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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인터뷰] 서재응 미국 프로야구 입문 직전 서재응 선수가 미국 프로야구에 진입하기 직전에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메츠 구단과 입단 계약을 맺었던 서재응 선수는 형인 서재환 선수와 LA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1998년 2월에 인터뷰한 내용인데 당시에는 대학생이어서 그런지 지금보다 더 순수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의도 바르고 싹싹한 청년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은 변하니까,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잘 성장했으면 좋았을 터인데, 여러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그것도 흐뭇한 일입니다. 서재환 선수는 코치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인터뷰어: 밝은터 (이 블로그의 필자) .. 더보기
[추억의 인터뷰] 박세리 LPGA 첫 우승을 차지하기 직전 박세리 선수가 LPGA에 진출해 첫 우승을 차지하기 직전에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LPGA에서 우승하기 전까지만 해도 박세리는 유명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1998년 2월13일 그를 만났을 때 박세리를 취재하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비교적 쉽게 그를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뜨기 직전에 했던 인터뷰라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후 박세리는 LPGA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해 세계적인 여성 골퍼가 됐습니다. 쎄리팍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아시안으로 뽑힐 정도로 그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 그는 어떤 선수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어: 밝은터(이 블로그의 필자) 인터뷰이: 박세리 인터뷰 일자: 1998년 2월13일 인터뷰.. 더보기
2006년과 2009년 WBC에서 미국이 보여준 태도 변화 철 지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 끝난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2006년 WBC와 2009년 WBC를 비교하고자 합니다. 2006년 WBC에서 한국은 여러 모로 무시를 많이 당했습니다. ESPN의 중계팀은 한국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선수 이름 발음조차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정보 없이 중계를 했습니다. 또한 한국에 대한 무시하는 분위기는 여기저기서 보였는데 특히 2006년 WBC 4강전과 결승전이 열렸던 펫코파크에는 각국어로 플래카드가 붙여져 있었는데 유독 한국어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쩝! 좀 그랬습니다. 당시 파드레스 구단에 연락을 해서 물어봤지만 아무도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이나 대만은 출전하지도 않았는데 배너에 중국어가 있고 출전국 한.. 더보기
한국 최초로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를 온라인에서 문자로 중계함 자랑이라기보다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이 글을 올립니다. 제가(밝은터) 했던 일 중에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한국에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를 문자로 생중계한 일입니다. 당시에는 문자로 스포츠 경기를 중계한다는 게 말이 안 됐는데 실제 해보니 반응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제가 한 문자 중계가 스포츠 중계 사상 처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은 댓글로 알려주세요. 최초로 했다고 해서 자랑하는 게 아니라 모두 "그건 아니야" 라고 할 때 밀어부쳤던 일이 지금 저에게 격려가 된 답니다. 앞으로 준비하는 일에도 그때 일이 원동력이 됩니다. 지금 언론 웹사이트에서 대부분 문자 중계를 하는데 그 원조가 제가 되어 버렸네요. 원조라고 이득이 될 건 없지만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두면 좋을 것 .. 더보기
[추억의 인터뷰] 이만수 코치 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절 이만수 코치와는 서너 차례 만남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끔 전화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곤 했죠. 참 좋은 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졌고 이웃들에게 참 잘하는 분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신 후에는 대화할 기회가 없었지만 SK에서 수석코치로 일하시게 되자 SK를 많이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부인 되시는 이신화님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100점을 기준으로 120점을 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참 가정적이고 식구들을 아껴요. 특히 섬세한 부분이 있어서 저와 아이들이 감동할때가 한두번이 아니죠. 이벤트도 하고 가족들에게 자주 편지를 쓰면서 사랑을 표현해요.” 여기 올려지는 기사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 좋은 코치. 그가 바로 이만수라는 인물입니.. 더보기
[추억의 인터뷰] 가수 박정현(Lena Park) 가요계 데뷔 전 이 블로그의 필자인 밝은터는 1996년 N미디어라는 회사에 잠시 몸담고 있었습니다. N미디어는 주간지를 만들려고 준비했는데 잡지의 이름은 Weekly E!였습니다. 창간호를 다 만들었지만 배포하지는 못했습니다. 시장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상에 선도 보이지 못했던 거죠. 그 창간호에는 가수 박정현 양의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창고에 있던 당시 창간준비호를 꺼냈습니다. 지금은 유명가수가 된 박정현 양의 인터뷰 내용을 읽으며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영 중인 것은 스포츠 블로그이지만 박정현씨의 팬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인터뷰는 당시 Weekly E!지의 기자였던 강원준 군과 함께 진행했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합니다. 인터뷰어: 강원준 인터뷰이: 박정현 기획 및 사진: 밝은터.. 더보기
투수들의 구질 및 그립 완결편 <빅리그 매거진 2002년 4월호> 2002년에는 이 블로그의 필자가 메이저리그 전문 매거진을 동료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동료들 중에는 유정훈, 정재호, 손대범 기자 등이 있었습니다. 손대범 기자는 공동 편집장으로도 활동했었구요. 그 잡지의 이름은 빅리그 (XXL-ICCsports)였습니다. 첫 메이저리그 전문 잡지였죠. 경제적인 이유로 오래 가진 못했지만 최초의 메이저리그 전문 잡지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그 자체로도 만족합니다. 이제는 열매도 맺히면 좋겠습니다. 이제부터는요... 아래 글은 빅리그 매거진 2002년 4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정재호 기자가 쓴 것인데, 저도 약간은 기사에 공헌을 했습니다. 글 일부 내용과 사진 촬영에 참여했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손은 바로 제 손입니다. ㅋㅋ. 이.. 더보기
[추억의 인터뷰] 히딩크 감독 '퇴진론' 나올 즈음 인터뷰 2002년 봄이었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던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서 열린 골드컵에 출전했습니다. 당시 필자는 한국 팀의 전 경기를 취재했습니다. 취재 중에 필자는 당시 한국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던 히딩크 감독을 특별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왠지 지도자로서 달라보였습니다. 골드컵 대회에서 졸전을 거듭한 한국 대표팀의 ‘대장’이었던 히딩크는 매일 “1%씩 성장하고 있다”는 말로 언론을 안심시키려 했으나 당시만 해도 그에 대한 차가운 시선은 오싹한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특별한’ 그와 1대1로 만나길 원해 당시 대표팀 언론 담당관이던 허진씨를 졸라댔습니다. 워낙 히딩크의 인기가 추락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문일답 인터뷰는 별 반응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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