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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WBC 역사

[WBC 역사(1)]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의 대한민국~

by 밝은터_NJT 2010.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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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미국 주류 언론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ESPN-TV를 통해 미 전국으로 중계돼 야구 팬들의 눈길을 끌어모으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불미스러운 심판 판정도 있었고 엉터리 대진표 작성으로 한국이 피해를 당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첫 대회였다.

Korean Fans 2006 WBC
Korean Fans 2006 WBC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한국인들의 축제
 2002년 월드컵 축구가 열렸을 당시와 비슷한 분위기에서 이번 행사가 열렸다. 적어도 한국 사회와 미주 한인 사회는 그랬다. 특히 한국이 8강전에서 일본을 눌렀을 당시 한인들이 모인 곳에서 WBC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대화에 참여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경기장을 찾은 한국인들의 에너지 넘치는 응원과 미주 동포들의 단결된 모습은 미국 주류 사회에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타인종 팬들은 한국인의 에너지 넘치는 응원에 감동해 함께 응원에 참여했다. 일본과의 4강전은 우중 경기로 펼쳐졌지만 한인 팬들의 응원 열기는 식지 않았는데 이에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

2006 World Baseball Classic  (WBC) Korea vs. Japan
2006 World Baseball Classic (WBC) Korea vs. Japan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야구에 대한 관심 높아져
 일본과의 4강전이 열리는 중에 나는 여러 차례 전화를 받았다. 지인들은 갖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야구가 9회까지 하는 것이 맞느냐?" "서재응은 왜 뺀 거냐?" "김병현은 왜 그렇게 오래 마운드에 있게 했냐?"는 등의 질문을 받은 것. 평소 야구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궁금한 게 많았던 것이다. 야구가 몇 회까지 하는 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경기를 봤을 정도이니 그 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한인이라면 대부분 야구 경기를 봤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2006 World Baseball Classic  (WBC) Angels Stadium
2006 World Baseball Classic (WBC) Angels Stadium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 한국 야구 발돋움
 한국인들은 항상 "한국 야구는 더블A 수준"이라는 말을 들었다. 기를 펼 수 없었다. 그 말에 세뇌되어 우리는 스스로를 깎아내리는데 익숙해 있었다. 당시 '미국전을 제치고(그냥 지고) 일본전에 전력을 다 쏟는다'는 기사를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WBC는 이러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는 계기가 됐다. 최소한 국가 대표의 수준은 메이저리그 급이라는 생각을 팬들이 갖게 됐다. 미국 주류 언론 기자들도 '원더풀 코리아'를 외쳤다. 이는 또한 미국 이민 한인 1.5세, 2세들이 어깨를 으쓱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2006 World Baseball Classic  (WBC) Korea vs. Japan
2006 World Baseball Classic (WBC) Korea vs. Japan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필자의 아들. 2006년 한일전을 참관했다.

■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큰 관심
 한국 팬들의 활력이 넘치는 응원을 가장 가까이서 본 구단은 애너하임 에인절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다. 특히 에인절스 구단은 경기장을 찾은 한인들이 열렬히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던 것 같다. 빌 스톤맨 에인절스 단장은 2003년 이승엽을 잡지 못하는 것을 후회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토미 라소다 LA 다저스 부사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는 이승엽의 실력+한인들의 열기에 대한 야구인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이후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이 한국의 유망주들과 속속 계약을 했다.

Chan Ho Park, the Closer, during 2006 WBC
Chan Ho Park, the Closer, during 2006 WBC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한국 야구 발전의 계기 
 WBC에서의 성공은 한국 프로야구가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일단 야구장으로 몰려드는 팬들의 수가 급증했다. 김인식 감독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이 됐다. 한국에서 돔구장 건립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다목적 돔구장을 세워 야구와 축구를 할 수 있고 팬들이 많이 오는 중요한 농구 대회(예를 들어 NBA 올스타 초청 등)를 개최한다면 돔구장은 스포츠와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걸게 했다.

[글/사진: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제1회 베이스볼 클래식 한일전이 열린 현장에서]

가슴이 뭉클했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2002 월드컵 당시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건만..."대-한민국"을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2006년 3월15일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의 에인절 스타디움. 나는 야구 한류를 좀 더 가까이에서 느끼기 위해 기자석이 아닌 관중석에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2라운드 대 일본전을 지켜봤다. 유료 관중 약 4만 명 중에 한국인이 90%가 훨씬 넘는 것 같은 상황에서 한류가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한국 국가가 연주될 때 3루 쪽 관중석에 있는 한인 팬들은 합창을 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이 대목에서 스타디움 전체로 합창소리가 아름답게 퍼져 나갔다. 그 아름다움에 기자는 울컥했다. 미국에 오래 살았어도 나는 역시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일본 국가, 미국 국가가 연주된 후에 경기가 시작됐다. 흥미롭게도 내가 앉았던 자리 뒤쪽과 옆쪽에 백인 가족과 히스패닉 가족이 있었다. 백인 가족의 가장은 앉자마자 "한국인의 열정적인 응원은 경기를 흥미롭게 볼 수 있게 한다"고 말하며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히스패닉 가족은 아예 머리에 'Korea'라고 쓰인 두건을 두르고 있었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3루쪽 관중석에서 끊임없이 응원의 메아리가 울렸다. 한국인은 물론이고 백인 가족, 히스패닉 가족도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라도 그냥 따라했다. 발음도 각양각색이었다. "대하미국" "대한민구" 등등. 이것이 바로 한류였다. 그들은 한국인의 강한 에너지를 현장에서 느끼고 있었다. 

 한국 팬들의 응원도 다양했다. 꽹과리, 북을 들고 나와 응원하는 것은 기본이고 배너 응원도 이채로웠다. 주로 한국 이민 1.5세나 2세가 준비한 영어 배너의 창의력이 돋보였는데 그 내용을 보면서 흐뭇했다. "한국은 일본을 이기는데 30년이 아닌 1주일이 필요했다" "이제 한국은 30년 동안 일본 야구에 우월하다." 유머가 없는 무뚝뚝한 한국인이라는 이미지는 사라졌다. 

 한국이 2-1로 승리한 후 귀가하는 길에 타인종 팬들도 태극기와 응원 막대를 들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한국 팬들과 하이 파이브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게 바로 스포츠 한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가 후 ESPN으로 채널을 고정했다.

 ESPN은 자정부터 새벽 3시 넘어서까지 한,일전을 녹화 중계했는데 여기서도 한류는 느껴졌다.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얼마나 한국 야구를 열심히 공부했는지 이런 말이 들렸다. "기아 타이거스는 한국에서 가장 우승을 많이 한 팀이다." "이종범은 한국에서 이치로와 같은 선수였다. 일본으로 건너가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대회 초반에 ESPN의 중계 화면에는 "이승엽이 지바 롯데에서 홈런 56개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는 소개문이 나간 적이 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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