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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추억의 인터뷰] 에디 김 (미 대학야구 스타)

by 밝은터_NJT 2010.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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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Csports.com은 2002년에 빅리그 잡지(XXL-ICCsports)라는 것을 발행했습니다. 2002년 7월호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주인공은 당시 대학야구 스타였던 한국계 에디 김입니다. 

인터뷰어: 유정훈
인터뷰이: 에디 김


 






드래프트가 열린 후 인터뷰

인터뷰어: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인터뷰이: 에디 김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2003년 여름, 메이저리그 야구(MLB) 구단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지명된 에디 김은 ‘제2의 최희섭’이 되길 원하는 한국계 2세 선수다. 2003년 6월에 실시된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그는 전체 4라운드 25번에 지명됐다.

 당시 지역 라디오 방송과 신문사의 인터뷰 요청에 바빴던 에디 김과 전화 통화에 성공한 필자는 많은 질문을 던졌다. 에디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인 사회에서 큰 관심을 가져 주셔서 놀랐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내용.


▷신인 드래프트 4라운드 선수 명단에 본인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에디 김(이하 에디): 정말 깜짝 놀랐다. 나는 8라운드쯤에서 지명될 줄 알았다. 드래프트가 열리기 전에 오클랜드 구단이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를 4라운드에서 일찌감치 지명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정말 흥분됐고 내 룸메이트를 부둥켜 앉고 환호했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드래프트 후 부모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에디: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지는 기뻐하시면서도 "왜 1라운드 지명이 안됐냐"고 농담 삼아 물어 보셨다. (아버지 김동호씨는 이날도 언론과의 인터뷰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희섭 선수의 플레이를 본 적이 있는지. 사람들이 김 선수를 최희섭 선수와 비교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에디: 두 번 정도 TV를 통해 그의 플레이를 본 적이 있다. 나와 스타일은 비슷하지만 실력 면에서 그는 메이저리거이니까 나보다 훨씬 뛰어난 것은 분명하다. 그와 비교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최희섭 선수처럼 되려면 아직 멀었다. 열심히 하겠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한국 투수 중 누구와 맞대결을 하고 싶은가?

▶에디: 박찬호, 김병현, 서재응과 같은 훌륭한 투수들이 있지만 김병현 선수와 맞붙는다면 가장 도전적인 대결이 될 것이다. 나는 좌타자이고 김병현 선수는 우완 언더스로우어이기 때문에 좋은 대결이 될 것으로 본다. 박찬호 선수는 한국인의 희망인데 그와 대결해 보고 싶다.


▷어린 시절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에디: 처음에는 축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경기 도중 내가 골을 넣으려는 순간, 팀 동료가 내 머리를 잡아당기고 자기가 골을 넣는 것을 경험한 후 나는 축구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후로 아버지께서 나를 카운티 리틀리그 야구 팀에서 뛰게 해주셨고 나는 야구에 푹 빠졌다.


▷각오와 인사말을 부탁한다.

▶에디: 먼저 나에게 힘이 되시는 예수님께 감사한다. 나를 키워 주시고 격려해 주신 부모님께도 감사드린다. 좋은 기회를 얻게 됐는데 정말 열심히 연습할 것이다.(주: 에디는 연습 벌레로 유명하다) 나의 일에 헌신할 것이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을 대표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할 것이다. 최희섭 선수처럼 성장하는 날까지 많은 격려와 관심을 부탁드린다.

 

2010년에 쓰는 후기

에디 김은 대학 시절 기대를 받았던만큼 프로에서 해주지 못했다. 그는 2003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산하 마이너리그팀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는데 결과는 2005년 부상으로 팀을 떠나는 것이었다. 이후 소속팀을 찾지 못한 에디 김은 독립리그에서 활동했고 2008년 이후에는 그에 관한 기록도 찾기 어려웠다. 싱글A가 그의 프로 생활에서 가장 높이 올라갔던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부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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