년 5월7일 조던은 위저즈를 떠났다. 당시 조던이 해고된 일은 충격적이었다. 조던이 위저즈에 들어와서 이 구단은 흑자경영 구단이 됐는데 공신을 해고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농구의 황제’가 위저즈에서 선수로 뛰기 전까지 이 구단은 4천만 달러의 적자를 내는 구단이었다. 조던의 존재 하나로 위저즈 구단은 3천만 달러의 흑자를 보게 됐다. 사람들은 폴린 구단주가 냉정하게 조던을 내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폴린의 결정이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조던은 위저즈 구단의 사장 및 단장으로 .. 2009. 12. 21.
[스타 열전] 입과 배와 실력으로 유명해진 데이비드 웰스 왼손 투수였던 데이비드 웰스(1963년생)는 40대 중반에도 메이저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이미 은퇴를 해서 코치 수업을 받거나 감독이 되어 있을 나이에 현역 생활을 고집했던 웰스는 '화려한' 20년을 보냈다. 1987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한 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신시내티 레즈, 뉴욕 양키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었던 웰스는 통산 239승157패, 평균 자책점 4.13를 기록했다. 속마음 털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 웰스는 어떤 선수였을까? 글: 밝은터(이 블로그의 블로거) 사진: PicApp ■ '입'으로 화제가 된 투수 웰스는 좋게 보면 '솔직한 사나이'이고 나쁘게 보면 '위험한 입'을 가진 인물이다. 지난 200.. 2009. 12. 21.
타이거 우즈를 보면서 생각난 사람 신정아&이병헌 타이거 우즈 (Eldrick Tiger Woods) / 골프선수 출생 1975년 12월 30일 신체 키188cm, 체중84kg 팬카페 상세보기 세상은 왜 타이거 우즈의 불륜에 집중하고 그와 불륜 관계를 맺은 여자가 한 명씩 나올 때마다 놀라운 일을 하나 알아낸 것처럼 호들갑을 떨까. 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먼저, 우즈의 불륜 이야기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관심끌기용’으로 아주 좋기에 언론이 연일 신나게(!) 다루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즈의 불륜을 다룸으로써 건강한 가정 만들기의 계기를 마련하는 의도는 전혀 없고 그저 많이 읽고 많이 보기에 우즈 불륜 이야기를 연일 다루는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우즈가 흑인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에서 스캔들이 나면 흑인의 경우 거.. 2009. 12. 20.
[스타 열전] 온갖 시련을 딛고 홀로선 릭 앤킬 2000년 시즌에 신인이었던 릭 앤킬(1979년생)은 11승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선발투수였던 앤킬은 같은 해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제1선발로 나와 무려 9개의 와일드 피치를 한 후 추락`한 바 있다. 이후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방황했던 그가 타자로 복귀해 화제가 됐다. 앤킬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 끝이 없는 추락 2000년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 1차전. 카디널스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시리즈에서 3전 전승을 거두고 리그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지만 너무나 큰 것을 잃고 말았다. 바로 장래가 촉망되는 투수 릭 앤킬(당시 20세)의 '꿈'이었다. 투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플레이오프 경기 제1선발로 나선 앤킬은 3회초에 연이은 폭투를 하며 무너졌다. 포수가 펄쩍.. 2009. 12. 20.
[스타 열전] 개리 셰필드 개리 셰필드는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항상 뉴스 거리를 제공하는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후 LA 타임스 기자들에게 여러차례 특종을 만들어준 바 있다. 셰필드는 어떤 인물인가? 그의 라이프를 소개하기로 한다. 글: 정재호 기자(2002년 당시 ICCsports.com 기자/현 유코피아닷컴 기자) 글/사진: 밝은터(2002년 이후 소식 추가), PicApp `야구 천재` 개리 셰필드의 유년시절 1968년 11월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시에서 태어난 개리 셰필드는 고등학교 시절 지역을 대표하는 야구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마치 야구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고교 졸업 마지막 해, 드래프트에 참가한 고교 졸업생 중 `최고의 선수`로 꼽히며 5할의 타율.. 2009. 12. 19.
[추억의 스페셜] MLB의 노사협정 (2002) 메이저리그의 노사협정(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은 복잡한 사안들이 연관돼 있습니다. 2002년에 노사협정이 있었는데 당시 협정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노사협정의 내막을 질문과 답(Q&A) 형식으로 알아본 내용을 소개합니다. 글/ 박병기(ICCsports.com) 문1) 노사협정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해주시겠어요. 답) 노사협정은 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라고 합니다. 보통 줄여서 CBA라고 하지요.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와 구단주들은 일정시기가 되면 상호간 ‘평화로운 권리 보존’을 위해 '노사협정'을 맺게 됩니다. 지난 96년 12월 노-사 양측은 ‘메이저리그 노사 단체 협정’을 맺었고 이는 2001년 11월6일 자정을 기해 만료 됐습니다. 문2.. 2009. 12. 19.
[스타 열전] 프로의 냉혹함 경험한 왕치엔밍 글: 밝은터(이 블로그의 블로거) 사진: PicAPP 만약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 플레이오프 경기 1차전에 선발로 등판했다면 한국은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과거 박찬호가 선발 등판의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한국 팬들은 무척 아쉬워했는데 이후 김병현이 구원투수로서 플레이오프에 등판해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2009시즌에는 박찬호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월드시리즈 경기에 여러 차례 구원 등판해 잠시 한국에서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바 있다. 사실 대만은 한국보다 메이저리그에 늦게 진출했지만 팬들은 이미 여러 차례 특이한 경험을 했다. 한국에서는 왕젠민으로 통하는 왕치엔밍 덕분이다. 지난 2006년 대만출신의 빅리거 왕치엔밍은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로서 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등판해 대만.. 2009. 12. 19.
[추억의 인터뷰] 김병현 특급 소방수 만들기 김병현이 미국 메이저리그로 복귀하기 위해 몸만들기가 한창이라고 합니다. 한국 팬들도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02년 빅리그라는 메이저리그 전문 잡지를 ICCsports.com이 만들었을 당시 유정훈 기자가 미국 내 저명 야구 칼럼니스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김병현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다음은 그 내용입니다. 인터뷰어: 유정훈 인터뷰이: 짐 칼리스, 댄 비클리, 로드 비스튼 인터뷰 일자: 2001년 12월 쯤 인터뷰 방법: 이메일 사진: ICCsports.com 본지는 미국 내 유력 언론의 칼럼니스트과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김병현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들어 보았다. ■ 짐 칼리스(베이스볼 아메리카 편집국장) 김병현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성장하기 위해선 컨트롤을 향상 시킬 필요가 있.. 2009. 12. 18.
[추억의 현장취재] 박찬호와 아름다운 만남 1997년 8월30일이었습니다. 채드라는 학생이 박찬호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함께 일했던 박찬호 전담 취재원인 정상균 씨를 통해서 채드 군의 가족이 박찬호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습니다. 채드는 야구선수였고 어머니가 한국인이었기에 흥미로운 만남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그 내용이 독점으로 다뤄졌습니다. 글/사진: ICCsports.com "진정한 야구선수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 1997년 8월 30일. 다저스타디움에서는 영화같은 아름다운 만남이 있었다. 코리언특급 박찬호와 다인종가정에서 태어난 야구선수 채드 스미스(11)군과의 남이 LA다저스타디움에서 있었다. 채드군은 전 미국 프로야구 투수였던 로버트 스미스씨와 정미숙씨의 장남으로 LA인근 발렌시아 리틀야구단의 주전급 투수.. 2009. 12. 18.
[추억의 기사] 박찬호는 이겨야 할 경기에 등판하는 에이스 1997년 8월30일자 기사입니다. LA 타임스가 연일 박찬호를 극찬하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글/사진: ICCsports.com 박찬호는 '이겨야 하는 경기(Must-win game)'에 등판하는 에이스다." 박찬호가 LA다저스의 에이스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지난 8월부터다. 한국 주요 언론뿐만 아니라 이곳 미국 언론에서도 심심치 않게 거론됐던 것이 누가 진정 다저스의 에이스인가라는 질문이다. 얼마 전 LA타임스의 데니스 스프링어 기자가 박찬호는 다저스의 에이스라는 간략한 소개 기사를 올려 놓은데 이어 타임스지 스포츠부서의 칼럼니스트인 빌 플래츠키 씨도 30일자(미국시간) 스포츠 면에 박찬호에 관한 짧고 의미심장한 코멘트를 해 눈길을 끌었다. 플래츠키씨는 "춤추는 다저스가 필요한 스텝(Dancing D.. 2009. 12. 18.
[희귀 자료] 천하무적 야구단 이경필 코치 22세 때 이경필 by iccsports 귀한 사진 한 장. 1996년 사진인데요, 오른쪽에서 3번째, 하늘색 점퍼를 입은 선수가 당시 22세였던 이경필 선수입니다. 1996년 올림픽을 앞두고 상비군에 뽑혔던 이경필 선수는 애틀랜타 올림픽 최종명단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이경필 선수는 2009년 현재 천하무적 야구단의 코치로 맹활약 중이죠. 지금은 선수로서 은퇴한 상황입니다. 사진을 클릭하신 후에 All Size를 클릭하시면 원본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 ICCsports.com. 2009. 12. 17.
[추억의 인터뷰] '박찬호 특파원'들의 애환 1998년 당시에는 '박찬호 특파원'이 있었습니다. 각 스포츠 신문사에는 박찬호를 전담 취재하는 특파원이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인터뷰를 소개합니다.노모 히데오(뉴욕 메츠)와 이라부 히데키(뉴욕 양키스)를 따라 다니는 일본 기자들이 한국 기자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박찬호 전담' 한국 기자들은 박찬호와 식사도 하고 개인적인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일본기자들은 전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역으로 말한다면 노모나 이라부는 박찬호를 부러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유는 일본 선수들의 전담 기자들은 그들의 사생활을 들춰내 센세이션한 기사를 쓰려고 하는 반면 한국기자들은 박찬호가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이를 덮어 주려고 노력하기 때문. 박찬호로선 한없이 감사해야 할 사람들인 것이다. 박.. 2009.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