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니클러스가 '전미 주니어' 경기에 처음으로 출전한 것은 13세 때였다. 그는 '오하이오주 주니어 경기'와 '콜롬버스 주니어 매치 플레이'에서 우승했다. 13세의 니클러스가 우리 나라로 말하면 중학교 1학년 때 그런 놀라운 기록을 냈던 것이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소년 시절의 한 살 차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큰 것이다. 그런 그가 18세의 선수들을 누르고 그런 결과를 낸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비록 지방에서 개최한 작은 규모의 주니어 선수권이었지만 13세로 처음 우승을 했다. 그가 51세의 나이에 '전미 시니어 오픈'에서 우승을 했으니 그의 우승 스토리는 거의 40년 동안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13세의 소년때부터 51세의 시니어에 이르기까지 니클러스는 항상 승리의 골프를 목표로 플레이하였고, 그것을 실현시켰다.
그가 승리를 거듭한 골프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가? 한마디로 말하면 정신과 기술 그리고 신체 모두가 누구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는 자신의 소년 시절을 돌이켜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소년 시절부터 '인도어'보다는 '아웃도어', '인공물'보다는 '자연물'을 좋아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스포츠가 상대편과의 관계에 따라 플레이가 좌우되는 것과는 달리 골프는 자기 혼자서 이끌어 나가는 스포츠이기에 나이 어린 나에게 크게 감동을 주었다. 골프 코스도 여간 매력적인게 아니었다. 골프장은 정작 플레이를 하지 않더라도 만족감에 젖게하는 그윽한 장소였다."
승부에서는 상대편이 필요하다. 패배하는 쪽이 있으면 승리하는 쪽이 생긴다. 그러나 골프장이 소년 니클러스에게는 승부를 다투는 필드라 하기보다는 자기 개발의 장소였다.
또한 자연을 관찰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니클러스는 이렇게 말했다.
설계의 의도를 추리하면서 왜 그런 의도를 가져야 하였는지의 필연성을 상상했다. 또는 특수성을 헤아려보기도 했다. 그와같은 노력어린 관찰은 당연히 나의 샷 메이킹 작전을 향상시켜 준 것이다. 그것이 스코어를 잘 챙기는 결과가 되었고, 전술의 무기로도 볼 수 있는 울트라 코스 분석요령을 안겨주었다. 나의 골프는 더욱 알차게 다져진 것이다. 골프의 챔피언십이 다른 게임의 그것과 자못 다른 것은 상대편과 승부를 가리며 싸우기 전에 반드시 해야할 것, 즉 준비해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꼽기조차 어려울 만큼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골프 자질을 높이고, 정신이나 기술, 신체도 함께 수준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소년 잭 니클러스는 줄기차게 그것을 이루면서 50대 중반이 된 지금도 잊지않고 있는 것이다. 골프의 챔피온십이 단지 상대편과의 승부를 겨루는 것으로 그친다면 이처름 수명이 긴 경기생활을 지속시킬 수 없을 것이다. 13세의 소년에게도 자신을 개발할 수 있는 요령이 있었다. 지금도 나름의 요령을 갖고 있다."
니클러스가 힘을 쏟고 있는 테마는 연령과 더불어 변화하는 정신, 기술, 신체로 하여금 연령에 맞추어 최고의 질을 유지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잭 윌리엄 니클러스는 오하이오주 콜롬버스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약국을 경영하였으므로 잭은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도 넉넉한 환경에서 자랐다.
골프를 시작한 것은 10세 때였는데 부친이 소속돼있는 사이오트CC(전미 오픈도 개최한바 있는 명문)에서 그해부터 클럽프로로 맞아들인 잭 그라우트로부터 교습을 받았다. 그후 두사람의 스승과 제자관계는 그라우트가 세상을 뜰때까지 40년 가까이나 이어졌다.
흔히 "맨 처음의 볼 치는 모양을 보고, 그 골퍼의 장래가 짐작된다."고 한다.
골퍼로서의 자질이 최초의 샷에서 표출된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기도 하지만 어떤 일이든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50명의 학습생 중에서 몇 사람은 곧 떠나갔지만 남아있는 사람 중에서도 골프에 대한 마음들은 가지각색이었다. 잭보다 재주있게 볼을 치는 소년도 더러는 있었지만 잭만큼 열심이고, 골프를 좋아하는 소년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가르지는 방식이 너무 우악하다며 아이들을 그대로 데리고 돌아가는 부모도 있었는데 잭의 부친은 말없이 내가 가르치는대로 맡겼었다. 선생인 나에게 아들을 맡긴 이상은 무엇이든 철저하게 해달라고 하며 흐뭇한 웃음으로 지켜 보았던 것이다."
그라우트는 자서전 속에서 그렇게 썼다. 여하간에 니클러스의 "맨 처음 쳐보인 모습"이 어떤 동작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10세 소년 시절부터 50세가 될 때까지 그라우트는 니클러스의 스윙을 한결같이 살피며 체크해 준 것이다.
스윙의 완벽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19세때 '전미 아마'에서 처음 우승을 했고, 영국과 미국의 아마추어 대항전인 '워커 컵'에서는 미국팀의 대표로 뽑혀 처음으로 스코틀랜드를 건너갔다.
시합은 '전영 오픈'경기를 개최하는 코스로 잘 알려져 있는 뮤어필드에서 거행됐는데 싱글매치와 포섬에서도 이기고, 아메리칸 팀이 승리를(9대3) 거두는데 공헌했다.
그 시합을 구경한 영국의 이름 높은 골프 평론가 워드 토머스는 니클러스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만전의 준비가 될 때까지는 그리고 스탠스와 그립이 허점없이 조정될 때 까지는 또한 마지막 결단이 잡힐때까지는 절대 볼을 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준비 완료된 다음에 비로써 강력한 스윙으로 폭발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동작은 확실히 게르만 민족의 인내력을 엿보게 하는 것이 있다."
니클러스의 조상은 북부 독일 출신이다. 그가 항상 최고의 것을 추구하거나 완전한 것을 찾는 것은 그 혈통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게서 완전함을 추구하며 그것이 소년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 관해 자세히 알고있는 미국의 골프 평론가 켄 보덴은 "잭은 언제나 100%로 만전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마음을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맨처음의 샷 한번"이 어떤 모습이었든간에 그의 자세가 바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의 본보기였던 모양이다.
'골든 베어'로 불렸던 그는 PGA 투어에서 24년 동안 활약하면서 18차례 메이저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그는 골프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힐 정도로 위대한 성적을 냈다. 그는 PGA 투어에서 73회, 챔피언스 투어에서 10차례 기타 투어에서 32회 챔피언에 올라 프로로서 총 115차례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1967년, 1972년, 73년, 75년, 76년에 그는 PGA 올해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Golf Herald=ICCsports.com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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