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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버락 오바마

버락 오바마(9)-직장상사였던 아내 미셸

by 밝은터_NJT 2009.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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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아시아에서 4년 이상 거주했던 대통령. 아프리카를 아는 대통령. 쌀밥에 고추맛을 아는 대통령. 흑백 혼혈 대통령. 가난의 불편함을 아는 대통령. 다양한 종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대통령. 부모 이혼의 아픔을 아는 대통령. 배다른 동생을 잘 돌봐준 대통령. 아버지가 두 명 있는 대통령. 농구를 좋아했던 대통령.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아는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알면 알수록 이 시대 '다양성'에 부합하는 지도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의 다양한 배경은 또한 그의 단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인간을 넓게 볼 수 있는 버락 오바마에 대한 연재를 기획한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와 미셸 로빈슨의 결혼 사진. 두 사람은 1988년 법률 회사에서 만나 4년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식은 1992년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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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는 1988년 하버드대에 수학하고 있었을 때 여름방학 기간에 시카고에서 인턴과정을 밟았다. 당시 인턴생활을 하면서 만난 주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지금의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다. 결혼 전의 이름은 미셸 로빈슨. 미셸은 인턴 오바마의 멘토가 됐다. 물론 지극히 공적인 관계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오바마의 구애로 사적인 관계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미셸이 냉정하게 대했다. 미셸은 회사에서 자신이 훈련하는 사람과 데이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셸은 오바마가 끈질기게 구애를 하자 떨쳐내려고 자기 친구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오바마는 오직 미셸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구애는 계속됐다. 마침내 데이트 허락을 받았다. 첫 데이트는 아이스크림 가게인 배스킨 라빈스에서 있었다. 둘은 이 가게에서 자주 데이트를 했다.

오바마는 다시 하버드대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계속 연락을 하며 연인 관계를 이어갔다.



미셸은 시카고 사우스 사이드에서 성장했다
. 그의 가족은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미셸의 가정은 지극히 평범했다. 로빈슨 가족의 자랑은 역시 두 자녀였다. 미셸은 공부와 운동을 모두 잘했다. 공부를 좀 더 잘했다. 그의 오빠인 크레익 로빈슨은 운동을 아주 잘하고 학교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크레익은 농구 실력이 뛰어나 동네에서는 꽤 유명했다. 현재 그는 브라운대 농구팀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미셸의 부친은 지병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직장을 빠진 적이 없었다. 그는 가정을 소중히 생각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미셸의 오빠인 크레익은 아버지는 정말 열심히 사시는 분이었다. 우리도 그를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둘 중 하나가 아버지를 속상하게 하면 둘이 같이 울었다고 덧붙였다.

미셸은 사랑이 풍성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래서 오바마가 일리노이주 선거운동에 온정성을 기울여 가정을 돌보지 못했을 때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바빠도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은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바마가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었을 때 하와이에 있는 어머니를 찾았던 가족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다. 총기류 제어법을 통과시켜야 하는 중요한 상황에서 오바마는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이 법안 통과를 위해 본토로 가려고 했던 오바마는 아내 미셸의 만류로 결국 가족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언론의 비난이 쏟아졌고 이는 그의 정치생명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했다.

미셸은 재정적으로 풍부한 가정에서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과외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농구를 한다든가, 피아노를 배우는 일에 자신의 시간을 썼다. 그는 또한 글쓰기에 매진하기도 했다. 미셸은 고교시절에도 공부를 잘해 프린스턴대에 입학했다.

미셸은 생애 처음으로 백인에 둘러싸여 있는 환경에 놓여졌다. 성격이 워낙 좋아 많은 친구를 사귀었지만 심중에는 소외감이 적지 않게 들었다. 생소한 환경에서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해 1985년 우등으로 프린스턴대를 졸업했다. 미셸은 1988년에는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다.




미셸도 미래의 남편 오바마와 마찬가지로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
. 법률 회사에서 일하다가 이웃을 돕는 일에 참여하고 싶었던 미셸은 시카고 시장 사무실에서 젊은이들이 직장을 잡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을 맡았다. 미셸은 이후 시카고대 병원에서 고위직 간부로 일하기도 했다.

미셸과 오바마가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셸의 모친 마리안은 딸의 남자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가 다인종 가정에서 자랐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오빠인 크레익은 오바마를 마음에 들어했다. 크레익은 특히 오바마의 농구 실력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크레익은 오바마가 정치인을 꿈꾼다는 사실이 당황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대한 꿈을 이야기했을 때 그는 믿지 않았다. 미셸이 오바마에 강하게 끌렸던 일이 있었는데 바로 알코올중독자였던 미셸의 삼촌을 존중하면서 대했던 장면을 목격한 일이다. 미셸은 이런 모습을 보며 오바마가 정치인으로서 소양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1988년 법률 회사에서 만난 두 사람은 4년 만인 1992년 결혼에 골인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시카고에 있는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에서 열렸다. 주례목사는 제러마이아 A. 라이트 목사였다.


버락 오바마 등 뛰어난 서번트 리더들의 이야기가 실린 책 구입: https://bksports.tistory.com/803 
구글 플레이에서도 책을 구입해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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