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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인터뷰] 나는 최향남의 도전정신을 본받고 싶다 최향남은 도전 정신이 대단한 인물이다. 그는 안정된 삶 보다는 도전을 먼저 생각한다. 한국에 있었으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던 그였지만 돌연 미국 프로야구행을 택했던 최향남. 다소 무모해보이지만 나는 그가 왠지 좋다. 인생 한 번 살다가는 것인데 안정만 찾다가 가는 것도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드는데 최향남은 그런 의미에서 도전의 연속의 삶을 사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나는 그의 용기가 부럽고, 그의 도전정신을 배우고 싶다. 비록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의해 방출되기는 했지만 나는 그를 존경한다. 최향남과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인터뷰어: 박병기 (ICCsports.com) 인터뷰이: 최향남 인터뷰 방법: 전화 인터뷰 인터뷰 일자: 2006년 7월24일 "고독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와 같은 상황에 있다.. 더보기
[추억의 인터뷰] 존 우든 감독의 성공의 피라미드 UCLA(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UCLA 로고가 아니다. 바로 농구팀이다. UCLA 농구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일까? 그는 존 우든(John Wooden)이다. 미국 대학 농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대학농구(NCAA)의 신화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우든 감독은 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UCLA를 대학 최강팀으로 이끈 그야 말로 '전설(Legend)'의 감독이다. 대학 농구 매니아와 올드 타이머들의 기억 속에는 그가 마이클 조던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을 정도다. 그의 코치경력은 너무나 화려하다. NCAA 10회 우승, NCAA 7년 연속 우승, NCAA 최다연승(88연승.. 더보기
[추억의 인터뷰] 디켐베 무텀보 디켐베 무텀보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다음 내용은 2006년 9월27일 작성된 것으로 무텀보 재단 측과 인터뷰를 한 내용입니다. 디켐베 무텀보(휴스턴 로키츠 센터. 최근 은퇴 선언)의 모친은 1997년 콩고 내전으로 사망했다. 내전 당시 64세였던 그의 모친 비암바 마리 무텀보는 병원으로 가는 길이 막히는 바람에 길에서 숨을 거뒀다. 바로 그해 무텀보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디켐베 무텀보 재단'을 세웠다. 그리고 그는 2006년 10월, 모친의 이름을 딴 비암바 마리 무텀보 병원/리서치 센터를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에 세운다. 본지는 인터뷰를 통해 무텀보의 삶과 병원 건립 그리고 세인들의 관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0월 초 비암바 마리 무텀보 병원/리서치 센터(이하 무텀보 병원)가 디켐베 무텀보의 고.. 더보기
[추억의 인터뷰] 최희섭 마이너리그 시절 인터뷰 2000년이었습니다. 최희섭 선수가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었을 때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인 첫 메이저리그 타자라는 프리미엄 덕분에 야구 팬들의 관심이 대단했습니다. 미주 한국일보 시카고 지사의 객원 기자로 일했던 밝은터가 기사를 송고했는데 1면 기사로 소개될 정도로 시카고 지역 한인들의 관심은 놀라웠습니다. 기대했던 최희섭 선수는 이후 시카고, 플로리다에서는 잘했는데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후 망가지면서 유망주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선수가 됐습니다. 결국 한국 프로야구에 입문한 그는 한국에서도 이렇다할 성적을 올리지 못해 그를 아끼는 팬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인터뷰어: 밝은터 (http://iccsports.com 필자) 인터뷰이: 최희섭 인터뷰 방법: 전화 통화 기사 게재 .. 더보기
[추억의 인터뷰] 추신수 인터뷰 + 추신수 아내에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중심 타자인 추신수는 고교시절 투수로서 유명했습니다.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이 그를 투수로서 영입했다는 것, 다 아시죠? 나중에 타자로 전향했지만 사실 그의 투구 능력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어제 추신수 선수가 빨랫줄 송구로 큰 기여를 했다고 하는데 시속 150km의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였기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아래 내용은 이 블로그(http://iccsports.com)의 필자인 밝은터가 2006년 추신수 선수를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아래 사진은 추신수 선수가 고교 시절 피칭하는 장면으로 희귀사진입니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추신수 인터뷰 방법: 전화통화 인터뷰 일자: 2006년 8월 어느날 "아직도 메이저리거가 아닌 것 같아요." 추신수(당시 24세. 클리블랜드 .. 더보기
[추억의 인터뷰] 서재응 미국 프로야구 입문 직전 서재응 선수가 미국 프로야구에 진입하기 직전에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메츠 구단과 입단 계약을 맺었던 서재응 선수는 형인 서재환 선수와 LA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1998년 2월에 인터뷰한 내용인데 당시에는 대학생이어서 그런지 지금보다 더 순수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의도 바르고 싹싹한 청년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은 변하니까,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잘 성장했으면 좋았을 터인데, 여러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그것도 흐뭇한 일입니다. 서재환 선수는 코치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인터뷰어: 밝은터 (이 블로그의 필자) .. 더보기
[추억의 인터뷰] 박세리 LPGA 첫 우승을 차지하기 직전 박세리 선수가 LPGA에 진출해 첫 우승을 차지하기 직전에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LPGA에서 우승하기 전까지만 해도 박세리는 유명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1998년 2월13일 그를 만났을 때 박세리를 취재하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비교적 쉽게 그를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뜨기 직전에 했던 인터뷰라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후 박세리는 LPGA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해 세계적인 여성 골퍼가 됐습니다. 쎄리팍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아시안으로 뽑힐 정도로 그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 그는 어떤 선수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어: 밝은터(이 블로그의 필자) 인터뷰이: 박세리 인터뷰 일자: 1998년 2월13일 인터뷰.. 더보기
[추억의 인터뷰] 이만수 코치 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절 이만수 코치와는 서너 차례 만남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끔 전화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곤 했죠. 참 좋은 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졌고 이웃들에게 참 잘하는 분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신 후에는 대화할 기회가 없었지만 SK에서 수석코치로 일하시게 되자 SK를 많이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부인 되시는 이신화님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100점을 기준으로 120점을 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참 가정적이고 식구들을 아껴요. 특히 섬세한 부분이 있어서 저와 아이들이 감동할때가 한두번이 아니죠. 이벤트도 하고 가족들에게 자주 편지를 쓰면서 사랑을 표현해요.” 여기 올려지는 기사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 좋은 코치. 그가 바로 이만수라는 인물입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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