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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MLB 30개구단 역사

[MLB 30개 구단 역사(4)]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by 밝은터_NJT 2010.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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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 파드레스 구단은 1969년 창단했다. 창단 이후 파드레스는 1984, 1998년 두 번 내셔널리그 챔피언으로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두 번 모두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파드레스는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지 못했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사진: ICCsports.com, Flickr, PicApp


San Diego Petco Park (2006)
San Diego Petco Park (2006)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파드레스의 홈구장인 펫코파크

1969년 당시 신생팀은 파드레스, 몬트리올 엑스포스(현 워싱턴 내셔널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시애틀 파일럿츠(현 밀워키 브루어스) 4개 팀이었다. 파드레스는 첫 6년 동안 매시즌 내셔널리그 서부조 최하위에 머물렀다. 희망이 없어보였던 파드레스에 회생의 빛이 비췄는데 바로 아지 스미스라는 걸출한 젊은 유격수가 파드레스 유니폼을 입게 된 일이다. 스미스는 1978년부터 1981년까지 파드레스에서 뛰었고 유격수 수비의 교과서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파드레드스는 이 밖에 데이브 윌필드, 롤리 핑거스와 같은 스타 선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승은 파드레스와 먼 거리에 있었다.

1984년은 파드레스 구단 창단 이래 최고의 해였다. 그해 이 팀은 9270패를 기록, 내셔널리그 서부조 챔피언이 됐다. 1984년은 토니 그윈이 생애 첫 타격왕에 오른 해였다. 그는 이후 7차례 타격왕이 됐다. 파드레스는 1984년 내셔널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동부조 챔피언인 시카고 컵스를 만났는데 결과는 파드레스의 승리였다.



월드시리즈에서 만난 팀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였다. 당시 타이거스는 104승을 기록한 강한 팀이었다. 스파키 앤더슨이 지휘했던 타이거스는 커크 깁슨의 극적인 홈런, 잭 모리스의 쾌투에 힘입어 41패로 시리즈를 마감했다. 파드레스의 첫 월드시리즈 우승 도전은 실패였다.

이후 계속 서부조 우승에 실패했던 파드레스는 1996년 드디어 서부조 챔피언이 돼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구단 역사상 두 번째 포스트 시즌 출전이었다. 파드레스는 그러나 디비전 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전패를 당해 일찌감치 탈락했다.

1998년은 파드레스 역사상 최고의 시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선에는 토니 그윈, 그렉 본, 켄 캐미니티, 월리 조이너, 스티브 핀리 등이 있었으며 마운드에는 케빈 브라운, 앤디 애시비, 트레버 오프먼 등이 상대 타선을 꼼짝 못하게 했다.

1998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파드레스는 그러나 뉴욕 양키스에 4전 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월드시리즈 이전까지 승승장구했지만 당시 뜨거운 팀이었던 양키스를 넘어서지 못했다.



파드레스는 이후 2005년과 2006년 내셔널리그 서부조 챔피언 자리에 올랐으나 역시 플레이오프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2007년부터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루지 못했다.

파드레스는 그동안 4명의 유니폼을 영구결번시켰다. 재키 로빈슨의 42번도 영구결번됐지만 그는 파드레스에서 뛴 선수는 아니었다. 첫 유색 인종이었다는 점에서 영예를 안겨준 것이다. 파드레스 소속으로 뛰면서 등번호가 영구결번된 선수는 스티브 가비(6), 토니 그윈(19), 데이브 윈필드(31), 랜디 존스(35) 4명뿐이다.

또한 파드레스 소속으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인물은 총 9명이다. 1969년부터 1977년까지 구단의 사장이었던 버지 바바시, 1969년부터 1974년까지 파드레스의 1루수였던 네이트 콜버트 등이 파드레스로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다음은 이 구단을 거쳐간 주요 인물에 대한 소개다.

◇ 존 무어스(현 구단주)

 1994년 파드레스 구단을 85백만 달러에 사들인 무어스는 구단주가 된 2년 후인 1996, 새 구장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2004년 펫코 파크가 개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자신이 운영했던 페러그린 시스템스의 18백만 주를 내다 팔아 무려 61140만달러를 현찰로 챙긴 바 있는 무어스는 포브스 잡지 선정 '미국 내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행정가 18'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이 일로 여러 차례 고소를 당해 위기에 몰린 적도 있었다. 이로 인해 2002년에는 파드레스 구단 경영이 더욱 어려워졌고 이 팀은 몸값이 비싼 선수를 부지런히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했다.

그러나 법적 공방전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무어스는 파드레스 구단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했고 2005년 시즌 중 몸값 비싼 박찬호를 데려오는 등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박찬호는 한때 파드레스 팀 내에서 최고 연봉(15백만달러) 수령자였다. 무어스는 또한 UC 샌디에이고 암센터에 2천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자신의 부를 지역 사회에 환원했다. 한때 샌디에이고 시민들 사이에 '공공의 적'이었던 무어스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씩 바뀐 이유다.

◇ 샌디 앨더슨( CEO)

 앨더슨은 90년대에 빌리 빈과 합작으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강팀으로 만든 인물이다. 그는 1998년부터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부사장으로 일하며 추락한 야구의 인기를 끌어올리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2005 4월 구단주인 무어스는 야구 경영권을 앨더슨에 넘겼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5. 그는 그동안 '재건'의 분위기였던 파드레스를 5년 내에 엘리트 구단으로 만들어야 한다. 앨더슨이 애슬레틱스의 단장과 사장으로서 올린 성적은 디비전 챔피언 4회였는데 무어스는 그와 비슷한 성적을 기대했다.

앨더슨은 애슬레틱스 시절과 마찬가지로 한두 선수에 거액을 쏟아부어 팬들을 경기장으로 오게하는 방식은 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전에 샌디에이고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팀이 승리하면 팬들은 경기장을 찾게 되어 있다. 슈퍼스타가 승리를 가져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앨더슨은 그러나 케빈 타워 단장의 업무인 선수 영입과 드래프트 등에는 될 수 있으면 간섭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가이드라인이 그렇다(고연봉 선수 영입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앨더슨의 설명이었다. 앨더슨은 2009 3월 파드레스 구단을 떠났다. 현재 UC버클리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 케빈 타워스(전 파드레스 단장)

 존 무어스가 구단주가 되면서 데려온 구단의 운명을 바꿨던 2명은 바로 타워스 단장과 브루스 보치 감독이었다. 단장은 야구팀의 살림살이를 맡는데 타워스는 그동안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알차게 살림을 했다. 198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파드레스에 지명돼 이 팀의 마이너리그 팀에서 7년간 뛰었던 타워스는 여러 차례 팔수술을 받고 조기 은퇴해 스카우트로 활동했다. 1995년 파드레스의 단장이 되기 전까지 스카우트로서 이름을 날렸던 타워스는 선수 보는 눈이 탁월했다.

파드레스는 '타워스 시대'에 조 우승 2(월드시리즈 진출 1)를 기록했다. 1998년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던 파드레스는 그러나 우승 후 곧바로 스타 선수들을 내보내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는 타워스의 잘못이 아니었다. 팀 연봉이 한때 38백만달러까지 내려갔으니 아무리 뛰어난 단장이라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07년까지 계약이 돼 있는 타워스는 "우리는 재정적인 지원이 확실히 있더라도 자유계약 시장에서 몸값 높은 선수를 데려오지 않을 것이다. 이는 돈을 쓰는 최악의 방법이다. 대신 스카우팅과 선수 개발을 통해 구단 수준을 끌어올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타워스는 지난 2009 10월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Bruce Bochy #15

◇ 브루스 보치(전 파드레스 감독)

선수 시절 백업 포수로 활동했던 것이 지도자로서 성공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말한 보치 감독은 선수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스타가 아니었고 남을 돕는 것이 인생의 좌우명이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친근감 있게 대한 점이 그를 '좋은 감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난 1996년 올해의 감독상을 받은 바 있는 보치는 리그에서 몇 되지 않은 '덕장'이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2007년부터 지금까지)에서 감독 생활을 하고 있다.

San Diego Padres vs. Los Angeles Dodgers

◇트레버 호프먼(전 파드레스 마무리 전문)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클로저다. 생애 통산 591세이브를 기록한 호프먼은 1993년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신인 투수로 2세이브를 올리고 당해 6월 파드레스로 트레이드된 바 있다. 이후 그는 샌디에이고에서 리그 최고의 클로저가 됐다. 그는 파드레스 선수로서 명예의 전당에 오를 것으로 보이고 그의 등번호도 영구결번될 전망이다. 현재 밀워키 브루어스 선수로 등록돼 있다.

◇토니 그윈(전 파드레스 외야수)

90년대에 가장 정교한 타자로 이름을 날린 그윈은 3,141안타, 내셔널리그 타격왕 등극 8회등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생애통산 평균 타율 338리를 기록한 그윈은 84년과 98년에 파드레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도왔다.

◇버드 블랙(현 파드레스 감독)

메이저리그 좌완투수였던 블랙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에인절스의 투수 코치로 활동했다. 그는 코치 시절 뛰어난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2006 11월 브루스 보치가 떠난 빈자리를 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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