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이클조던42

[마이클 조던(6)] 조던과 잭슨의 전설적인 동행: 새로운 전환점 [마이클 조던(6)] 조던과 잭슨의 전설적인 동행: 새로운 전환점 | 플레이오프 첫 승리와 전설의 시작: 조던의 농구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들 https://newjournalist.today/detail.php?number=1378&thread=25r01 2023. 12. 9.
[스타 열전] 빈스 카터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면서 마이클 조던의 뒤를 이을 선수로 손꼽힌 선수는 빈스 카터였다.당시 농구 전문가들은 조던의 후계자로 카터, 코비 브라이언트(LA레이커스), 앨런 아이버슨(당시 필라델피아 76ers)등을 꼽으면서도 카터를 빼놓지 않았다. 당시만해도 브라이언트는 팀 플레이가 미숙하고 아이버슨은 코트에서 이기적이고 사회에서 건실하지 못한 점이 '넘버1'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가 있었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사진: PicApp 그러나 카터에 대해서는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휴먼 하이라이트 필름2'라는 별명도 언론사 기자들이 지어준 것이었다. ESPN의 월간 스포츠 전문잡지인 'ESPN 매거진'은 2000년 신년호에서 "카터는 2000년대 최고 .. 2010. 1. 14.
[스타 열전] 엘튼 브랜드 "MVP, MVP!"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LA 클리퍼스 경기를 보면서 이런 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LA 레이커스와의 대결에서 코비 브라이언트와 같은 레이커스 선수에 대해 이런 외침이 있었지만 클리퍼스 선수가 이런 칭송을 듣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주인공은 전 클리퍼스 포워드 엘튼 브랜드. 브랜드는 지금은 필라델피아 76ers 소속이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듀크대 3학년이 되기 전에 프로 진출을 선언한 브랜드는 1999년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지명됐다. 그를 지명한 팀은 마이클 조던이 은퇴한 후 재건을 노렸던 시카고 불스. 듀크대 동문의 엄청난 비난 속에 NBA에 진출한 브랜드는 첫 시즌에 20.1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한 후 스티브 프.. 2010. 1. 12.
[NBA 30개 구단 역사(1)]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포틀랜드 블레이저스는 1970년 창단한 구단으로 오리건주의 유일한 메이저 프로 스포츠 구단이다. 오리건주에서 유일한 프로 구단이다 보니 1977년부터 1995년까지 무려 814경기 연속 티켓 매진을 기록하는 등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는 미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유일무이한 일이었다. 1977년은 블레이저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NBA 챔피언이 된 해이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블레이저스는 90년대 초반이 전성기였다. 당시 두 번이나 NBA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주인 폴 앨런이 구단주로 있는 이 팀의 단장은 케빈 프리처드이고 네잇 맥밀런이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블레이저스는 과거 하승진의 소속팀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승진은 지난 2004년 NB.. 2010. 1. 7.
[스타 열전] 르브론 제임스 "매직 존슨의 코트 비전과 마이클 조던의 운동 능력을 가진 선수." 2002년 당시 18세의 고교 스타 르브론 제임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제2의 매직`도 `제2의 조던`도 아닌 두 선수의 장점을 모두 갖춘 선수라니, 과연 그는 어떤 능력의 선수이기에 이런 칭송을 받았던 것일까.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사진: PicApp ■ 천재 농구 스타 2002년 11월 오하이오주 애크론시에 있는 한 고등학교의 졸업반이었던 제임스는 프로농구(NBA) 스타 보다 더 많은 팬을 확보한 천재 농구 소년으로 통했다. 제임스가 다녔던 세인트빈슨트-세인트 매리 고교는 당시 홈경기를 6천명 수용의 대학교 체육관에서 치렀다. 고등학교 체육관은 `르브론 팬`의 3분의 1도 채울 수 없기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2010. 1. 6.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5.최종)-'구단주 조던'에 도전 마이클 조던 연재 https://bit.ly/michaeljordanstory 마이클 조던의 ‘최종 은퇴’ 후 워싱턴 위저즈의 에이브 폴린(2009년 11월 작고) 구단주는 조던을 구단 사장으로 두질 않았다. 2003년 5월7일 조던은 위저즈를 떠났다. 당시 조던이 해고된 일은 충격적이었다. 조던이 위저즈에 들어와서 이 구단은 흑자경영 구단이 됐는데 공신을 해고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농구의 황제’가 위저즈에서 선수로 뛰기 전까지 이 구단은 4천만 달러의 적자를 내는 구단이었다. 조던의 존재 하나로 위저즈 구단은 3천만 달러의 흑자를 보게 됐다. 사람들은 폴린 구단주가 냉정하게 조던을 내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폴린의 결정이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조던은 위저즈 구단의 사장 및 단장으로 .. 2009. 12. 21.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4)-조던 두 번째 복귀&은퇴 마이클 조던 연재 https://bit.ly/michaeljordanstory 1999년 1월 자신의 복귀 가능성은 0.01%라고 암시했던 조던이 2년이 지난 후 다시 복귀를 놓고 고민했다. 2001년 여름 조던은 두 번째 복귀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NHL 스타였던 마리오 르뮤가 은퇴 선언 후 복귀한 것을 보고 자신도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2001년 봄과 여름 조던은 몸만들기에 한창이었다. 그가 복귀를 노리는 팀은 바로 자신이 구단 경영 사장으로 있던 워싱턴 위저즈였다. 위저즈 구단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복귀 시도였다. 그는 복귀를 위해 자신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덕 콜린스를 위저즈 감독으로 영입했다. 콜린스는 2001년 여름 조던의 연습을 지켜본 후 “농구 게임을 너무나 쉽게.. 2009. 12. 8.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3)-조던 은퇴 선언 마이클 조던 연재 라인업 2009/09/08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조던은 말이지... 2009/09/09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가장 위대한 선수 2009/09/10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3)-마이클, 군인이 돼라! 2009/09/11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4)-불스와 NBA의 희망 2009/09/11 - [Just a Note] - 마이클 조던 명예의 전당 헌액 행사 (동영상) 2009/09/12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부록)-명예의 전당 연설 2009/09/15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 2009. 12. 6.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2)-무적함대 역사 속으로(II) 지난 글 라인업 2009/09/08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조던은 말이지... 2009/09/09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가장 위대한 선수 2009/09/10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3)-마이클, 군인이 돼라! 2009/09/11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4)-불스와 NBA의 희망 2009/09/11 - [Just a Note] - 마이클 조던 명예의 전당 헌액 행사 (동영상) 2009/09/12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부록)-명예의 전당 연설 2009/09/15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 2009. 12. 5.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1)-무적함대 역사 속으로(I) Like Mike by - POD - 지난 글 라인업 2009/09/08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조던은 말이지... 2009/09/09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가장 위대한 선수 2009/09/10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3)-마이클, 군인이 돼라! 2009/09/11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4)-불스와 NBA의 희망 2009/09/11 - [Just a Note] - 마이클 조던 명예의 전당 헌액 행사 (동영상) 2009/09/12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부록)-명예의 전당 연설 2009/09/15 - [연재/마이클 .. 2009. 12. 4.
[추억의 인터뷰] 전 필리스 마이너리거 김일엽 김일엽(1980년 2월 15일 ~ )은 한국 프로 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이다. 경북고등학교와 단국대학교를 졸업한 뒤 2007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였으며, 주로 중간 계투진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2009년 시즌에 들어서는 선발 투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5월부터 한시적으로 선발 보직도 겸하였다. 그러나 성적은 매우 좋지 않아, 승리 없이 5패를 기록하였으며, 특히 2009년 6월 21일에 있었던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장했음에도 단 1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5실점을 하여 강판되었다. 결국 이틀 뒤인 6월 23일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어 이후로는 2군에서 활동하고 있다. [위키피디아]191㎝, 106㎏의 건장한 신체를 갖춘 김일엽은 경북고를 졸업하고 단국대 4학년이던 지난 2001년.. 2009. 12. 3.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0)-조던 vs. '우편배달부' 지난 글 라인업 2009/09/08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조던은 말이지... 2009/09/09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가장 위대한 선수 2009/09/10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3)-마이클, 군인이 돼라! 2009/09/11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4)-불스와 NBA의 희망 2009/09/11 - [Just a Note] - 마이클 조던 명예의 전당 헌액 행사 (동영상) 2009/09/12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부록)-명예의 전당 연설 2009/09/15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 2009. 12. 2.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7)-야구 선수가 되다(II) 마이클 조던이 2009년 9월11일(미국 현지기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농구 황제’가 공식적인 ‘홀 오브 페이머’가 되는 일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특별한 선수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았다. 농구 분석가인 케니 스미스는 이번 명예의 전당 행사를 "떠들썩한 파티"라고 표현했다. 명예의 전당 행사가 이렇게 요란스럽게 진행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로 칭송되는 마이클 조던도 잘 풀리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 그의 발목을 붙잡았던 셀틱스, 피스톤스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넘고 챔피언이 된 불스는 90년대 왕조를 건설했다. 걸림돌이 뉴욕 닉스였지만 불스는 고비를 잘 넘겼다. 서부의 강자들은 모두 불스 앞에서 작아졌다. 불스의 3년 연.. 2009. 10. 9.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6)-야구 선수가 되다(I) 마이클 조던이 2009년 9월11일(미국 현지기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농구 황제’가 공식적인 ‘홀 오브 페이머’가 되는 일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특별한 선수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았다. 농구 분석가인 케니 스미스는 이번 명예의 전당 행사를 "떠들썩한 파티"라고 표현했다. 명예의 전당 행사가 이렇게 요란스럽게 진행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로 칭송되는 마이클 조던도 잘 풀리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 그의 발목을 붙잡았던 셀틱스, 피스톤스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넘고 챔피언이 된 불스는 90년대 왕조를 건설했다. 걸림돌이 뉴욕 닉스였지만 불스는 고비를 잘 넘겼다. 서부의 강자들은 모두 불스 앞에서 작아졌다. 불스의 3년 연.. 2009. 10. 7.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5)-불스 3년 연속 우승! 5차전이 승부처였다. 뉴욕에서 열린 5차전은 종료 버저가 울리기 전까지 승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는 팀이 당연히 시리즈 승리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되기 때문에 두 팀은 사활을 건 승부를 했다. 4쿼터 28초를 남긴 상황에서 닉스는 95-94로 뒤져 있었다. 닉스는 마지막 공격에서 골밑 슛 기회를 4-5차례 얻었는데 공은 계속 림을 튕겨 나갔다. 약 5초를 남겼을 때 불스의 스카티 피펜이 수비 리바운드를 잡았고 조던에게 패스했다. 조던은 공을 드리블해 골밑으로 달려가던 암스트롱에 패스를 했고 암스트롱은 종료 버저가 울림과 동시에 골밑 레이업을 성공했다. 불스가 극적으로 97-94 승리를 거뒀다. 승세를 잡은 불스는 6차전에서도 승리해 NBA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게 됐다. 3.. 2009. 10. 6.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4)-조던과 원조드림팀 어쨌든 드림팀이 구성되자 미국과 전 세계가 술렁거렸다. 드림팀의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에 의해 보도됐다. 드림팀은 손발을 맞추기 위해 미국에서 대학선발군과 연습경기를 했다. 첫 경기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페니 하더웨이, 크리스 웨버, 자말 매시번, 앨런 휴스턴으로 구성된 대학선발군이 58-52로 승리를 거뒀던 것. 테네시대를 다녔던 휴스턴은 이 경기에서 3점슛 7개를 성공시켰다. 연습경기였지만 대학선발군 선수들은 승리를 거둔 후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마치 대학농구 챔피언이나 된 것처럼 말이다. 비공개 연습경기였기에 덜 민망스러웠지 공개적인 경기였다면 그야말로 망신살이 뻗는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대학 선발군의 감독이었던 로이 윌리엄스는 경기가 끝나고 조던, 데일리, 바클리와 골프를 하면서 젊.. 2009. 10. 3.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3)-조던 vs. 드렉슬러 경기가 끝나고 필 잭슨 감독은 자신의 멘토이자 전 뉴욕 닉스 감독이었던 레드 홀즈먼을 만났다. 잭슨은 스승에게 “라일리 감독은 정말 대단했다. 이 팀을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홀즈먼은 “너도 그만큼 좋은 코치다”라고 응답했다. 명장의 대결, 대도시를 프랜차이즈로 하는 구단의 대결, 당시 최고의 선수(조던 vs. 패트릭 유잉)의 대결이 이 시리즈를 90년대 최고의 라이벌전의 하나로 꼽히게 했다. 수능시험을 제대로 치른 불스에게 동부 컨퍼런스 결승 상대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전은 연합고사처럼 느껴졌다. 불스는 쉽게 시리즈를 치렀고 4승2패로 동부 챔피언이 돼 NBA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1992년 NBA 챔피언 결정전 상대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였다. LA 레이커스가 .. 2009. 10. 2.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2)-새 라이벌 등장! 조던은 이에 대해 “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갖길 원했다. 구단과 대통령을 무시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조던은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골프여행 중에 있었던 것으로 추후 밝혀졌다. 조던의 수난은 계속 이어졌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할 원조 드림팀 멤버가 발표됐을 때 조던은 아이제이아 토머스를 선발하면 자신은 뛰지 않겠다고 말해 결국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올림픽 출전 선수를 막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이 들끓었다. 조던은 토머스가 이끌었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화가 나 있었다. 1991년 동부 컨퍼런스 결승 최종전에서 불스의 승리가 거의 확정되자 토머스와 그의 동료는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불스 벤치를 가로질러 코트를 떠났다. 이에 대해 비난이 빗.. 2009. 10. 1.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1)-불스 마침내 첫 우승! 3차전은 LA에서 열렸다. 불스 선수들은 호텔에 들어갈 때 가명을 사용해야 했다. 워낙 관심이 높은 시리즈라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조던의 가명은 리로이 스미스였다. 스미스는 고교시절 농구팀 테스트에서 조던을 눌렀던 인물이다. 조던은 스미스에 밀려 학교 농구팀에 들어가지 못하고 1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호러스 그랜트는 글렘슨 타이거라는 가명을 썼고 필 잭슨은 스위프트 이글로 통했다.할리우드 스타들도 이 시리즈에 관심이 높아 티켓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올랐다. 티켓이 부족해 일부 선수들은 지인을 위한 표를 추가로 구입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3차전에서 매직 존슨의 전담맨은 조던이었다. 존슨은 조던의 강력한 수비에 빨리 지쳤다. 불스는이 덕분에 전반을 48-47로 리드했다. 라커룸에서 피펜은 .. 2009. 9. 27.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0)-마이클 vs. 매직 존슨 챔피언 결정전이 열리기 전 필 잭슨 불스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1991년 NBA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챔피언 결정전에 뛴 경험이 없던 선수들이라 그 무대가 어떤 분위기일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조던은 이 자리에서 “난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초반에 슛을 쏘지 않고 분위기를 보겠다는 말이었다. 잭슨 감독도 이렇게 관심이 집중된 챔피언 결정전은 처음으로 경험해보았기에 예측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빌 카트라이트와 스카티 피펜이 1차전 초반에 활발한 공격을 해주길 기대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경험이 부족한 불스 선수들은 슛난조를 보였다. 이때 조던은 “그러면 그렇지. 내가 경기를 지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활발하게 공격에 가담했다. 1차전은 레이커스가 승리했다.. 2009. 9. 26.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9)-'나쁜녀석들'너머 조던은 잭슨 감독의 설명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미 이 공격 방법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잭슨이 더욱 이 공격법을 강화한다는 것을 알게 된 조던은 “나는 이 시스템 안에서 뭘해야 하는지 안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이 그럴지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조던은 여전히 팀 동료를 믿지 않았다. 지난 3년 동안 피스톤스에 무릎을 꿇으면서 동료의 부진에 조던은 질려 있었다. 그러나 잭슨의 말이 맞았다.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 불스는 최고의 경기력을 보였다. 조던, 스카티 피펜, 빌 카트라이트, 호러스 그랜트(호레이스 그랜트), 크레이그 호지스, 데니스 홉슨, 스테이시 킹, 존 팩슨, 윌 퍼듀, 스캇 윌리엄스, 클리프 리빙스턴으로 팀을 구성한 불스는 기대 이상으로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적응했다. 시즌 첫 3경기에.. 2009. 9. 24.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8)-성장통 피스톤스는 불스와의 컨퍼런스 결승에서 첫 2경기에 쉽게 승리했다. 특히 2차전에서 조던을 셧아웃 시킨 일은 ‘농구 황제’를 화나게 했다. 조던이 공을 잡으면 피스톤스 선수들이 벌떼처럼 몰려드는 바람에 그는 20득점에 그쳤다. 조던은 경기가 끝난 후 팀 동료, 기자들과 말을 하지 않고 선수단 버스에 올랐다. 당시 그의 부친인 제임스는 기자들에게 다가와 “여러분에게 화가 난 게 아닙니다. 그는 그저 피스톤스의 전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에 화가난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3차전 홈경기는 조던의 뜻대로 진행됐다. 불스는 피스톤스에 107-102로 승리했고 4차전도 108-101 승리로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렸다. 조던은 이 두 경기에서 각각 47득점, 42득점을 기록했다. 5차전은 다시 피스톤스의 홈에서 .. 2009. 9. 23.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7)-'The Shot' 마이클 조던이 2009년 9월11일(미국 현지기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농구 황제’가 공식적인 ‘홀 오브 페이머’가 되는 일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특별한 선수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았다. 농구 분석가인 케니 스미스는 이번 명예의 전당 행사를 "떠들썩한 파티"라고 표현했다. 명예의 전당 행사가 이렇게 요란스럽게 진행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로 칭송되는 마이클 조던도 잘 풀리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 그의 발목을 붙잡았던 셀틱스, 피스톤스가 있었다. ICCsports.com은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덕 콜린스가 시카고 불스를 맡은 후 3번째 시즌을 맞았다. 마이클 조던이 NBA에 데뷔한 후 다섯 번째 시즌이다... 2009. 9. 18.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6)-필 잭슨&피펜과의 첫 만남 마이클 조던이 2009년 9월11일(미국 현지기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농구 황제’가 공식적인 ‘홀 오브 페이머’가 되는 일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특별한 선수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았다. 농구 분석가인 케니 스미스는 이번 명예의 전당 행사를 "떠들썩한 파티"라고 표현했다. 명예의 전당 행사가 이렇게 요란스럽게 진행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로 칭송되는 마이클 조던. ICCsports.com은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2009/09/09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조던은 말이지... 2009/09/10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가장 위대한.. 2009. 9. 17.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5)-득점기계&슬램덩크 챔프 마이클 조던이 2009년 9월11일(미국 현지기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농구 황제’가 공식적인 ‘홀 오브 페이머’가 되는 일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특별한 선수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았다. 농구 분석가인 케니 스미스는 이번 명예의 전당 행사를 "떠들썩한 파티"라고 표현했다. 명예의 전당 행사가 이렇게 요란스럽게 진행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로 칭송되는 마이클 조던. ICCsports.com은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2009/09/09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조던은 말이지...2009/09/10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가장 위대한.. 2009. 9. 16.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가장 위대한 선수 마이클 조던이 2009년 9월11일(미국 현지기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농구 황제’가 공식적인 ‘홀 오브 페이머’가 되는 일은 의미가 남다르다. 미국의 주요 스포츠 잡지들은 마이클 조던의 명예의 전당행 특집판을 제작해 판매를 시작했다. ESPN 매거진은 마이클 조던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특집판을 제작했고 슬램과 같은 농구 전문 잡지들도 비슷한 특집판을 만들어 시판했다. 그의 명예의 전당행은 당연한 일이지만 특별한 선수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로 칭송되는 마이클 조던.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MJ 특집(2)- 가장 위대한 선수들과 비교해보았다마이클 조던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 2009. 9. 10.
필 잭슨 감독 특집(5)-2008년 이야기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이 통산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받게 됐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감독이 미국 메이저 스포츠에서 10회 우승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금자탑을 세운 것이나 다름 없다. 필자는 지난 2005년부터 잭슨 감독에 관해 쓴 글을 정리해보았다. s2008년2월19일: NBA 시즌 전반부에 35승17패를 기록한 LA 레이커스는 후반부에 20승-25승 추가를 목표로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필 잭슨 레이커스 감독은 서부 컨퍼런스에서 4위 이내에 들으려면 20-25승이 필요함을 LA 지역 언론 기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레이커스는 앞으로 30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20-25승은 가능한 승수일까? 잭슨 감독은 긍정적으로 말했다.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기 때문에 20-25승은.. 2009. 6. 23.
[추억의 인터뷰] 코비 브라이언트 신인 시절, 한국말도 했다. 코비 브라이언트. 그를 만난 것은 1997년이었다. 12년 전의 일이다. 1996-97시즌은 브라이언트가 신인이었던 해다. 한국의 NBA 전문 잡지에 기고하고자 그와 인터뷰를 시도했던 기자는 좋은 첫인상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선수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고 한국말 인사도 열심히 했다. 신인이었기에 인터뷰가 어렵지 않았다. 잠시 12년 전 인터뷰 내용을 돌아보도록 한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코비 브라이언트 인터뷰 장소 및 방법: 그레이트 웨스트 포럼(전 레이커스 홈경기장) 라커룸에서 직접 만남 인터뷰 일자: 1997년 ▶필자: 지난 2월(1997년)에 열린 NBA 올스타전 덩크슛 경연대회에서 챔피언이 됐다. 그때 기분이 어땠나? ▷코비: 내 평생의 꿈이.. 2009. 6. 23.
필 잭슨 감독 특집(4)-2007년 이야기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이 통산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받게 됐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감독이 미국 메이저 스포츠에서 10회 우승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금자탑을 세운 것이나 다름 없다. 필자는 지난 2005년부터 필자가 잭슨 감독에 관해 쓴 글을 정리해보았다. s2007년 2월1일: 레이커스는 (2007년 2월 당시) 10경기에서 5승5패로 부진했지만 시즌 성적은 28승18패로 아주 좋았다. 이는 서부 컨퍼런스 10위권의 팀이라는 미국 언론 농구 전문가들의 평가에 비춰볼 때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이다. 사실 레이커스의 당시 선수들을 보면 10위권 팀이라는 객관적 예상이 맞았다. 6위 팀은 아니었다. 예상 외로 4단계 차이가 나는 것은 역시 필 잭슨 감독의 지도력 덕분이었다고 할 수.. 2009. 6. 23.
필 잭슨 감독 특집(2)-2005년 이야기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이 통산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받게 됐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감독이 미국 메이저 스포츠에서 10회 우승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금자탑을 세운 것이나 다름 없다. 필자는 지난 2005년부터 잭슨 감독에 관해 쓴 글을 돌아보았다. s 2005년 7월1일: 레이커스는 일단 제한 자유계약 선수인 루크 월튼과 재계약하려고 할 것이다. 제한 자유계약 선수는 다른 팀이 어떤 조건을 제시했을 때 이전 소속팀이 똑같은 조건으로 매치(match)하면 원소속팀에 남아야 하는 선수다. 제한된 자유인 것이다. 레이커스는 필 잭슨 감독의 시스템에 익숙하고 잭슨이 좋아하는 월튼을 최대한 잡을 것으로 보인다. [주: 잭슨 감독은 월튼을 높이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부진해도 계속.. 2009.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