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스타’ 마이클 잭슨이 50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마이클 잭슨처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끈 팝스타는 일찍이 없었다. 그는 손에 꼽히는 ‘글로벌 팝스타’였다. 그의 죽음에 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을 돌아보는 ‘마이클 잭슨 50년 인생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Michael, Rest in Peace by Tony the Misfit ![]()
5) Thriller 앨범은 그야말로 '스릴'이었다
퀸시 존스와 합작으로 만든 두 번째 앨범은 ‘Thriller’ 였다. 1982년 11월 발매된 이 음반은 24세의 마이클 잭슨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이 음반은 레코딩 산업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것으로 기록됐다. 이 음반에는 지금까지도 인기있는 ‘Beat It” “Billie Jean” “Thriller”가 수록돼 있다. 영화에 출연한 바 있는 마이클은 이 경험을 토대로 세 곡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제작했다.
뮤직비디오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는 기존의 그것과는 달랐다. 영화처럼 이야기가 전개됐던 것이다. 당시로는 혁명이었다. 뮤직비디오에 새로운 이야기(story line)를 넣어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전환하도록 한 주인공이 마이클 잭슨이었다. 1983년의 일이었다. 이때부터 뮤직비디오 시장이 형성됐다. 뮤직비디오가 마치 단편영화처럼 팬들에게 다가갔다.
공식 4600만 장, 비공식 1억 장 이상
Thriller 앨범은 1983년 빌보드차트에서 무려 52주 동안(일년 내내) 자리를 잡았다. 그중 37주는 1위 자리를 유지했다. 이 앨범은 영국에서도 인기가 대단해 오랜 시간 1위 자리를 고수했다.
Thriller 앨범은 불법 카피를 포함 총 1억 장이 나간 것으로 추정되는데 공식적인 집계로는 4600만 장이 나갔다. 공식 집계로도 역사상 최다 판매 기록이다. 이전 최다 판매 기록은 ‘Saturday Night Fever’로 총 1800만장이 판매된 바 있다.

Thriller by Caesar Sebast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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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이 100만장 팔리면 ‘플래티넘’으로 인증되는데 그 기준에 43배를 초과 달성한 게 Thriller 앨범이었다. 어떤 시점에서는 Thriller가 4일 간격으로 100만 장씩 팔릴 때도 있었다. 이 음반 판매와 관련해 한 달 수익으로만 1천만 달러 이상을 올릴 때도 자주 있었다. 이 음반 제작비가 75만 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흑자가 아닐 수 없다.
이 앨범으로 마이클 잭슨은 1984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무려 8개 부문을 휩쓸었다.
Thriller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영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호주, 이탈리아, 그리스, 네덜란드, 스페인, 브라질에서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아티스트상, 올해의 가수상 등을 휩쓸었다.
문워크로 댄스의 황제
음반과 뮤직비디오로 대박을 터뜨린 마이클은 “Billie Jean”에서 ‘문워크(moonwalk)’ 춤을 춰 댄스 역사에서도 한 획을 그은 인물이 됐다. 마치 달 표면에서 뒤로 걷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 ‘문워크’는 마이클 잭슨을 ‘팝의 황제’뿐만 아니라 ‘댄스의 황제’로 올려놓았다. 어린 시절부터 댄스 가수들의 흉내를 냈던 마이클은 자신의 춤을 전 세계 청소년들이 흉내 내도록 만들었다.
Thriller는 또한 MTV가 급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MTV는 시청자들에게 Thriller 비디오를 자주 보여주며 청소년들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마이클 잭슨이 사망하자 MTV는 곧바로 특집 방송을 만들어 장시간 동안 시청자들에게 마이클 잭슨의 역사를 소개할 정도로 마이클은 이 회사에 은인과 같은 인물이다.

Tribute to Michael Jackson (Wallpaper) by guidosporta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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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은 또한 인종적 장벽을 뚫은 인물로도 평가됐다. 흑인이 다른 인종으로부터 사랑받기 어려웠던 시절 그는 인종을 초월한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1988년 기사에서 “Thriller의 대성공은 이후 흑인 아티스트들의 등장을 위한 길을 닦는 계기가 됐다”고 했고 타임 매거진은 1984년 “마이클은 비틀스 이후 최고의 인물이고 엘비스 프레슬리 이후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역사상 최고의 흑인 가수다”라고 평했다. 역사상 최고의 흑인 가수에서 흑인이라는 단어를 빼야 할지도 모른다. [밝은터]
마이클 잭슨 50년 인생 한눈에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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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배, 마이클 잭슨 기사 잘 읽고 갑니다.
잘 지내죠? 댓글 감사해요!