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이 통산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받게 됐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감독이 미국 메이저 스포츠에서 10회 우승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금자탑을 세운 것이나 다름 없다. 필자는 지난 2005년부터 필자가 잭슨 감독에 관해 쓴 글을 정리해보았다.
s2007년 2월1일: 레이커스는 (2007년 2월 당시) 10경기에서 5승5패로 부진했지만 시즌 성적은 28승18패로 아주 좋았다. 이는 서부 컨퍼런스 10위권의 팀이라는 미국 언론 농구 전문가들의 평가에 비춰볼 때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이다. 사실 레이커스의 당시 선수들을 보면 10위권 팀이라는 객관적 예상이 맞았다. 6위 팀은 아니었다. 예상 외로 4단계 차이가 나는 것은 역시 필 잭슨 감독의 지도력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s2007년 4월5일: 레이커스의 필 잭슨 감독은 코비 브라이언트가 고득점 행진을 했을 당시 '코비-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코비-다는 '코비'와 '레이다'의 합성어로 레이커스 선수들이 코비를 레이다의 중심으로 놓는 것을 비꼬는 듯한 잭슨 감독식의 표현이었다. 즉 선수들이 슛을 던질 생각은 하지 않고 코비에게만 패스하려는 경향을 지적한 것이었다. 잭슨 감독은 코비가 팔꿈치 가격으로 '더티 플레이어'라는 이미지가 굳어지자 이를 바꾸기 위한 시도를 한 것으로 고득점 행진을 풀이했다. 코비는 그러나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승리뿐"이라며 '승리'에 대한 욕심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슛을 양보할 수도 소나기 슛을 쏠 수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s2007년4월9일: 크리스 보시(당시 23세. 아래 사진)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랩터스의 파워포워드인 6피트10인치(208cm)의 보시는 2006년 7월 랩터스와 3년 연장 계약(4년째는 옵션)을 맺고 이 팀의 리더가 됐다. 연장 계약을 맺기 전 LA 레이커스의 필 잭슨 감독은 보시를 공개석상에서 극찬하며 추파를 던진 바 있다. 이 발언으로 잭슨 감독은 NBA 사무국으로부터 벌금령을 받았다. 보시와 같은 믿을만한 장신 선수가 필요했던 잭슨 감독의 발언이 나온 후 랩터스는 곧바로 연장 계약을 통해 보시에 4년 동안 약 6천5백만 달러를 주기로 약속했다.
s2007년4월30일: 90년대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 필 잭슨 트리오가 이끌었던 불스는 그야말로 '무적함대'였다. 무려 6차례나 챔피언이 됐으니 상세한 설명이 필요 없다. 조던이 두 차례 은퇴를 하지 않았더라면 불스는 10년 동안 8-9회의 우승도 가능했을 팀이다. 조던이 은퇴하고 잭슨 감독이 떠난 후 피펜도 휴스턴 로키츠로 가면서 불스는 '무적함대'에서 '나룻배'로 전락했는데 리그의 조롱거리가 됐던 불스는 1998-99시즌부터 2003-04시즌까지 119승341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s2007년5월30일: 넘버2가 필요해. '포스트 샤크(Post-Shaq)의 LA 레이커스는 NBA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인 코비 브라이언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팀이다. 여기에 NBA 챔피언 반지 9개를 받은 필 잭슨 감독과 그 사단이 코칭 스태프로 있다. 그렇다면 레이커스는 왜 시카고 불스와 같은 '왕조'를 탄생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레이커스에는 조던급 선수는 있어도 스카티 피펜, 존 팩슨, 스티브 커와 같은 선수들이 없기 때문이다.
s2007년 5월28일: 마이클 조던이 '농구 황제'가 되기까지 그의 옆에는 필 잭슨 감독이 있었다. 르브론 제임스도 자신의 필 잭슨을 찾았다. 바로 마이크 브라운(당시 37세. 아래 사진) 감독이다. 1970년생인 브라운 감독은 NBA에서 두 번째로 젊은 감독이다. 나이가 더 어린 감독은 뉴저지 네츠의 로렌스 프랭크로 같은 1970년생이지만 브라운보다 몇 개월 먼저 태어나 최연소 감독이 됐다. 브라운은 캐벌리어스가 '정제된 팀'이 되도록 한 지도자다. 젊은 선수들이 중심인 캐벌리어스가 올해 동부 컨퍼런스 결승 시리즈에 진출한 이유는 브라운이 강조한 수비와 리바운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필 잭슨과 지도 스타일이 비슷하다.
s2007년9월26일: 과연 바이넘은 꾸준히 기여하는 센터가 될 수 있을까. 필 잭슨 레이커스 감독은 바이넘이 평균 15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는 선수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코비 브라이언트도 불만을 터뜨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브라이언트는 시즌 중에 트레이드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s2007년10월31일: 성폭행 사건에 연루됐을 때도 없었던 야유를 코비 브라이언트가 들었다. 브라이언트(29. LA 레이커스)는 30일 열렸던 2007-08시즌 개막전 휴스턴 로키츠 전에서 팬들에게 소개되자 야유의 소리를 들었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필 잭슨 감독도 깜짝 놀랐다. "이게 코비한테 하는 야유 맞나?"라고 코치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팬들이 바보가 아님을 보여준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 내내 레이커스를 떠나고 싶다는 보도를 들었던 팬들은 더는 '조건 없는 사랑'을 보낼 수 없게 됐다. 물론 경기가 시작되고 코비가 맹활약하자 "MVP!" "코~비, 코~비"의 외침이 있었지만 팬들의 마음은 이전 같지 않았다.
s2007년11월5일: 챈들러는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이 극찬하는 선수다. 잭슨 감독은 레이커스 선수들에게 챈들러의 리바운드하는 자세 및 움직임을 필름을 통해 체크하라고 강조한다고 한다. 챈들러는 열정이 넘치는 장신 선수로 라시드 월러스급의 선수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s2007년11월19일: LA 레이커스는 2006년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6번으로 파마를 지명했다. 당시 미치 컵첵 레이커스 단장은 "파마가 1라운드 26번까지 내려올 줄은 몰랐다"며 계획에 없는 지명이었음을 밝혔다. NBA 전문가들은 파마가 전체 20번 이내로 지명될 줄 알았고 레이커스가 그를 선택할 기회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필 잭슨 레이커스 감독은 신인을 잘 기용하지 않기 때문에 파마는 신인 시즌을 평범하게 보냈다. 파마는 그래도 경기 평균 15분을 뛰었는데 잭슨 감독으로서는 신인에게 상당히 많은 출전시간을 줬다고 할 수 있다
s2007년12월12일: 무명의 기간을 거쳐 NBA 스타가 된 선수 중 대표적인 인물은 벤 월러스(시카고 불스)다. 그는 대학 농구 2부리그에 속했던 버지니아 유니온 출신으로 대학을 나와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못해 이탈리아 프로리그에서 잠시 뛰었다. 2007년 현재 월러스는 NBA 최고의 빅맨 중 한 명이다. 뉴저지 네츠의 대럴 암스트롱도 철저한 무명이었다가 뒤늦게 NBA에 합류해 이름을 날린 선수다. 암스트롱도 마이너리그와 유럽 리그를 거쳐 NBA에 입문할 수 있었다. 이 밖에 팀 레글러, 잔 스탁스, 라자 벨, 스티븐 잭슨, 스무시 파커, 앤소니 파커 등이 일종의 마이너리그였던 CBA를 거쳐서 NBA에 입문했던 선수들이고 필 잭슨, 플립 선더스, 조지 칼, 짐 베이하임 등 명장들은 CBA에서 감독 수업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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