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조던이 2009년 9월11일(미국 현지기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농구 황제’가 공식적인 ‘홀 오브 페이머’가 되는 일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특별한 선수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았다. 농구 분석가인 케니 스미스는 이번 명예의 전당 행사를 "떠들썩한 파티"라고 표현했다. 명예의 전당 행사가 이렇게 요란스럽게 진행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로 칭송되는 마이클 조던. ICCsports.com은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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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0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가장 위대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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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2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4)-불스와 NBA의 희망
2009/09/13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부록)-명예의 전당 연설
1984-85년 NBA 시즌이 끝나고 마이클 조던이 했던 것은 바로 노스캐롤라이나대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는 1985년 시즌이 끝나고 노스캐롤라이나대 여름 강좌를 들었고 1986년에도 졸업을 위해 여름에 쉬지 않았다.
3학년만 마치고 프로에 진출한 그는 2년 동안 여름휴가를 반납한 결과 대학 졸업장을 받게 됐다. 그의 전공과목은 지리학이었다. 조던은 “농구 선수가 안 됐더라면 기상전문가가 됐을 것”이다. 본인의 말이다.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지만 조던의 불스는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그들은 이번에도 드래프트를 노렸다. 드래프트를 통해 미래의 불스를 짊어질 젊은 선수를 찾길 원했다. 조던은 듀크대 출신의 조니 도킨스가 불스에 지명되길 원했다.
그러나 제리 크라우스 불스 단장은 오하이오 스테이트 출신의 브래드 셀러와 오클라호마대의 스테이시 킹을 지명했다. 조던은 그 어느 때보다 시즌을 위한 준비가 잘 되어 있었지만 이 지명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래도 지난 시즌 다친 발이 완벽하게 나아 그는 ‘에어 조던’으로 다시 활약할 수 있게 됐다. 체지방은 0에 가까웠을 정도로 그의 몸은 완벽했다. 1986-87시즌이 시작했다. 불스의 새 감독은 덕 콜린스였다. {계속 읽으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마이클 조던(5)] 에어 조던의 화려한 날갯짓: NBA를 지배하다 | 불스의 변화와 조던의 득점 행진: 시즌 1986-87 회고
https://newjournalist.today/detail.php?number=1355&thread=24r07r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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