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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스타 열전] 'Fan Favorite' 커비 퍼켓

by 밝은터_NJT 2010.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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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와 90년대의 야구팬들 사이에 가장 인기있는 선수였던 커비 퍼켓. 퍼켓은 남녀노소, 인종 구분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선수였다. 미네소타 트윈스 팬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퍼켓에 대한 호감을 갖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그는 전국구 스타였다. 

 2001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첫 번째 시도에 전당행을 확정지었을 정도로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퍼켓은 2006년 체중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향년 45세. 퍼켓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본다.
 



미네소타의 영웅&미국의 영웅 

 미네소타 주민들에게 가장 유명한 스포츠 스타 한 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미네소타 트윈스의 스타였던 퍼켓의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올 것이다. 퍼켓은 미네소타 트윈스가 1987년과 1991년에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영웅이었다. 특히 1991년 월드시리즈는 그야말로 '클래식'이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대결에서 트윈스는 4승3패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는데 당시 퍼켓의 맹타와 리더십은 돋보였다. 

 퍼켓은 트윈스가 2승3패로 뒤져있던 6차전에서 10회말에 극적인 끝내기 홈런을 때려내 시리즈를 3승3패 타이가 되도록 했고 트윈스는 다음날 열린 7차전에서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1-0으로 승리해 월드 시리즈 챔피언이 됐다.

 12년 동안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그가 올린 성적은 타율 3할1푼8리, 홈런 207개, 1085타점으로 어떻게 보면 '첫 번 시도'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기록은 아니었지만 그의 쾌활하고 남을 돌보는 성품은 기자들도 감동시켰던 것이다.




80년대 최고 인기의 센터필더

 5피트8인치(173cm)의 작은 선수인 퍼켓이 야구 선수로서 대성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대학 재학시절 야구 선수로서 대성할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듣고 1년 동안 야구를 중단했을 정도였다. 필드로 복귀한 후 트윈스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198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지명된 퍼켓은 1984년 메이저리그에 입성해 2할9푼6리의 타율을 기록하며 '트윈스의 미래'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스타가 되기 시작한 해는 1985년이다. 당시 '센터필드'라는 노래가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멋진 플레이를 하는 퍼켓과 자주 연관이 됐고 따라서 그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1986년 3할2푼8리의 타율에 홈런 31개를 기록하는 등 상승세를 탄 퍼켓은 1987년 월드시리즈(vs. 세인트루이스)에서 7경기에 출전해 3할5푼7리의 타율을 기록하며 전국 팬들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사회 봉사상을 받은 선수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친 퍼켓은 1996년 사회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받았다. 그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놀라울 정도였다. "외향적인 성격에 자선 사업에 적극적이고 커뮤니티 참여도가 높고 건강한 이미지에 언론 기자와 관계가 좋은 '나이스 가이'"가 그에 대한 소개문의 일부다.

 은퇴 후에도 꾸준히 사회 참여를 했던 그는 그러나 성추문 사건으로 체포돼 그동안 쌓은 이미지가 단 한 번에 무너졌다. 한 여성이 "커비 퍼켓이 식당 화장실 앞에서 강압적으로 나의 가슴을 만졌다"고 주장하며 그를 고소했던 사건인데 이 내용이 공개되면서 퍼켓은 `파렴치범`으로 몰렸다. 퍼켓은 재판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의 인생을 되돌리기에는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가 타격이 컸다. 코비 브라이언트(LA 레이커스)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을 했다.

내리막길 인생 

 이후 그의 인생은 내리막길이었다. 공개적인 자리에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던 퍼켓은 주변 친구들로부터 "너무 살이 찌는 것 아니냐"는 걱정의 소리를 들었다. 퍼켓의 친구이자 트윈스의 스타였던 토니 올리바는 "그를 만났을 때마다 몸이 급격히 불어있었다"며 걱정을 많이 했다고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퍼켓의 가족 중에는 50세 이전에 뇌졸중으로 사망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친구와 친지들은 그의 과체중을 상당히 걱정했다고 한다.



아쉬운 이별 

 미 언론은 그가 사망했던 당시 이틀 연속 그의 사망 소식을 톱뉴스로 올리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미네소타 스타 트리뷴지는 퍼켓의 소식을 1면 톱기사로 다루며 그의 야구 인생을 재조명했다. 다른 언론들도 퍼켓의 사망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는데 이는 그가 생전에 쌓아놓은 인덕 때문일 것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의 미소를 다시 보고 싶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커비 퍼켓 프로필]

▷생년월일/출생지: 1960년 3월14일 일리노이주 시카고 ▷사망: 2006년 3월6일 애리조나 피닉스 ▷메이저리그 데뷔: 1984년 5월8일 ▷포지션: 센터필더 ▷투/타: 우투우타 ▷등번호: 34번 ▷소속팀: 미네소타 트윈스(1984-1995) ▷수상 경력: 2001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득표율 82.14%), 올스타 10회 선정, 올스타전 MVP(1993년), 골드글러브 6회


[퍼켓이 했던 말]

"나는 키가 너무 작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올스타로 10번이나 선정됐다. 그리고 월드 시리즈 챔피언 반지를 2개나 받았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나이다. 키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달렸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 내일은 우리에게 약속된 것이 아니다."-은퇴 기자회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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