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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추억의 인터뷰] 드라마 '외인구단'에 출연한 '저니맨' 최익성

by 밝은터_NJT 2009.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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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익성이라는 야구 선수가 드라마 '외인구단'에 출연해 화제입니다. 2006년에 그를 만나 본 적이 있습니다. LA에서 그를 만났던 당시로 돌아가 봅니다.



최익성(34). 한국 프로야구에서 대표적인 저니맨(Journeyman)이었던 선수. 그가 거쳐간 팀은 삼성, 한화, LG, 기아, 현대, SK 등이다. 그는 기회만 주면 제 몫을 다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운이 없는 선수’라고 했다. 잘해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최익성은 2005년 시즌을 끝내고 무작정 LA로 왔다. 아무런 대책 없이 LA 행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후 한인타운에 있는 하숙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왜 미국에 있는 것일까.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최익성
인터뷰 방법: 직접 만남
인터뷰 일자: 2006년 4월12일


 

 “도전입니다. 끝없는 도전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는 미국에 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2005년) MBC-TV의 교양 프로그램인 ‘사과나무’에 출연했던 최익성은 많은 사람의 가슴을 눈물로 적시게 했다. 그의 끝없는 도전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됐던 것. 계속 팀을 옮겨다니며 불안한 선수생활을 했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정말 힘들었을 때 죽음까지 생각한 적도 있었던 최익성. 그럴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
최태식, 경북야구협회 전무)와 항상 조용히 뒷바라지를 했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2005년 ‘사과나무’ 출연 이후 팬들의 관심이 높아졌지만 그는 시즌 중반까지 SK 2군에 머물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괴롭다’는 표현은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는 “야구를 계속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나는 억세게 재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억세게 재수 있는 사나이다”라고 말했다. 2005시즌 막판에 중요한 경기에서 3점홈런을 때려내 SK에 극적인 승리를 안겼고 시즌 막판 홈런 4개를 기록했던 그이지만 시즌 종료와 함께 그는 다시 방출됐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전에도 있었다.


 대구 계명대를 졸업한 최익성은 1994년과 1995년에 2군에 머물렀지만 1996년에 마침내 삼성 1군에 합류했고 1997년에는 당당히 이 팀의 주전 선수가 됐다. 삼성의 1번 타자였던 최익성은 296리의 타율에 홈런 22, 도루 33개를 기록하며 당당히 스타 대열에 들어갔다. 1998년에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는 그러나 1999시즌을 앞두고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방랑생활이 시작됐다. 거의 매년 팀을 옮겼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출전 기회는 줄어들었다. 그리고 2005년을 끝으로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감 했다. 어머니를 비롯해 주변에서 “이제는 좀 편히 쉴 때가 된 것 같다”고 조언을 했지만 그는 또 다른 도전을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꿈의 무대였던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하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

 이것이 무작정 LA로 온 사연이다. 주변 친구들이 “그래도 무슨 대책이 있으니까 그렇게 가겠지”라고 말했지만 최익성은 “진짜로 아는 사람도 없었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무조건 가방 싸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설명했다. 무모한 시도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의 도전 인생은 아름다워 보인다. 끝없는 도전을 하겠다는 그런 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인생의 승리자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내 나이를 보며 ‘이제 끝난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오히려 더 강한 곳에서 강한 사람들과 부딪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메이저리그 진출의) 1%의 가능성도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낮은 확률일지라도 도전해보고 싶다.


 허무맹랑한 도전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차근차근 한 단계씩 밟고 올라가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시즌이 시작된 상황이라 일단은 재미 대한 야구협회 이주헌 회장의 도움으로 멕시코 리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멕시코 리그의 수준이 높고 이곳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미국 진출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는 최익성. 그는 따라서 조만간 멕시코로 가게 된다. 멕시코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가 상당수 있기에 그의 멕시코 리그 도전은 희망을 갖게 한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최익성은 “기회란 SK에서 방출된 것”이라는 다소 의외의 발언을 했다. 그에겐 실패와 중단되지 않는 도전이 기회였던 것이다.


 SK에서 방출되지 않았더라면 미국에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SK를 떠난 것이 오히려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미국에 와보니 ‘왜 진작 미국 진출을 준비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진출은 대학시절부터의 꿈이었다.


 물론 그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약속의 땅, 기회의 땅’ 미국에서 그는 어떤 모습으로 야구인생을 마무리 지을까.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왠지 마음이 쏠린다.


 

[최익성 일문 일답]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기간 중에 미국에 왔는데 경기를 보러 갔나.

▶최: 한 경기 보러 갔다. 메이저리그 경기장이 보고 싶어서 갔는데 한국 대표팀에서 뛰었던 선수 대부분이 아는 선수였다. 기분이 묘했다. 개인적으로 ()승엽이와 친한데 동생이지만 항상 나를 걱정해주는 말을 하고 도와주려고 하는데 이번에 만났을 때도 그랬다.

 

▷미국에는 아는 사람이 있었나?

▶최익성(이하 최): 전혀 없었다. 나에겐 무대책이 대책이었던 것 같다. 전지훈련을 위해 미국에 왔던 것을 제외하면 미국에 온 것도 처음이다.

 

▷대단한 도전 정신인 것 같은데.

▶최: 한국에서 전화로 알아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무조건 부딪혀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짐을 싸고 미국으로 왔다. 도전정신은 야구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도와주는 분이 있나.

▶최: 미국에 오자마자 몸이 너무 아팠다. 좀처럼 감기에 걸리지 않는데 미국 도착해서 아프기 시작해 앓아누웠다. 그때 도와준 분이 있었다. 박명식(소공동 순두부 대표)씨께서 약도 사다주시고 손발과 입이 되어주셨다. 나를 큰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잘 해주신다. 이분 아들이 야구선수라 함께 운동을 하면서 서로 알게됐다. 이들 덕분에 타국 생활이 힘들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다

 

▷사람들은 운이 없는 선수라고 한다. 이에 대한 최 선수의 생각은

▶최: 내가 운이 없는 선수라면 지금까지 야구를 못했을 것이고 이렇게 미국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방출이나 트레이드될 때마다 나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야구 선수 중 이렇게 미국에서 도전하는 선수는 많지 않다. 좋은 결과가 있든 없든 간에 나는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하고 있는 ‘재수 있는’ 사람이다.


 

기사 작성: 2006 412

 

최익성 / 국내야구선수
출생 1972년 2월 11일
신체 키181cm, 체중86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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