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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태인5

[MLB 30개 구단 역사(1)] 보스턴 레드삭스 A "Model" Fenway Day by B Tal 보스턴 레드삭스는 1918년 월드시리즈에서 챔피언이 된 후 단 한 번도 챔피언 타이틀을 갖지 못했다. 이 팀이 2004년에 챔피언이 되기 전까지 '밤비노의 저주'라는 말이 끊임없이 따라다녔을 정도다. 레드삭스의 역사를 줌인해 본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사진: Flickr, PicAPP ■ 보스턴 아메리칸스 레드삭스는 1900년 보스턴 아메리칸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했다. 그리고 이후 서머셋, 필그림이라는 닉네임을 가졌다. 창단 후 3년 만인 1903년 보스턴은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챔피언이 됐다. 1919년까지 보스턴은 5차례 챔피언이 되는 등 황금기를 누렸다. 보스턴은 1907년 12월18일 레드삭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원래는 .. 2009. 12. 29.
[추억의 인터뷰] 레드삭스구단 어드바이저 박진원 씨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에는 한인 어드바이저가 있었는데 이름은 박진원 씨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는 한국 선수가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가 많이 돌아 그의 노력은 평가절하되기 일쑤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국 선수들이 대거 미국에 진출하는 데 그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것만큼은 인정되어야 한다. 다음은 ICCsports.com의 기자였던 변장호 씨가 고 박진원씨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인터뷰어: 변장호 인터뷰이: 박진원 인터뷰 장소: 김포국제공항 인터뷰 일자: 2000년 조진호, 박진원 전 회장, 김선우 "SK가 조진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선우는 최근 부진하지만 별문제 없는 것으로 본다. 이상훈은 미국 야구에 서서히 적응해.. 2009. 12. 6.
[추억의 인터뷰] 레드삭스는 한국선수를 왜 싹쓸이 영입했나? Ray Poitevint and Jin Won Park by iccsports 보스턴 레드삭스는 한때 한국 선수들을 싹쓸이했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수많은 한국 선수와 계약을 했습니다. 조진호, 김선우, 이상훈, 송승준, 안병학, 채태인 등 레드삭스와 계약을 한 선수가 줄을 이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의 중심에는 레이 포이트빈트라는 레드삭스의 극동지역 스카우트가 있었습니다. 2002년 1월 포이트빈트 씨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당시 선수들의 상황과 구단의 기대 그리고 계약 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레이 포이트빈트 보스턴 레드삭스 극동지역 스카우트 인터뷰 방법: 직접 만남 인터뷰 일자: 2002년 1월 어느 날 레이 포이트빈트(당시 72세)씨는 메이저리그 스카.. 2009. 9. 2.
[추억의 인터뷰] ‘엽기청년’ 채태인과의 엽기적인 인터뷰 한국 야구계에는 ‘엽기 선수’ 채태인이 있다. 지난 2000년 보스턴 레드삭스와 80만 달러에 계약을 맺고 도미 했던 채태인은 동료들과 선배들로부터 ‘엽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독특한 행동’으로 얻은 별명인데 자신도 그리 싫지 않은 눈치였다. 한국에서도 채태인은 튀는 행동으로 많은 팬을 확보한 상태다. 튀는데 밉지 않고 귀여운 것이 특징. 채태인은 부산상고 졸업반 때 레드삭스 구단과 계약을 체결했다. 고교 2학년 때 부산고의 추신수(현 시애틀 매리너스)와 함께 최고의 좌완 투수로 평가받았던 채태인은 3학년이 되면서 어깨 고장이 나 제대로 뛰지 못했다. 당시 롯데와 계약을 할 것으로 보였던 채태인은 미국을 가기 위해 엄살을 피우며 등판을 꺼려 한다는 언론의 비난을 받았지만 실제 그는 미국에 와서 어깨 수.. 2009. 5. 19.
[Special] 한국 선수 메이저리그 진출사 1994-2009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는 총 12명이다. 박찬호를 시작으로 조진호, 김병현, 봉중근, 최희섭, 추신수 등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한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사를 정리해본다. 1994년 그 이후 박찬호는 1994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데뷔를 했다. 1994년 2경기에 나와 4이닝 동안 5자책점을 기록한 후 더블A 샌안토니오로 내려갔지만 그의 메이저리그 데뷔는 역사적인 일이었다. 후문이지만 마이크 피아자는 당시 박찬호가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메이저리그에서 데뷔전을 치른 것에 불만이 컸다고 한다. 박찬호의 본격적인 미국 프로야구 무대는 더블A와 트리플A였다. 그는 1995년 트리플A에서 6승7패, 평균 자책점 4.91을 기록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메이저리그의 부름.. 2009.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